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28화 (12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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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내 생각, 네 생각(2)

“어? 아니… 내가 오늘 좀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뭐,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민상욱하고 계약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그럼요. 이제 몇 달 지났다고… 계약서에 잉크도 안 말랐을 정도니까요.”

“그렇지? 그럼 신경 쓰지 마.”

“뭔데 그래요? 사람 궁금하게 해 놓고.”

“어허!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내가 착각해서 그래. 자, 일 얘기는 그만하고 나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결국 그날 늦은 밤까지 술을 진탕 마시며 친분을 다졌다. 물론 술값은 우현이 냈다. 일종의 접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연예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 이런 접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광고주가 갑이고 최고기획이 을이라지만 파인엔터에게 있어 최고기획은 갑이기 때문이다.

‘예종의 여인’을 한창 촬영하는 별이는 ‘피아니스트’의 언론시사회가 시작되면서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건 영화를 본 기자와 평론가의 평이 상당히 좋다는 점이다. 우현과 별이도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는데 2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몰입도와 재미가 상당했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음악영화가… ★★★☆]

[유은하와 김별의 연주 실력에 감탄, 음악의 아름다움에 또 감탄. ★★★]

[질투, 열정, 경쟁. 그리고 황홀한 음악을 끌고 가는 이야기의 힘. ★★★★]

생각보다 영화가 잘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의 평가를 받을지는 몰랐다. 임찬규 감독은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온갖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우현의 축하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할 정도였다.

우현은 ‘피아니스트’에 출연한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별이만 따로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슬쩍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어땠어?”

“생각보다 잘 나왔더라. 오빠 말대로 하길 잘했네. 투자금 회수는 가능하겠지?”

“하하하. 사실 네 돈 10억 넣어놓고 나도 많이 떨렸다, 알어? 말은 안 했지만 엄청 후달렸다고.”

“칫! 전혀 그런 얼굴 아니던데?”

“표정 관리 한 거지. 어쨌거나 투자금 회수는 가능할 것 같던데?”

“평론가가 좋다고 해도 막상 관객들은 반응이 그저 그렇지 않을까? 평론가들이 너무 띄워주면 꼭 예술영화 같잖아. 이렇게 띄워줘서 당황스럽다니까.”

특히 유은하에 관련 돼서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언제나 로맨틱코미디로 가볍거나 우울한 멜로 연기만 선보였던 그녀였기에 이런 연기는 그들에게 있어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너 답지 않게 웬 약한 소리?”

“너무 띄워주니까 불안해서 그러지.”

“불안해하지 마. 그리고 생각보다 임 감독 감각이 좋던데? 사실 너도 알다시피 임 감독 개인사가 좀 그렇잖아? 상황이 상황인지라 스토리에 너무 힘을 줘서 억지 감동을 유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주 깔끔하던데? 진짜 헐리우드산 음악영화 보는 것 같았어.”

은하는 우현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촬영 중간에 가끔 전화할 때가 있었거든. 거의 죽을상을 하길래 안됐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래도 전화 끊고 나서는 티를 안 내더라구. 나름 일할 때 마인드는 마음에 들었어.”

“하이고. 이제는 아주 고참급 배우 됐네.”

“흥! 재수 없어!”

우현의 장난에 은하가 고개를 팩 돌려 인터뷰를 하러 나갔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응? 경수?”

지금쯤 한창 ‘승냥이’ 막바지 촬영에 매진하고 있어야 할 상욱을 보좌하는 경수가 전화를 해오자 궁금함보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고기획의 최호선 팀장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남았었는데 문득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아, 네.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응. 가능해. 한창 바쁠 때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음… 딱히 무슨 일이 꼭 있는 건 아닌데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경수의 목소리에는 주저함이 묻어나왔다. 뭔가 말하기 꺼려하는 듯한 느낌. 그래서 더욱 불안감이 엄습했다.

“뭔데 그래? 빨리 말해 봐. 궁금해서 숨 넘어가겠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전화로 말씀드리긴 조금 그런데…”

“알겠어. 내 오피스텔 알지? 오늘 저녁에 그리로 와.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

“죄송하지만 저녁은 상욱이 형이랑 먹기로 해서… 10시 넘어서 찾아가겠습니다.”

“10시 넘어서? 흠… 알았어. 그 때 보자.”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애써 지웠다. 미리 고민해봐야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별이에게도 괜한 걱정을 주게 될 것 같아서였다.

“인터뷰는?”

진명은 인터뷰를 마치고 온 별이 곁에서 환하게 웃었다.

“이제는 별이도 아주 능숙해졌어요. 은하 씨랑 비교하는 조금 불편할 수 있는 질문도 능숙하게 잘 넘기더라구요.”

촬영장에서도 대사를 잊어버리는 NG를 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똑똑하니 조금만 더 경험을 쌓으면 연기력도 일취월장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잘했네, 고생했다. 다음 일정 어떻게 된다고 했지?”

“영화 잡지사와 인터뷰 있습니다. 거기서 바로 현장으로 이동해서 밤 12시까지 촬영이구요.”

“현장에서는 뭐라고 안 해? 한지애는 워낙 착해서 배려해준다고는 해도 송민기측은 뭐라고 안 해?”

“송민기 씨도 워낙 젠틀하지 않습니까? 촬영 몰아서 하면 쉬는 시간이 늘어난다면서 더 좋아하더라구요.”

“외워야 할 대사가 늘어나는데 마냥 좋을 리가 있나. 배려해주느라 해주는 말이니까 너무 곧이듣지 마.”

