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08화 (108/301)

=======================================

[108] 성공하고 싶은 이유(4)

(주호)[나 누구게?]

(주호)[응? 말이 없네? 나 주호야. 그날은 너무 당황스러웠지? 장난으로 한 건 아닌데 내가 더 당황스럽더라. ㅠㅠ]

(별이)[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주호 씨가 싫어서 그랬던 건 아니에요. 다만 지금은 일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개인적인 연락은 더 이상 안주셨으면 좋겠어요.]

(주호)[어… 조금 당황스럽네. 꼭 내가 스토커가 된 것 같잖아. 나 그런 사람 아닌데… ㅠㅠ]

(별이)[전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ㅠㅠ 대표님이 아시면 저 많이 혼날 거예요. 더 이상 연락은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주호)[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일로 만날 때는 어색하지 않게 인사하자.]

(별이)[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좋은 인연 만나세요.]

칼같이 잘라버리려는 별이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해도 달라붙을 순 있지만 그 때는 별이가 말하기 전에 회사 측에서 대응할 수 있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사실 네가 좋다고 하면 연애를 완전히 말릴 수는 없지. 내 마음이야 열애설이 안 나기를 원하지만 연기라는 게 사랑의 감정을 모른 채 완벽히 표현할 수는 없는 거거든. 언젠가는 누군가와 연애를 하게 될 거고, 그게 맞는 거겠지.”

“저도 알아요. 솔직히 말하면, 바람둥이같이 생기긴 했지만 멋있긴 하잖아요? 마음이 아주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닌데 그래도 만날 생각은 없어요.”

“왜?”

“엄마, 아빠한테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 앞에서 옷 벗고 춤추는 딴따라나 광대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성공해야죠.”

그러고 보니 별이와는 사적인 대화를 많이 해본 적이 없었다. 유니야 어렸기 때문에 계약도 부모님과 하고 여러 가지 신경을 써주었지만 별이는 2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라서 모든 계약을 그녀 스스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부모와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부모님이 연예계 생활하는 걸 싫어하시나 보구나. 나는 사장이면서도 그것도 몰랐네. 미안해.”

“하하, 아니에요. 그거 말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실 대표님이 저를 유디 엔터에서 스카웃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바닥을 떠나서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데 그런 기회를 고작 연애 한다고 놓치고 싶지 않아요. 꼭 엄마, 아빠한테 내가 스타가 돼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대우받는 모습을 보여줄 거예요.”

좋은 마음가짐이다. 이런 각오 하나쯤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타고난 천재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겠지만.

“언니, 진짜 대단해. 나 이제부터 언니 존경할거야.”

유니처럼 말이다.

“그래, 우리 별이 믿음직하네. 그럼 둘이 놀아.”

녹음실을 나와 대표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성공시키는 데에만 급급해 그런 기본적인 것도 물어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소속 배우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걸 은하와 헤어질 때 알아놓고도 막상 또 같은 실수를 한 것 같았다.

다음에 시간나면 별이를 비롯해 소속 아티스트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마련해서 각자 하고 있는 고민을 꼭 들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후 평소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유니가 급히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멜빵 청치마를 입고 머리 끝을 빨갛게 물들인 모습이 아주 귀여우면서도 잘 노는 여고생처럼 보였다. 이번에 까메오로 출연할 배역에 맞춰 헤어스타일을 미리 바꿔본 것이다.

“대표님, 와서 감상 좀 말해주세요.”

“응? 벌써 20개 다 만들었어?”

한곡씩 만들고 감상과 수정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예 20곡 정도를 만든 다음에 그 때 들어보고 앨범의 컨셉을 잡아보자고 했던 것이다.

“네. 사실 전에 미리 작곡해뒀던 노래들이 대부분이에요. 새로 만든 건 몇 개 밖에 안 되는데 이번에 다시 손을 봤어요. 한번 들어 봐주세요.”

“그러자.”

유니와 같이 녹음실에 들어서니 30대 초반의 남자가 각종 장비를 만지면서 앉아 있었다. 이번에 유니를 위해 새로 영입한 엔지니어인데 이름이 배호준이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도 상당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고 있어 평균 이상의 연봉을 주고 스카웃했다.

“일단 스무 곡을 만들기는 했는데 색깔은 조금씩 달라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떤데?”

이번에는 옆에 앉아있던 배호준이 답했다.

“아무래도 유니 양이 어려서 그런지 밝고 발랄한 분위기죠. 몇 개는 뭐랄까… 조금 기묘한?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게 있긴 한데 전체적인 색깔로만 보면 봄에 어울리는 곡들 같아요.”

봄에 어울린다고 하니 어떤 느낌인지 확 와 닿았다.

“좋네요. 어차피 앨범 준비하고 뮤직비디오까지 찍은 다음에 공개할 때쯤 되면 내년 3, 4월은 돼있을 테니까요.”

“3, 4월에 공개되면 빠른 편이죠. 중간에 수정할 게 거의 없다는 뜻이니까. 만약 타이틀 변경하고 작사 다시하고, 컨셉 수정하고… 이렇게 되면 여름쯤에나 돼야 가능할겁니다.”

앨범이 늦게 발표되는 경우가 거의 이런 경우다. 타이틀을 선정해 놨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확신이 없어 변경하고 컨셉도 다시 잡았는데 또 윗사람 중에 누가 그것을 바꾸라고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경우를 몇 번 반복하게 되면 시기는 자꾸 늦춰지고 어느새 해를 넘겨버리는 수도 있다.

“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하니 수정, 변경 없이 빠르게 가봅시다. 일단 하나씩 들어보자.”

