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13화 (11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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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재능과 노력(5)

“무슨 일 있습니까?”

“네, 잠시만요. 나갈게요.”

커튼 뒤에서 두 사람이 나오며 안젤라 윤이 중얼거린다.

“이런 몸으로 드레스를 어떻게 입어?”

도대체 지나 몸이 어떻기에?

“왜요?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휴… 지나 씨 온 몸에 피멍이에요. 아주 몸에 파랑 물감을 칠해놨어. 여배우 몸이 이게 뭐야. 내가 다 속상해 죽겠네. 도대체 액션스쿨에서 어떻게 했길래…”

“좀 열심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선생님.”

지나는 겸연쩍은 듯 짧아진 머리를 긁적였다.

오랜만에 본 얼굴이 홀쭉해졌기에 액션스쿨에서 꽤나 열심히 했을 거라 짐작은 했다. 하지만 겨울에 접어들며 긴 옷으로 몸이 가려져 멍이 든 건 볼 수 없었다. 아마 진명도 못 본 건 마찬가지이리라. 진명이 야단 떨 게 분명하니 말도 안 했겠지.

“얼마나 심한데? 말을 하지 그랬어, 이 바보야! 어디 봐, 어떤데?”

역시 진명도 전혀 몰랐었는지 화를 내며 지나를 살폈다.

“아유… 액션스쿨에서 몸 만들고 준비하란 거지, 몸을 그렇게 상하게 하면 쓰나… 좀 살살하지. 많이 아프진 않아?”

액션스쿨에 보내놓으면 된다고만 생각하고 챙기지 못한 것에 또 죄책감이 들었다. 저렇게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지나한테는 부족하다.

“견딜만해요. 그게, 하다보면 ‘살살’이 잘 안돼요. 또 기껏 배우러 와서 몸 사리면 속으로 얼마나 욕하겠어요. 대충 시늉만 하다 간다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지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견딜만하긴! 많이 아프겠구만. 그 몸으로는 드레스 못 입어. 팔이며 다리며 한 군데도 내놓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드레스를 입어?”

안젤라 윤이 걱정과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지나를 타박했다.

“연기대상은 한 달 정도 남았는데 그 사이에 다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진명이 희망의 빛줄기라고 발견한 듯 반색했다.

“계속 훈련을 해야 하잖아… 그리고 이제 몸 풀기 한 거고 앞으로 더 고난도의 훈련이 될 텐데. 그동안 열심히 해놓구 그 뒤 한 달을 어영부영 보낼 순 없어.”

지나의 열정을 야단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팔, 다리 다 가려지는 드레스도 있지 않습니까? 저기, 저런 걸로 입으면 안 될까요?”

여배우 드레스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다 가려지는 드레스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는 우현이 한 드레스를 가리키며 안젤라 윤에게 물었다. 팔, 다리가 다 가려지는 겨울용 드레스다.

“물론 있죠, 많죠. 그런데 내가 지나 씨 입히려고 빼놓은 드레스가 따로 있단 말이에요. 이거… 일부러 숨겨놨구만.”

안젤라 윤이 뒤쪽에서 커버에 씌워진 드레스 하나를 빼낸다. 그냥 볼 때는 그 쪽에 드레스가 있는 지도 몰랐다.

“어머, 선생님, 예뻐요!”

커버를 벗기자 지나가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그럴만했다. 그냥 봐도 고급스럽고 예쁜 드레스이고 지나가 입으면 더 예쁠 드레스이다. 베이지 색상에, 왼쪽 팔과 어깨는 오프숄더로 드러나고 오른쪽 어깨는 끈에 프릴이 장식되었다. 허리는 오른쪽이 트여있어 드레스가 대각선으로 몸을 휘감은 듯한 느낌을 풍기는데 볼륨이 좋은 지나가 입으면 빛을 발할 것이 분명했다. 롱드레스이기에 다리는 모두 가려지지만 양쪽 팔과 어깨, 허리는 드러난다.

“드레스 입을 때 어깨랑 팔까지 다 화장하잖아. 조금 더 진하게 하면 가려지지 않을까?”

드레스를 보고나니 우현도 아쉬워 입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사실 화장으로 가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겨울이라 설령 외부에서는 재킷을 위에 걸친다고는 해도 결국 실내에서는 벗어야하니까.

