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25화 (12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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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12월, 가장 바쁜 시기(7)

“아유… 화나는 건 알겠는데 저러고 들어가버리면 결국 욕먹는 건 화희일 텐데, 무대에서는 조금만 참지…”

“얼마나 화가 날까요? 저렇게 목이 다 갈라지는데도 무대하면 다음날 공연이 힘들 텐데.”

가수를 키우는 입장에서 화희 저 친구가 얼마나 화가 났을지 짐작이 간다. 저런 목 상태에서 무대에 서고 싶은 가수는 없다. 방송사의 갑질로 결국 두 개의 무대를 망치고 해당 가수는 예의 없는 행동으로 욕을 먹게 됐다.

“예전에 조성무 씨 알지? 한 때 엄청 잘나갔잖아.”

“아유, 알죠. 명곡 많잖아요.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

세동이 다 틀린 음정으로 감정을 잡아본다.

“거, 노래 멜로디가 어째 희한하다? 그건 그렇고 조성무 씨 목소리 엄청 좋았잖아. 그렇게 히트곡도 많은데 요즘 활동을 거의 안 하는 게 왜 그런지 알아? 당시 소속사에서 쉴 틈을 안 주고 그 친구 노래를 시켰대. 그러다가 목소리를 잃어버린 거지. 그 맑은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가 없는 거야. 아무리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해도 목이 상할 만큼 해버리면 안 돼. 그러니 유니도 목에 무리가 온다 싶으면 쉬겠다고 얘기해. 더 잘 하기 위해서 휴식은 꼭 필요한 거니까.”

“헐, 그렇구나. 명심하겠습니다요.”

유니는 보온병을 들고 따뜻한 물을 홀짝거리며 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윽고 2부가 시작되고 유니는 다시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가사 다시 한 번 숙지해, 실수하지 않도록.”

“넵!”

유니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스탠바이 했고 무대가 시작됐다. 세 사람 모습이 보기 좋았다. 1절이 끝나고 2절이 시작되어 유니가 부르고 조관욱 선생님이 이어 부르고 다음 소절을 정환희 선생님이 부르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다.

“뭐야?”

“마이크 안 되는데?”

정환희 선생님이 분명 입으로 부르고 있는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뒤편 스태프들도 생방 도중 갑자기 발생한 사고라 우왕좌왕이다. 그렇게 몇 초간 정환희 선생님이 입만 뻐끔거리는데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니의 목소리였다. 당황했지만 무대는 이어가야하니 유니가 받아서 부르고 정환희 선생님도 손녀딸 보듯 흐뭇한 미소를 띠며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마 속으로는 방송사 욕을 엄청나게 하고 있을 거다.

그 이후로 정환희 선생님은 몇 번 노래 시도를 해봤으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선생님의 마이크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 사람이 퇴장하고 무대 뒤편으로 내려오는데 역시나 정환희 선생님은 노발대발이다.

“준비를 어떻게 했기에 마이크가 안 나와? 이런 식으로 할 거면서 바쁘다는 사람을 굳이 섭외하나?”

“죄송합니다, 선생님. 생방송이다 보니 갑자기 이런 일이…”

3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조연출이 굽신굽신 허리를 숙였다. 방송국 관계자라고 해도 정환희 선생님정도 되는 분들께는 함부로 하지 못한다.

“생방송이라는 건 핑계일 뿐이지. 방송사고 없이는 생방이 안 되나? 연말 시상식에 준비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원!”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환희 선생님은 조연출을 크게 혼내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것 보세요. 정 선생님 디너쇼 때문에 바쁘고 피곤하신데, 그 쪽에서 꼭 참석해 달라 해서 내가 쉬셔야 하는 날에 스케줄 잡은 건데, 이게 뭡니까?”

이번에는 정환희 선생님의 매니저다. 매니저라고는 하지만 나이도 지긋하고, 경력이 굉장한 선생님 급의 매니저들은 해당 가수만큼이나 파워가 세다.

“죄송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조연출은 고개만 조아렸다. 다음으로 조관욱 선생님에게도 혼이 나고. 아마 위에 올라가서는 담당 피디와 국장에게도 깨지겠지.

