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14화 (11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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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사극 촬영 돌입(1)

요즘 우현이 주로 체크하는 건 ‘승냥이’에 출연한 상욱의 기사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윤해연 작가의 신작에 별이가 촬영을 시작하겠지만 그때까지 다른 이들은 체크할 게 없었다. 그래서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은 상욱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어제 첫방을 내보낸 ‘승냥이’ 측은 계속해서 기사를 올려 보내며 화제를 끌어올렸다.

“흐음… 역시 반응이 좋아.”

연쇄살인마가 험상궂고 무섭게 생겼다면 여성들이 경계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선한 마스크에 잘생기기까지 한 남자가 호의를 베풀어주면 그 누구라도 방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연쇄살인마 강호순인데 그는 주변 사람에게 ‘난 멀쩡하게 일하면서 살긴 힘들고 여자 등치면서 사는 게 제일 쉽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인터넷에서는 처음으로 거친 성격의 형사역에 도전한 이동운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거웠고 그 다음으로는 바로 살인마로 나오는 민상욱이었다.

특히 첫방에서는 발목을 접질려 절뚝대는 여성에게 다가가 따뜻한 미소를 보이며 병원으로 가자고 한 뒤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충격에 빠지게 했다.

[대박, 나 같아도 따라갔을 듯.]

[민재원과는 형제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르네. 그런데 잘생김. ㅋㅋ]

[남자가 봐도 호의가 생길 정도로 선하게 생겨서 더 충격적임.]

대다수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우현이 기자들에게 민상욱이 톱배우인 민재원의 동생이라는 것을 적극 홍보하면서 더욱 많은 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한때는 이동운에 이어 실검 2위를 찍어보기도 했을 정도다.

“이 정도면 데뷔작 치고는 반응이 좋은 편 아닌가요?”

민주가 커피를 타오며 우현의 눈치를 슬쩍 본다. 그녀도 상욱의 기사가 계속해서 나와주니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 같다.

“그럼요. 데뷔작 첫방에서 이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배우가 절대 흔하지 않죠. 출발이 산뜻 하네요.”

“그렇죠? 저도 어제 ‘승냥이’ 봤는데 재밌더라구요. 지금까지 드라마를 봐도 항상 로맨스물만 봤는데 우리나라 드라마도 미드처럼 재미있다고 느낀 건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요. 한 시간이 정말 10분처럼 짧게 느껴졌다니까요.”

“작가가 이런 장르물을 몇 번 써본 적이 있다고 해서 믿었는데 이번에는 전작보다 잘 빠졌더라구요. 사실 요즘 드라마 수준이 요 몇 년 전보다 조금 더 올라가는 게 느껴져요. 특히 장르물에서는요. 이 장르물을 선도하는 방송사라서 그런지 많은 준비를 한 게 딱 느껴지죠?”

“맞아요. 확 집중시키는 게 있더라구요. 어쨌든 상욱씨가 이런 드라마에 들어가서 다행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가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인다니까요?”

“하하하, 다행입니다. 회사가 더 커지면 좋겠네요.”

이후로 며칠 동안 기사 검색과 상욱의 촬영 지원으로 시간을 보냈다. 밥차 지원은 물론이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따로 간식과 음료수를 제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항상 무거운 짐을 나르느라 매니저인 경수가 고생을 많이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별이의 첫 촬영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촬영이 가까워 올수록 회사에서는 준비할 것들이 많아졌다.

일단 드라마 작가가 회사 소속인 만큼 기본적으로 대본이 어디까지 나왔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뽑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 제작사와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전 제작이니 아무래도 다른 드라마 준비와는 다르게 여유가 있을 테지만 그래도 대본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나오냐에 따라 소진되는 제작비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에 10씬을 찍는다고 가정한다면 대본이 늦게 나올 때 8씬 정도밖에 못 찍을 수 있다. 하루를 더 촬영하는데 소모되는 비용만 수백만 원이 넘어가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 못 믿는 건 아니지?”

“아이고, 제가 윤 작가님을 못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도 노는 게 아니니 자꾸 대본 나오는 속도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면 작가 입장에선 짜증날 수밖에 없으니 살살 달래야 한다.

