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43화 (14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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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이유(1)

“미쳤네, 미쳤어.”

황당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기론 마이더스 사장 나이가 40대 초반. 우희연이 아직 25살이 안 된 걸로 아는데, 도대체 나이 차이가 얼마인가?

“나도 몰랐어. 뭐, 나야 그런 거 관심도 없었지만 우리 코디가 걔 코디랑 친하거든. 슬쩍 꼰지르더래. 평소에 얼마나 얄미웠으면 그랬을까?”

“그러고 보면 너도 네 스태프들이 너 뒷담화 많이 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 걔들도 너 싫어할 거 아니야?”

은하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검지로 우현의 콧구멍을 쑤실 것처럼 들이밀었다.

“이거 왜 이러셔? 내가 조금 까칠하기는 해도 내 사람은 확실히 챙겨!”

“아이고, 그러십니까? 그러면 둘 사이가 정확히 뭐였는데? 스폰이야? 애인이야?”

단순 스폰이면 큰 문제는 아니다. 회사 소속이 달라진다고 해서 스폰을 못 해주는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둘이 애인사이였다는 가정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

“스폰이면 내가 알 수 없었겠지. 미치지 않고서야 코디까지 알게 뒀겠어? 둘이 만나다 보니 어쩌다 코디 눈에 걸렸나 봐. 어쨌든 강 사장한테 제대로 물 먹인 거 같은데?”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제대로 흥미가 돋은 모양이다. 역시 불구경과 남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잘 됐네. 적당히 불꽃만 튀길 생각이었는데 지네들끼리 기름까지 부어서 달려들어 주고. 그럼 우희연은 너희 사장하고 관계를 끝내려고 하나 봐?”

“그렇겠지? 솔직히 그 외모에 지 좋다고 하는 남자가 한 트럭일 텐데 마음에도 없는 남자랑, 그것도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남자랑 계속 만나고 싶겠어? 적당히 끊을 기회를 보고 있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생겼으니 얼씨구나 한 거지. 회사 옮기게 되면 자연스레 관계가 끝날 테니까.”

“흐음…”

강 사장을 곤란하게 한 건 좋은데 괜히 남의 연애에 찬물을 끼얹은 게 아닌 가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은하는 그걸 알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울 사장도 진짜 마음에 있었으면 결혼하자고 덤볐겠지. 그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으면 뻔한 거 아냐? 돈 많지, 여자 많지. 계속해서 여자 바꿔가며 즐기고 싶었을 거고, 희연이 걔는 돈 많고 자기 잘 끌어줄 남자 만나서 여기까지 올라온 거니까 서로 윈윈 한 거잖아. 둘 다 사랑해서 만났으면 몰라. 어차피 오빠 아니었어도 헤어질 거였어. 그러니 괜한 심력 소비하지 마.”

“알았다.”

중요한 건 스카이 엔터가 앞으로 꽤나 곤란하게 될 거라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궁금한 건 마이더스 사장이 어떤 식으로 강 사장을 물 먹이는가 정도?

아쉽게도 은하와의 술자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은하의 매니저가 찾아와 더 이상 술은 안 된다며 칼같이 그녀를 데리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매니저가 여자인지라 두말없이 보내주었지만 대신 은하와 자신과의 관계가 마이더스 쪽에 알려질까 내심 우려됐는데…

[이미 알고 있으니 쫄 필요 없음]

은하는 이미 걱정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문자를 보내왔다. 뭐, 저렇게 까지 말했으면 알아서 하겠지…

며칠 뒤, 이주희 작가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 때보다 훨씬 얼굴이 좋아 보이는 것이 차기작에 대한 틀을 어느 정도 잡고 온 듯했다.

“얼굴 좋아 보이네요.”

“그런가요? 역시 귀신이시네요. 얼굴만 보고도 아시니… 그런데 사실 저 어젯밤 한숨도 못 잤어요. 이거 정리하고 프린트 하느라구요.”

그녀가 커다란 백에서 A4용지 묶음을 꺼내 흔들었다. 꽤나 두툼해 보이는 게 대충 시놉만 끄적이다 온 건 아닌가보다.

