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26화 (12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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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월, 가장 바쁜 시기(8)

쩔쩔매고 있는 민 작가를 본 진행자가 도와주려고 나선다.

“아, 민유리 작가님께서 너무 좋으셔서 말을 잇지 못하시네요. 작가님, 편안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네… 아… 감사합니다. 어… 어… 그러니까 모두 고맙고… 하여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고선 꾸벅 인사를 하고 퇴장을 하는 것이다.

“네, 작가는 글로 말하는 거니까요. 민유리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또 기대해보겠습니다.”

진행자가 그렇게 수습을 했다.

퇴장하는 민 작가를 쫓아 우현도 뛰어 들어갔다. 얼른 생수 한 병을 집어서 들어오는 민 작가의 손에 쥐어주었다.

“작가님, 수상 소감 다 준비해오지 않으셨어요?”

벌컥벌컥 생수를 반 병 넘게 마시고서야 입을 열었다.

“헉… 헉… 말도 마! 세상에…”

물을 급하게 마셔서 숨이 찬 건지 자신의 가슴팍을 퍽퍽 치면서 도망치듯 자신의 대기실로 향한다. 우현도 쫓아갔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대기실에 들어온 민 작가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데 얼굴을 보니 넋이 나갔다. 그래서 잠시 잠자코 기다려주기로 했다. 조금 진정이 되는지 시선을 돌려 우현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카메라가 너무 많은 거야.”

“네에? 당연히 카메라가 많죠. 더군다나 시상식인데요. 다른 촬영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지요. 그게 왜요?”

“카메라 뒤쪽에 앉아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서 앞을 딱 보니까, 세상에, 모든 카메라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숨이 턱 막히는 거야. 아무 말도 안 나오더라니까!”

민 작가는 울분을 토하듯 소리를 지르고 손까지 바르르 떨었다.

“예에? 작가님 카메라울렁증 있으셨어요?”

“난 몰랐지. 시상식에 처음 나왔으니까! 아흑, 나 완전 웃음거리 됐지? 평생 놀림 받을 거야. 뭣하러 시상식에 나온다고 설쳐댔는지 몰라. 작가답게 그냥 조용히 살 걸, 흑.”

“뭘 또 그렇게까지 자책을… 괜찮아요, 사람들은 배우들한테 더 관심이 많으니까 조용히 지나갈 거예요.”

“그럴까?”

민 작가는 차마 울지는 못하고, 하지만 정말 울고 싶은 표정으로 제발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럼요. 크게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런데 김 대표, 내가 말이야…”

“네.”

“배우들 오디션을 볼 때 그렇게 혼을 냈더랬어. ‘뒤에서 잘 하면 뭣하냐, 카메라 앞에서 잘 해야지.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이 해야지, 보아하니 배우 되기는 글렀으니 다른 일 알아봐라.’ 이런 말들을 막 했거든.”

“아유, 배우는 그래야죠. 카메라울렁증 있으면 배우 못하는 게 맞죠.”

“그래, 틀린 말은 아닌데. 이게, 내가 겪어보니까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닌 거 있지. ‘그냥 외워 온데로 말하면 된다’라고 머릿속으로는 생각이 드는데 입으로 안 나온다니까. 오디션에서 신인 배우들이 왜 그러는지 이제야 알았어.”

“하하하, 역시 남의 입장이란 겪어봐야 아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으셨네요.”

“그래, 그런가봐. 난 카메라가 그렇게 무서운 건 줄, 드라마 작가 생활 15년만에야 알았어.”

민유리 작가는 시상식에 나온 자신을 타박하며 짐을 챙겨서 가버렸다. 민 작가를 차까지 배웅하고 올라오자 시상식은 이미 2부가 시작되어있었다. 조용히 홀 뒤쪽에 있는 진명 옆으로 가서 섰다. 진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물어온다.

“민유리 작가님 무슨 일 있어요?”

“카메라울렁증이야. 본인도 이제껏 몰랐대. 무대 올라가니까 카메라가 너무 무서워서 말이 안 나오더래.”

“헐, 의외네요. 그런 거 전혀 없을 것 같아 보이던데.”

