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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운도 실력이다(2)
“김 대표님! 지금 일어서면 나가기 힘들어요. 지금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요. 그리고 아직 행사 중이에요. 쇼가 끝나면 같이 일어나요. 솔직히 저도 재미없거든요.”
이건 또 뭔가? 대선배인 강소연이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다.
“얘! 너 선배 앞에 두고 침 바르려고 하면 안 된다?”
“어머, 언니. 설마 제가 언니 앞에서 재주 부리겠어요? 궁금하잖아요. 은하 언니가 ‘피아니스트’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10억까지 투자하셨다고 했을 때는 그 돈 아까워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회사 직원들이 그 때 은하 언니를 전부 바보 취급한 거 알아요? 물론 대놓고 앞에서 뭐라 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거 대표님 작품이라면서요?”
이제 20대 중반도 되지 않은 새파란 여배우가 대선배인 강소연을 앞에 두고 흥행을 욕심 부린다. 슬쩍 소연의 눈치를 보니 그녀도 어이없어 하는 게 보였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 작품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임찬규 감독이 그 작품 만들어 보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그런 말은 임 감독님께 실례되는 말입니다.”
“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흐음… 생각보다 까칠하시네요? 되게 젠틀해 보이시는데.”
“저 젠틀합니다.”
“그럼 그 젠틀함 계속 유지하셔서 끝나고 식사나 하실래요? 언니는 어때요? 우리끼리 끝나고 식사나 할까요? 제가 요 근처에 맛있는 집 알고 있거든요.”
우현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안 그래도 사진 몇 개 가지고는 안 먹힐까 은근 걱정 됐는데 식사까지 같이 하면 분명 걸려들 거다. 게다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욕심이 장난 아니다.
“그럴래요? 나도 그 ‘피아니스트’ 투자는 조금 궁금하긴 한데.”
강소연까지 쿵짝을 맞춰주니 일단 런웨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들과 함께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경수가 모는 차를 타고 우희연이 찍어준 주소를 향해 움직였다.
“우희연하고 저녁 먹는 겁니까? 아싸!”
“너는 희연 씨랑 소연 씨 매니저하고 같이 먹어.”
“으… 아깝다. 그래도 저녁 먹은 후에 사진은 찍어도 돼죠?”
“그러던지. 끝나고 사진 찍어달라고 해봐. 거절하지는 못할 테니까.”
“오호. 그럼 믿고 들이대보겠습니다.”
우희연과 사진 찍을 생각에 신이 난 경수와 함께 이태원의 한 식당에 도착한 우현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희연을 볼 수 있었다.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빨리 왔네요?”
“우리 매니저가 고생 좀 했죠. 레이서 출신이거든요.”
별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날리며 눈웃음을 치는데 여느 남자들이었다면 심쿵하고도 남았을 거다. 물론 그러한 것을 노렸을 테지만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유은하를 여친으로 둔 우현에게 저런 짓은 우스울 뿐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개그감을 가지고 있네요?”
“어머, 이게 내 매력인데. 김 팍 새네. 어쩔 수 없죠. 주문은 제가 할게요. 여기 파스타가 죽이거든요.”
그녀가 주문을 하는 사이 강소연이 매니저와 함께 도착했다. 그녀의 매니저와 코디가 자연스럽게 매니저들끼리 하는 자리로 빠지고 우현과 희연, 소연만 한 자리에 앉았다.
“이러다가 마이더스 사장님한테 혼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연 씨야 그렇다 치지만 우희연 씨는 위험하잖아요?”
“그러게.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될 텐데?”
강소연이 팔짱을 끼며 우희연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성격이 원래 마이웨이인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소연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겉으로는 마음이 상한 것처럼 입을 삐죽이지만 저 장난기 가득한 눈빛은 여전이 우현을 향하고 있다.
“힝…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여기서 벌써 3년이 넘었어요. 제 미래를 위해서도 다른 회사를 알아볼 수는 있죠.”