“오호라, 이거 다시 한번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 하는 건가요?”

“또 몇 달 죽었다고 생각해야겠죠? 물론, 이게 괜찮아야겠지만.”

자신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당당함 그 자체였다. 분명 글을 쓰면서 확신이 왔었던 거다. 무조건 재밌다는…

“어디 한번 봅시다.”

그녀가 조심스레 내미는 시놉시스를 받아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았다.

“어? 이거 막장인데?”

재벌이 나오고 불우한 환경에서 오뚜기처럼 쓰러져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캔디형 여주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남주와 사랑에 빠져 결혼해 아이를 낳았더니 그가 와이프를 버리고 재벌집 여자와 결혼하고 그 바람에 아이도 죽게 되는 과정.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복수까지. 마치 막장의 교과서와 같지 않은가?

막장은 기본적으로 중독성이 높다. 이유는 은원관계가 명확하고 선과 악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사의 수위가 세고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수시로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다. 아침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 이유다.

반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막장이라고 하면 욕부터 먹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은 자존심 상 결코 막장을 쓰지 않으려 한다.

그런 면에서 이주희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 태생이 달라서 그런지 글의 막장이라는 소재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예능쪽 작가라서 더 선호하는 건지도 모른다. 극적 재미는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할 테니까.

“그렇죠?”

이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자신 있다는 거네?”

시놉에 이어 1,2회 대본까지 읽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자신감 없이는 대본까지 쓰지는 못했을 텐데…

“허 참…”

읽어보니 알겠다. 아마도 그녀는 시놉에 자신 있어서 대본을 쓴 게 아니라 대본을 쓰다 보니 자신의 시놉에 자신이 생겼을 거라는 걸.

“왜요? 별로예요?”

“아니,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요.”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재밌다. 막장 소재의 장점인 극의 몰입감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오히려 다른 막장 드라마의 클리셰를 적절히 비꼬며 유머를 이끌어내는 부분은 감탄이 나왔다. 확실히 전직 예능 작가다웠다.

“정말요?”

“이렇게 잘 쓸 거면서 전에 왜 히어로물을 쓴다고 그랬어요? 괜히 방송국 사람들한테 안 좋은 선입견만 심어줬네요.”

“그럼 어려운가요?”

이 작가는 가슴이 철렁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하, 아니에요. 그걸 처리하는 게 제 일입니다. 이 시놉이랑 대본,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소속사까지 있는데 괜찮은 작품을 제작 편성 못 잡아주는 건 소속사에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런데 너무 강한 거 아닐까요? 쓰면서 저는 재밌다고 썼는데 설정이 너무 센 거 아닐까 걱정되더라구요.”

“뭐, 괜찮아요. 김치 싸대기도 나오는데 여주가 남주 머리에 딸기 주스 붓는 정도는 애교죠.”

“장모님 재수 없다고 뒷담화 하는 남주는요?”

“시청자들도 같이 분노하며 욕할 겁니다. 괜찮아요.”

“나중에 여주가 남주 시어머니 뺨을 후려치는 장면도 나올 건데…”

어째 조금씩 시험하는 느낌이다.

“으응… 워낙 나쁜 시어머니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뭐, 그 정도는 나중에 편성 받고 방송국 관계자랑 의논해보면 됩니다. 미리부터 걱정해서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할 필요 없어요. 일단 내키는 대로 쓰세요.”

“후훗, 알았어요. 그럼 제작은 어디랑 할 거예요? 울 회사는 도마뱀 미디어랑 주로 하던데… 이번에도 그곳이랑 하나요?”

“글쎄요. 일단 이거 들고 이리저리 돌아 봐야죠. 아무래도 자주 거래하는 곳이 있으면 편하기는 하지만 긴장감 유지를 위해 종종 다른 곳과 일할 필요도 있거든요. 어쨌거나 이 자리에서 어디와 계약할지는 확정드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한 달 안에 편성 확정지어 드리겠습니다. 아마 오늘부터 대본 쓰셔야 할 걸요?”

“아휴… 저 이제 죽은 거죠?”

“이제 좋은 날 다 간 겁니다. 허리가 휘어져라 대본 쓰세요, 하하하.”

