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11화 (1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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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재능과 노력(3)

“뭐? 아직까지 연습 스케줄도 못 잡으면 어떡해? 이미 연습을 시작했어야 할 날짜 아니냐?”

우현은 아침부터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이는 유니의 매니저인 진세동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그게… 한 쪽이 된다하면 다른 쪽이 콘서트 때문에 안 된다 하고, 다른 쪽이 원하는 시간대에는 또 한 쪽이 행사 때문에 안 된다 하고… 정말 미치겠습니다. 머리에 쥐날 것 같아요. 이러다 우리 유니, 연습도 못하고 무대 올라가게 생겼다니까요.”

“일단 확정된 게 어떤 거야? 제일 빠른 ‘MWMA’ 연습은 잡혔어?”

“네. 일단 '코리아 스타 K' 우승, 준우승자들과 오늘 밤, 아니 새벽 1시에 연습이구요.”

“새벽 1시?”

“네. 그 친구들이 요즘 ‘코리아 스타 K TOP11 콘서트 중이거든요. 그리고 m.met에서 하는 프로그램 출연 스케줄도 있고. 게다가 준우승자 집이 미국이잖아요. 콘서트 끝나고 집에 다녀오려고 이미 항공권을 예약해뒀다네요.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꼭 다녀와야 한다고. 유니 스케줄도 있고해서 결국 오늘 밤 1시밖에는 시간이 안 된다고 합니다.”

“1시부터 연습하면 결국 밤 샌다는 소리네. 힘들 텐데… 내일 스케줄은 괜찮아?”

“네, 다행히 내일 다른 스케줄은 잡힌 게 없습니다. 그리고 S사 망치 씨와의 무대는 따로 연습 없이 당일 리허설에서 동선 익히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 동안 함께 무대를 여러 번 했으니 서로 바쁜데 일부러 시간 빼지 말자고 망치 씨 쪽에서 연락이 와서요. 그리고 또, K사 선후배가 함께하는 무대는 다다음 주로 연습이 잡혔습니다.”

“선배는 누구로 정해졌어?”

“‘꽃밭에서’라는 곡을 부른다고 하네요. 원곡자인 정환희 선생님하고 또 예전에 그 곡을 리메이크 하셨던 조관욱 선생님, 이렇게 두 분과 유니랑 같이 한답니다. 정환희 선생님은 요즘 디너쇼 중이고 조관욱 선생님도 콘서트가 있어서 다다음 주 금요일에야 연습이 잡혔습니다. 그것도 겨우 잡은 거예요. 무리해서 목 상태가 안 좋으시다고…”

“그 한 곡 부르자고 세 명이 스케줄을 다 조정해야 한다니, 참… 그럼 연말 스케줄 중에 M사 여자보컬 4명 무대 연습을 못 잡았다는 거네?”

“네, 하아…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아니, 왜 꼭 4명이 함께 무대를 해야 하는 거랍니까? 2명씩 나눠서만 해도 좋을 텐데, 아휴… 3곡이나 불러야 하는데 어떤 곡을 부를지도 합의가 안 되구요. 뭐 진행 되는 게 없어요, 도대체!”

세동은 울분을 토하고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연습 시간이 적을 테니 일단 곡이라도 확정을 해둬야 만나서 버리는 시간 없이 연습이 될 텐데, 왜 곡을 못 정해?”

“그게… ‘뷰티스’ 메인보컬 혜수는 폭발적인 고음이 나오는 곡으로 하자고 하고 최민지 측에서는 알앤비 소울 쪽으로 가자하구요. ‘플로리스’ 보컬 제니는 팝으로 하자하네요. 그런데 듣기로 혜수와 최민지가 사이가 안 좋다고, 에휴… 양보할 생각들은 없어 보입니다.”

“그 둘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게 문제구만. 연습 스케줄 잡기는 더더욱 힘들어 보이고… 큰일이네. 그럼 이건 내가 조절해볼 테니까 너는 다른 데 신경 써.”

우현은 축 처진 세동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지요. 하하.”

그제야 세동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 참, 그리고 유니 야외무대 의상은 꼭 재킷 만들어줘라. 영하 15도 까지 내려갈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치마는 입어야 한다지만 상의까지 얇게 입힐 순 없잖냐.”

“네, 알겠습니다.”

세동을 내보내자마자 MBS의 이규창 피디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파인 엔터의 김우현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께서 무슨 일로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까?”

“다른 게 아니라 이번 연말 시상식에서 우리 유니가 여자보컬들 세 명과 함께 무대를 꾸미게 됐는데, 서로 원하는 곡이 안 맞는다고 계속 연습이 늦춰지네요. 저희 쪽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봤는데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럼 어쩌시려구요?”

“어쩌긴요. 그냥 유니 혼자 따로 무대를 하든지, 아니면 다 같이 하는 건 어렵지 않겠어요? 설마 우리한테 알아서 스케줄 조절해서 하라는 말은 아니시죠?”

“스케줄이야 당연히 저희가 조정해야죠. 지금도 저희 쪽에서 열심히 설득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죠.”

“피디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준비해야 할 시상식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이렇게 자꾸 시간을 보내면 우리 애 힘들어 죽습니다.”

“알죠. 알고 있습니다. 일단 저희 쪽에서 최대한 빨리 조정해볼 테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휴… 알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때려 치고 싶지만 진짜로 그랬다가는 차후에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아무리 대형 소속사라고 해도 방송국을 상대로는 그런 간 큰 짓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렇게 한번 까칠하게 신호를 줬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거다. 그네들 입장에서도 이대로 가다간 무대를 망쳐버릴 게 분명하니 말이다.

딸랑!

문을 열고 일남일녀가 들어왔다. 누군가 해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어? 이 작가, 웬일이야? 민재원 씨도 오셨네?”

