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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재능과 노력(2)
다음날, 우현은 유니와 세동이 있는 녹음실에 들렀다.
“연말이 다가오니까 시상식 섭외 연락이 오기 시작하네.”
“아, 맞다. 이제 곧 있으면 시상식이 시작되겠네요. 어디어디에서 연락 왔어요?”
“일단 지상파 3사랑 케이블 채널까지, 전화가 올만한 곳은 다 왔다고 봐야겠지? 특히 연말 시상식의 포문을 여는 곳이 바로 케이블 채널의 ‘MWMA’잖아? 가장 먼저 스케줄이 잡혔어. 장소는 홍콩이고, 워낙 규모가 큰 생방송이기 때문에 준비할 것도 많고 완벽해야 해.”
“우왕! 저 진짜로 MWMA 가는 거예요? 홍콩으로? 아, 너무 좋아요. 연말마다 티비로 보면서 거기 나오는 가수들 얼마나 부러워했는데요.”
녹음실 의자에 앉아있던 유니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마주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그래? 다른 시상식도 많은데?”
“스케일이 다르잖아요, 스케일이! 무대도 엄청 멋있고. 그리고 그 해 활동했던 가수들이 다 나오는 것도 아니고 팬들 투표로 선정되거나 섭외되는 가수들만 가는 곳이니까… 꿈의 무대죠, 히힛.”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해야하나 고민하는 우현과 달리 유니는 좋아서 소리를 질러댔다.
“드디어 꿈을 이룬 거냐? 여러 시상식마다 무대 준비하려면 힘들 텐데 네가 좋다니까 나도 좋다.”
“사실은 저도 투표해왔거든요.”
“무슨 투표?”
“무슨 투표긴요, ‘MWMA’ 투표지. 제가 OST부문 후보였는데 하루에 세 번 투표할 수 있어요. 저한테 매일 세 번 다 투표했죠, 큭. 다른 가수한테는 안 했어요, 크큭.”
“그런 게 있었어? 확실히 내가 가수 쪽은 처음이라 신경 쓰지 못했네. 당연히 알아야 했던 건데… 그런데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미리 얘기했으면 우리 회사 식구들도 다 했을 거잖아.”
“얘기할 수도 있긴 했는데, 뭐, 몇 명 더 투표한다고 크게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고 괜히 신경 쓰이잖아요. 그리고 ‘골든마이크’ 시상식도 투표가 있었어요.”
“그건 알고 있었어. 그쪽에서 네가 어떻게 선정됐는지 말해줬거든. 네 팬덤이 이제 꽤 형성된 것 같다.”
“네, 히힛.”
유니는 얼굴 옆에 손을 갖다 붙이며 귀엽게 브이자를 그렸다.
“그런데 ‘골든마이크’는 돈을 내야 투표를 할 수 있어요. 웃기죠? 팬들이 모바일로 투표하는데 왜 결제를 해야 하는 지, 쯧. 아이돌 팬덤 대부분이 학생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이 20일 동안 투표를 하려면 몇 만원이 드는 거예요. 학생들한테 그 돈이 얼마나 부담이겠어요? 투표를 안 하면 다른 가수가 선정되니까 안 할 수도 없고.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투표했는데 자기가 투표한 가수가 선정이 안 되면 그 돈은 그냥 사라지는 돈이 되는 거죠. 각 가수별로 투표했다가 선정 안돼서 날아가는 돈이 몇 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 된대요.”
팬들의 지갑에서 불필요한 지출이 생기게 되니까 꽤나 분했나보다.
“아, 언뜻 기사로 본 것 같아. 제목만 보고 넘겨버렸는데 그 얘기였구나. 그 놈들 이상한 짓거리를 하네? 결국 시상식 주최측에서 그 돈 다 먹는다는 건데. 애들 코 묻은 돈 벌어들이겠다고 저러는 게 좋아 보이지가 않네.”
“그렇죠? 아휴, 짜증나. 그런데 이번에 ‘골든마이크’는 어디서 진행한대요?”
“중국, 상해 축구장을 빌려서 진행한다고 하더라구. 이틀 동안 진행한다고 하던데, 이틀 동안이나 할 이유가 있나?”
