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44화 (14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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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이유(2)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어렵다면 어쩔 수 없이 주말로 가고요.”

“아뇨, 어렵다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래요. 지상파 주말을 피하고 종편 평일 심야로 갈 만한 이유가 있나요? 아니, 그 이유가 몇 가지나 돼요?”

“흠… 일단 이번에 지상파 주말극 편성 상황이 좋지 않아요. 알다시피 KBC의 ‘아버지 너무합니다’가 다른 주말극을 압도하는 형국이죠.”

“맞아요. 혼자 시청률 27% 찍고 있죠. 다른 드라마는 10%도 겨우 넘기는데…”

“문제는 이제 그 드라마가 이제 10회를 겨우 넘겼다는 겁니다. 보니까 최소 50회 이상은 방영할 것 같던데 편성 잡고 녹화해서 방영을 시작한다고 해도 ‘아버지 너무합니다’랑 정면대결을 할 수밖에 없어요. 동시에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극 막바지, 인물간의 갈등이 고조에 이르렀을 때 붙는다는 건 너무 불리합니다.”

지 피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방송국과 조율 해보면 편성 시기를 늦추던지 해서 맞출 수 있을 거예요.”

“쉽지 않을 겁니다. MBS와 SBC 주말극의 시청률이 너무 좋지 않은 상황인데다가 둘 다 30회를 넘겼어요. 그런데 ‘아버지 너무합니다’가 종영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면 드라마국장이 쿨하게 오케이 사인 내려 줄까요? 들리는 말로는 광고까지 줄어든다는데 지금쯤 피가 바짝바짝 말라갈 겁니다.”

“김 대표님,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세요? 광고에 관한 이야기는 민감한데…”

“제가 평소에 방송국 사람들과 친해서요.”

일 끝나고 집에 바로 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인맥관리를 철저하게 했기에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거다.

“그럼 다른 문제는 뭐죠?”

“대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용이나 대사가 조금 셉니다. 게다가 지상파 드라마국에 있는 분들 중에 쉬운 분들 없죠. 분명 대본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아마 외주제작이 아니라 방송국 자체제작이었다면 이 작가가 나이가 어리고 출신이 예능쪽이니 만큼 피디도 무시했을 겁니다.”

“아…”

“제가 지 피디님과 상의를 하려고 한 건 이런 이유였습니다. 제가 마음만 먹었으면 방송사 드라마국 가서 주말 따내는 거 일도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주희 작가를 위해서 외주제작이 맞다고 판단했던 거고 방송국은 종편이 더 적합해 보인다는 겁니다.”

“하아… 대단하시네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쨌거나 지상파 주말로 가면 생각지도 못한 벽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종편 평일 밀어보려는데 가능 하다는 거죠?”

“물론이죠. 이 정도 시놉에 대본이면 편성 잡는 거 문제없어요. 특히 KMTC는 이주희 작가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잡으려고 할 걸요?”

그렇겠지. 그 방송사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찍어줬으니 어지간하면 같은 작가가 마음 편할 것이다. 물론 회식 때 말한 히어로물만 아니라면.

“그럼 이번에는 좀 세게 갑시다.”

“네? 세게 가다뇨?”

“이주희 작가가 KMTC 시청률 구세주가 됐으니 차기작에는 힘을 팍팍 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 주연에는 유은하나 송해연 급의 톱스타로 밀어보죠. 물론 작가료는 회당 천오백 이상. 어때요?”

“하아… 톱스타급은 그렇다 치고 회당 천오백 이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당연히 그럴 거다. 고작 몇 달 전에 장편 입봉한 작가가 회당 천오백을 달라니, 도둑놈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다.

“지 피디님, 지금 제가 지상파 넣어달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그, 그렇죠.”

정색하고 다시 말하니 그녀가 긴장하며 표정을 굳힌다.