“나 좀 예민한 시기인 거 알지? 자꾸 건드리지 말라고.”

“그럼요, 그럼요. 당연하죠.”

“10편은 오늘 밤 안으로 넘길 거라고 김 대표가 전해줘. 그리고 김 대표도 그네들이 재촉하는 거 가지고 흔들리지 마.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라고.”

“그렇죠. 그냥 안부 차 전화해본 겁니다.”

“후훗! 그래, 내가 김 대표 마음 알지. 그나저나 대본은 봤지? 어때? 괜찮게 나왔어?”

“전에도 말씀 드렸잖아요. 재밌다고. 사극이라서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너무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게 퓨전으로 한다고 너무 가볍게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도 않아서 아주 딱 적당하더라구요. 시종일관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작가님 잘하는 남녀 간의 묘한 줄다리기도 아주 재밌었구요. 특히 여주인공의 성격이 아주 귀엽게 나와서 대신들과의 장면에서는 팽팽하게 당겨진 분위기를 여주가 나오므로해서 풀어주니 지치지 않고 계속 보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호호호. 내가 이래서 김 대표랑 같이 일하지. 돌려서 말한 거지? 긴장감을 조금 넣으라고 말이야.”

귀신이다. 왕과 대신들과의 관계가 너무 쉽게 정리되는 것 같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슬쩍 돌렸는데 바로 집어낸다.

“크흠…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알았어. 나도 조금 싱겁다고 생각 했거든. 아마 5회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은데… 맞지?”

“하하, 사실 아주 조금 그런 게 있기는 했죠.”

“그랬구나, 원래는 그 부분을 상의해서 써야 하는데… 아유, 솔직히 쓰다 보니까 괜히 내가 전부 쓰고 싶었던 거 있지. 진작 보조작가 말을 들을 걸 그랬네.”

이번에 사극을 준비하면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막상 집필을 시작하니까 그게 잘 안 됐나보다. 그래서 사극 치고는 긴장감이 살짝 떨어졌던 것 같다.

“그럼 수정하실 거예요?”

“그래야지. 수정할거야. 모르면 몰라도 알고도 그냥 진행하면 드라마 끝난 다음에 10년 동안 후회하거든. 일단 ‘도마뱀’ 쪽에다가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전해 줘. 그렇다고 오래 끌지는 않을 거라고. 내가 정해진 마감에서 1일도 늦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말라고 해줘, 김 대표.”

“옙!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사실 대본을 보면서도 조금은 우려했던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흡수할지는 몰랐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는 애매해서 그냥 말해봤는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수용할 거였다면 진즉 얘기해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랜만이에요, 지 피디님.”

“네,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어째 가슴이 철렁 내려앉네요? 일에 관련돼서는 톡으로 진행했었는데 이렇게 전화까지 주신 거 보면 뭔가 큰일이 벌어진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어렸다. 하여튼 여기나 저기나 눈치는 귀신들이다.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죠? 원래 오늘 저녁까지 10회 차까지 보낸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수정할 게 생겼네요.”

“아… 수정한다고요? 몇 회분을 수정하신대요?”

“5회부터요.”

“5회부터 어디까지요? 설마 5회부터 싸그리 날리는 건 아니죠?”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 졌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절대 아니고, 5회부터 남자 주인공인 예종과 대신들 간의 관계 부분을 조금 더 긴장감 있게 하려는 것 같아요.”

“잠깐만요. 그럼 5, 6회는 수정할 게 얼마 없어도 그 뒤부터는 전체적으로 엎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앞의 내용이 바뀌었는데 뒤를 그대로 둘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작가님께서 책임지고 마감 지키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우리 윤 작가님 믿고 기다려봐요.”

“아휴… 일단 알겠어요. 4회 촬영 끝날 때까지는 시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전 제작의 의미가 별로 없는 건데…”

“왜 없습니까? 그래도 촬영 넉넉하게 가는데요.”

“그렇긴 한데…”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 주 첫 촬영 준비 잘 해주세요. 우리 별이 많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극은 처음이라서 밤잠도 잘 못자가면서 노력하고 있거든요.”

