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33화 (13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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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열정의 결과(1)

“대표님 혹시 연애하십니까?”

헙.

놀라서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어떻게 알았지? 그렇다고 해야 하나, 아님 딱 잡아떼야 하나.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이럴 땐 즉답은 피하고 보는 거다. 그리고 되치기. 질문으로 되돌려주는 거지.

“아니요, 뭐… 연애하시는 것 같아서요.”

경수는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실실 쪼갠다.

왜 웃는 거지? 이 쫄리는 기분은 뭐냐.

“그, 그러는 너는, 여자친구 있냐?”

대화의 주제를 바꿔본다는 게,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여자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볼 것 같은 애한테 ‘여자친구 있냐’라니. 이 무슨 실례되는 질문이란 말인가.

“훗, 당연히 있죠.”

엥?

경수의 말에 놀라고 그 동안 경수에게서 보지 못했던 자신감에 두 번 놀라 순간 멍하니 경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 네가?”

역시나 실례되는 질문이다. ‘네가?’라는 말은 ‘네까짓 게 어찌?’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상대방을 상당히 무시하는 말인데도 입에서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경수는 그런 우현의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지 여전히 웃음을 띠고 있다. 무지 자신감 있어 보이는.

“이 나이에 여자친구 없으면 쓰겠습니까?”

어허, 이 자슥 봐라… 저 자신감 뭐지?

“그… 그, 그렇지. 그래서… 어떻게 사겼냐?”

얼레벌레 우현도 여자친구가 있다고 실토한 꼴이 됐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경수가 여자를 어떻게 사귈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소심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여자한테 고백을 했단 말인가.

“원래 알고 지내던 동생인데, 저랑 전 여친이랑 헤어졌다는 얘기를 듣고선 저한테 고백하더라구요. 예전부터 저를 좋아했었다고.”

“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역시 사람은 모르는 거다.

우현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즐기듯 얘기를 이어간다.

“전 여친이랑 헤어지면 고백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대요. 귀엽죠?”

“어, 그렇네. 그럼 전 여자친구는 어떻게 사귄 거야?”

경수의 연애가 궁금했다. 우현이 알고 있는 경수는 도저히 ‘연애’와는 매치가 안 되는 인물이었기에.

“예뻤어요. 쇼핑몰 피팅모델이었거든요. 술 마시고 키스한 다음에 사귀자고 했죠.”

우와… 이 새… 끼.

놀란 우현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네가 먼저 키스를 했다고?”

“아니요, 전 여친이 먼저요. 흐흐, 뭘 그렇게 놀라세요? 이래봬도 저, 여자친구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가슴을 쫙 피며 말하는 경수는 정말 다른 사람 같았다. 여자들이 경수 같은 타입을 그렇게 좋아하던가? 얼굴에 여드름자국도 여전히 많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데… 혹시 경수네 집이 부자였던가? 흠흠, 아닌데.

“그래? 짜식, 능력 있네.”

크게 놀라지 않은 척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우현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또 빙긋 쪼개더니.

“여행가자고 하세요. 아니면 라면 먹자고 하거나.”

“켁! 쿨럭.”

너무 당돌한 멘트에 놀라 사레들린 우현을 앞에 두고 경수는 태연하게 말한다.

“싫어할 거 같죠? 여자들 좋아해요. 물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싫어하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러면…”

그러면 뭔데? 뭔데?

차마 묻지는 못하고 얼른 대답하라는 눈빛을 쏘아댔다.

“‘하루 종일 네 생각만 하거든…’ 하고 대답하시면 됩니다.”

경수는 ‘난 놈’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덧 2017년 2월에 다다랐다. 그 동안 우현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을 시간을 보냈는데, 출근해서는 각종 업무와 소속 아티스트 지원을 해주고 퇴근해서는 각 방송사 피디, 작가들과 친분을 다졌다. 그 와중에 얻어걸린 게 있다면 스카이 엔터 이혜윤 상무의 정체에 관한 것이었다.