“흐흐, 그러게 말이다. 나도 좀 놀랐어. 아직 최우수상 안 지나갔지?”

“네, 조금 전에 지나와 배강석이 ‘베스트커플상’ 받았습니다.”

지나 앞 테이블에 꽃다발이 있는 것이 보인다. 같은 테이블에 배강석도 앉아있는데 둘은 극중 연인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옆자리에 앉지 않고 몇 명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있었다. 당연히 오가는 대화도 없다.

베스트커플상과 우수상, 그리고 축하무대와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최우수상 시상 순서가 되었다. 배강석도 남자최우수상 후보에 올라있긴 하지만 수상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다. ‘천국 같은 지옥’이 시청률은 좋았으나 후보 중 ‘돈 워리, 미’의 남자 주인공인 김성우가 연기를 훨씬 잘 했기 때문에 김성우가 받을 거라 예상했다.

“발표하겠습니다. ‘2016년 연기대상 남자최우수상’ ‘천국 같은 지옥’에 배강석, 축하합니다!”

“헐…”

우현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수상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남자 최우수상을 그에게 줬다면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지나의 수상 확률은 크게 떨어질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배강석은 거만한 미소를 띠며 방청석의 팬들에게 손 인사를 해준 다음 성큼성큼 무대로 올라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감사합니다. 우선 주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새벽마다 아들을 위해 새벽기도를 다니시는 저희 어머니, 감사합니다. 가족들 감사하구요. 항상 저를 응원해주는 팬분들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주신 것은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처구니없던 우현이 나직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주님께서는 너 그렇게 싸가지 없는 거 아시니?”

저 놈의 실체를 알기에 토가 나올 것 같다. 정말 연기자는 연기자다. 지나도 의외인지 살짝 우현을 쳐다본다. 우현도 눈짓으로 예상 밖이라는 답변을 줬다. 그러면서 굉장히 불안해졌다.

일단 ‘천국 같은 지옥’이 작가상과 남자최우수상을 받았다. 추가로 거기에 여자최우수상과 대상까지 받는다고 해도 잘못된 건 아니지만 시상식의 ‘상 나눠먹기’ 관행을 생각해본다면 여자최우수상까지 받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일수도 있다.

한 해 동안 여러 작품이 방영이 됐는데 한 작품에 상을 몰아줬다간 뒤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게 뻔하다. 게다가 상을 받지 못한 배우들은 앞으로 차기작을 계약할 때, ‘열심히 해도 상도 안 주더라’는 말을 해대며 연출진과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욕을 해대도 ‘상 나눠먹기’가 계속 되는 거다.

찜찜한 와중에 여자최우수상 후보가 소개되고 드디어 시상자가 카드를 꺼내 수상자를 호명했다.

“‘2016년 연기대상 여자최우수상’ ‘돈 워리, 미’에 안유미! 축하합니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하아…”

우현은 한숨과 함께 턱을 쓸었다. 진명도 실망이 큰지 바닥을 보며 발끝을 툭툭 찬다.

“우리 지나가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지나는 활짝 웃으며 안유미가 무대로 나갈 때 박수를 쳐줬다. 하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거다.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아직도 너무 얼떨떨합니다. 우선 팬분들 너무 고맙고 부모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용기 주신 감독님과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돈 워리, 미’가 야외 촬영이 많아 추운 날 스태프들이 많이 고생하셨는데요, 제가 상을 받아도 되는지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유미의 수상 소감이 끝나고 뒤돌아 퇴장하는데 진행자가 덧붙이는 말에, 우현은 왜 여자최우수상이 유지나가 아닌 안유미에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었다.

“안유미 씨는 내년 2월 방영될 ‘시티 오브 데빌’에서 고경 역으로 활약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잊고 있었는데 그랬다. 안유미가 차기작을 또 M사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안유미에게 상을 주고 대신에 ‘천국 같은 지옥’의 배강석에게 남자최우수상을 줬다.

‘엿 같네, 진짜.’

남자와 여자 최우수상 후보들이 대상의 후보가 된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대상은 ‘돈 워리, 미’의 김성우가 받았다.

