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40화 (140/301)

=======================================

[140] 운도 실력이다(3)

박원식 감독이 찍은 세 개의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다 유명한 곡들이다. 서정적인 발라드도 있고 여름철 댄스곡도 있다.

“영상 예쁘죠?”

세동이 마음에 든다는 웃음을 띠며 우현에게 묻는다.

“영상이 예쁜 거냐? 걸그룹이 예쁜 거냐?”

“흐흐, 예쁜 친구들을 예쁘게 찍어 놓은 거죠.”

“그 말이 정답이네.”

“걸그룹은 사랑입니다, 대표님.”

그래, 예쁜데…

근데 뭐가 이렇게 아쉽지? ‘딱 이거야’ 하는 느낌이 없는 거다.

“유니를 이렇게 찍어 놓으면 이 친구들처럼 예쁘게 나올 것 같다, 이거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유니가 이 친구들보다 못할 건 없죠. 지금보다 살 조금만 빼면…”

유니가 세동을 째려보고선 우현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대표님! 제 노래 안무 보실래요? 아직 안 보셨죠?”

“못 봤지. 근데 여기서?”

“풀도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니, 운동하려구요.”

진짜 그 풀 무더기를 딱 반만 먹고 포크를 내려놓으며 유니가 벌떡 일어섰다.

“노래에 맞게 안무도 귀엽게 나왔더라구요. 유니하고 잘 어울립니다.”

째려보거나 말거나 다 먹지 않고 일어난 유니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세동이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자자, 다들 뒤로 물러나시고. 호준 오빠, 음악 준비해주세요.”

테이블을 옆으로 치우고 자세를 잡는다.

곧이어 노래가 시작되자 유니가 춤을 추는데 노래만큼이나, 또 유니만큼이나 귀엽고 깜찍한 안무다. 유니가 풍부한 표정을 지으며 잘 살리기도 하고.

자연스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러니 삼촌팬들이 안 생길 수가 없지. 귀여운 녀석.

“스타일리스트 팀에서 노래와 안무를 보더니 의상은 미니원피스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답니다. 디자인 스케치해서 보내오기로 했습니다.”

“그래, 좋아. 안무도 좋고, 미니원피스도 잘 어울리겠네.”

“그럼 박원식 감독으로 진행할까요? 내일까지는 결정해 달라 하던데요. 그래야 날짜를 맞출 수 있다고.”

“음… 그럼 내일 결정하자.”

“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런 건 아닌데, 신중히 하자.”

“네.”

마치 무대에서처럼 열심히 춤을 춘 유니를 칭찬해주고 녹음실을 나왔다.

안무까지 보고나니 ‘박원식 감독은 확실히 아니다’라는 결론이 났다. 왜 아닌지 지금 설명하기는 힘들다. 아직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많이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우현의 감은 박원식 감독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감독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다보면 왜 아닌지 알겠지.

그 시간 이후로 우현은 뮤직비디오 삼매경에 빠졌다. 걸그룹뿐만 아니라 보이그룹, 솔로 가수까지. 또 발라드에서 댄스곡까지 최근 몇 년간의 히트곡들은 거의 다 보다시피 했다.

잘 나가는 그룹들은 해외 올로케로 찍은 것들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잘 나간다고 해서 꼭 해외에서 촬영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전혀 야외촬영 없이 스튜디오에서만 촬영한 것들도 꽤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이 단순히 제작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제작비를 많이 투자해서 올로케로 촬영을 해도 ‘꼭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싶은 뮤비도 있는가 하면 올스튜디오 촬영 작품이라도 아주 예쁘게 나온 것들도 있다.

뮤비 내용을 보자.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처럼 완벽한 스토리를 가지고 배우들이 출연한 것도 있고 스토리보다는 해당 가수의 이미지나 노래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느낌들 위주로 가수가 직접 간단히 연기를 해서 만든 것도 있다. 또 안무가 두드러지는 곡은 여러 장소에서 찍은 안무들로 뮤비를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뮤비에 스토리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유니의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찍는 것이 좋으냐? 그리고 박원식 감독은 왜 아닌 것 같지?