어깨가 축 늘어져 혼쭐이 나고 뒤로 돌자 조연출의 얼굴은 이제는 세상 모든 짜증과 피로를 다 뒤집어 쓴 듯한 표정이 되어있다.

“아, 씨X.”

‘나 건드리지 마!’라고 얼굴에 콱 박고는 쌩하니 지나간다. 신인가수한테 따위야 사과할 필요도 없다는 듯.

‘하여튼 방송국 놈들…’

우리는 조용히 대기실로 돌아왔다. 여기서 우리까지 나댈 수는 없다. 그나마 유니의 마이크가 안 나간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유니야, 잘 했어.”

유니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순간 너무 놀란 거 있죠. 방송사고는 처음이에요. 가끔 지방 행사 때 노래 시작 전에 마이크가 안 된 적은 있어도 노래 중간에 갑자기 나가버린 건 처음이에요.”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잘 하던데?”

“전 프로니까요, 헤헤.”

유니의 무대는 다 끝나고 이제 엔딩에 모든 가수가 나갈 때에만 무대에 나가면 되기 때문에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지만 한 번 마이크가 나가고 나니 남은 생방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 이후로 큰 사고 없이 방송이 끝나나 했건만.

대상 격인 엔딩 전 마지막 가수의 무대다. ‘소녀세상’ 9명의 멤버가 열심히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데 목소리가 세 명밖에 들리지 않는 거다. 그나마 메인보컬의 마이크는 살아있었으나 나머지 6명의 파트에서는 계속 소리가 끊기며 멤버들은 뻐끔뻐끔 붕어가 됐다. 반주 음향도 그냥 카세트테이프 틀어놓은 느낌이고.

“저거, 저거, 저게 뭐냐. 뭐 음향도 엉망이고 마이크는 나오지도 않고. 어휴… 무슨 준비를 이딴 식으로…”

“그냥 보는데도 짜증이 나네요.”

“유니 네가 왜 MWMA를 최고로 쳤는지 알 만하다. 그 큰 규모에서도 음향이 얼마나 좋고 빵빵했는데. 무대도 가수별로 멋지게 세팅하고. 너무 차이가 크네. 지상파가 훨씬 더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을 텐데도 발전은커녕 기본도 못하네.”

요즘 케이블이나 종편 드라마가 잘 나간다. 심지어 예능도. 전국적으로 다 나가지도 않는 케이블이나 종편 채널이 동 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나 예능의 시청률을 이기는 일이 꽤 흔해졌다. 그 이유는 참신하다는 거다. 틀에 박힌 지상파의 소재를 벗어나 TV에서 다루기 힘들 법한 소재를 다루며 그것을 아주 잘 표현해낸다.

지상파에 편성이 되려면 PPL이 들어가야 하는데, PPL 들어갈 씬이 부족하다며 지상파 편성이 안 되어 케이블에서 방영된 ‘시그널리’를 보라. 좋은 대본을 보고, 쉽사리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던 배우들이 출연함으로써 좋은 연기에 연출까지, 더불어 몰입도와 화제성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보였다. 다른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소재의 한계를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작가와 피디, 스태프들이 케이블, 종편으로 회사를 옮겨가는 추세다. 당연히 지상파와 비교될 수밖에 없고 요즘 지상파에선 볼 게 없다는 말들이 나온다.

우현은 거기에 음악방송도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수를 키우면서 경험해보니 음향과 무대연출의 수준 차이가 너무나 심하다. 지상파가 시각을 달리해서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모든 분야에서 뒤처질 것이 자명해 보인다.

다음날, 조금도 쉬지 못하고 유지나의 ‘연기대상’에 함께 하기로 했다. 지나는 여자최우수상 후보에 올라있는데 우현은 물론이고 네티즌들 역시 거의 확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자최우수상은 당연히 유지나지]

[유지나 말고 여자최우수상 받을 만한 사람이 없음]

우현네 회사로 옮기고 처음 받는 상인데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 시상식 앞두고 거의 안 먹을 것이 뻔하기에 간단히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들고 대기실로 향했다.

“이야, 드레스 진짜 예쁘네!”

“드레스만요?”

“아이구 그럴 리가. 유지나가 입어서 이 드레스가 예쁘다는 거지.”

