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12화 (11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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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재능과 노력(4)

“그래서 실례인 걸 알면서도 이주희 작가님을 졸라서 같이 왔습니다. 어차피 조금 있다가 종방연에서 만날 거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기는 힘들잖아요?”

이주희 작가는 못 느낄지 몰라도 우현은 정확하게 느꼈다. 자신의 답변에 숨을 뜻을 파악했다는 걸.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말에도 강한 적의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그렇죠. 잘 하셨어요. 그리고 이제 소속사는 골라가면서 계약하면 되지 않아요? 드라마 시작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요?”

“아… 그렇긴 합니다. 여기 이주희 작가님께 그래서 더 고맙네요. 안 그래도 몇 군데에서 연락이 오긴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인데… 만약 김 대표님이 저랑 같이 하자고 했으면 승낙했을 겁니다.”

“어머, 어머. 우리 민재원씨랑 계약하는 거예요?”

곁에서 듣고 있던 이 작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하, 아니요. 김 대표님께서 이유를 말씀해주셨으니 다른 회사를 찾아야겠죠. 이유를 듣기 전이면 몰라도 이제는 제가 다른 곳에 가야할 이유가 생긴 셈이니까요.”

어떤 이유가 생긴 것인지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더 이상 민재원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종방연에 참석할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에 처리할 일이 있다며 민재원을 먼저 보내자 이주희 작가가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우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표님, 솔직하게 말해 봐요. 재원 씨랑 계약 하지 않은 이유가 더 있죠?”

“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 그런 이유가 다라면 유지나 씨와 계약할 이유가 없잖아요. 뭐, 민재원에 비해서 유지나가 조금 무게가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안 그래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물어오는 이 작가의 패기에 결국 속내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지금 민재원의 위치가 한계라고 판단했어요.”

“역시…”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유를 듣고 싶다는 뜻이다.

“사고 쳤다는 거, 깊이 들어가면 그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죠. 문제는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하고 대중들도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 알려고 하지 않아요. 팬들은 그를 믿고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는 감독을 폭행했던 배우일 뿐이에요. 그게 1차적인 문제예요. 그 사고의 질이 안 좋다는 거.”

“그럼 두 번째 문제는요?”

“연기력이 부족해요.”

이 작가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누구도 민재원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아요.”

“잘해요.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잘하는 것만 잘해요. 터프하고 거칠면서도 남자다운 역할을 표현하는 건 정말 잘해요.”

“흐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어떻게 그런 배역들만 맡았지? 그러고 보니 내 드라마도 남주가 약간 마초끼가 있었거든요. 아! 아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이 작가에게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죠? 아니죠? 그는 지금까지 그런 배역만 맡아왔던 게 아니에요. 모든 배역을 다 그렇게 소화한 거지.”

“맞아요. 그의 연기 스타일은 항상 똑같았어요.”

“연기를 잘 하는 건 맞지만 그 배역에 빠져들지 못해요. 오로지 그 배역을 자신에게 맞게 고치는 것만 잘 할 뿐. 그래서 지금이 한계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리고 사실 귀찮기도 했어요. 아직 직원들이 많지도 않은데 자꾸 배우를 데리고 와봤자 케어하기도 힘드니까요. 정말 대단한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어떻게든 잡았겠죠.”

“그렇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아깝다고만 생각했어요. 왜 민재원을 두고 동생을 계약할까? 대표님 이상한 계약 하네? 막 이렇게 생각했죠. 어쨌든 저는 입 꾹 다물고 있을게요. 혹시라도 말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 입이 무겁거든요.”

손으로 입에 지퍼 채우는 제스처를 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안 그래도 돼요. 어차피 민재원이 눈치 챈 것 같으니까.”

“눈치 챘다구요?”

“네, 아까 그랬잖아요? 다른 곳에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고. 그 친구도 내가 하는 말의 숨을 뜻을 알았을 겁니다. 아니, 변명으로만 일관했다는 걸 알았겠죠.”

