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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2월, 가장 바쁜 시기(1)
[황재연, 전 소속사의 폭로]
[전 소속사에 고소당한 황재연]
[황재연 이혼의 진실]
[황재연, 수억 원대 빚더미에 고가 해외여행]
기사 제목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클릭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용인 즉슨, 황재연이 씀씀이가 굉장히 헤퍼 전 소속사의 법인카드로 수억 원을 사용하고도 발뺌하며 변제하지 않아 고소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역시 작은 기업을 운영하던 남편과의 결혼 생활 중에도 과한 씀씀이로 몇 년 동안의 별거 생활 끝에 이혼을 했으며 개인적인 빚도 수억 원으로 추정된다는 거다. 빚더미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중하지 못하고 백화점과 병원 등에서 수천만 원씩을 사용하고선 본인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며 발뺌을 하고 법인카드로 1억이 넘는 고가 해외여행을 즐겼다는 거다.
그녀가 유명 연예인이기에 협찬해달라는 식으로 백화점에서 명품 브랜드의 의류와 백 등을 가져가고선 돌려주지 않아, 해당 업무를 했던 직원이 해고당하고 그 비용까지 변제하게 생겼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그 외 자잘한 내용들까지 입이 떡 벌어지는 행각을 일삼은 장본인이 황재연이라는 거다.
“우와… 미쳤네, 미쳤어. 이건 진짜 미쳤네. 그날 말하는 싸가지부터 알아봤다. 고소하다. 앞으로 연예계에서 볼 일 없겠네.”
이 정도까지 나오면 눈물의 기자회견 정도는 나와도 무마될까말까 할 지경이다. 앞으로 볼 일 없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하며 유니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유니의 아버지는 보수적이었다.
“아이고, 물론입니다. 유니한테 그런 건 어울리지 않죠.”
“우리 애가 가수를 하면서 하도 그런 옷만 입고 다녀서 내가 애가 타요, 애가 타. 입술에 뭐 찍어 바르는 거야 이제 중학교 다니는 막내 딸래미도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만 아무리 스무 살 넘어서 찍는다고는 해도 소주병에 우리 애 얼굴이 붙어서 돌아다니는 건 내가 못 봅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광고는 절대 찍는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주류 광고든, 노출이든 개방적인 것에 대해 쿨하게 인정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부모도 많다. 유니 같은 경우는 후자에 해당되기에 깔끔하게 정리를 해줘야 한다.
“내가 대표님만 믿습니다. 요즘 우리 애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해도 가끔 통화할 때마다 아주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참 좋습니다. 거, 예전에는 걸그룹 한다고 그래 용을 써도 기사 하나 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사방에서 우리 애 칭찬이 자자해요.”
“그럼요. 요즘 유니가 대세입니다, 하하하.”
“하여튼 감사합니다. 언제 소주 한잔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언제 자리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십쇼.”
결국 요즘 잘나가는 저가브랜드 화장품 측에게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며 미팅을 내년으로 미뤘다. 앨범준비는 물론이고 가요제 참석 때문에 한동안 정신없을 유니에게 CF 스케줄까지 더하면 너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우현은 사무실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예종의 여인’ 촬영장인 민속촌으로 향했다. 오늘이 바로 그 남자아이의 마지막 촬영일이기 때문에 혹시 늦을까 새벽부터 서둘렀다.
현장에 도착하니 8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새벽부터 나와 있었을 보조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 김 대표님이 웬일이세요?”
촬영장의 스태프 하나가 우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 일이 좀 있어서요.”
“별이 씨는 오늘 1시가 콜타임인데요.”
“별이 말고 다른 일이 있거든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괜히 주목받기 싫어 이곳저곳 기웃거리지 않고 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대략 1시간 정도를 차 안에서 빈둥거리는데 2팀 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스탠바이를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우현의 입장에서 의미 없는 몇 개의 씬을 찍고 나자 드디어 전에 스치듯 보았던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동그랗지만 장난기가 가득한 눈과 선명한 눈썹, 그리고 전체적으로 통통한 체격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특히 먹을 것을 좋아하는지 대본을 보면서도 오징어 다리 한쪽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걸 보니 깨물어주고 싶다.
차에서 내려 현장에 천천히 다가갔다. 전에 만났던 조감독이 우현을 발견하고는 눈을 찡긋거렸고 우현도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아직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
“해수야! 준비됐니?”
“네! 준비됐습니다!”
선명하면서도 맑은 고함 소리,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았기에 그런 목소리일 테지만 왠지 변성기가 지났을 때의 목소리도 궁금해졌다. 몇 차례의 촬영준비 싸인이 흐르고 감독이 슛을 외쳤다.
“아녀유! 아녀유! 내가 그런 게 아녀유!”
“이노무 시키가 여가 어디라고 거짓말을… 아이고 나으리, 제가 봤구만유, 저 천한 노무 시키가 담을 넘는 걸 똑똑히 봤구만유.”
“아녀유! 담을 넘은 건 맞지만 물건을 훔친 건 아녀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서는 침을 튀기며 항변하는 모습이 첫 연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다른 연기는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발성도 안정 됐고 긴 대사를 처리하는데도 발음 한번 꼬이지 않는다. 타고났다.
특히 전체적으로 살이 쪘지만 얼굴의 이목구비가 선명한 편이라 나중에 살을 빼고 성인이 되면 꽤나 준수한 얼굴이 될 게 분명했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의 오케이 싸인이 나자마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대충 소매로 훑으며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끝났다!”
