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41화 (14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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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운도 실력이다(4)

뮤직비디오 촬영 날, 우현은 저녁 밥차를 보내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오후 야외촬영이 끝나고 스튜디오에서 다음 날까지 밤샘촬영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미리 받아본 뮤비의 내용은 이렇다.

유니는 도서관에서 짝사랑 하는 오빠를 바라보다가 나른한 봄 햇살에 잠이 든다. 꿈속에서 연인이 된 두 사람은 데이트를 즐기다 솜사탕을 먹고, 말 그대로 진짜 달달한 입맞춤을 한다. 마지막에 꿈에서 깨자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데 달달한 솜사탕 맛이 난다.

도서관 씬만 야외촬영이고 나머지 꿈속의 내용은 스튜디오 촬영이다. 꿈속답게 약간은 판타지스러운 CG가 들어갈 거란다. 그리고 유니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중간 중간 넣어서 가수로서의 유니도 보이게 할 계획이라 했다.

마음에 든다.

특히 ‘솜사탕’ 노래 가사 내용과 뮤비의 내용은 다르지만 솜사탕을 다른 방식으로 그려낸 감독의 센스가 마음에 든다. 이 감독의 전작들을 봤을 때 꿈속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나올 것 같다.

“감독님, 수고 많으십니다. 파인엔터 대표 김우현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지환입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나오셨네요?”

“사기진작 차원에서 직접 나오곤 합니다. 우리 유니 잘 부탁드립니다.”

“아유, 부탁은 제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네?”

“뮤직비디오 감독을 계속 하다 보니 ‘감’이라는 게 생겼거든요. 유니 뜰 겁니다, 제대로. 그러니 앞으로 계속 유니 뮤비를 찍으려면 제가 부탁드려야죠.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 감이 딱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네요. 맛있는 반찬들로 밥차 준비했으니 많이 드십시오.”

이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오는데 세동이 묻는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싱글벙글이시네.”

“이 감독 감으로 유니가 제대로 뜰 거라고 하네. 이 보다 좋은 소리가 어디 있겠냐?”

“최고 좋은 소리네요.”

“도서관 씬은 잘 찍었어? 남자 배우는 어떻고?”

상대역엔 영진기획에서 추천하는 신인 남자 배우를 쓰기로 했다.

모 보이그룹의 연기돌을 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별로라는 생각에 거절했다. 이미 알려진 아이돌보다는 차라리 아직 어떤 이미지도 씌워지지 않은 신인 배우가 훨씬 나을 거다.

“대표님 말씀대로 배우 쓰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모니터링을 해보니 아이돌이 나오면 이미 연상되는 느낌이 있어서 몰입에 방해가 됐을 거 같더라구요.”

“이제 모니터링도 제법이네. 많이 늘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세동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대기 시간 내내 거울만 보고 앉아있는 유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뮤직비디오 촬영해보니까 어때? 할 만해?”

“네, 그렇긴 한데…”

왜 이렇게 차분하지?

평소 활기찬 유니답지 않다. 그리고 뭔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저렇게 조용히 말을 하는 애가 아닌데.

“왜? 힘들어?”

“그런 게 아니라…”

옆에 있던 세동도 유니가 왜 이러나 싶나보다.

“뭔데? 말을 해야 도와주지. 지금까지 촬영 잘 했잖아.”

유니는 거울을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 뽀뽀씬이…”

아, 그렇지. 입맞춤씬이 있지. 유니는 애정씬이 처음일 거다. 연기에서 뿐만이 아니라 유니 인생에서도 첫 뽀뽀일 거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으니. 만으로는 아직 19살이지.

“그렇구나, 흠흠.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우현은 은하, 별이의 키스씬을 보아왔기에 짧은 입맞춤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던 거다.

“별이 언니한테 물어봤는데, 대표님이랑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구요. 비즈니스니까 그렇게만 생각하라고.”

“그래, 비즈니스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흠흠. 진짜는 나중에… 나중에 하면 되지.”

쩝, 뭐라 하는 거냐.

우현의 말에 갑자기 유니가 고개를 번쩍 든다.

“억울해요. 첫 뽀뽀를 비즈니스로 해야 한다는 게. 미리 해버릴 걸 그랬나 봐요.”