“그럼요. 저도 그 정도 말은 립서비스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현장 가서 보면 꼭 감사하다고 전하고, 매니저에게는 따로 연락해서 고맙다고 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얼른 별이 데리고 가.”

“어? 대표님 같이 안 가세요? 아까 인터뷰까지 같이 보신다고 하셔놓고선…”

상준 옆에 있던 별이가 서운한지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었다. 오랜만에 우현이 자신의 스케줄에 집중하다가 중간에 간다고 하자 서운해졌나 보다.

“미안해. 일이 생겨서 마지막 인터뷰는 같이 못 갈 것 같다. 늦었으니까 얼른 가.”

별이와 상준을 보내놓고 사무실로 돌아온 우현은 대표실에 앉아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별이에게는 일이 생겼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머릿속에 상준의 일이 떠나지 않아 둘만 보낸 것이다.

“왜 언제 계약했는지 물어봤을까?”

아무래도 최호선 팀장의 질문이 뭔가 이상했다. 상욱이 칠 수 있는 가장 큰 사고는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회사로 가는 것. 그 질문을 곱씹어보면 결국 그 질문은 상욱과 파인 엔터의 계약관계를 의심하는 것이다.

문제는 계약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소속사에서 그를 충동질 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상욱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면서 배우를 빼내갈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혼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기를 몇 시간 지속하다가 저녁이 되자 오피스텔로 향했다. 혼자서 저녁을 먹고 오피스텔에 올라 빈둥대다가 경수의 전화를 받고 내려갔다.

“여기입니다!”

경수는 달려왔는지 얼굴이 가볍게 상기되어 있었다.

“너 뛰어왔냐?”

“아, 예.”

“차는 어디다 두고?”

“상욱이 형 집에 있습니다.”

“상욱이가 그 차가 왜 필요해? 네가 아침 저녁으로 다 데려다 주는데. 게다가 그 차가 상욱이네 집에 있으면 어떻게 데리러 가?”

“아, 상욱이 형이 필요하다고 해서…”

“하아…”

상욱이가 경수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있겠지만 원체 싫은 소리를 못하는 경수 성격에 거절하지 못한 모양이다.

“죄송해요.”

“상욱이가 너보다 나이는 많아도 네가 매니저인데 상욱이 마음대로 하게 두면 되겠어? 어떻게 보면 상욱이가 아직 뜨지도 못한 신출내기나 마찬가진데 벌써부터 지고 들어가면 나중에 어쩌려고? 아마 너 사람 취급도 안 하려고 할 걸?”

“죄송해요.”

경수는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모습에 슬슬 열불이 치밀었다. 경수가 아니라 상욱에게 말이다.

“괜찮아.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되지. 어쨌거나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야? 그것 때문에 궁금해서 밥도 안 넘어 가더라.”

“그게… 실은 얼마 전에 상욱이 형이 다른 회사 사람이랑 만나는 것 같더라구요.”

결국 우려했던 대로다. 문제는 그곳이 어디냐는 것.

“다른 회사? 다른 회사 어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 곳이랑 접촉하는지 알았어?”

“평소에 쉬는 시간마다 민재원 씨랑 전화를 자주 했었습니다.”

민재원이면 상욱의 형이니 소속사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형제 사이에 연기에 도움을 주는 말들을 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한번 얼핏 들어보니 계약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또 제가 가까이 가면 전화를 황급히 끊어버리기도 하구요. 그래서 어제 몰래 이야기를 엿들어 봤는데, 전속계약이 뭐라더라? 부존… 뭐라고 하던데…”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

“아, 맞다! 그랬어요. 그거를 이야기하더라구요. 그게 정확이 뭔지는 몰라도 소속 연예인이 소속사를 나오겠다는 거 맞죠?”

“하아… 그래, 맞아.”

화가 나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계약한지 고작 몇 달인데 회사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생겼을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 소송을 건다고 해도 길어지면 몇 년 동안 백수 생활을 해야 할 것이기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한 상욱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우리 회사 큰일 난 거 아니에요?”

“뭐가 큰일 나? 큰일은 상욱이 걔한테 난 거지. 지금 소송해서 이긴다고 해도 몇 년 지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과연 쉬울까?”

경수는 우현의 비웃음 어린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요? 그런데 상욱이 형 전화하는 거 몰래 엿들으니까 되게 자신만만해 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이야 온갖 미디어에서 띄워주니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겠지. 몇 년 쉬고 와도 사람들이 다 불러줄 거라고 생각할 거야.”

“흐음…”

경수는 왠지 우현의 말을 신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상욱이 내일 스케줄 어떻게 돼? 너한테 차 두고 가라고 했으면 아침부터 스케줄 있지는 않겠네.”

“네, 내일 콜타임 2시거든요.”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잔다고 해라. 바쁘니 뭐니 헛소리 해대면 내가 집으로 쳐들어간다고 말해.”

다행인지 경수를 보내고 오피스텔에 들어왔을 때 아침에 약속을 잡았다고 문자가 와있었다.

“어디 어떤 얼굴인지 한번 보자.”

우현은 새벽부터 일어나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원래는 오늘이 별이 생일이라 아침부터 그녀의 촬영장에 가기로 했는데 상준에게 늦게 간다고 연락했다.

“아! 오셨어요?”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상욱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우현을 반겼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두 명의 얼굴이 보였다.

“허, 참. 이거 오랜만에 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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