전에 우주창투의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 이혜윤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 걔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뭐, 예쁘긴 했지. 그런데 같이 일할 때는 그 얼굴이 눈에 안 들어와. 아빠가 우주창투 사장이니 어련할까 생각했지만 어찌나 간섭이 심하고 말이 많은지. 지가 최고라니까? 그런데 어이없는 건 운은 억수로 좋았는지 헐리우드에 있는 연예기획사에서 근무했을 때 손 댄 것들은 전부 평타이상을 쳤었다네? 그러니 기고만장해진 거지.”

말로는 평타이상이라고 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꽤나 성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작품에 그렇게 가위를 들이댔었는데 결과는 손익분기점을 아주 살짝 넘겼었어. 그러면서 나중에는 자기 아니었으면 폭망했을거라나 뭐라나… 하여튼 그래서 그 이후로는 우주창투에서 투자를 안 받으려 했었는데 알아보니 거기 잠깐 있다가 다른데 갔다고 들었는데 거기가 스카이 엔터구만? 그런데 거기는 왜 갔대?”

그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녀의 캐릭터에 관해 대강 감이 잡혔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게 아닌가 혹시 걱정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그것만 아니면 머리 조금 좋고 감 좋은 정도로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 후로 스카이 엔터 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유정완 감독의 신작인 ‘붉은 여우’ 첫 촬영 날짜가 다가왔다.

“저 괜찮습니까?”

“촬영은 지나가 하는데 왜 네가 꾸미냐?”

샵에 새벽부터 나와 있던 그들 중에 가장 긴장한 건 진명인 것 같았다.

“제가 유정완 감독님 팬이거든요.”

“까고 있네. 솔직히 말해봐.”

“크흠… 그리고 ‘포 레이디즈’의 신혜미도 오잖아요? 헤헤.”

역시나 유정완은 페이크고 결국 아이돌을 눈앞에서 본다는 것 때문에 설레임 폭발하는 거다.

“네 배우는 오늘 첫 촬영인데 아주 신났구만.”

어처구니가 없어 한 마디 하는데 진명 뒤에서 지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아요. 오늘 위험한 촬영 없고 쉬운 것만 몇 개 찍기로 해서요. 끝나고 친목을 다지는 차원에서 술 마시기로 했대요.”

어차피 현장에 가면 미술팀에서 다시 헤어, 메이크업을 다듬어줄 거라 기초화장만 한 그녀지만 괜히 여배우가 아닌지 밑에 조명판을 갖다 댄 것처럼 화사하다.

“응, 들었어. 뭐, 알아서 잘 할 테지만 과음하지 마. 여배우는 흐트러진 모습 보이면 감독이 쉽게 보거든.”

“후훗, 걱정 마세요. 저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랍니다.”

지나는 쉬운 촬영이라고 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우현도 봤었던 스턴트맨들과 조직폭력배처럼 정장을 빼입은 엑스트라 수십 명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첫 날이라 쉽게 간다면서?”

“오늘 촬영이 쉬운 편이더라구요, 에휴…”

지나는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이었다. 더 물어보지 않아도 기대 반 걱정 반일 터였다.

“위험한 건 없는 게 맞아?”

“네. 전부 가짜 칼인 데다가 크게 넘어지고 부딪히는 장면은 없거든요. 전부 내가 때리는 씬이라…”

“아, 그러면 그렇게 어렵진 않겠네.”

액션 연기는 때리는 것보다 맞는 연기가 훨씬 어렵고 부상 위험도 높다. 그래서 대역을 쓸 때도 때리는 씬보다는 맞는 씬에서 쓰는 경우가 많다.

“안녕하세요. 전에 술자리 이후에 너무 연락이 없었죠? 술이라도 한번 더 대접했어야 했는데…”

“하하. 됐습니다. 배우 소속사 사장 미리 만나서 좋을 게 뭐 있겠어요? 괜히 부담만 되지. 술은 지나 씨와 먹겠습니다.”

유정완 감독과 인사를 나눈 후 미리 준비한 간식차로 스태프들과 배우, 단역 배우들에게 빵과 커피를 돌렸다. 밥차까지 미리 시켜놨으니 저녁 식사도 문제없을 거다.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이런 배려가 주연배우의 기를 살리고 스태프들이 배우에게 호의를 가질 수 있게 하니 절대 돈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포 레이디즈의 신혜미도 현장에 모습을 보였는데 연기돌이라 칭해지는 그녀이니만큼 미모는 상당했다. 짧은 핫팬츠에 망사스타킹, 그리고 부츠를 신고 위에는 엉덩이까지 오는 재킷을 입고 왔는데 요즘 유행하는 하의실종 패션이다. 그 때부터 진명의 눈이 바빠졌다.