“별 소리를… 뽀뽀씬 촬영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줄까?”

많이 긴장하는 것 같으니 옆에서 응원이라도 해주자.

“안 돼욧! 보지마세요. 그럼 진짜 못 할 것 같아요. 얼른 가요, 얼른.”

유니는 손을 휘휘 저어 우현을 쫓아 보내려 했다.

“어? 어, 어. 그래, 네가 불편하면 먼저 갈게. 세동아, 네가 잘 봐주도록 해.”

“안 돼! 세동 오빠도 보지마요. 나 뽀뽀씬 찍을 때 오빤 나가있어요.”

“아유, 잠깐 입술만 대는 건데 참 요란하다. 난 뒤돌아 있을게. 됐지? 훗.”

부끄러워하는 유니를 세동이 귀엽다는 듯 내려다본다.

유니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마무리 되자 본격적인 앨범 홍보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앨범 자켓 컨셉을 잡아 외주제작사에 의뢰하고 쇼케이스 일정, 장소, 규모 등을 조율했다.

어떻게 보면 고작 OST 하나로 행사 여왕이 된 유니에게 있어 이번 앨범은 진정한 첫 데뷔나 다름없는 것이기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무조건 띄워야 한다. 때문에 홍보 일정과 과정에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신곡 홍보 쇼케이스는 앨범 홍보의 시작이니 그 중요성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원 확정 했어?”

“네, 팬클럽에서 참여인원 추첨했고 기자들까지 해서 총 2백 명 규모가 될 것 같습니다. 장소는 대학로 극장 대여 했구요,”

세동은 수첩에 빼곡하게 적은 내용을 보며 우현에게 보고했다.

“사회자는?”

“요즘 꽤나 핫한 개그우먼인 최슬기 씨를 생각하고 있는데 어떠세요?”

“괜찮네. 수고했어. 유니는 뭐하고 있어?”

“녹음실에 있습니다. 뭐, 녹음을 한다기 보다는 계속해서 연습하는 중이죠. 요즘 계속 데뷔 앞두고 다이어트 한다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말도 못 걸고 있습니다.”

세동은 양 손의 검지를 세워 뿔을 만들어보였다.

“예민할 때는 건들지 말아야 해. 다이어트가 말이 쉽지 그거 절대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최대한 잘 맞춰줘야 스트레스를 덜 받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유니 앞에서는 물 한 모금도 안 먹고 있어요.”

“그래, 이제 녹음실에 가 봐. 걔가 지금 예민하지만 그래도 계속 지켜봐줘야지, 안 그럼 자기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다. 항상 눈을 떼지 마.”

“알겠습니다.”

세동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경수가 얼굴을 빼꼼 들이민다.

“대표님, 바쁘십니까?”

할 말은 있는데 뭔가 부탁하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

“응, 뭔데?”

경수는 대표실 안으로 쭈뼜거리며 들어왔다. 그러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는데 우현은 끈질기게 경수가 입을 열기까지 기다렸다.

“크흠… 다름 아니라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뭘?”

“그거 있잖아요? 왜… 제가 스타 될 재목을 데리고 오면…”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 새끼… 야망이 있는 놈이다. 농담처럼 흘려 말한 걸 용케 기억해서 그새 강남 길거리를 훑었나보다.

“왜? 괜찮은 친구 건졌어?”

“제가 어제 저녁에 홍대 클럽에서 진짜 괜찮은 친구를 찾았거든요. 그래서 명함을 줬더니 지금 찾아왔습니다.”

저녁과 홍대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어째 그 친구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들어와 보라고 해. 대신, 두 번 고려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대표님께서 ‘노’라고 하시면 저도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른 친구를 찾아보겠습니다.”

역시나 아예 안 하겠다는 말은 안한다.