“지나 씨 몸을 보면 메이크업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그렇다고 몸 곳곳에 테이핑을 하고 드레스를 입을 순 없잖아요. 에휴… 아무래도 다 가려지는 걸로 해야겠네요. 이거 지나 씨 입히고 싶었는데… 아유, 시상식 앞두고 있는데 몸 좀 사리지 그랬어?”

아쉬운지 한 번 더 지나를 타박한다.

“처음엔 티가 잘 안 나서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멍이 많이 올라오더라구요. 이 드레스 너무 예쁜데 진짜 아쉽네요.”

지나가 많이 아쉬운지 드레스를 계속 만지작거린다.

“어쩔 수 없네. 다 가려지는 것 중에 골라보자. 다른 거라도 빨리 픽해놔야지, 다 뺏기겠어.”

다 같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찮다 싶어서 들추는 드레스 마다 대부분 다 예약이 되어있었다. 드레스가 꼭 연예인 시상식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각종 행사와 특히 음악회, 전시회 등 예술계 종사자들에게 많이 대여가 된다. 연말을 앞두고 있어 예약리스트가 빼곡했다.

“큰일이네요. 입을 만한 거는 이미 다 예약이 됐어요. 어떡하죠?”

“다 가려지는 것 중에선 이게 제일 예쁜데, 하필 김사란 씨 코디가 연기대상 때 입을 걸로 이미 픽해두고 갔어.”

드레스 픽은 대부분 코디 담당이다. 딱 하나의 드레스만 픽해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여러 개의 드레스를 픽해둔다. 그래서 10개 이상의 드레스가 픽되는 경우도 많다. 시상식을 앞두고 발 빠르게 자신이 담당하는 연예인의 스타일에 맞는 드레스를 선점해두는 것, 그것이 코디의 능력이다. 늦게 움직이면 예쁜 드레스가 남아있지 않을 수밖에.

픽해둔 드레스 중 하나가 선택되고 나면 나머지를 다른 사람이 입을 수도 있긴 한데, 그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게다가 예쁜 드레스는 대기까지도 있으니.

“여기 꺼내 둔 5개 정도가 연기대상 당일 예약이 안 된 것들인데, 하아… 안 어울리겠는데?”

안 어울린다기 보다는 솔직히 예쁘지 않았다.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해서 다 예쁜 게 아니라는 건 은하 매니저를 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왜 그렇게 비싼 가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옷들이 종종 있다.

“그렇죠?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지나의 눈에도 예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며 돌려 말하는 것일 뿐.

“다른 디자이너 쪽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명이 다가와 속삭였다. 이렇게 되고나니 안젤라 윤만을 고집할 순 없다. 다른 데서라도 빨리 드레스를 픽해둬야 한다. 우현이 소파에 걸터앉아 황 부티크에 연락을 해봐야하나 고민을 하는데 퀵서비스 기사가 안에 드레스가 든 것으로 보이는 옷 커버 하나를 들고 샵으로 들어온다.

“선생님, 이거 안쪽에 걸어둘까요?”

“그래. 아, 그거 이리 가지고 와봐!”

퀵서비스 기사에게서 그것을 건네받은 직원이 안으로 들고 들어가려다 안젤라 윤의 부름에 이쪽으로 가져왔다.

“이 걸 깜빡했네. 지나 씨, 이거 입자.”

안젤라 윤이 확신에 찬 듯 눈을 반짝이며 커버를 벗겨냈다.

응? 가죽인데?

드레스에서 보기 힘든 재질인 가죽이 나와 의아해 하다가 드레스가 쫙 펼쳐지자 탄성이 나왔다.

“우와! 이거 예쁘다.”

“진짜 독특해요, 선생님. 그런데 예뻐요.”

“그래. 예쁘긴 한데, 등이 엄청 파였는데? 입을 수 있어?”

“이거 입으면 예쁠 거예요. 아까 보니까 등에는 멍이 많지 않고 특히 운동 덕분에 등 근육이 너무 너무 예쁘게 잡혔더라구요. 이런 등은 보여줘야해, 지나 씨. 어서 입고 나와 봐.”