“어떻게요?”

“소속사 운영을 취미로 하는 사람 없잖아요? 아무리 키우는 재미가 있니, 없니 해도 엄청난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영입 안하겠어요? 그는 그런 식으로 이해했을 거예요. 자기가 돈이 안 된다고 내가 판단했으니까 영입제안을 안 한 거라고. 뭐, 비슷하긴 하죠. 한계가 있는 배우랑 돈이 안 되는 배우의 차이니까. 어쨌거나 지금 혼자서 한껏 열을 내고 있겠네요. 내가 민상욱을 민재원보다 높이 평가한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는 지에 따라 사람의 인격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우현은 오늘 그를 만나고 그의 눈에 흐르던 적의에서 그가 왜 다른 이들로부터 안 좋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 때문에 오해를 받아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게 진실일까에 대해서 확신에 가까울 만큼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어머, 어떡해요?”

“괜찮아요. 그 친구랑 가는 길이 다른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일을 한번 겪어봐야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겠죠. 만약 그걸 깨닫고 자신의 연기를 깨고 나온다면 조금 달라지겠네요.”

“흐음… 역시 대표님은 뭔가 다른 안목을 가지고 계시네요. 지금껏 민재원을 연기로 까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는데 말이죠. 어쨌거나 저 이번에 성공적인 데뷔를 했으니 다음 작품도 잘 써볼게요.”

“당연하죠. 이번에도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재밌게 써주세요. 자, 갑시다. 그 동안 고생했으니 고기 배터지게 먹어봅시다.”

“고고!”

이후 종방연은 평화롭게 잘 마무리되었다. 일부러 민재원이 있는 곳은 피해 다녔는데 이 작가도 우현에게 말을 들은 이후로는 재원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는지 어지간해서는 그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민재원은 종방연에서 호기롭게 노래를 부르고 모든 스태프들에게 술을 따르며 인사했는데 우현은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해 보였다. 마치 일부러 내가 이 정도로 호탕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려는 것 같았으니까.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인공은 민재원도 아니고 SN 소속 아이돌 연기자로 성공적인 연기를 선보인 아영도 아닌 이주희 작가였다.

종방연에 참석한 KMTC의 드라마국 관계자들은 쉴 새 없이 이 작가에게 달라붙어 ‘수고했다.’, ‘쓰러져가는 드라마국 살려줘서 고맙다.’, ‘차기작은 생각해놓고 있냐?’ 등등 연신 질문을 퍼부어댔다.

태어나서 그런 관심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는 이 작가는 종방연 내내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올 줄 몰랐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우현이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하… 제가 사실 준비하고 있는 게 있긴 해요.”

“차기작을 벌써 생각하고 있단 말이죠? 이거 이거, 우리 이 작가님 누가 상 좀 줘야겠구만.”

드라마국의 진호규 국장을 앞에 두고 이 작가가 폭탄을 던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우현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자신이 실언했음을 알고 입을 막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요, 쏘아진 화살이다.

“그래, 차기작 내용이 뭐예요?”

“아직 말하기에는…”

“그래도 대강 구상하고 있는 건 있을 거 아닙니까? 허허. 이거 이 작가님, 사람 애태우는 재주가 있으시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아직 말하기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번 이야기 해봐요.”

그녀도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 입을 열었다.

“초인에 관한 이야기예요. ‘우리 동네에 슈퍼맨이 있다면’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이 작가는 입을 닫아 버렸다.

“크흠… 어쨌거나 좋은 작품이 됐으면 좋겠네요.”

“저는 좋은데요?”

“재밌겠어요.”

주변에서 한 마디씩 덕담을 던졌지만 이주희 작가도 그냥 입에 발린 칭찬이라고 생각할 만큼 영혼이 없는 멘트들이었다.

나중에 종방연이 끝나고 우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이 작가는 그게 그렇게 별로냐며 항변했다.

“음… 만약 저에게 그런 시놉시스가 온다면 연락을 안 할 것 같네요.”