경수는 대표실 문을 열고 나가더니 곧이어 젊은 여성 한 명과 함께 들어섰다. 그녀는 아침부터 샵에 들렀는지 풀메이크업까지 한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임소라라고 합니다.”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건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는 지나가는 남자들이 무심코 돌아볼 만큼 아름다웠다. 경수가 명함을 주며 데리고 온 것이 충분히 이해갈 만큼 예뻤는데 문제는 예쁘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반가워요. 대충 이야기는 들었어요. 음…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먼저 이 친구가 생긴 건 이렇게 길거리 호떡 팔게 생겼지만 나름 이 바닥에서 밥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만큼 그쪽에 대한 확신으로 명함을 건넸을 겁니다. 하지만 회사 방침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모든 연예지망생을 데뷔 시킬 수는 없어요. 때문에 혹시 잘 안된다고 해도 그건 회사 방침과 사정에 따라 그리된 것이지 이 친구가 당신을 쉽게 보거나 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라는 걸 먼저 말해주고 싶어요.”

“네. 이해했어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일수도 있지만 탈락 후 회사 이미지 관리까지 고려한다면 단도리는 반드시 쳐놔야 한다.

“딱 두 가지만 볼게요. 하나는 웃는 것, 하나는 화내는 것. 뭐, 화내는 것 대신에 울어도 좋아요.”

“어… 저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데…”

그녀는 난처함에 경수를 돌아봤지만 경수라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숙달된 연기를 보려는 게 아니에요. 얼굴을 보려는 거예요. 지금처럼 평이한 얼굴이 아니라 웃는 얼굴, 울거나 화내는 얼굴을 보려는 거죠.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말아요. 속된 말로 엄청난 발연기를 보인대도 그걸로 평가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녀는 그 말에 힘을 얻었는지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띄워 보였다. 우현은 일부러 경수를 옆에 불러 그녀가 웃고 화내는 등 갖가지 표정을 전부 볼 수 있게 했다.

“고생했어요. 일단 집에 가시고 결과는 여기 박경수 매니저가 보내줄 겁니다. 혹시라도 이 친구가 저 몰래 돈 요구하면 욕하고 끊어버리세요. 돈을 요구하는 곳은 전부 사기거든요.”

“하하, 대표님도…”

그녀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표실을 나갔다. 경수가 얼른 그녀를 따라 나가 바래다주고 와서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올라 물었다.

“어때요? 예쁘죠?”

“예쁘긴 하더라.”

“그게 다예요?”

경수는 우현의 말과 표정에 그녀가 탈락했음을 알았다.

“그래, 그게 다였어. 그래도 잘했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는데 진짜 실천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해. 자, 네가 진짜 진지하게 신인을 구하고자 하니까 다른 건 제외하고 딱 외모 한 가지에 대해서 충고해줄게.”

“부탁드립니다.”

“쟤가 왜 떨어졌을까? 못생겨서? 아니야. 네가 이 바닥에서 꽤 굴러봐서 그런지 몰라도 눈은 상당히 높았어. 웬만한 걸그룹 뺨칠 만한 얼굴이었어. 하지만 걸그룹은 힘들지. 왜? 나이가 있으니까. 스무 살 넘어서 걸그룹 하겠다고 덤벼드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거 알지?”

“그럼요. 그래서 배우로 생각했습니다.”

“잘 생각했어. 그럼 내가 왜 두 가지 표정을 보자고 했을 거 같아?”

“으음… 연기가 어떻게 나올지… 아니다. 카메라에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싶어서요.”

경수는 손바닥을 치며 답했지만 아쉽게도 정답이 아니었다.

“비슷한데 아니야. 나는 그녀가 표정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짓는지가 궁금했던 거야. 웃는 표정, 우는 표정, 화내는 표정 등 이런 다양한 얼굴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면 조금 부족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충분히 연기자가 될 자질이 있거든. 꼭 톱스타가 돼야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아까 그 친구는 조연도 힘들다는 말이세요?”

경수는 우현이 그녀를 깐 이유가 톱스타가 될 수 없는 재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예 연기가 힘들 거라는 말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아까 웃는 표정 봤어?”

“아까…”

어색하게 웃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거다.

“그게 자연스럽니? 아니지? 너는 눈치 못 챘을 테지만 웃을 때 저렇게 입을 가리면서 웃는 사람들 대부분이 두 가지 경우야. 하나는 잇몸이나 치아가 못 생겼을 때인데 말할 때 보니 그렇지 않았어. 그럼 나머지 경우가 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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