“글쎄요. 하루면 될 텐데 말이죠. 어쨌든 팬들 입장에서 화가 나는 건 갑자기 중국에서 한다고 하니까 돈 내고 투표해서 응원하는 가수를 1등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중국까지 갈 수 없으니 그 무대를 직접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MWMA’ 같은 경우야, 아시아의 축제라는 컨셉으로 예전부터 여러 나라를 돌며 했으니 이해가 되지만 골든마이크는 아니었잖아요. 비행기 푯값에다 입장료까지 생각하면 못가니까.”
유니는 어깨를 들썩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이 돈이 되니까 중국에서 한다는 거네. 그것도 이틀이나 해서 입장료 두둑히 챙기고.”
“그런데 무대나 음향을 ‘MWMA’ 수준으로 할 수 있을까요? 국내 지상파 시상식도 음향 제대로 안 된 경우가 허다한데.”
“그건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중국에서 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하니까.”
“그런데 또 웃긴 게 뭔 줄 아세요?”
유니는 시상식에 관해 평소부터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얼굴까지 잔뜩 상기 되서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다.
“또 뭔데?”
“중국에선 이틀간 생방으로 나가는데 한국에서는 녹화방송으로 몇 주 뒤에, 그것도 한밤중에 방송한대요. 학생들은 못 보죠.”
“한국 팬들은 투표할 때 돈만 내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네. 애들이 봉이네. 듣기만 해도 짜증난다. 그냥 골든마이크는 나가지 말까?”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니가 양손을 휘젓는다.
“안돼요, 안돼요. 돈 내고 저한테 투표해준 팬들이 있잖아요!”
“농담이야.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나가야겠구나, 에휴… 어쨌든 골든마이크는 특별히 준비할 건 없어. 앉아 있다가 상 받고 네 무대만 하면 돼. ‘MWMA’는 네 노래 한 곡이랑 올해 ‘코리아 스타 K' 우승, 준우승자들과 함께 하는 무대가 있대.”
“그럼 참가자들이랑 호흡 맞추고 연습해야겠네요. 곡은 정해졌대요?”
“그건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며칠 안으로 확정해서 메일로 보내준다고 하네. 그리고 M사 시상식은 이원생중계인데, 1부에 상암 야외무대에서 네 노래하고 2부에 일산으로 이동해서 여자보컬 4명이서 3곡 부르는 무대가 있어. 그리고 엔딩 무대. 4명 연습 스케줄 맞추는 게 또 일이네.”
“당분간 앨범 작업은 멈춰야겠네요. 노래 하나 선정하고 연습하는 데에도 꼬박 며칠이 걸리니… 또 다른 데는요?”
“또 보자… K사는 본관 앞 야외무대에서 네 노래, 본관 실내에서 선후배가 함께하는 무대가 있는데, 어떤 선배인지는 아직 미정. 그리고 엔딩무대 서고. 그런데 네 단독무대가 다 야외무대야. 아마도 네가 신인인데다 S사 드라마 OST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 쯧, 추울 텐데…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저 의외로 몸 튼튼해서 괜찮아요. 예전에 무대에서 비 맞으면서 노래도 불러봤는데 다른 언니들 전부 감기 걸려서 고생할 때 저만 멀쩡했거든요.”
“한겨울이야. 너 한겨울에 무대에서 노래 불러봤니?”
“흐음… 마음 아프게 뭘 그리 꼬치꼬치 물으세요. 예전 라라걸즈는 한 시즌에 무대 한번 서는 것도 힘들었는데 당연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럼 마음 단단히 먹어라. 내가 전에 은하 음방 MC하면서 들었는데 걸그룹 같은 경우는 다리에 감각이 없고 입술이 떨어지는 것 같이 추웠던 경우도 있었대.”
“히유… 최악이네요.”
“그렇지? 그리고 S사 시상식은 오프닝무대 서고, 첫 무대가 네 노래야. 의상 빨리 바꿔 입어야 하겠더라. 그리고 2부에 망치와 함께 하는 무대 있고, 마지막 엔딩. 다행히 S사는 모두 실내야.”
