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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흑룡영화상 시상식(3)
꿀꺽…
‘기대하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또 기대가 되는 게 상 아닌던가. 우현의 생각에는 별이가 참 잘 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다른 후보들도 진짜 만만치가 않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우현도 누가 받을지 전혀 짐작이 안 된다.
“수상자는… ‘밀실’에 김별! 축하합니다!”
상준이 뛰어오르며 소리를 지른다.
“우와아악! 대표님, 우리 별이가 됐어욧!”
우현은 깜짝 놀라 어벙벙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별이일 거다. 카메라에 잡힌 별이는 놀라서 바로 일어나지를 못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앉아있는 최 감독이 박수를 쳐주며 어서 무대로 나가라고 알려준다. 그제야 별이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무대로 올라가고 그 동안 진행자 김혜서 씨가 별이에 대한 소개를 했다.
“김별 씨는 ‘밀실’에서 작품의 키를 쥔 ‘은혜’역 맡아 완벽하게 소화함으로써 신인답지 않은 섬세한 연기를 펼쳐보였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 별이는 은하에게 트로피를 건네받고 서로 껴안았다. 은하가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 보였다. 김도현에게 꽃다발까지 받고나서 수상 소감을 말하기 위해 관객석으로 몸을 돌렸는데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메이크업할 때 워터프루프로 해달라고 할 걸 그랬네.”
메이크업 걱정을 하듯 말을 툭 내뱉었지만 우현의 눈에도 눈물이 찔끔했다.
‘이런 게 매니저 일을 하는 보람이지. 너, 내가 스타로 띄워준다고 했지, 인마?’
우현은 박수를 치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아… 흑흑. 감사합니다. 정말로 제가 상을 받을지 모르고 수상 소감을 준비 못 했어요. 어… 저 보다는 고생 많이 하신 최철성 감독님과 우리 ‘밀실’ 스태프들께서 상을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 많이 부족한 제가 상을 받는 것 같아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흑흑. 믿고 기다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구요. 그리고 우리 파인엔터 회사 식구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저에게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일깨워주신 저희 김우현 대표님께 가장 감사하다는 말 하고 싶어요. 대표님을 만나지 못 했다면 아마 제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거예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하아… 갑자기 수상 소감을 하려니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 앞으로 모두를 실망시키지 않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이가 수상 소감을 끝내고 무대 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자 우현과 상준도 뛰어 들어갔다. 별이 모습이 보이는데.
“별아!”
갑자기 상준이 별이를 큰 소리로 부르더니 달려가서 별이를 와락 껴안았다.
“으헝헝헝… 별아, 잘 했다, 잘 했어. 흑흑.”
별이는 신인상을 탄 것만큼이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자기보다 더 기뻐하는 상준의 등을 토닥였다.
“다 오빠 덕분이야. 훌쩍.”
저건 감정 과잉이다.
“누가 보면 별이가 여우주연상 탄 줄 알겠다.”
우현이 상준의 등을 툭 쳤다.
고개를 돌린 상준은 별이 만큼이나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한다.
“별이는 내 새끼 같은 아이라구요! 어떻게 눈물이 안 납니까?”
“얼씨구. 몇 살 차이라구.”
피식 웃음이 난다. 상준이 얼마나 별이를 아끼는 지 새삼 알 수 있었다.
“별아, 정말 잘 했다. 수고했어.”
“제가 뭘요. 대표님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죠. 훌쩍.”
“다 네 능력이지. 곧 팬더되겠다. 들어가서 메이크업 고치자.”
신인상을 끝으로 1부가 끝이 났다. 2부는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되기에 편하게 시상식을 관람했다. 식이 모두 끝나고 수상자들은 포토타임을 가졌다. 각종 매체들의 간단한 인터뷰 요청과 사진 촬영에 한 시간 넘게 쓰고서야 회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장 급한 촬영 스케줄이 아닌 이상 수상자들은 회식에 참석하는 것이 맞다.
“신인상 축하해요.”
“축하합니다.”
여기저기서 수상을 축하해준다. 이러면서 영화 관계자들에게 또 한 번 눈도장을 찍어두는 거다.
“김별 씨, 신인상 축하해요. 연기가 좋더라구요.”
감독상을 수상한 박호진 감독이 다가왔다.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흑룡영화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다니, 대단한 사람이다. 소문에 듣기론 S대를 나왔다 하더니. 어두운 갈색의 뿔테 안경을 쓰고 단정한 모습에서 꽤나 지성미가 넘쳐 보인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파인엔터 대표 김우현입니다.”
“안녕하세요, 박호진입니다. ‘밀실’에서 김별 씨를 아주 인상 깊게 봤어요. 강소연 씨한테 밀리지 않던데요? 놀랐어요. 연기를 어디서 배웠어요?”
축하인사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던 별이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네에? 저…”
개념 없는 한물 간 선배가 아니라 감독상까지 수상한 감독이 와서 어디서 연기를 배웠냐 물으니 이번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황재연처럼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존재. 대답을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별이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 사람도 출신 성분을 따지나?’
“그게…”
우현이 대신 대답을 하려는데 박호진 감독이 별이의 굳어진 얼굴을 눈치 챘는지 다시 입을 연다.
“하하. 내가 질문을 잘 못했나 봅니다. 정정할게요. 신인이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 해요? 스승님이 누구예요?”
그제야 별이와 우현, 상준 모두의 표정이 풀렸다.