가사를 붙이지 않았기에 유니가 전부 가이드로 멜로디만을 잡아 녹음한 것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라라, 라라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무 개의 멜로디를 연달아 들었다. 하나씩 끊어가며 평가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는데 역시나 밝고 경쾌한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간에 몇 개 애절한 멜로디도 있고 몇 개는 배호준의 말처럼 평가하기 애매한 멜로디도 있었다.

결국 다 듣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이해할 수 없던 그 멜로디였다.

“마지막에서 세 번째에 들었던 거, 그건 뭐야?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어?”

“아, 그거요? 사실 번쩍 영감이 들어서 5분 만에 후딱 만든 것이긴 한데… 조금 이상하죠? 히히.”

“그러니까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데?”

“이거 살인자 테마예요. 전에 말했잖아요? 제가 드라마 ‘승냥이’의 까메오로 출연한다고 대본 주셨잖아요? 그 대사를 딱 보니까 막 멜로디가 생각나는 거 있죠?”

살인자라고 하니 딱 느낌이 왔다.

“어? 왜 그 얘기를 안 했어? 듣고 보니까 뭔지 알 것 같은데?”

호준도 유니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음악을 재생시켰다. 무언가 음침한 것 같고 툭툭 끊기는 것 같은 기묘한 멜로디는 과연 살인자의 테마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악기가 한정적이라서 이상하게만 들렸는데 듣고 보니까 느낌을 알겠어.”

“그렇죠?”

“여기에 현악기를 집어 넣어볼까? 아무래도 음악이 툭툭 끊기니까 기분 나쁘기만 해. 여기에 현악기로 긴장감을 주면서 멜로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보자.”

“오! 좋은 생각 같아요.”

호준과 유니가 즉석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걸 보니 확실히 녹음실 만들기를 잘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거라 이건 빼고 진행하자.”

“그렇긴 하죠?”

그래서 본인이 직접 만든 멜로디인 만큼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응. 대신 이거 ‘승냥이’ 쪽에다가 한번 넣어볼게. 그런데 이건 전처럼 드라마 시작단계에서 넣는 게 아니라서 채택될 확률은 아주 낮아.”

아직 제작발표회가 며칠 남기는 했지만 이미 모든 테마곡을 다 만들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살인자로 나오는 상욱의 테마까지는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살인자에 대한 테마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가사도 붙지 않은 음악을 집어 넣어봤자 안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썩히는 것도 아쉽다.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진짜 대본 보고 만든 거야?”

“네, 이제 내일이면 촬영인데 대사 진짜 열심히 외우고 있거든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죽는 연기도 했다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몰입하다 보니까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전에도 OST를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어울리는 드라마에 갖다 붙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대본을 보고 멜로디를 떠올렸다고 하니 재능은 재능이다 싶었다.

“거 참… 그래, 그럼 이건 젖혀놓고 다른 것들 이야기 하자. 일단 첫 트랙, 상당히 좋았어. 가사는 어떤 느낌으로 하고 싶어? 생각해 둔 게 있니?”

“제가 가사 붙이면 안 되는 거죠?”

아무래도 자신이 쓴 가사를 꼭 붙이고 싶은 가보다.

“그럼 이렇게 하자. 10개의 앨범 중에 작사까지 하는 건 딱 하나, 나머지 9개는 작사가를 붙여줄게. 됐지?”

“하나요? 그럼 제가 10개 중에 작사하고 싶은 걸 골라야 해요?”

“그렇지. 이 정도면 괜찮은 제안 아니냐?”

“으음… 알았어요. 이번에 제가 작사한 노래가 잘 나가면 대표님도 생각을 바꾸시겠죠. 제 작사 실력이 예전과는 또 달라졌다는 걸.”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새침하게 말하는 그녀는 진정 귀여웠다. 나중에 이런 모습을 예능에서 많이 보여주면 지금보다 더 큰 사랑을 받게 될 거다.

“그래서 어떤 거?”

“다섯 번째 곡으로 할게요. 그럼 그건 무조건 앨범에 넣어 주시는 거죠?”

“일단 다시 들어보자.”

호준이 다섯 번째 트랙을 들려주자 느리고 서정적인 발라드 느낌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이걸로 하겠다고? 흐음… 사랑 노래로 할 거니?”

“네, 들으면 막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가사를 쓰고 싶거든요.”

나이도 어린 유니가 그런 가사를 잘 쓸 것 같지는 않았다.

“무리하는 거 아니냐? 연애 경험도 별로 없을 나이인데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겠어?”

“원래 서울 가본 사람보다 안 가본 사람이 더 잘 아는 거예요.”

“훗,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어?”

“으흠! 어쨌든 기대하세요, 히히.”

그렇게 정해지고 20개의 멜로디 중에 앨범에 수록될 10개의 멜로디를 하나씩 정했다. 그 과정만 무려 열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하나하나 선정하고 어떤 느낌의 가사를 쓸 건지에 관해 의견을 나누느라 오래 걸렸다. 특히 마지막 10번째 트랙을 남겨두고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음날, 새벽부터 샵에 들른 유니와 그녀의 매니저인 세동과 같이 드라마 ‘승냥이’ 촬영 현장으로 향했다. 여대생 역을 맡았기 때문에 샵에서 평소 그녀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메이크업으로 준비했다.

“오셨어요? 어이쿠, 유니 씨, 반가워요.”

강 피디가 환한 웃음으로 유니를 반겼다. 파인 엔터에 들어오고 첫 연기를 하는 유니는 살짝 긴장된 얼굴로 인사하며 서울에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선 대사는 다 외웠어요?”

“네.”

“그럼 일단 카메라 동선이랑 대사 좀 맞춰 볼까요?”

평소에 유니 팬이었는지 헤벌쭉 웃는 강 피디는 그녀를 이끌며 미리 대기하고 있던 상욱에게 이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