“그래도 아직 1년 반이나 남지 않았나요? 그 만큼이나 남았는데 벌써 타 회사 접촉한다는 건 예의가 아닌…”
“어라? 제 계약기간은 어떻게 아셨어요? 설마 전부터 저를 예의 주시하셨던 거예요?”
아차했다. 은하에게 계약기간을 물어봤던 건 건드려도 될 만한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던 건데 이렇게 되면 정말로 우현이 그녀를 노렸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혼자서 망상을 펼치는 희연이 걸렸다는 듯 물고 놔주지 않을 태세라는 거다.
“아, 그런 게 아니라 당연히 배우들 계약기간은 알고 있어야…”
“그렇다고 모든 배우의 계약기간을 외우고 있지는 않죠. 이거 이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먹잇감이 되어 있었네?”
양 팔로 가슴을 감싸고 깜찍하게 웃는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정말 희연이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소연까지 궁금해 하는 것을 보니 자칫하다간 된통 걸리겠다 싶어 빠르게 답했다.
“아뇨. 그렇게 따지면 소연 씨도 계약기간이 반년 남았지 않습니까? 은하도 2년 남았구요. 그게 뭐 비밀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그러네? 너 너무 오버한 거 같다, 얘.”
소연의 핀잔에 희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웃는다.
“그런가요? 흐음… 뭐, 그렇다고 믿어주죠.”
이날 강소연, 우희연과 함께 한 식사는 정말 고역이었다. 번갈아 가면서 쉬지 않고 질문을 해대는 통에 그 맛있다는 파스타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은 물론 절반이나 남기고 말았다.
“뭐? 강소연은 또 왜 만나?”
더군다나 끝나고 전화로 은하에게 들은 잔소리는 덤이었다.
“거기에 있더라고, 패션위크. 같이 식사나 하자는데 무작정 뺄 수가 있어야지.”
“흥! 얼마나 좋았을까? 꽃밭에서 식사했으니 아주 그냥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겠네?”
“뭘 또 그렇게 생각해? 우희연 때문에 엮인 거지.”
은하도 궁금한지 장난기 어린 비꼬기 시전을 그만했다.
“이제 말해 봐.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언제까지 은하에게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실대로 강진벽 전 사장이 나타났음을 말했다. 스카이 엔터라는 새로운 회사의 바지 사장이 되어 우현의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그가 접촉하는 아티스트도 빼가려고 함을 얘기하자 은하는 자신이 당한 일 인양 흥분했다.
“그 변태새끼가 뒈지지도 않고 또 나타났네. 그래서? 우희연을 미끼로 던져본 거야? 이번에도 노리는지 한번 보려고?”
“응. 민상욱 알지? 얼마 전에 ‘승냥이’라고 형사물 출연한 우리 배우. 걔를 빼가면서 우리한테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을 걸었거든. 소송 기간만 대략 2년 정도 걸릴 건데 그 동안 일도 못 할 거고, 데리고 가서도 이미지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조연으로 시작해야 해서 매출도 제대로 올리지 못할 거잖아? 당연히 지금부터 몇 년간은 이익보다 손해가 클 거란 말이지.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 정도 출혈을 감수하면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면 이번에도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렇겠네.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난리치고 우희연을 데리고 갔는데 걔가 빵 떠버리면? 그러면 오빠만 바보 되는 거 아니야?”
“글쎄…”
“왜? 아닐 것 같아?”
“사람 가지고 뭐라고 평가하기는 그런데, 너 만큼 될 애는 아닐 것 같아.”
“그래? 뭐,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았어. 괜히 걱정했네.”
예상 밖으로 강 사장에 관해서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제는 예전 일이라서 더 이상 그녀의 신경을 끌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우현도 더는 강 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렀다. 타이틀곡 작사까지 되고나니 앨범 제작에 속도가 붙었는데 앨범의 다른 수록곡들의 작사와 편곡이 진행되는 동안 타이틀곡의 편곡과 녹음이 완료되고 안무까지 나왔다.
