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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운도 실력이다(5)
경수는 그제야 눈치 챘나보다.
“입가의 근육이 어색했어요.”
“맞아, 성형한 거야. 난 성형한 걸 나쁘게 보지 않아. 현재 남녀를 막론하고 상당수의 연예인들이 성형했잖아? 그런데도 성형을 안 좋게 보면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지. 내가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성형이야.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기 전에는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성형을 원하는 거지. 물론 아주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런 면에서 아까 그녀는 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도 바로 알아챌 정도로 자연스럽지 못했어. 예쁘긴 한데 너무 인공적이었거든.”
“아…”
“성형할 때 가장 위험한 부위가 바로 코하고 가슴이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바닥은 두 가지 성형 모두 권장해. 왜? 티가 잘 안나. 코 근육까지 연기 되는 배우 봤어? 가슴이야 크면 클수록 남자들이 환장하지. 그런데 저렇게 하관이 굳어 있으면 초등학생도 보고 이상함을 느낀다고.”
“그런데 저는 왜 몰랐을까요?”
“아직 짬밥을 덜 먹어서 그래. 고삐리 배우 지망생들 교복 벗고 성형해서 환골탈태 몇 번 시켜보면 너도 단박에 알 수 있을 거다.”
물론 우현은 고등학생 배우 지망생을 성형시켜 데뷔시킨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단박에 성형을 판별하는 건 그의 타고난 능력 덕분이다. 얼굴만 보면 스타가 될지 견적이 나오는데 그깟 성형도 구분 못하겠나?
“하여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저런 얼굴로는 제대로 된 연기 안 돼. 어떤 표정을 지어도 어색할 수밖에 없단 말이야. 본인도 그걸 아니까 입을 가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찾는 게 좋을까요?”
“일단 밤에는 함부로 명함 주지 마. 조명빨이 화장빨보다 더 위험한 거 모르냐? 조명감독이 괜히 파워 있는 거 아니잖아?”
“그, 그렇죠.”
“아무리 못생겨도 피부가 좋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 반대로 아무리 이목구비가 예뻐도 피부가 안 좋으면 한계가 있다고. 그런데 조명은 그 피부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 피부로 만들어주잖아. 그럼 낮에 또 봐서 확인해야 해. 그러다가 낮에 보니 어제 본 그 사람이 아니면? 사람 병신 취급당하기 딱 좋다고.”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다음번엔 조금 더 나은 친구로 데리고 와 봐라.”
“남자도 돼죠?”
“그럼, 당연하지. 왜? 내가 여자만 키우는 것 같아서 그러냐?”
“아니, 취향이 확고하신 것 같아서…”
“시끄러 인마! 가서 일이나 해.”
“헤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쇼!”
이제 제법 능글거리며 기어오를 줄도 안다. 상당히 좋은 일이다. 영업할 때 있어 가장 핵심적인 능력 하나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능글거리며 상대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신기한 건 어려서부터 늘 주눅들고 소심하게 행동했던 경수가 조금 살갑게 해주고 띄워주니 사람이 달라진 것 마냥 대범하게 나온다. 어쩌면 평소 성격이 다른 사람들의 억압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던 것 같다.
똑똑…
“대표님, CBS 연예가 통신에서 찾아오셨는데요?”
대표실 밖에서 민주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아이 참… 일단 들어오시라고 해요.”
요즘 별이가 ‘피아니스트’로 뜨면서 온갖 CF와 예능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예전 라라걸즈의 유디 엔터가 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닌 문제인데 연예가 통신에서 라라걸즈와 망한 유디 엔터 문제로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그쪽에서는 나름 기삿거리가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솔로가수 출신인 남성민으로 현재 리포터는 물론 예능 프로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는데 깔끔한 마스크에 매너가 좋아 여성들이 특히 좋아했다.
그의 뒤를 따라 카메라맨도 같이 들어오니 표정 관리까지 신경 써야 한다.
“네, 그런데 아시겠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어요.”
