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36화 (13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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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열정의 결과(4)

유니가 행사를 뛰며 돈을 벌어들일 때는 그 매출이 상당하긴 했지만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우선 조금 더 좋은 사무실을 구해 옮겨야 했고 유니의 차기 앨범작업을 위해 돈을 남겨둬야 했기 때문이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10곡 내외의 완성된 앨범 하나를 작업하는데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보통 3억~5억 정도가 드는 게 평균적이다. 아무리 대부분의 곡을 유니가 썼다고는 해도 실제 유명 작곡가에게 타이틀곡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곡 하나당 50~100만 원 정도가 보통이라 사실상 제작비 절감에 큰 도움이 못 된다.

그러니 돈이 생겼다고 흥청망청 쓸 수 없어 회사 통장에만 묵혀뒀는데 별이의 ‘피아니스트’가 터지며 자금 운용에 훨씬 여유가 생겼다. 물론 당장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확정적(러닝개런티와 계약을 마친 광고촬영)으로 들어올 수입이 있으니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우현과 경수가 지금 강남의 외제차 전시장에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거 어떻습니까? 30대 남자의 차는 뭐니뭐니 해도 세단이죠. 그리고 요즘에는 하얀색이 많이 깔리긴 했지만 그래도 검은색이 간지가 좔좔 흐르지 않습니까?”

경수가 검은색 5시리즈 앞에서 동경의 눈을 한 채 늘씬하고 단단한 바디를 쓸어내린다. 그 손길이 마치 여자의 몸을 만지는 것 같아 우현이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길이 음탕해 보이는데 내가 착각한 거냐?”

“음탕하다뇨? 자고로 총하고 차는 여자처럼 다루라고 했습니다.”

경수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느냐는 듯 항변한다.

“좋은 거 알고 있어 좋겠다.”

“하하, 어쨌든 대표님이 차 사는데 왜 제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네요.”

“회사가 커지면 너도 잘 될 거야. 그리고 사는 거 아니다. 리스하는 거지.”

“리스나 사는 거나 그게 그거죠. 어쨌든 대표님이 전에 그 중고차 타고 다닐 때는 저도 영 보기가 그랬습니다. 엄연히 톱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매니지먼트 사장이 너무 위신이 떨어져 보였어요.”

그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속도 중요하지만 업계의 특성상 보여 지는 면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사는 거잖아.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눈치를 보던 젊고 잘생긴 딜러에게 말하자 그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아, 결정하셨습니까? 시승은 안 해보셔도 괜찮을까요?”

“네, 필요 없어요.”

“그럼 이쪽으로…”

1층 전시장에서 2층 접견실로 올라간 그들은 검은 대리석으로 보이는 고급 탁자 앞 소파에 앉아 리스계약을 완료했다. 그 잘생긴 딜러는 우현의 회사명을 듣고 더욱 깍듯하게 인사하고는 별이의 팬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할인과 쿠폰을 챙겨주었다.

일반적으로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소속사 이름까지 외우기는 쉽지 않은데… 물론 그것도 영업 전략일 뿐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이야! 역시 차는 잘 나가네요.”

“그러게, 확실히 카니발보다는 낫지?”

“낫기만 합니까? 그리고 지금보다 회사가 더 커지면 더 좋은 차 타십쇼.”

“왜? 네가 이 차 타려고?”

우현의 눈빛에 ‘누가 네 속셈을 모를까봐’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안 경수가 슬쩍 시선을 피했지만 입가가 올라가는 건 놓치지 않았다.

“으흠…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있는 차를 놀릴 수도 없고 말이죠. 있는 차는 타고 다녀야지 않습니까?”

“너, 이 차 타고 다니면서 여자들 꼬시려고 그러지?”

“어째 대표님 어조가 부러워하는 것 같은데 제가 착각한 겁니까?”

송곳처럼 찔러오는 예리한 쨉에 뜨끔했다.

“전혀 아닌데? 네 기분 탓이야.”

“대표님도 여자친구 있으시면서 너무 견제하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저랑 겹치지만 않으면 제 즐거운 인생을 축복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웃기고 있네. 축복은 네놈 결혼식 때만 해줄 거야.”