걸그룹을 했던 유니이기에 안무 익히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루 만에 다 외웠다나.
이제 뮤직비디오만 나오면 되는데.
“세동아, 내가 전에 연결시켜준 영진기획에서 뮤직비디오 진행 중이지?”
“그럼요.”
우현은 컴백을 앞두고 다이어트에 돌입한 유니를 위해 샐러드와 마테차를 사들고 녹음실을 방문했다.
“앗! 간식이다. 뭐예요? 아… 샐러드. 입에서 풀냄새 나는 것 같아요.”
잔뜩 실망한 얼굴을 하고서도 손은 샐러드 포장을 뜯는다.
“입에서 풀냄새 난다며?”
“그래도 이거라도 먹어야 살죠.”
한 입 하려는 유니를 향해 세동이 자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 샐러드 반만 먹어. 풀도 많이 먹으면 살찌는 거야.”
“아직 한창 먹을 나이잖아.”
돌도 씹어 먹을 나인데, 참아야 하는 유니가 안쓰러워 편을 좀 들어줬다.
“대표님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이렇게 쓴 소리 안 하면 유니 컴백 못합니다.”
그래, 사실 좀 오동통해지긴 했지, 유니가.
“그, 그래.”
그나저나 세동이 이제 꽤나 매니저다운 느낌이 난다. 로드로 들어왔기에 처음엔 그저 운전만 했는데 이제는 자기 연예인 관리를 하고 있으니. 대표인 우현에게도 거침없이 내뱉는 세동이 자못 믿음직스럽다.
“감독은 알아봤냐?”
그런 세동에게 일을 가르치는 차원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을 물색해보라 했다. 영진기획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회사로 일종의 외주제작을 맡긴 거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쪽에서 적당한 감독을 추천하면 이쪽에서 선정해서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감독 4명입니다. 옆에는 작업한 곡들이구요.”
“그래. 다 잘나간 곡들이네. 네가 보기에 어떤 감독한테 일을 맡기면 좋을 것 같니?”
“저는 박원식 감독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래?”
작업한 곡들이 대부분 걸그룹의 곡들이라 유니하고도 잘 맞을 것 같다.
나머지 감독들의 작품들 리스트도 살펴보는데, 분명히 다 들어본 곡들이다. 그런데 뮤직비디오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뮤직비디오를 유심히 본 적이 한 번도 없구나.’
가수가 뜨기 위해서는 노래를 잘 부르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선해서 곡이 좋아야 한다. 특히 신인일수록 곡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높은데 아무리 섹시 컨셉이고 인물이 좋아도 곡이 받쳐주질 못하면 데뷔해놓고 음방에 얼굴 몇 번 못 비추고 사라져간다. 곡이 좋아서 히트곡이 되면서 노래까지 잘 부르면 톱가수가 되는 거다.
노래를 잘 부르는데 히트곡이 없다면, 대중들은 유명하지 않는 그 가수의 곡보다는 다른 유명한 곡을 그 가수의 가창력을 통해 듣기를 원할 것이다. 반면 가창력은 보통 수준인데 히트곡을 보유했다면, 그 곡이 티비, 라디오 등에서 계속 나오고 불려진다. 한 마디로 돈이 된다.
톱가수가 되려면 좋은 곡을 만나는 곡복이 있어야 하고, 톱배우가 되려면 좋은 작품을 만나는 작품복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히트곡이 만들어지는 데에 뮤직비디오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만약 곡이 히트친다면 설령 뮤직비디오가 없어도 그 곡은 잘 나갈 거다.
그렇기 때문에 손에 쥔 리스트에 있는 곡들을 다 들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뮤직비디오는 본 적이 없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유니 뮤직비디오를 신경 안 쓸 수는 없지. 뮤직비디오에 대한 감이 별로 없으니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다 봐야 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박원식 감독이 만든 대표작품 몇 개 보여드릴게요.”
세동이 핸드폰으로 동영상 재생 사이트에서 하나의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