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46화 (14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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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이유(4)

상준은 우현의 반응에 슬쩍 대본을 넘겨보았다.

“와…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뭐, 안 될 건 없겠지. 어거지로 넣기는 하셨네. 이거 짜내느라고 고생 좀 하셨겠어.”

“아니,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지여울 제작피디에게 뭐라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알아듣게 말하긴 했어. 그네들도 별 수 없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윤 작가님 드라마를 PPL 때문에 안 보는 것도 아니고…”

우현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어떻게 보면 극에 웃음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또 전화해서 항의하는 건 싸우자는 이야기 밖에 안 된다.

“그래도 우리 별이가 이렇게 웃기게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듭니다. 더구나 윤해연 작가님은 우리 소속사 가족인데 이렇게 배려 안 해줘도 되는 겁니까?”

“짜식이… 이제 윤 작가님도 생각할 줄 아네?”

“그럼요. 사실 윤 작가님이 우리 회사에서 가장 파워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넌 인마 어떻게 일차원적으로 밖에 생각을 못 하냐? PPL을 제작피디 마음대로 넣을 수 있어?”

“그럼 아닙니까?”

“아니야. 작가랑 상의해서 들어가는 거라고. 윤 작가가 정 안된다고 생각했으면 나한테 전화했겠지. 그런데 내가 전화하니까 그제서야 힘들다며 토로한 거고.”

“그럼 윤 작가님이 혼자서 속을 끓이다 대표님 전화를 받고…”

상준을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지? 윤해연 작가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이고 회당 원고료로 얼마를 받는데 혼자서 속을 끓이겠냐? 이미 지 피디랑 둘이 이야기 끝난 거야. 그러다 내가 전화하니까 하소연 좀 한 거고.”

“그럼 왜 윤 작가님이 그걸 수락한 겁니까?”

목이 마른 우현이 캔커피를 쭈욱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드라마 외주 제작 업체는 찍어서 방송국에 넘기면 그게 끝이야. 일단 방송 타면 모든 권리는 방송국에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일단 찍어서 넘기고 나면 더 이상 돈이 들어올 곳이 없다는 말이야. 결국 방송사에서 회당 제작비를 넘겨받고 부족한 돈은 PPL로 메꾸는 시스템인 거지. 윤해연 작가도 그걸 아는 거야. 어이없기는 하지만 저쪽 업체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들어줘야 한다는 걸.”

“이왕 할 거면 처음부터 미리 조율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너 같으면 돈 준다는데 마감 끝났다고 거절하겠어? 기업 입장에서도 작게는 몇 천, 몇 억에서 많게는 몇 십억이 나가는 일인데 짧은 시간에 결정할 수 있겠어? 드라마 진행 중에 결정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고.”

“그럼 다른 업체랑…”

“으이그… 그 다른 업체는 PPL없이 제작 가능하냐? 뭐, 가능할 수도 있겠지. 톱배우, 작가, 조연 배우들한테는 살살거리다가 스태프들이나 보조출연자들 돈 떼먹고 홀랑 날라버리던가 하는 일이 이 바닥에서 왜 심심찮게 벌어지는 줄 알아?”

“아…”

“돈 못 받고 뿔난 그들이 방송사에 항의하면 방송사는 뭐라고 해? ‘우린 돈 줬으니까 제작사에 항의해’ 이러잖아? 그럼 제작사는 줄게, 줄게 하면서 사랑 애간장 녹이다가 죽기 직전에 조금씩 주지. 뭐, 주기나 하면 다행일 정도의 쓰레기들이 있기도 해. 어쨌거나 최소한 이 바닥에서 10년 동안 별다른 잡음 없이 버텨온 곳이 저쪽이니까 조금 화나고 어이없더라도 넘어가는 거야. 그렇게 번 돈, 하루하루 먹고 사는 보조출연자들이랑 스태프들에게 간다고 믿는 거지. 그걸 아니까 나도, 윤 작가님도 지 피디에게 크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야. 뭐, 그런데 오션나라는 너무하긴 했어, 그치?”

그렇다. 그건 정말 너무했다.