“하하, 그래도 별이 씨가 회사를 옮길 때의 상황을 조금 듣고 싶어서요. 아마 시청자들도 상당히 궁금하실 겁니다.”
사전에 미리 질문을 정하지는 않았다. 괜히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어차피 할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 혹시 메이크업이 필요하시면 카메라 껐다가 다시 할까요?”
남성민이 뒤에 있는 카메라를 슬쩍 바라봤다.
“아뇨, 됐습니다. 흐음… 특별한 사연 같은 건 없었습니다. 별이는 소속사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었고 나는 새로운 스타가 될 만한 인물을 찾고 있어서 서로의 이해가 잘 맞아 떨어졌던 거죠. 반대로 유디 엔터 입장에서는 나름 오랫동안 공들여왔는데 차기 앨범을 만들어 줄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이와의 계약 해지를 몇 달 앞당겨서 할 수 있었죠.”
“기존의 라라걸즈 멤버 중 김별 씨와 유니 씨만 계약한 이유가 있을까요? 다른 멤버들과의 차이점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바로 요딴 질문들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 싫었던 거다. 하지만 하기 싫다고 피해 다니기만 하면 별이에게 화살이 돌아갈 것이기에 우현이 처리할 수 있는 인터뷰는 최대한 소화해줘야 한다.
“으음… 회사를 세워야 했던 저로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다른 멤버들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별이는 배우로서 확신을 줄 수 있는 친구였고 유니는 가수로서 확신을 줬던 거죠. 저는 배우만을 키워 왔기 때문에 걸그룹을 키울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몇몇 분들만 계약했던 거죠.”
“사실 김별 씨의 전작 제작보고회에서 기존 라라걸즈 멤버들과의 불화설이 제기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부 해명이 됐지만 그 때는 속상하셨겠어요.”
“그럼요. 제가 아는 별이는 남들과 다툴 만큼 드세질 못하거든요. 유니도 마찬가지구요. 많이 안타까웠지만 연예인으로서 그런 논란은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하며 넘어갔죠.”
“유디 엔터의 모 직원은 그 때 김 대표님께서 김별 씨를 가수로 키우려고 하셨다며 자신들을 속였다고 말하더라구요. 원래는 자신들도 김별 씨를 배우로 키우려 했는데 김 대표님을 믿고 맡겼다고…”
왠지 그 모 직원이 누군지 알 것 같다.
“하하, 만약 그 말이 진짜였다면 절대로 넘겨주지 않았을 겁니다. 그 때는 계약기간도 남았었거든요. 비록 몇 달이긴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라 뭐라 답변하기도 어렵네요.”
이후로 계속해서 유디 엔터를 은근슬쩍 끌고 가며 뭔가 기삿거리가 될 만한 답변을 유도했지만 최대한 흠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답했다.
“완전 웃긴 놈들이네요. 지들도 그게 말도 안 되는 말이라는 걸 알 텐데요.”
경수는 그들이 가고 난 뒤 뒷담화를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사거리가 되니까. 이것도 다 별이가 뜨니까 그렇지, 만약 별이가 이번에 안 떴으면 유디 엔터가 망하든 말든 신경이나 썼겠어? 좋게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이번에 기사 보니 ‘피아니스트’가 600만이 코앞이라고 하던데 천만까지 갈까요?”
“못 가. 보니까 500만 넘어가면서 예매율이 확 떨어지더라. 곧 내려 갈 거야.”
아쉽지만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음악 영화는 천만을 바라보기 힘들다. 이 정도만 해도 대박 중의 대박이라 더 바란다는 건 욕심이다.
“그럼 700만?”
“아마 700만 까지는 못가지 않을까? 650만 정도?”
“그럼 우리 별이 러닝개런티 얼마나 들어오는 거예요?”
“손익분기점이 100만이고 이후부터 관객 1명당 150원에 계약했으니까 600만으로 가정하면 7억5천정도?”
“우와…”
경수는 부러운 듯 입을 떡 벌리며 차가 몇 대에 집이 몇 채인지를 계산해댔다.