가죽으로 이렇게 소프트한 느낌이 나는 드레스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단, 일반적으로 ‘가죽’하면 떠오르는 검은색이나 브라운색 같은 무거운 색이 아닌, 살짝 살구빛이 도는 누드톤이라서 멀리서보면 가죽 재질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리고 드레스의 전체적인 실루엣이 머메이드 타입인데 보통의 가죽 옷보다도 훨씬 얇게 가공이 되어 머메이드 느낌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완벽히 나온다는 거다.

이 드레스의 가장 큰 포인트는 완전히 파인 등이다. 엉덩이라인이 나오기 직전까지 등이 완전히 드러난다. 화려한 비즈 장식이나 레이스, 프릴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장식이라고 하면 가슴 쪽과 허리 아래 엉덩이 쪽에 있는 스트랩과 그 끝의 메탈 장식 정도.

“세상에! 역시 지나 씨한테 잘 어울릴 줄 알았어.”

“딱 네 거다.”

진짜 딱 지나 거다. 팔 다리는 완벽히 가려지고 예쁜 등은 많이 나왔다. 그리고 가죽이 몸에 핏되자 몸매를 잘 잡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도 볼륨이 좋은 지나가 입으니 그냥 드레스를 볼 때보다 훨씬 옷이 살아났다. 이 디자인에 가죽을 쓴 것이 신의 한수라고 생각될 만큼.

특히 가려진 가슴이 이렇게 섹시하게 보일 줄은 몰랐다. 등이 파인 대신에 가슴 쪽은 노출이 없는 라운드넥에 스트랩 장식뿐이다. 그런데 가죽이기 때문일까? 가슴 라인이 시선을 끈다.

그리고 지나가 뒤로 돌자 등에서 힙으로 내려오는 라인이 아찔했다. 아슬아슬하게 엉덩이가 가려지며 허벅지 아래까지 타이트하게 붙은 가죽 치마가 지나의 몸매를 더 탄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등에는 멍이 적다는데, 저게 적은 거라니…’

곳곳에 든 멍이 우현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여자가 아프면 가슴이 아프다. 특히 예쁜 여자가 아프면 더욱.

“지나야, 정말 잘 어울린다. 이거로 하자. 그런데 액션스쿨에서 연습할 때 조금만 몸 조심하자. 정말 어디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돼. 그리고 그 드레스 입어야하니까 특히 등에는 더 이상 멍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조심할게요.”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지나는 정말 예뻤다. 머리를 짧게 잘라서 확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텐데 저 드레스가 지나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줄 거다.

“이 드레스는 이거 하나만 제작된 건가요?”

드레스가 딱 한 벌만 제작되지는 않는다. 대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드레스는 두세 벌씩 만들어져 같은 날 여러 군데로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혹시 같은 드레스가 동일한 행사에 나가게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확인하는 건 필수다.

이 과정을 소홀히 했다가 몇 년 전 흑룡영화상에서 일이 터졌다. 두 여배우가 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각각 다른 대행사를 통해 똑같은 두 개의 드레스가 대여된 것이다. 입장하는 레드카펫에서 두 여배우가 마주친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생각만 해도 땀이 삐질 나는 순간이다.

같은 드레스를 입은 두 배우는 조연정과 천우혜. 조연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만큼 유명한 배우이고 당시 천우혜는 신인 타이틀을 떼기에는 아직은 인지도가 부족했다. 물론 그 날 천우혜는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어있긴 했지만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가 평은 좋았으나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않았기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상식 동안 두 여배우가 같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여러 번 카메라에 잡혔다. 그런데 참 민망하게도 그 날, 여우주연상을 천우혜가 거머쥐게 된다. 아직 신인인 자신이 모두가 꿈꾸는 흑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게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 수상소감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며 펑펑 울 때, 카메라는 박수를 치며 앉아있는 조연정을 잡는다. 물론 조연정은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참 민망하고 당황스러웠을 거다. 조연정을 잡은 카메라가 좀 짓궂어 보이기까지 했다.

같은 드레스가 의식이 되어서인지 다음날, 조연정은 SNS를 통해 후배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멋진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지만 해당 배우나 스태프들은 진땀을 뺏을 거다.

“이건 하나밖에 없어요. 이렇게 얇고 좋은 베지터블 가죽에 시험 삼아 만들어 봤는데 예상보다 너무 예쁘게 나온 거죠.”

“하하하, 그럼요. 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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