퇴근 후에 집에 들어와서 씻고 누워 박원식 감독의 뮤비들을 다시 재생시켜 보았다. 하루 종일 다른 뮤직비디오들을 많이 보고나서 다시 박 감독의 뮤비를 보니 그만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세동이 왜 박원식 감독을 선택했는지 알겠다.

우선 박 감독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야외촬영이다. 스튜디오 촬영분이 거의 없었다.

야외촬영이 나쁜 건 아닌데. 아무튼 그렇다.

두 번째로 야외촬영이다 보니 가수 클로즈업이 드물다. 이 부분은 가수 쪽에서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클로즈업을 한다는 건 그만큼 얼굴에 자신이 있어야 하니까.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매일같이 브라운관에 나오는데 그보다 못한 얼굴을 굳이 클로즈업 할 필요는 없다.

세 번째로 스토리 있는 뮤비를 만들 경우에는 배우나 연기돌, 즉 노래를 부른 가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쓴다. 그것을 볼 때 박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는 가수가 어색하게 연기하는 것이 싫은 거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뮤비들 대부분 영상이 뽀얗다. 뽀샤시한 화면으로 포근하고 아련한 느낌을 잘 연출한다. 뽀얀 화면이 확실히 잘 어울리는 노래들이 있다.

이렇게 특징들을 열거하기는 힘들더라도 아마 세동도 이런 점들을 느꼈을 거다.

유니가 봄꽃이 필 시기의 컴백을 준비하고 있으니 화사한 느낌이 나는 야외촬영에 뽀얀 영상이 곁들여지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또 노래 내용이 봄날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니 배우들이 연기해도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을 거고.

세동이 박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이해가 됐고. 그렇다면 우현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 반대겠지.

박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의 반대로 생각하니 우현이 원하는 뮤비 스타일이 나온다.

봄날의 사랑이라고 해서 뽀얀 화면이 되는 것이 싫다. 우현은 선명한 화면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텔 색상의 아이템이 나와도 뽀얀 것보다 선명하게 나와야 눈에 띄는 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야외촬영분이 너무 많으면 좋지 않을 것 같다. 선명한 느낌이 나려면 스튜디오 촬영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뮤비가 된다고 해도 유니가 직접 연기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유니는 신인이니까. 얼굴을 알려야 하는 거다. 물론 유명 배우가 등장하면 더 관심을 끌 수도 있지만 유니를 라디오형 가수로 키울 것은 아니기에, 유니 얼굴을 더 자주 등장하게끔 해서 알려야 한다.

그렇다고 유니가 배우들만큼 예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니는 특유의 귀여움이 있다. 얼굴을 숨길 필요가 없는 거다. 전에 ‘승냥이’에 나온 유니를 보니 확실히 유니만의 특색이 얼굴에 있었다.

우현이 원하는 스타일로 뮤비를 만드는 감독 중 제일 잘하는 감독. 세동이 준 리스트 중 이지환 감독이다.

“네? 이지환 감독이요? 박 감독은 별로예요?”

“별로인 건 아니야. 단지 이 감독이 이번 유니 노래 컨셉도 잘 살려줄 것 같아서 그래.”

세동은 자신이 추천한 감독 말고 다른 감독을 미는 우현이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꼭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흐음… 어쨌든 알겠습니다. 영진기획에다 이지환 감독으로 한다고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며칠 뒤, 사무실 근처에서 경수, 민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의 핸드폰에 낯익은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장태현.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누구예요?”

전화를 받지 않고 멈칫하는 우현을 보고 경수가 궁금해 했다.

“아니야, 예전에 같이 일했던 친구. 난 다 먹었으니까 먼저 간다. 민주씨가 계산하고 처리해줘요.”

“네, 들어가세요.”

우현은 가게를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왜? 전처럼 반말하지?”

“그럼 그럴까? 웬일이야? 전화를 다 주고.”