“진짜요? 히잉… 완전히 찍혔다.”

“하하하, 괜찮아요. 그냥 그런 생각이 있다고 던진 거잖아요? 진짜 시놉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물론 아예 말을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앞으로는 차기작에 대한 생각이 있을 때, 꼭 저랑 상의해요. 최소한 오늘 같은 일은 예방하자구요.”

“네, 그래야겠네요. 이놈의 술이 웬수네요. 힝…”

이렇게 실수 한번 했으니 나중에는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다.

술 마시고 난 다음날이 되면 항상 힘들지만 그래도 이 바닥에서 술을 줄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아침이면 숙취해소 음료와 해장국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아침부터 해장국을 한사발 들이키고 오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앞으로 다가올 시상식이었다.

사실 연말이 되면 가수 소속사도 바빠지지만 배우 소속사도 정신없어지긴 매한가지다. 물론 가수 소속사만큼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각종 드라마 시상식과 영화제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흑룡영화상에는 별이가 신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유지나는 M사 연기대상에 참석해야 하고, 별이는 S사 드라마대상에 참석해야 한다.

“상준아, 별이 흑룡영화상이랑 연기대상 섭외 들어왔다며? 황 디자이너한테 가서 드레스 픽해놔. 연기대상 때 입을 것도 미리 정해둬라. 예쁜 것 뺏기지 않도록.”

“네, 물론이죠.”

상준과 통화를 끝내고 진명에게 전화를 했다.

“진명아, 지나 연기대상 드레스 어디서 해?”

“드레스요? 예전엔 여러 군데에서 받았는데 최근엔 계속 안젤라 윤 디자이너 드레스만 입었어요. 지나가 마음에 들어하더라구요.”

“그래? 별이는 황석준 디자이너한테 하는데, 황 부티크에서 해도 되고 안젤라 윤에서 계속 해도 돼. 지나한테 물어보고 드레스 픽하러 갈 때 나도 같이 갈 거니까 연락줘.”

“대표님도 같이요?”

“그래,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우리 배우 관리 차원에서 안젤라 윤 쪽에 인사도 하고.”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며칠 후 우현과 지나, 진명은 함께 안젤라 윤 부티크에 들렀다.

“안녕하십니까. 파인엔터 대표 김우현입니다.”

“어서오세요. 지나가 회사를 옮겼다더니, 대표님께서 이렇게 직접 들르셨네요?”

“우리 지나 예쁜 옷 달라고 얼굴 비추는 겁니다, 하하.”

“지나 씨야 뭘 입어도 예쁘죠. 지나 씨 사이즈 바뀌었는지 한 번 볼까?”

“살이 조금 빠졌어요. 요즘 액션스쿨 다니느라.”

“그러게, 얼굴이 홀쭉해졌네.”

윤 디자이너와 지나가 사이즈를 재러 커튼 뒤로 들어가고 진명과 우현은 기다리며 옷들을 둘러봤다.

“우와, 이런 건 너무 야하지 않아요?”

진명이 한 드레스를 들어 올린다.

“그런 드레스는 입고 나서 옷을 입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겠다. 거의 벗은 건데?”

남자로서 다가가보지 않을 수 없다. 머릿속엔 이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몸이 그려지고. 괜히 드레스의 촉감이 어떤가 하고 만지작 거려본다.

“크흠, 어이구… 이런 걸 입는 사람이 있나? 아, 간혹 있기는 하더라. 뭐, 시선 끌기는 확실히 되겠지만 품격 있어 보이기는 힘들지.”

각종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여배우들의 드레스 사진이 연예 기사 면을 도배하고 베스트드레서와 워스트드레서가 선정된다. 그리고 아주 선정적인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의 사진이과 그 배우가 실검에 오르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야한 드레스는 시선 끌기용으로 이미 자리매김했다.

“어머! 지나 씨, 몸이 왜이래?”

커튼 뒤에서 안젤라 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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