“그냥 선글라스를 껴라, 인마. 내가 민망해 죽겠다.”

“아,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대표님도 안 쓰시는데 제가 선글라스를 끼면 이상해 보일까 봐요. 그리고 제가 평소에 워낙 팬이라…”

“새끼… 잠깐, 생각해보니까 선글라스 낄 생각을 했었다는 거 아냐? 지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엉큼한 구석이 있네?”

“지나야 가족 아닙니까?”

“오호… 가족하고는 그런 생각하는 게 아니다, 뭐 그런 거지?”

“뭘 또 그렇게까지 생각하십니까? 순수한 팬심이라는 거죠. 일은 일, 사랑은 사랑 아닙니까?”

“사랑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자꾸 그럴 거면 빨리 여자친구 만들어라. 사고치지 말고.”

“아이고, 대표님, 제가 무슨 애들도 아니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냥 순수한 팬심이라니까요, 순수한!”

‘순수’를 강조할수록 진명이 더욱 순수하지 않게 보인다. 엉큼한 놈.

“원래 사람이 사람 좋아할 때는 보통 순수하게 시작해. 어쨌거나 너도 나이가 있으니 빨리 여자친구 사귀고 결혼해야지.”

“대표님도 안 하셨는데요. 뭘… 그리고 로드매니저 하면서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승진시켜 달라는 말. 하긴 로드매니저 하면서 여자를 만난다는 건 2D가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다는데 동의한다.

“조금만 버텨. 실장으로 올려줄 테니까.”

“헐… 약속하신 겁니다?”

“새끼,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 말 하던? 그러니까 얼른 선글라스나 써. 쪽 팔려서 진짜…”

“옛썰!”

1시간 정도의 분장을 마치고 나니 지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쫙 빼입은 가죽옷이 몸에 달라붙어 섹시함과 카리스마가 폭발하는 모습이었다.

“진짜 죽이는데요?”

진명도 놀랐는지 먹던 빵을 넘기지도 않았다. 시선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한곳에 집중되어 있을 거다.

“그렇지? 이러니 영화가 안 될 수가 없지.”

“흐음… 액션이 잘 받쳐줘야 할 텐데… 각본 수정된 거 보셨어요? 전보다 더 세련돼졌던데요?”

원래 각본에서는 아이돌인 신혜미가 나오는 장면이 없었다. 그러다가 인물이 너무 단편적으로 보여지게 될 까봐 신혜미를 넣어 지나의 다양한 매력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인데 수정된 것을 보니 확실히 전보다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다.

“원래 유 감독이 액션만 잘하는 감독이 아니거든. 스토리가 좋아. 관객이 어떤 장면에서 짜릿해 하는지를 아니까 믿음이 가지.”

이제 촬영 전에 액션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손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미 액션스쿨에 있을 때 몇몇 장면에서 어떤 액션을 하게 될지 예행연습을 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우현과 진명도 숨죽이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자, 하나, 둘, 셋! 여기서 턴하고 하나, 둘. 그리고 마지막으로 팍! 알겠어?”

“네.”

무술감독과 유정완 감독이 직접 손발을 부딪쳐가며 액션 지도를 하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꽤 재밌다. 지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 모습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유 감독이 지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긴장하지 말고 리허설 해봅시다.”

여자들의 액션에 요즘 자주 나오는 짧게 끊어 치는 액션을 하면 애들 손장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유지나의 액션은 영화 ‘옆집 아저씨’처럼 잔혹하면서도 ‘킬빌’처럼 동작이 큰 장면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게 핵심이다. 동서양 액션의 조합이라고나 해야 할까?

“아악!”

“헉!”

스턴트맨들은 리허설임에도 과장된 액션으로 맛을 살린다. 그러니 보는 입장에서도 실감난다.

“꽤 하는데? 연습 많이 했겠다. 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남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상당히 숙련된 모습을 보여주는 지나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해수 엄마에요. 기억나시죠?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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