“하하, 칭찬이셨군요. 우리 별이를 그렇게나 잘 봐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뭐… 진짜 스승님이 궁금한 건 아니구요. 별이 씨 마스크도 좋고 다양하고 섬세한 표정 연기가 나오기에, 기회가 된다면 별이 씨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네요.”
“아,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데… 저도 감독님 작품 꼭 해보고 싶어요.”
이런 러브콜은 정말 대환영이다. 그 날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고 가장 마지막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별이의 첫 촬영 이후로 촬영장에 갈 이유가 없었지만 흑룡영화상이 끝나고 몇 번 현장에 찾아갔다. 그 어린 친구가 눈에 어른거려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타이밍이 안 맞아 그 친구가 연기하는 것을 보질 못했다. 결국 짜증이 난 우현은 스태프에게 직접 그 친구가 누군지 물어보았다.
“아, 해수요?”
조감독을 맡고 있는 소윤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소윤희 조감독은 여자지만 현장에서는 감독 못지않게 스태프들을 잘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 우현도 인상 깊게 보고 있었다.
“혜수? 여자애예요?”
“하하, 아닙니다. 혜수가 아니라 해수예요. 강해수. 열세 살이고 남자입니다.”
“경력이 어떻게 되죠? 혹시 전작을 알 수 있을까요?”
“으음… 잠시만요.”
그녀가 현장 한 구석에 있는 서류를 잠시 뒤적이더니 파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곧 우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친구 연기가 처음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처음이라구요?”
“네, 사실 그리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서 오디션을 보고 뽑은 건 아니구요. 몇 씬만 나올 거라서 아역 기획사에서 뽑으려고 했는데 스태프 중에 한명이 자신의 조카를 강력히 추천해서 감독님이 한 번 봤었거든요.”
“그래서 정 감독님이 마음에 들어 해서 뽑은 거라구요?”
“네. 대사 몇 번 하는 거 보시더니 합격이라고 하셨죠.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경력은 깨끗해요.”
전에 출연했던 작품을 찾아보려고 했던 계획은 무산됐다. 하지만 더욱 저 어린 친구의 연기가 보고 싶어졌다. 아역 전문 기획사에서 보내온 아이가 아니라면 계약하기에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이 첫 작품이라면 아직 방송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아이를 주목하지 않을 시기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이 친구 언제 촬영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어머, 해수가 마음에 드셨나 봐요?”
이쯤 되면 누가 봐도 우현이 그 해수라는 아이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연기 하는 걸 좀 봤으면 하는데…”
“으음… 죄송하지만 오늘은 아침에 일찍 촬영하고 갔어요.”
어쩐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세 촬영을 마치고 갔나보다.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는데 소윤희 조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 마지막 촬영 있는데 그 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촬영이면 놓칠 수 없겠네요.”
“그렇죠, 하하. 그나저나 이거 비밀로 해야 할까요? 그 스태프한테 막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고, 조감독님, 그러지 마시고… 일단 내일 연기하는 거 볼 때까지만 참아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 알겠어요. 그 때까지만 참을게요. 아휴, 입이 간지러워 죽겠네.”
“생각해보니 제가 밥차도 아직 안 쐈네요. 최대한 빨리 간식이랑 밥차 쏘도록 하겠습니다.”
“진짜요? 아, 이러니까 갑자기 입이 무거워지네요. 그럼 잘 먹을게요.”
어차피 스태프들에게 지원하기로 생각했었으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농담으로 한 이야기에 우현이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해서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마지막 기회를 확보했다는 것. 때문에 돌아올 때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다.
별이가 흑룡영화상 신인상을 획득해서 그런지 오전부터 민주는 쉴 틈 없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광고와 예능출연에 관한 내용이다.
“다 안 된다고 해요? ‘끝없는 도전’에서도 연락 왔는데요?”
민주는 모든 예능 출연요청을 전부 거절하라고 한 우현의 말에도 다시 한 번 확인 받았다. 그만큼 ‘끝없는 도전’은 예능인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매력적인 예능프로이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드라마촬영 중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해주세요.”
전에는 모든 전화를 우현이 전부 받았지만 이제는 민주가 일차로 전화를 받고 그 중에 관심이 있는 건 우현이 다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다.
“유니씨에게 들어온 립 광고는 어떡할까요?”
“흐음… 그건 내가 전화할게요.”
“넵.”
사실상 파인 엔터를 먹여 살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유니에게 광고가 밀려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보통 무대 의상이 짧은 치마 위주이고 날씬한 몸매가 많이 부각되다보니 섹시 컨셉이 아님에도 은근히 몸매를 부각시키는 광고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물론 단가를 가장 많이 쳐주는 광고는 요즘 한창 대세로 자리 잡은 모바일게임 광고인데 노출은 없어도 사람을 너무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하니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또한,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성년이 되기에 주류광고까지 들어온 상황이다.
아무리 전속계약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성년이 아니기에 그녀의 아버지와 상의할 부분은 상의해야 한다. 회사 마음대로 하다가 빈정이 상하면 계약 기간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갈라서게 되는 상황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가 돼서 재계약을 해주지 않는다고 원망을 해도 어쩔 수 없다.
막 유니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려는데 포털 실시간 검색에 황재연이 올라와 있었다.
“이건 뭐야?”
그녀의 이름을 클릭하니 30분도 안 된 따끈따끈한 기사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데 하나같이 내용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