유니는 히죽 웃음을 지었다.
“뭐, 힘들긴 하겠지만 생각해보니 연말 시상식에 다 나가는 거네요? 아…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히힛.”
“지금 죽으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나중에 대상도 휩쓸어야지.”
“헙, 대상까지! 세상에… 제가요?”
“당연히 너지.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 넌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그럼 스케줄 정해지면 알려줄게. 연습하던 거 계속 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오늘 신도림 디코브시티에서 ‘승냥이’의 제작발표회가 있기 때문이다.
1, 2회 촬영을 마치고 제작발표회를 하기 때문에 발표회 중간에 약 20분 정도의 짤막한 예고편이 나갈 계획이다. 그게 상욱의 드라마 첫 데뷔나 마찬가지인지라 조금 긴장한 상태다.
촬영 중간에 강 피디의 모니터로 멀찍이 뒤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정확히 보지는 못했다. 따라서 편집 과정을 거친 그의 연기가 어떤 식으로 표현됐을 지는 우현도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셨어요?”
경수가 스태프들을 도와 발표회 현장 준비를 돕다가 우현에게 인사한다.
“상욱이는?”
“네, 지금 대기실에서 메이크업 하고 있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경수의 어깨를 두드려준 우현이 대기실로 가니 이동운을 비롯한 주연 배우들과 한쪽 구석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상욱을 볼 수 있었다.
굳이 다가가서 인사하거나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제 한 회사의 대표인데 좁은 대기실을 비집고 들어가 인사하는 것도 웃기기 때문이다.
얼마 후 무대가 세팅되고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착석했다.
“시작 5분 전입니다! 스탠바이 해주세요!”
스태프의 고함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자 곧바로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한두 명씩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상욱은 사람들이 나가고 거의 마지막쯤에 나왔다.
“어? 대표님, 오셨어요?”
“당연히 와야지. 올라가서 당당하게 인사하고 기죽지 마, 알겠지?”
“그럼요. 형 하는 거 많이 봤어요.”
형을 따라다니며 본 것이 있을 거라 생각되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역시나 무대인사 때는 신입답지 않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웃음으로 기자들의 주목을 상당히 받았다.
“그럼 오늘 제작발표회의 하이라이트인 예고편 감상이 있겠습니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박수소리와 함께 ‘승냥이’의 예고편이 상영됐다. 영화를 관통하는 긴장감과 처절한 분위기가 상영 내내 이어졌다.
‘어?’
유니와 상욱의 만남, 그리고 갈등, 마지막으로 자신의 살인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유니를 죽이는 것까지 이어지는 장면이 짧게 나오는데 뭔가 눈에 거슬렸다.
유니는 촬영 때처럼 싱그럽고 귀여운 여대생의 모습으로 마치 전문 연기자처럼 어색함이 없었다. 물론 어렵지 않은 연기였고 많지 않은 대사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잘 할 줄은 몰랐다.
특히 귀여운 얼굴이지만 약간 동그란 얼굴형으로 카메라에서는 부해 보이는 경향이 있어 톱스타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가진 목소리와 밝은 기운은 별이가 가진 여신 같은 아름다움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방송이 나간 후에는 분명 유니에 대한 섭외가 들어올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바로 상욱이었다.
살인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죽이는 장면에서 그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는 얼굴이 눈에 거슬렸다. 누구도 연기를 못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우현이 봤을 때 상욱은 타고난 연기자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아쉽다. 그 선하고 천사 같은 마스크를 받쳐줄 수 있는 연기력만 되면 한류스타를 넘어서는 톱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톱스타를 넘어 이제는 어엿한 기획사의 사장인 이대헌도 수많은 스캔들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헐리우드에서도 인정받는 한류스타가 된 건 얼굴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역이든 스펀지처럼 배역을 흡수해버리는 그의 타고난 연기력 때문이다.
“우리 ‘승냥이’의 히든카드이자 톱스타 민재원의 동생인 민상욱 씨입니다. 박수 부탁드려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으며 환하게 웃음을 보이는 상욱에게 진심을 다해 박수를 보냈다. 그가 가진 재능을 노력으로 극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