커트 머리에 누드톤 가죽드레스는 정말 탁월했다. 유지나의 얼굴과 매치되니 ‘베이글녀’의 정석이라 불릴 만하다. 다행히 등의 멍은 많이 약해져서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거의 안 보였다.

“후훗. 유니 ‘가요대상’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제 ‘가요축제’ 같이 해서 괜찮아. 우리 유 배우님 최우수상 받으시는데 대표가 함께 해야 하지 않겠어?”

“호호호,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세요. 안 되면 어떡하려구.”

“에이, 이건 내가 봐도 우리 유 배우밖에는 받을 사람이 없어 보여. 걱정하지 말고 수상 소감 준비해둬.”

빈말이 아니고 사실이다. 몇 명의 후보가 있지만 시청률로 보나 연기로 보나 수상자는 유지나다.

지나와 더불어 작품을 썼던 민유리 작가가 작가상 수상자로 올랐다. 작가상은 미리 선정하기 때문에 수상을 미리 연락받는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시상식 참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카메라에 모습을 비추는 사람이 아니기에 꺼리기도 하고 또는 작품 집필 중일 때 바빠서 참석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보통 소속사에서 대리 수상을 하는데 오늘 민유리 작가가 참석했다는 소식에 만나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워지시기 있습니까? 작가가 아니라 배우인 줄 알았네요.”

“하여튼 립서비스는…”

손사래를 치지만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받으면 좋은 게 상이다. 민 작가는 나름 메이크업에 힘을 준 것이 보였다. 평소보다 두껍고 진한 화장이었지만 카메라 앞에 서면 그저 일반인이 될 것이다. 앞에 있는 배우들과는 천지차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직접 나오셨어요? 차기작 들어가진 않으셨구요?”

“생각이야 늘상 하고 있지. 그런데 기분 전환하려구. 어쨌든 내가 쓴 작품으로 상을 받는 건데 내가 누구인지는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갑자기 생기더라구. 작가한테 배우 같은 외모를 기대할 것도 아니고 하니 ‘내가 바로 민유리 작가다’ 하고 한 번 드러내 보이기로 했어.”

민 작가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당당한 포즈를 취한다.

“하하, 잘 하셨어요.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알죠. 그런데 사람들 눈에 보이는 건 항상 배우들이니 작품을 대표하는 사람이 꼭 배우처럼 보이죠. 하지만 드라마의 대표는 작가 아니겠습니까? ‘민유리’하면 손꼽히는 드라마가 몇 개나 있는데, 아마 작가님 얼굴을 궁금해 하는 시청자들도 많을 겁니다.”

“그럴까? 그러면 나 옷을 좀 더 드레스 같은 걸로 화려하게 입고 메이크업도 더 받을 걸 그랬나? 배우들이 있으니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아무리 꾸며도 배우들 옆에 있으면 그저 오징어, 쭈꾸미야.”

“하하하, 아까는 또 사람들이 배우 같은 외모를 기대할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렇기는 한데 또 김 대표 말 들으니 내 얼굴보고 사람들이 너무 실망하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네. 그냥 나오지 말고 신비주의로 남아있을 걸 그랬나?”

“아유, 걱정 마세요. 배우만큼은 아니더라도 작가로서의 지성미가 뿜뿜 뿜어져 나오니까요. 지성미 그거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거 아닙니다.”

“그래? 그 말을 들으니 또 안심이 되기도 하고, 호호”

“당당히 올라가서 ‘내가 바로 민유리다’ 하고 보여주세요.”

그렇게 용기를 주고 나오니 입장이 시작됐다. 올 한해 인기드라마의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테이블 마다 앉으니 정말 화려했다.

1부엔 스태프와 아역, 신인상 등의 시상이 있어, 식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작가상’ 시상 순서가 되었다. 이미 정해져 있기에 멀찍이서 배우들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민유리 작가만 쳐다보고 있었다.

“‘2016년 연기대상 작가상’ ‘천국 같은 지옥’에 민유리 작가님, 축하합니다.”

기다리고 있던 민 작가는 자연스레 일어나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갔다.

“… 감사합니다. 어… 어… 감사합니다. 어… ”

수상을 알고 참석했기에 당연히 수상 소감을 준비해왔을 터인데 민 작가는 완전히 굳어진 표정으로 제대로 말을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아유, 작가님 너무 긴장하셨나보다. 어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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