이 작가를 보내고 난 뒤, 그녀가 남기고 간 시놉과 대본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분명 재밌는 작품인데… 이걸 어디에 붙여야 할 지 감이 안 온다.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핸드폰을 들었다. 아무래도 혼자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 김 대표님이 어쩐 일이세요? 윤 작가님이 PPL 때문에 뭐라고 하세요? 아이 참… 잘 좀 말해주세요. 가뜩이나 사극이라 PPL도 적은데 들어온 걸 거절하기도 어렵단 말이에요.”

오랜만에 연락된 지여울 팀장은 거의 울 듯한 목소리였다.

“아뇨, PPL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닌데… 왜요? 윤 작가님이 뭐라고 합니까?”

“아, 아니었어요? 하하…”

당황한 지 피디는 말 대신 웃음으로 때우려 했다. 궁금한 마음에 더 물어보고 싶지만 괜히 쓸데없이 일을 키울까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가까스로 내리 눌렀다.

“아, 그래요? 다른게 아니라 이주희 작가님 차기작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할까 해서요.”

“어머! 이 작가님께서 드디어 차기작을 내놓으신 거예요? 당연히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내야죠. 여기로 오실건가요? 아니다, 제가 대표님 사무실로 갈게요. 지금 일어났으니까 어디 가면 안 됩니다!”

“아… 네. 기다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윤 작가에 대한 말을 못 꺼내게 하려고 하는 듯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정 중요하고 급한 내용이면 윤 작가가 자신에게 전화했을 테니까.

30분도 지나지 않아 지 피디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많이 기다리셨죠?”

“기다리긴요.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일단 앉으세요.”

“네, 이게 시놉인가요? ‘내 남편의 여자’? 제목이 강렬한데요?”

지 피디는 탁자 위에 올려진 A4 묶음을 들어올렸다. 제목부터 막장스러운 기운이 팍팍 나기 때문에 지 피디의 눈은 강한 의구심이 떠올라 있었다.

“내용도 제목만큼이나 강렬할 겁니다.”

“그런가요? 이 작가님이랑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흔히들 막장 드라마라고 하면 최소 중년 이상의 여성 작가들을 떠올리기 때문에 아직 한창 젊은 이 작가를 떠올리기엔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 의구심을 품고 작품을 읽어가는 지 피디의 얼굴은 점점 미소를 그려가고 있었다. 아마도 작중 재치있고 웃긴 대사 때문일 거다.

“아하하, 이거 대박이네. 욕은 먹을 것 같긴 한데…”

“시청률은 대박 나겠죠?”

시청률 대박이라는 것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것임에도 지 피디는 크게 부정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대박까지는 몰라도 중박 이상은 치지 않을까요? 이렇게 재밌는데? 이거 제가 이주희 작가님을 몰라봤네요. 이렇게 웃긴 글을 쓸 수 있는 지는 몰랐는데… 그런데 의논하고 싶다는 건 어떤 내용이에요?”

“이거 미니로 넣고 싶은데요.”

“네? 이걸 미니로 넣자구요?”

아침드라마도 아니고 주말드라마도 아닌 평일 미니로 넣자는 건 방송사 입장에서 여간 부담이 아니다. 게다가 시놉에 굵은 글씨로 ‘예상 편수 40’이라는 초장편을 예고한 만큼 굉장한 위험 부담을 요했다.

“네, 주인공도 톱스타급으로 해서요. 물론 지상파는 어려울 것 같다는 거 알고 있어요. 전에 했던 KMTC 월화 어때요? 지금 죽쓰고 있잖아요? 시청률 2%인가? 장시훈에 임소라까지 나왔는데도 그 정도 시청률이면 망한 거나 다름없죠.”

“KMTC라…”

“말은 미니시리즈라고 해도 종편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미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드라마가 끝나는 11시에 시작이기 때문에 경쟁자도 없어요.”

지 피디는 검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그냥 주말로 가는 건 어때요? 제가 지상파 주말 밀어볼게요. 지상파 주말로 성공하면 그 때부터는 이주희 작가님 앞길은 왕복 8차선 고속도로처럼 되는 거잖아요.”

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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