“그럼요. 너무했어요.”

상준은 너무하다고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확실히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상준의 어깨를 툭 치며 다독였다.

“상준아, 이 바닥에서 겸손해야 한다. 조금 뜨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한 순간이야. 별이가 들뜨면 가라앉혀 줘야 할 사람이 넌데 왜 네가 별이보다 더 흥분해서 그래? 잘 되거나 안 되거나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해. 특히 너는 더욱 더 그렇지. 생각해 봐. 이 대본을 보면 피디는 물론이고 다른 스태프들도 어이없을 거라고. ‘내가 돈 벌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지. 그럴 때 네가 나서서 더 힘내자고 으쌰으쌰해서 기운을 북돋아 주면 여기 스태프들이랑 관계자들이 고마워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로드매니저가 해야 하는 일이야.”

“알겠습니다.”

시선을 돌리자 별이가 존경의 눈빛으로 우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 너도 PPL이라고 대충 연기하려고 하면 안 돼. 따지고 보면 이거 전부 남의 돈으로 만드는 거야. 김은선 작가가 말했지? 남의 돈으로 예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벌에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든다고. 맞는 말이야. 이 바닥에서 스타라고 뜬 친구들 중에 자기 돈으로 성공한 사람 없다. 그 남의 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게 바로 네 일인 거지.”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너야 걱정할 게 없지.”

“유니가 조금 활발하긴 하지만 그래도 버릇없지는 않아요.”

별이는 말하지 않아도 우현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안심시켰다.

“나도 알지. 그런데 조금 많이 활발해서… 그러다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수고들 하고. 저녁에 밥차 준비시켰으니까 어깨에 힘 좀 넣고 연기해라.”

“아앗! 감사합니다.”

사전제작은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회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잘 될 거라는 믿음 하나로 고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데, 말없이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여배우 입장에서는 밥차나 커피차가 최선이다.

괜히 잘하는 친구들 붙잡아 설교나 늘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지만 꼭 한번은 해야 할 말이었기에 털어버리고 사무실로 향했다.

“대표님, 내일 모레가 유니 쇼케이스인 거 아시죠?”

“그럼, 앨범 자켓은 나왔지? 한번 보자.”

업체 쪽에서 만들어준 샘플을 유니와 함께 고르긴 했는데 아직 완성된 것은 보지 못했다.

“여기 있습니다. 딱 컨셉에 맞게 잘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걸 보니 또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뭔데 그래? 또 누구 데리고 왔어?”

요즘 경수는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길거리 캐스팅을 해가지고 온다. 남녀를 불문하고 십대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데려 오는데 이쯤 되니 아예 오디션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점점 경수가 데리고 오는 지망생의 퀄리티가 올라간다는 것인데 며칠 전에 데리고 왔던 중학생 여자아이는 한번 키워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른을 만나는 자리인데도 휴대폰에 얼굴을 박고는 중간 중간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는 인성을 보고 그냥 가라고 하긴 했는데…

“이제는 대표님 얼굴에 기대감이 조금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하하, 이제 아주 내 머리 위로 오르려고 하네. 아니야 인마, 뭔데 그래?”

“아, 다름 아니라 오늘 누가 오기로 해서요. 올 필요 없다고 하긴 했는데 자꾸 온다네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재미있는 일인 듯싶다.

“누가?”

“전에 전속계약 하려다가 못했던 해수 있지 않습니까? 그 해수 어머님이 대표님을 꼭 보고 싶다고 해서요.”

“하아… 그 아줌마가 눈치는 엄청 빠르네. 스카이 엔터 쪽에 벌써 문제가 생겼나?”

“제가 전화 끊고 바로 알아봤는데 마이더스 쪽에서 민재원이 들어갈 드라마 제작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데요? 하필 그 드라마의 가장 큰 투자자랑 마이더스 사장이랑 친하다고 합니다.”

“그 양반이 원래 발이 넓어.”

“잘 아세요?”

“몇 번 봤었거든. 돈으로 인맥을 다지는 스타일이긴 한데 뒤끝이 없어서 다들 좋아해. 어쨌든 그 드라마 엎어졌다는 거야?”