“킁, 다 가진 대표님께서 저를 부러워하실 줄이야…”

차마 부러워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어쨌든 회사 더 커지면 다음 차례는 진명이다. 너는 막내잖아. 내 생각엔 이 차가 너한테까지 내려오길 기다릴 바에는 그냥 배우 하나 키워서 스타 만드는 게 빠르겠다.”

“제 손으로 스타 만들면 돈 많이 벌까요?”

“만약 네가 길거리 캐스팅을 하든, 뭘 하든 해서 배우나 가수 하나를 데리고 왔을 때, 내가 딱 볼 거 아니야?”

“그렇죠.”

“내가 딱 봐서 싹이 보이는 애다, 그러면 네가 매니저 하면서 키울 수 있게 해줄게. 그래서 나중에 수익 배분도 네가 먹을 수 있도록 해줄 거고. 어때? 유은하 정도 키울 수 있겠어?”

“유은하 씨요? 와… 그런데 잘하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새끼… 여자를 잘 꼬셔서 그런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은근히 배짱이 있다.

“하하하, 그게 쉬워 보이지? 그래, 그럼 데리고 와 봐.”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스타가 될 만한 재목이 그렇게 흔하면 개나 소다 전부 스타가 될 거다. 하루에도 난다 긴다 하는 수백 명의 지망생들이 헛물만 켜다 좌절하고 나가떨어지는 게 이 바닥인데 어딜 가서 그런 애를 찾아올 것인가?

회사 명의로 차를 리스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이 된 것 같은 기분. 고시원 골방에서 쪼그리며 자던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몇 달 지났다고 인생이 180도 달라져 버렸다.

전에는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막상 여윳돈이 생기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그렇게 땡기지 않았다. 벌써부터 이 정도인데 돈을 더 벌어 집도 좋은데 사버리고 나면 어찌될까 걱정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흥! 웃기고 있네.”

전화 너머로 은하가 코웃음을 쳤다. 하긴, 은하가 보기에는 같잖아 보일 수 있겠다.

“고작 그 정도 번 걸로 현타가 오셨어? 배포가 너무 작은 거 아니야?”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는 단연 유은하다. 아무리 ‘피아니스트’로 별이가 주목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인공인 유은하에 비하겠는가? 지금 유은하의 소속사인 마이더스는 행복에 겨워 비명을 지르는 중이라고 했다.

“하긴, 네가 번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 마이더스는 좋겠다? 걔네, 나한테 인간적으로 밥 한번 사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바쁘다면서?”

온갖 CF는 물론이고 예능, 드라마, 영화계의 러브콜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거 할 때는 회사에 전적으로 내 선택이라고만 했지. 안 그랬으면 오빠랑 같이 하는 거 그냥 뒀겠어? 게다가 돈까지 10억이나 투자했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비밀로 했어?”

“안 그럼 우리 사이 의심할 거 아냐. 나는 괜찮은데 그럼 그렇게 말할까?”

장난기 어린 그녀의 말에 진심이 절반쯤 섞인 것을 느꼈다.

“아냐, 됐어.”

“후훗! 간은 작아가지고…”

“어쨌건 너 이제 부자 됐다? 나 때문인 거 잊으면 안 돼. 알지?”

이미 300만을 돌파했고 이 기세로 쭉 가면 500만도 문제없다는 평이다. 그럼 그녀가 벌어들일 돈은 얼마나 될까?

보통 블록버스터 영화의 기준이 되는 제작비가 100억인데 이 돈을 회수하기 위한 손익분기점이 대략 300만 정도다. 30억 제작비로 300만 관객을 이미 돌파했고 그녀가 투자한 돈만 10억이니 현재 그녀가 벌어들일 돈은 대충 계산해도 30억 정도다.

만약 관객이 600만을 돌파하고 러닝개런티까지 더한다면? 영화 하나로 지방의 건물 하나를 대출 없이 살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물론 ‘피아니스트’의 인기로 찍게 되는 각종 CF 수입은 별도다.