“그걸로 강남에 좋은 집 못 산다.”
“에휴… 저는 강남은 오래전에 포기했습니다. 언제 이 넓은 서울 안에 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될 거야. 그러니 부지런히 배워라.”
경수를 내보내고 업무를 처리하는데 은하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소주 한잔 콜?]
[콜! 언제?]
[12시까지 울 동네로 와.]
[오키. 그 때 봐.]
은하가 보자고 하는데 업무가 눈에 들어올 리 없지만 그래도 회사 사장이니 최대한 업무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은 회사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고 약속시간에 맞춰 은하 집 근처로 가니 기다렸다는 듯 문자로 주소를 보내온다.
도착한 곳은 은하 집 근처의 실내 포차. 한창 사람 많을 10시이니 빈자리가 별로 없어 난감하던 차에 한쪽 구석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여성이 손을 흔든다.
“언제부터 와 있었어?”
은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새우튀김을 먹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우현의 잔에 술을 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어. 그래서 먼저 한잔 하고 있었지. 오늘따라 소주가 땡기네? 얼른 한잔 해.”
소주 몇 잔을 돌리고 나니 벌써부터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온다.
“참 용하기는 해. 어떻게 이렇게 터질지 알았어?”
그녀도 요즘 영화 흥행에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나도 몰랐어. 그냥 잘 될 것 같다는 정도지, 정확히 얼마나 들어올지는 모르지. 게다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별로 없었잖아. 임 감독을 믿었지. 다른 때는 조금 어리숙하고 외골수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 내에서는 섬세하고 디테일하잖아.”
“어쨌거나 오빠 덕분에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돈은 전에도 많이 벌었으면서 뭘…”
“그 때 번 돈은 이미 줄줄이 새어 나갔지. 이렇게 보여도 사실 그 때 그 돈이 내게 남은 퇴직금이나 마찬가지였어.”
“정말?”
일 년에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톱스타인 은하가 그 돈이 퇴직금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응, 울 가족 되시는 분께서 또다시 시원하게 말아 드셨거든. 뭐, 어느 정도 쓰라고 준 돈이긴 하지만 그렇게 화끈하게 날려버릴 줄은 몰랐네. 나도 이거 시작하기 얼마 전에 알았어.”
“그런데 왜 말 안했어?”
“잘 될 거잖아, 오빠를 믿기도 했고. 그까짓 10억, 정 급하면 또 벌면 되는 거니까.”
과연 톱스타의 위엄이랄까. 10억이라는 돈을 ‘벌면 되지’하며 쿨하게 넘겨버릴 수 있다는 게 범인인 우현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마인드였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오빠가 도와달라는데 거절할 수 있어야지. 오빠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 이 정도 위치에 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크흠… 그거야 그렇지.”
자랑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아니었다면 은하가 이렇게 빨리 톱스타의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을 거다.
“그건 그렇고,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어. 얼마 전에 우리 회사 애 물어봤었잖아?”
“누구? 아! 우희연.”
“응. 어떻게 했는데 오빠 이름은 쏙 빠지고 강 사장이 나와?”
“그게 무슨 말이야?”
“울 회사 사장이 강 사장을 그렇게 씹고 다니던데? 나는 오빠한테 희연이 정보를 줬는데 갑자기 중간에 강진벽이 나오잖아. 딱 듣자마자 오빠가 한 짓인 것 같더라고. 그 때 누구 물 먹일 거라고 했었으니까. 어떻게 토스한 거야?”
“아… 너희 사장이 뭐래?”
“뭐라고 하긴, 싸가지 없는 놈이 어쩌구 하지. 다시는 이 바닥에 발을 못 붙이게 한다며 씩씩거리던데 보통 화난 게 아니더라.”
“그 정도야?”
화가 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세다.
“잘못 건드린 거지. 나도 몰랐는데 이런 이야기가 돌더라구.”
“뭐라고?”
“우희연, 걔 우리 사장 이거라고.”
은하가 새끼손가락을 우현의 눈앞에 들이대곤 꼼지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