“고작 시청률 10%에 목숨 거는 종편이에요. 지금 ‘천방지축 그녀’ 끝나고 차기작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 때린 ‘그녀의 하루’가 어떻게 됐죠? 시청률 3%에 허덕이다 소리 소문도 없이 종영하고 지금 한창 방영하고 있는 ‘나를 잊지 말아요’도 비슷한 처지죠?”

“…”

지 피디는 방송국 직원도 아니면서 입을 다물었다.

“기록을 만들어낸 이 작가가 전작을 뛰어넘을 중독성 있는 막장으로 돌아왔어요. 이건 될 수밖에 없는 물건이라구요. 그럼 제작사측에서는 충분히 배짱을 튕겨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거 경쟁사인 TVM에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 이번에 회당 제작비 좀 통 크게 쏴라.’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방송국에 규정과 지침이라는 게 있어요. 무조건 우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네들이 하는 말일 뿐입니다. 뭐, 정 어렵다면 어쩔 수 없죠.”

미련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 피디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껏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냉정하게 나오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거다.

“잠시만요, 대표님. 이렇게 일어나시면 어떡해요?”

“미안해요. 제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네요. 무작정 도마뱀만 믿고 기다려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대놓고 너희 말고 다른 데를 찾아보겠다는 말에 그녀도 일단 지르고 본다.

“알았어요. 맞춰 드릴게요.”

방송국이 얼마를 지원해주든 결국 출연료와 원고료를 결정짓는 건 제작사다. 우현은 방송국 핑계를 대며 지여울 피디를 압박한 것이고 그녀도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간 거다.

“정말입니까?”

“아, 정말 미치겠네. 알았어요. 맞춰 드릴게요. 대신 저 오늘 회사 복귀하면 사장님이 제 사직서 책상에 보관하게 올리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울상을 짓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잘 선택하셨어요. 대신 PPL은 잘 받아올 수 있을 겁니다. 재벌에 톱스타가 출연하니 고급브랜드가 많이 들어 올 테죠. 많이 뽑아 먹으세요.”

“톱스타가 그냥 말하면 작품 한다고 하던가요? 그렇게 쉬우면 드라마 엎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제작 피디인 그녀 입장에서 필요 이상의 제작비가 소모 된다면 그건 그녀 잘못이다. 그래서인지 말에 가시가 돋쳐있었지만 웃어넘겼다. 아주 싫었다면 맞춰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

“잘 안 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캐스팅은 쉬울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여자주인공 역은 많은 여배우들이 탐낼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한민국에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일이 없어 노는 여배우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건 톱에 올라선 여배우들도 마찬가지죠. 배우들도 결국 개인사업자입니다. 돈이 된다면 결코 싫어할 리 없죠. 게다가 1,2회 대본을 보세요. 주인공 ‘영순’의 캐릭터가 얼마나 팔딱거리며 살아있어요? 막장이라 싫어할 것 같다? 아뇨. 오히려 이런 소름 돋는 사이다 복수물은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꼭 한번은 하고 싶은 배역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왜 이런 드라마들의 주인공이 톱배우들이 아니었나요?”

“대부분이 주말극과 아침극이었으니까요. 이런 수준의 대본이라면 톱배우들도 욕심낼 겁니다. 장담하죠.”

우현의 호언장담에 지 피디도 더는 항변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요. 아… 어째 대표님과 하는 일은 참 쉬운 게 없네요.”

“그래도 기껏 힘쓰고 엎어지거나 하지 않았잖아요? 언제 저랑 일해서 망한 적 있었습니까?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을 겁니다.”

“맞아요. 파인 엔터와 일한 것은 전부 잘 됐죠. 제가 대표님의 그 자신감만 믿어요. 에휴…”

지여울 피디는 사장이 분명 사직서를 내놓고 일 하라고 할 거라며 한참동안이나 징징대다 회사를 떠났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경력이 짧은 작가를 상대로 회당 천오백이나 바란다는 건 무리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주희 작가와 회사를 위해서는 이렇게 한번 질러줄 필요성이 있기에 얼굴에 힘 한번 줘봤다.