“엎어진 건 아니구요. 작가랑 피디를 따로 불러내서 남주를 바꾸자고 했답니다. 원래 민재원이 나쁜 소문도 있고, 투자자랑도 마찰도 생기고 하니 바로 깠다는데요? 그래서 스카이 쪽에 불이 났나 봅니다.”

“그렇겠지. 그럼 그쪽에 돈 벌어오는 아티스트는 없는 셈이네?”

“원래 회당 3천에 계약하려고 했는데 어긋나는 바람에 그쪽 입장에서도 제대로 물먹은 거죠.”

“출연료는 어떻게 알았어? 너 아직 이 바닥에 친분 있는 사람도 없을 건데?”

“하하, 이주희 작가님 보조 작가 있지 않습니까? 그 보조 작가가 그 드라마 작가 밑에서 1년 정도 있었다네요. 그래서 슬쩍 알아봐달라고 했죠.”

“새끼… 잘했어.”

역시 생긴 것 답지 않게 똘똘하다.

“그래도 신기한 게 바로 어제 까였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아줌마는 어떻게 그 정보를 바로 알았을까요? 스카이 측에서는 함구하고 있었을 텐데…”

“나도 신기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사무실 문이 열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안에 계시죠? 저 해수 엄마예요. 전에 우리 해수랑 전속계약 하려고 연락하셨던…”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마치 얼마 전에 연락했던 것처럼 민주에게 말한다.

“나가서 데리고 들어와. 민주 씨 곤란하겠다.”

“알겠습니다.”

곧이어 대표실 문이 열리고 전에 봤던 그 중년의 여인이 들어오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화려하게 꾸미고 들어와 마치 청담동 사모님처럼 보이기도 했다.

“역시 계셨네요? 잘 모르는 직원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서…”

“됐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용건이 뭡니까?”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척 다리를 꼬며 말한다.

“계약할게요. 뭐, 우리 해수 입장에서 많이 양보해야겠지만 아직 어리고 많이 커야할 입장이니 그 정도는 이해하기로 했어요. 저는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 해수가 그렇게 이곳 사장님과 같이 일하고 싶다고 졸라대니 어쩌겠어요. 제가 졌네요.”

말로는 졌다고 하지만 얼굴은 전혀 아니었다. 이것도 그녀만의 협상 방식이라고 생각하니 웃기긴 하다.

“그런가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해수와 전속계약을 체결할 생각이 없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전에는 그렇게 우리 해수와 계약하게 해달라고 떼를 써놓구,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다른 사람들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저리 말하지 못할 것인데 적반하장이 생활화 되어 있는 것 같다.

“하하, 맞아요.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결국 계약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스카이 엔터로 가신다고 전화까지 하셨으면서 지금 이러는 이유가 뭐죠? 왜요? 스카이 쪽하고 계약해보니 영 별로였습니까?”

그녀는 흠칫했지만 이내 다시 항변하듯 말했다.

“누가 계약한다고 했어요? 그쪽하고 말을 해보겠다는 거였죠. 저도 그쪽과 계약하는 걸 생각해봤는데 글쎄 우리 해수가 그렇게 여기 사장님과…”

똑같은 소릴 또 하는 걸 보니 할 말이 그것 말고는 없나보다. 낯짝은 두껍지만 머리는 좋지 못한 것 같다.

“이봐요, 아주머니. 내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어요? 스카이 쪽하고 계약했으면 닥치고 거기에 붙어 있어요. 괜히 나만 곤란하니까.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해수와 계약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어요. 더 괜찮은 친구가 나타났거든요.”

“저기…”

자신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것에 당황했는지 그제야 꼰 다리를 풀고 표정을 달리했지만 우현을 그녀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만 충고하죠. 자식 망치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저급하게 머리 굴리지 마세요. 이곳에 당신보다 머리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재능? 이 바닥에 재능 없는 친구가 어딨어?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게 인성이야. 당신은 그게 안 돼있어. 자식 발목 잡고 싶지 않으면 당신은 손을 떼는 게 좋겠네. 경수야! 이 여자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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