이로써 ‘천국 같은 지옥’은 작가상, 남자최우수상, 베스트커플상, 프로듀서상, ‘시청자가 뽑은 드라마상’을 수상했다. 지나는 ‘베스트커플상’만을 수상했을 뿐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우현은 지나, 진명과 함께 뒷풀이의 자리를 가졌다. 셋이서 고급스러운 와인바에 앉아 한입에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를 먹으며 MBS 간부를 신나게 씹어댔다.

“아… 썩을 놈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배강석에게 최우수연기상을 줄 수 있죠? 그 연기 보셨어요? 지나한테 고백하는 장면, 감동적이어야 할 장면이 코찔찔이가 엄마한테 떼쓰는 것처럼 보인 건 저뿐이에요?”

진명이 와인을 맥주처럼 마시며 울분을 토했다. 솔직히 배강석의 연기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진명의 말에 충분히 동의했다.

“아니야, 나도 그 장면이 너무 웃기더라고. 그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나 주지.”

“제 말이요.”

“후훗! 저는 괜찮아요. 너무 오버들 하시는 거 아니에요?”

지나는 시상식이 끝났을 때만 조금 씁쓸해 했을 뿐 지금은 전혀 우울한 얼굴이 아니었다.

“오버는 무슨! 누가 뭐래도 올해 MBS에서 최고의 연기와 화제를 이끌어낸 건 지나 너였지. 꼴랑 시청률 10% 초반에 머물렀던 ‘돈 워리, 미’의 안유미가 뭐야? 난 생각지도 못했다니까? 내 참, 어처구니 없어가지고…”

“그래도 ‘돈 워리, 미’가 작품성은 좋았어요. 그러니 너무 열 내지 말아요.”

“그래, 지나가 괜찮다니까 너도 그만해라. 자꾸 그러면 지나만 더 불편해지니까. 그나저나 이제 내일부터 다시 액션스쿨 가는 거지?”

“네, 그래야죠. 시상식 앞두고 있어서 요 며칠간 살살하긴 했는데 내일부터는 다시 빡세지겠네요.”

“고생해. 내년 초에 크랭크인 들어간다고 얘기 들었거든. 유정완 감독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니까 준비 잘 해서 멋지게 해보자.”

“알겠어요.”

그녀는 과음은 금물이라며 일찍 일어났고 시상식 결과와는 달리 뒷풀이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물론 MBS에 감정이 남아있는 우현은 나중에 반드시 이번 일로 빚을 갚아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날, 연기대상 관련 기사 댓글란이 시끌벅적했다.

[누가 뭐래도 여자최우수상은 유지나였음]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연기대상 하지마라]

[언제까지 상 나눠먹기 할거냐?]

누가 봐도 상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어제 일찍 돌아갔던 민유리 작가한테 전화가 와서 어떻게 지나가 상을 못 받을 수가 있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국장을 찾아가 따질 거라 했다. 올 한 해 최고의 시청률을 선사한 작품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완벽하게 표현한 배우를 어찌 이리 홀대할 수 있느냐, 다시는 MBS에서 자신의 작품을 방영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힐 거라며.

우현은 차마 하지 말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화가 나는 건 우현도 못지않으니까. 그래서 ‘살살하시라’는 말로 답했을 뿐이다.

우현은 씁쓸한 마음으로 유니의 ‘가요대첩’을 함께 하기 위해 오늘도 다시 MBS를 찾았다. 이쪽으로 발걸음 하고 싶지 않건만.

상암 사옥 앞의 야외무대는 나름 삐까뻔쩍했다. 상암 사옥을 새로 지은 후에 홍보차원에서 야외 행사를 꽤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가요대첩’이야 말로 홍보하기 최적인 방송일 거다.

“엇, 대표님, 어떻게 지나 언니가 상을 못 받을 수 있어요? 이게 말이 돼요? 저 어제 ‘가요대상’ 끝나고 기사 보다가 열 받아서 죽을 뻔했다니까요!”

우현이 들어오자마자 유니가 흥분해서 지나 얘기를 해댄다.

“그래, 너 아니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다. 올 연말 가장 걱정되는 게 오늘 ‘여자보컬 4인의 무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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