“하… 어이가 없어서 정말… 그래, 집어치우고 할 이야기만 하자. 너 왜 우리 희연이 건드려?”

“건드리긴? 단어 선택 잘 해라. 누가 들으면 오해 한다.”

“왜 우리 애 허파에 바람 넣었냐고.”

“난 바람 넣은 적 없다. 잘 알아보고 전화하는 거 아니지? 같이 있었던 소연 씨한테 물어봤으면 아니라는 거 잘 알 텐데?”

“소, 소연 씨한테 그걸 왜 물어봐?”

당황한 그의 목소리로 보아 정곡을 찌른 게 분명하다. 그런데 고작 같이 밥 먹은 거 가지고 전화했다고?

“거 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선 무작정 전화했구만. 밥은 우희연이 먹자고 했고 그 자리에 소연 씨도 같이 있었어. 스케줄 매니저라면서 로드한테 제대로 듣지도 못한 거야?”

“내가 왜 못 들어? 양현이한테 들어보니 네가 살살 부추겼다는데? 그러니까 온 간데 쑤시고 다니는 거 아냐!”

양현이라는 친구가 우희연의 로드매니저인 것 같다. 그런데 온 간데 쑤신다고?

“혹시 스카이 엔터에서 희연이를 노리는 것 같냐?”

“어? 어떻게 알았어? 역시… 네가 조종한 거지?”

이쯤 되니 궁금해질 지경이다. 예전에 강 사장과 같이 일할 때 어느 정도 자신의 능력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의 손이라도 되는 듯 지껄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강 사장이라고 해도 자신의 능력을 완벽히 알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끄럽고, 너 스카이 엔터 사장이 누군지 알아?”

“누군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연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저 성격에 연기하면 분명 티가 날 것이기에 강 사장이 복귀한 걸 그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강진벽. 예전 파인 엔터 강 사장이야.”

“뭐! 진짜 강 사장이라고? 뇌출혈로 수술까지 받은 양반이 무슨 회사를 경영해? 너 지금 나 가지고 장난하냐?”

“조금만 알아보면 단박에 들통 나는걸 뭐 하러 거짓말 해? 지금 강 사장이 재기해보겠다고 별 짓 다 하고 다니는 모양인데 희연이 네 배우인지는 몰랐나보다.”

“시팔…”

알든 모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연예 기획사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으면서 자신에게까지 연락하지 않았다는 거에 배신감을 느낄 거다.

“사장이 무슨 돈으로 재기해?”

“바지야. 실소유주는 우주창투일걸? 그래서 자금력이 장난 아니야. 우리 회사에 민상욱이라고 있었어, 민재원 동생. 그런데 상욱이를 꼬셔서 소송을 걸어버리네? 이제 브라운관에 얼굴 몇 번 나온 신인인데. 강 사장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지? 장사 하루 이틀 할 생각 아닌 거야. 우희연이야 1년 반 남았기 때문에 굳이 소송 걸지 않고 데려가려고 하겠지만 미리 약을 쳐 놓는 거겠지. 아마 계약종료 1년 전부터는 CF빼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할 걸?”

“하… 시팔… 너 이거 진짜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해서 뭐하냐? 그리고 내가, 아닌 말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면 은하를 데리고 가려고 했겠지. 고작 우희연한테 치대겠냐? 내가 은하를 못 데려간 걸로 보여?”

“흐음… 알았어. 끊어 봐.”

전화를 끊고 나니 조금 미안하긴 했다.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저 입장에서 아무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회사 내에서 능력 없는 놈으로 찍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뭐, 잘 해결한다면 오히려 더 능력을 인정받게 되겠지만…

어쨌거나 스카이 엔터에서 마이더스의 뺨을 후려치게 만들었으니 한동안 파인 엔터에는 고개를 돌리기 힘들 거다. 한 성깔 하는 마이더스 사장이 그대로 두고 볼 리 없으니까.

꺼으윽…

“아우… 점심 먹은 게 벌써 소화가 됐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