“칫! 생색은… 내가 입 싹 닦을 줄 알았어? 날 뭘로 보고…”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근데 우리 언제 봐? 계속 바뻐?”

그녀도 내심 안타까운지 시무룩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나 계속 광고촬영에다가 화보 촬영이랑 인터뷰 있어. 그리고 회사에서 매니저 바꿔줬어. 장태현은 그만 괴롭히려고. 같이 있으니까 나도 불편하고… 그래서 여자 매니저가 왔는데 나랑 같이 사는 수준이야.”

과거의 일은 지워도 될 만큼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말이니 다행스럽다.

“그래, 잘했다.”

“눈치껏 시간 내볼게. 미안…”

“괜찮아. 미안해하지 마.”

그녀와의 통화는 항상 설레지만 아쉬움을 남긴다. 마음껏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녀이기에 그렇다.

타이틀곡 작사를 의뢰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 이조은날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사가 끝났다는 거다. 메일로 결과물을 받아볼 수도 있지만 얼굴 보고 얘기를 나누며 글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어 직접 가겠다고 했더니 이 작가가 회사로 오겠다 했다. 회사 구경을 하고 싶다고.

“아유, 파주에서 청담동까지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이런 기회 아니면 연예기획사 구경 해볼 일도 없을 것 같아서요. 겸사겸사 청담동 구경도 해보고…”

“하하, 청담동이라고 해도 뭐 별거 없죠?”

“좋은데요? 청담동이라고 하면 그냥 좋은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히 설레고… 특히 내가 이 청담동에서 일어나는 일에 한 손 거들었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 그런 것 같네요.”

두리번거리며 수줍게 웃는 모습이 10대라고 해도 믿어질 만하다. 서울 온다고 화장까지 한 걸 보니 꽤나 설렜나 보다.

민주와 경수를 인사시키고 대표실로 들어왔다.

“오늘 커피숍 알바는 어떻게 하고 나왔어요?”

“다른 친구랑 바꿨어요. 그 친구가 일 있을 때마다 제가 많이 바꿔줬거든요. 저는 매일이 똑같은 삶이어서 그 친구한테 오늘 처음으로 부탁한 거예요.”

“다행이네요. 오늘 서울 나들이까지 알차게 하고 들어가요. 그럼 작사한 거 한 번 볼까요?”

이 작가는 메고 온 크로스백에서 스프링 노트 하나를 꺼냈다.

“제가 손으로 직접 쓰는 걸 좋아해서요. 연필로 쓰면 왠지 더 감상적이게 되는 것 같고 떠오르는 것도 많고…”

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에 직접 써 온 것이 조금 민망한지 변명 같은 설명을 덧붙이며 조심스럽게 노트를 테이블 위에 놓는다.

“괜찮아요. 사무직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창작 활동을 하는 건데, 연필이면 어떻고 붓이면 어떻습니까.”

우현은 미소를 띠며 노트를 들어 펼쳤다.

“여기, 이거예요. 다 썼다고 생각해서 깨끗하게 정리해서 쓴 건데, 또 더 좋은 단어가 생각나고 하다 보니 다시 지저분해졌네요. 오늘 올 때까지도 수정을 했거든요.”

중간의 한 페이지를 펼쳐주는데, 그녀의 말대로 다 쓴 가사를 계속 수정한 부분이 보인다. 지우개로 지우기도 하고 두 줄을 긋고 수정하기도 하고. 또, 연필이 번져 얼룩덜룩한 부분도 있어 다 쓴 후에도 손을 많이 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노트에 연필로 써놓은 걸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그럼 잠시 읽어볼게요.”

제목은 ‘솜사탕’. 제목부터 유니, 봄, 풋풋한 사랑까지 연상이 되는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다. 노래가사라서 금방 읽어 내렸다. 좋다. 역시, 이조은날 작가가 제대로 써올 줄 알았다.

“좋네요. 음…”

성적표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우현의 대답을 기다리는 이 작가에게 일단 좋다는 답을 주고, 작곡 멜로디에 이 가사를 붙이면 어떻겠나 하고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내렸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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