연예인 몸값과 부동산 가격의 공통점이라면 올라갈 때는 한없이 올라가도 내려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것. 그러니 한번 작가의 몸값을 올려놓으면 다음 작품도 자연스럽게 천오백 이상은 받아낼 수 있다.

또한 이제 친해졌다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서로에게 섭섭한 부분이 생긴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서로 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좋다. 물론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걸 전제로 깔아야 하지만.

며칠 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지 피디가 KMTC에서 편성을 받아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호들갑의 주원인이 편성을 받아왔다는 것보다 회당 제작비를 더 타냈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긴 했지만 나쁜 소식은 아니기에 같이 기뻐해줬다.

“역시나 지 피디님과 전화를 할 때면 나쁜 소식을 듣는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호호, 그렇죠? 사장님 책상에 고이 모셔져 있는 제 사직서 때문인지 무려 전보다 회당 2천만 원을 더 타냈으니 이 작가님에게 가야 할 비용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캐스팅만 남았네요.”

“정확히 언제 편성이라고 했죠?”

“다음 달 말이에요. ‘나를 잊지 말아요’가 끝나고 4부작 단편으로 한 타임 숨을 고르기로 했어요.”

“단편이요? KBC도 아니고 종편 주제에 신인 작가도 없으면서 무슨 단편이래요?”

“드라마국을 계속해서 키우기 위해 아직 등단하지 못한 작가들에게 종종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취지지만 결국 타 방송사 작가 빼오기 비슷한 거죠.”

“흐음… 돈이 많아서 그런가? 꽤나 신경 쓰네?”

“그렇죠? 아무래도 지상파를 넘어보려고 기를 쓰는 것 같아요. 우리가 기회를 잘 잡았죠. 이럴 때 우리 작가님께서 대박 한번 터뜨려 주시면 단박에 KMTC 공주님 되시는 건데.”

“아이고, 그 공주님 대접은 꼭 돈으로 해달라고 해주십쇼. 그럼 캐스팅은 누구누구 생각하고 있어요?”

“여주인공이 20대 후반에다가 임신, 출산, 아이의 죽음까지 아주 복합적이고 절절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지라 연기파 배우를 물색하고 있어요. 게다가 톱스타급의 인지도도 있어야 하니 예쁘기만 한 배우들은 걸러야겠죠?”

“그럼요. 그래도 시놉은 다 주세요. 혹시 모르잖아요?”

“네, 그럴게요. 그럼 캐스팅 상황 정리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편성을 받았다고 해도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다. 담당자 선에서 확답을 받은 정도일 것이고 정식으로 양측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주희 작가와 피디까지 확정되면 1,2주의 시간을 거쳐 캐스팅이 정리될 거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윤해연 작가에게 생각이 미쳤다.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마땅히 일도 없고 앉아서 기사만 체크하려니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다.

“작가님, 바쁘세요?”

결국 전화를 걸고야 말았다. 그래도 목소리도 좋고 별일 없는 것 같으면 끊으려고 했는데…

“김 대표, 나 좀 살려줘.”

“왜 그러세요?”

“아니, 이 미친 것들이 대본 다 써놨는데 자꾸 PPL 추가해서 들이밀어. 대본 다 써놓고 비행기표 예약해뒀는데, 이것들이 진짜…”

“하하, 그랬어요? 내가 지 피디에게 뭐라고 해야겠네. 어디까지 쓰셨는데요?”

역시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작가 입장에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겠지만 드라마 쓰면서 이런 일은 흔하디흔한 일이니 뭐…

“쓰기야 마지막회까지 다 썼지. 그런데 중간 중간에 자꾸 PPL을 만들어서 들이미니까 계속 수정해야 되잖아. 그럼 그 뒷부분도 조금씩 수정해야 할 게 생기고… 죽겠어, 정말.”

“사극이라 크게 어려울 게 없을 건데요? 뭐, 까다로운 게 들어왔어요?”

“하, 참 웃기지도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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