“별이 씨는 믿고 있죠. 한지애 씨도 촬영 앞두고 벌써 1, 2회 대본은 마스터 하셨다고 해요. 송민기 씨도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고 하니까 이제 대본만 잘 나오면 됩니다.”

“네, 제가 윤 작가님 잘 케어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손의 땀 때문에 핸드폰 뒤편에 습기가 그득했다. 아마 지 피디와 평소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몇 차례 고성이 오갔을 지도 모른다.

“아우… 진짜 괜히 나중에 말해가지고. 딱 눈에 보였을 때 이야기 해줘야 했는데…”

아무리 윤 작가가 자신 때문에 소속사로 들어왔다고는 해도 감히 대작가의 위치에 있는 그녀에게 자꾸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건 정말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자칫하면 그녀의 대본이 난도질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방법이 없음을 알지만 계속해서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어 의자를 뒤로 확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며 반성하는데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괜히 가슴이 철렁해 급히 핸드폰을 바라보니 놀랍게도 은하다.

“여보세요?”

“어디야?”

“어디긴, 회사지. 어디야? 인천이야?”

“응, 방금 내렸어.”

“관광은 잘 했어? 나 빼고 여행 다니니까 좋았지?”

“흥! 그러게 왜 날 깠데? 하여튼 쓸데없는 자존심 하고는…”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기도 한다.

“크흠… 어쨌거나 일단 집에서 쉬고, 오늘 밤에 스케줄 있어?”

“푸훗! 왜?”

“왜긴? 얼굴 보려고 그러지.”

“오늘은 안 돼. 회사 사람들이 나 올 때까지 얼마나 들들 볶았는지 몰라. 지금쯤 시나리오 들고 우리 집 앞에 와있을 걸? 당분간 경호원처럼 밀착마크 할 거야. 물론 떼어 내려면 할 수도 있는데, 오빠 그런 거 싫어하잖아.”

“그렇지.”

아무리 보고 싶다고는 해도 그녀의 일에 피해를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괜히 자신 때문에 사진 찍히고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난다면 후회할 것은 당연지사.

“며칠만 참아. 그리고 적당히 가라앉으면 그 때 봐.”

“그래.”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다. 은하는 전화기 너머로 풀죽은 목소리를 느꼈는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오빠 주려고 선물도 사왔어. 보면 좋아할 거야.”

그 며칠 동안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안 갈수가 없었다. 그래도 참고 견디며 시간을 보냈는데 글쎄 그 며칠이 일주일을 넘겨 버리고 말았다. 마이더스에서 은하가 오기를 기다리며 온갖 스케줄을 다 잡아놓았던 것이다.

결국 우현은 은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별이의 첫 촬영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는?”

별이를 집에서 픽업해 온 상준은 여유있는 얼굴로 웃었다.

“어차피 헤어는 현장에 가면 분장팀에서 해줄 거고, 메이크업은 아주 약하게 했기 때문에 별로 준비할 게 없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사극이기 때문에 메이크업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펄이 들어간 립을 발라서도 안 되고, 물광이나 윤광이 나는 번들거리는 메이크업을 할 수도 없다. 컬러렌즈는 당연히 안 된다.

물론 얼마 전에 사극에 출연하며 당당히 컬러렌즈를 착용해 욕을 한 사발 얻어먹은 여배우가 있긴 했다. 한마디로 개념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소속사 잘못도 크다. 애초에 메이크업을 할 때부터 단단히 주지시켜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 얼굴 좀 보자.”

우현이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니 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내밀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역시나 유분기 없는 피부에 잡티만 잡아주는 정도로 정리한 상태다. 딱 조선시대의 미인에게 있을 법한 피부 상태다.

“괜찮죠?”

“좋네. 캐릭터 분석이랑 대사는 끝냈니?”

“네.”

“대사치는 건 많이 배웠고?”

“사극은 처음이니까 많이 힘들긴 했는데 지금은 꽤 익숙해졌어요. 그러니… 걱정 마시게, 김 대표.”

한 순간에 정승댁 요조숙녀로 변하는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톤이 달라졌는데? 연습 많이 했네. 수고했어. 그리고 촬영장 가기 전에 명심할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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