“반갑습니다.”

“작가가 소속사에 오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구요. 이제 드라마도 끝났는데 한번 놀러 와봤어요.”

이 작가는 힘들었는지 얼굴 살이 쪽 빠진 모습이다.

“일단 앉아요. 이 작가 힘들었나보네. 살이 쪽 빠져가지고는… 내가 준 홍삼은 잘 챙겨 먹고 있었던 거예요?”

“당연하죠. 아후, 저 진짜 힘들었어요. 지금 화장으로 가려서 그렇지 다크서클이 여기까지 내려왔다니까요. 내가 진짜 그 때, 민재원씨 아니었으면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거예요. 아마 병원 침상위에서 대본 썼을 거야.”

“하하, 그래도 이렇게 백기사가 나타났으니 사람 하나 살렸네. 재원 씨도 힘들었을 텐데 얼굴은 좋아 보이네요. 역시 배우는 배우네요.”

그 때도 잘생겼었지만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어서인지 얼굴에 그늘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각 같은 얼굴에 환하게 조명을 비추어 놓은 것 같다.

“전 하나도 안 힘들었습니다. 복귀도 잘 했고 생각보다 좋은 배역 맡아서 평가도 좋았으니까요. 밤새면서도 별로 힘들지 않았던 건 오랜만이었어요.”

“그거 다행이네요.”

이주희 작가의 ‘천방지축 그녀’는 남자 주인공이 바뀌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시청률 순항을 거듭하더니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전회 시청률이 8.8%를 찍기에 이르렀다.

지상파였다면 그리 주목받는 시청률은 아니었을 테지만 종합편성채널인 KMTC에서 방송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일이다. 특히 지금껏 드라마 시청률 5%를 넘겨본 적 없던 KMTC에서는 이번에 시청률 10%를 눈앞에 두며 지상파를 위협할 수 있게 됐다.

“오늘 종방연에 가면 볼 텐데 뭐 하러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사실 제가 한 번 가자고 이 작가님께 부탁했습니다.”

“재원씨가요?”

“네, 저희 동생을 연기자로 데뷔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어나서 허리를 꾸벅 숙이는 재원에게 우현도 따라 일어나 인사했다.

“이렇게 안하셔도 됩니다. 저 좋자고 꼬드긴 건데요, 뭘. 연기도 괜찮고 마스크도 좋아서 좋은 연기자가 될 겁니다.”

“저는 그런 생각도 못했었는데 참… 그런데 어떤 부분을 보고 우리 상욱이를 캐스팅 할 생각을 하셨어요?”

“일단 얼굴부터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스크가 좋았죠. 물론 재원 씨처럼 근사하고 뚜렸한 이목구비는 아니지만 선한 인상에서 나오는 편안한 웃음이 좋더라구요. 의외로 이런 마스크가 배역을 잘 흡수하죠. 게다가 얼굴형도 카메라에 잘 받는 형태구요. 모르긴 몰라도 충분히 스타가 되고도 남을 겁니다.”

“하… 참,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다른 길만 생각했네요. 혼자서 저를 도와주면서 자기 앞길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이제는 제 앞가림 혼자서 잘 할 겁니다.”

“그러면 참 다행이구요.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네?”

“왜, 저에게는 함께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대답할 말이 궁해서 입을 열지 못하는 우현에게 재원이 피식 웃으며 재차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 제가 아닌 상욱이를 꼭 집어 계약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어머, 재원 씨는 그거 물어보려고 그렇게 나랑 같이 가자고 했어요?”

“하하, 미안해요, 작가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이주희 작가는 잘생긴 민재원과 같이 동행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나보다.

“글쎄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일단 제 입장에는 민재원씨가 부담스러웠던 건 부인하지 않을게요. 아, 재원 씨의 그간 행적 때문이 아니라 재원 씨에게 줄 계약금이 부담스러웠거든요.”

“계약금요? 하하, 생각지도 못했네.”

“아무래도 작은 회사니까요. 요즘은 계약금을 많이 안주는 추세라고는 해도 소속사와 배우간에 유대감이 있을 때나 그렇지 지금처럼 새로운 회사를 찾게 되면 1, 2억은 생각해야 하는데… 부담이 없을 수 없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금껏 대형 매니지먼트와만 계약해왔던 재원은 우현의 변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상욱 씨 같은 경우는 보자마자 형처럼 대단한 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시험을 꼭 하고 싶었죠. 그래서 연기 학원에 보내서 연기를 봤습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구요. 이제 대답이 됐습니까?”

“진짜 돈이 전부였나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어오는 재원의 질문에 우현도 마음속에 가졌던 이유 하나를 꺼냈다.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재원 씨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스타죠. 우리 회사로 영입한다고 해도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배역을 찾아서 연결해줘도 결국 재원 씨에게 엄청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는 없겠죠. 그게 남은 이유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키우는 재미가 없다, 이 말이군요.”

“하하. 그렇죠. 이미 다 컸잖습니까? 다 큰 자식은 부모도 징그러워합니다. 옹알이도 보고, 아장아장 걸을 때 손뼉도 쳐주고, 초등학교 입학 때 책가방도 메주는 게 키우는 재미니까요.”

“재밌네요. 지금껏 그런 방식으로 영입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냥 제 스타일입니다. 은하도 그렇고 별이도 그렇고… 단 한 번도 대형스타를 영입해서 회사매출을 끌어올릴 생각은 안 했죠.”

“알겠습니다. 김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이제 납득할 수 있겠네요. 흠… 사실대로 말하면 저도 아직 소속사를 못 구했는데 상욱이가 소속사를 만나서 작품을 하는 걸 보니 조금 배가 아팠는 지도 모르겠어요.”

살짝 비틀려진 입매,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니 배가 조금 아픈 수준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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