해수가 끝났다고 소리 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장년 여성의 품에 폭 안겼다. 그녀가 해수의 엄마라고 판단이 들자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 나 배고파. 피자 사줘.”
“점심시간 아직 남았어. 그리고 그제도 피자 먹었잖아.”
“나 피자 먹고 싶은데…”
“저기, 안녕하세요?”
해수가 엄마에게 피자를 사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순간 우현이 끼어들었다.
“네? 누구시죠?”
“반갑습니다. 저는 파인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우현이라고 합니다. 안녕? 이름이 해수지?”
해수 엄마에게 명함을 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해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네.”
“엄마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잠깐이면 되는데?”
해수는 눈을 꿈뻑이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해수 엄마는 엔터 회사의 대표라는 말에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해수를 품에서 밀어냈다.
“잠깐 스태프 형들이랑 놀고 있을래? 아저씨랑 이야기하고 집에 가자.”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장으로 다시 달려갔다.
“엔터 회사 대표님이면 배우를 관리하는 회사인가요?”
“네, 여기에 출연하는 김별 양도 저희 회사 소속입니다. 그리고 유니라고 아시죠?”
“아, 알아요. 가수도 키우시는구나.”
“네, 맞습니다. 전에 한번 스치듯이 댁 아드님을 본 적이 있는데 이후에 타이밍이 안 맞아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꼭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늘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셨구나.”
“이번이 첫 연기라구요. 어떻게 아드님을 연기를 시키게 되셨어요?”
“그게… 실은 제 동생이 여기 조명을 맡고 있는 스태프인데 해수가 혼자서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하는 걸 보고 감독님께 데리고 가서 보여줬거든요.”
“그 전까지는 연기시킬 생각이 없었나요?”
“생각도 안 했죠.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 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저렇게 좋아하네요.”
“하하, 원래 연기자들이 머리가 좋습니다. 특히 암기력도 좋은 편이죠. 감성적인 능력도 뛰어나구요. 그래서 그런데, 아직 전속 계약을 맺지 않으셨다면 저희 회사랑 계약을 생각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분명 훌륭한 연기자가 될 것 같은데요.”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우리 아이는 연기 시킬 생각이 없네요.”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한다고 했을 때 느낌이 왔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줄은 몰랐다.
“혹시 연기자를 시키기 싫어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 연기자들은 예전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옛날처럼 딴따라 취급받지 않아요. 오히려 나라에서도 인정해주고 적극 밀어주고 있습니다.”
“호호, 미안해요. 아이가 좋아하니까 취미생활처럼 한번 시켜본 것이거든요. 우리 해수는 앞으로 의사가 될 아이예요.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훌륭한 의사가 될 거라고 항상 그랬었거든요, 호호호.”
웃으며 아이를 칭찬하지만 눈에 담긴 단호함을 읽었다. 몇 분 설득한다고 넘어올 사람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명함 보시고 혹시 마음 바뀌게 되면 연락 한번 주시겠어요?”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알겠어요.”
아마 자의로는 절대 연락하지 않을 거다. 저런 사람들은 예전에 영업하면서 충분히 겪었다. 단기간의 설득보다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물론 90%의 확률로 고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 처음으로 아역 배우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씁쓸하다.
“그럼 다음에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소윤희 조감독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어떻게 됐어요?”
“제 표정 보고 느낌이 딱 오시죠?”
“아… 해수가 연기하는 거 너무 좋아하던데…”
“그랬어요? 어머니가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시더라구요. 도저히 설득으로는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던데.”
“사실 처음 촬영장에 왔을 때도 어떻게 설득했을까 싶을 정도로 연기하는 걸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기대했는데, 아쉽네요.”
“그렇게 싫은 티를 냈어요?”
“네, 대놓고 우리들한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보조출연자들을 보면서도 인상을 얼마나 썼는데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집이 대단하더라구요. 대단한 의사 집안이래요.”
“어? 해수 어머니 동생이 조명 스태프라고…”
“아, 그건 엄밀히 말하면 해수 아빠 쪽이 대단한 집이래요. 한마디로 시집 잘 간 거죠. 어쨌거나 그래서 해수를 연기 시키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하다가, 하도 애가 원하니까 나중에 스펙 하나 추가한다는 걸 위안삼아 소원 풀어주러 왔나 봐요.”
“그래서 그렇게 거부했구나. 저렇게 좋아하는데 한 번 시켜주지.”
“그러니까요. 보니까 진짜 재능 있죠? 저도 아역 중에 첫 데뷔부터 저런 포스를 뿜어내는 애를 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은 하도 잘 먹어서 저렇게 귀엽지만 나중에 살 좀 빠지면 여자들 꽤나 울릴 것처럼 생겼는데…”
“그러니까요. 명함을 주긴 했는데 연락이 올 것 같지는 않네요. 혹시 제작진 쪽으로 연락이 온다면…”
“걱정 마세요. 혹시 우리 쪽으로 연락 오면 무조건 김 대표님 회사로 먼저 연락드릴게요. 이렇게 대놓고 침 발라 놓으셨는데 다른 곳으로 보내진 않죠.”
“하하하.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네요.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이대로 포기하기로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후 한동안 별이의 촬영과 유니의 앨범 준비에 집중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윤 작가의 수정대본이 예상보다 빨리 나오고 있어 ‘도마뱀 미디어’측의 압박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승냥이’측에서 예전에 제공했던 OST 관련해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