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07화 (10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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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성공하고 싶은 이유(3)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살짝 눈치를 보는 강 피디를 보니 뭔가 부탁할 일이 있나 싶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까메오가 가능할까 해서요.”

“까메오요?”

보통 드라마를 홍보할 때 종종 까메오를 언급하며 기사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으로 홍보효과를 누리려면 상당한 인지도가 있는 배우가 출연해야 하는데 당장 머릿속으로는 유지나 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네.”

“그럼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혹시 유지나 씨 가능할까요?”

“아… 죄송하지만 유지나는 지금 영화 출연 계약이 마무리 된 상태라서 현재 준비중입니다. 참여하면 저희도 좋지만 이번에는 정말 힘들 것 같네요.”

“그래요? 아이고…”

대놓고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니 더 미안해졌다.

“그런데 어떤 역으로 생각하셨는데요?”

“아, 이번에 연쇄살인 피해자로 대사 몇 마디가 있는 역이 있는데 이걸로 까메오를 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많아서요. 유지나 씨면 정말 완벽하겠다 싶었죠. 그럼 혹시 김별 씨는 안 될까요?”

자꾸 안 되는 사람들만 물어보니 더욱 미안해진다.

“아… 죄송해서 어떡하죠? 별이도 이번에 드라마 출연 확정하면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요? 큰일이네. 어떡하지?”

“이동원 씨 소속사에 물어보셨어요?”

“그럼요. 당연히 물어봤는데 그쪽이 원래 남자배우들이 많잖아요? 여배우가 몇 있긴 한데 배역 자체가 굉장히 어린 여성이라 도저히 이십대 후반 이상의 여배우로는 힘들 것 같아서요. 유지나 씨는 이십대 중반이긴 하지만 동안이라서 괜찮았고 딱 좋은 게 김별 씨 정도인데…”

“역할이 간단한가요?”

“그럼요. 대사 몇 마디가 있긴 한데,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죽는 장면도 하체만 찍을 거라 큰 부담 없이 가능한데…”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며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게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주었으면 하는 것 같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배우가 없네요. 남는 사람이 가수뿐이라…”

순간 번뜩이며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우현은 뒤돌아 가는 그의 팔을 잡았다.

“혹시 배우는 아니지만 가수는 안 될까요?”

“가수요? 아이돌? 김 대표님 아이돌도 키우세요?”

민상욱을 캐스팅할 때 파인 엔터 소속배우들의 프로필 책자에는 유니가 끼어있지 않았다.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캐스팅을 위한 프로필 책자에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유니라고 아세요? 왜, ‘그 양반 같은 자식’이라는 드라마에서 OST인…”

“알죠, 그럼요. '그대는 아나요?‘ 불렀잖아요. 이 바닥에서 유니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박 피디는 갑자기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환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하. 그렇죠? 사실 유니가 연기를 몇 번 해보기는 했는데 별이처럼 전문 연기를 하지는 못합니다. 그냥 연기공부를 해본 적 없는 아이돌이라고만 생각하시면 되는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조심스레 물어보는 우현의 질문에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럼요. 말했다시피 그렇게 깊은 연기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심한 발연기는 안 되겠지만 유니 씨는 아주 약간이라도 연기를 해봤다고 하셨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뭐, 정 안되면 대사를 줄이고 줌아웃으로 밀어버리면 표정 연기는 어느 정도 커버 될 수 있습니다.”

사실 굳이 유니를 출연시킬 필요는 없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민상욱을 위해서였다.

이제 첫 드라마에 도전하는 상욱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시청률과 관심을 받게 하기 위해 현재는 음악 작업 외에 거의 모든 스케줄을 안 받고 있는 유니가 잠시만 와서 도와준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잘 됐네요. 뭐, 찍다보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숙련된 연기는 아닐 겁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 드려야죠. 그럼 스케줄 확정되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에 1, 2회 촬영과 편집까지 끝낸 상태에서 제작발표회를 진행할 겁니다. 너무 늦는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케이블 드라마다보니 아무래도 지상파 드라마와는 달리 준비할 게 있네요.”

로코물도 아니고 장르물이다 보니 아무래도 제작발표회 때 1, 2회 촬영분으로 편집한 영상을 보여줄 모양이다. 요즘은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기자들이나 시청자들이 민재원 동생의 연기를 많이 궁금해 할 텐데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도 좋죠. 저는 불만 없습니다.”

“하하, 다행이네요. 상욱 씨가 김 대표님께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 알까요?”

웃으며 말했지만 이상하게 뼈가 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떠올랐다.

“배우들에 대한 믿음이 많이 없으신가 봐요?”

“흠… 뭐라 그럴까? 그냥 제가 조금 예민한 편이라서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원래 예술하는 사람들이 예민하기도 하고 까칠하기도 하잖아요? 하하.”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상당히 특이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강 피디를 비롯한 나머지 스태프와 인사하고 돌아오며 상욱을 찾으니 어느새 제작팀의 메이크업아티스트에게 얼굴을 맡기고 있었다.

“대사 연습은 많이 했어?”

“물론입니다. 툭 치면 나올 것 같아요.”

상욱이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그리 긴장하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이번에 유니가 까메오로 참여할 거야.”

“네? 정말요?”

“응, 강 피디랑 이야기 해 놨어. 네가 죽여야 하는 여자로 나올 텐데 연기를 별로 해보지 않았으니까 나중에 현장에서 마주치면 호흡 잘 맞추도록 하고.”

“우와… 요즘 유니가 대세던데 진짜 잘 됐네요. 그런데 어떻게 스케줄이 됐나 봐요?”

“요즘 앨범 준비하고 있어서 꼭 필요한 스케줄 아니면 대부분 회사 녹음실에서 곡 만들고 있거든. 강 피디가 마침 까메오 찾길래 추천했지.”

“감사합니다. 유니 씨도 익숙하지 않은 걸 하려면 힘들 텐데…”

“그러니까 그 때 되면 잘 맞춰줘”

이후 상욱의 촬영을 지켜보며 연기 상태를 체크하는데 전에 보여줬던 모습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 안심할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나중에 찍는다고 하니 다시 와서 구경하고 싶을 정도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녹음실에 가보니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와 있었다.

“네가 여기에 왜 있어?”

별이는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현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한복 맞추려고 왔다가 윤정이랑 오랜만에 이야기 좀 하려구요.”

별이는 유니라는 이름이 영 어색한지 유니의 본명인 윤정이로 불렀다.

“대표님은 뭐, 언니가 탈출한 것처럼 그래요?”

별이와 유니의 대답에 괜히 흥분했다고 생각하며 슬쩍 눈길을 피했다.

“아니, 그냥 물어본 거였지. 난 한창 연기 연습하고 있을 줄 알았거든. 상준이는?”

“상준오빠는 음료수 사러 갔어요. 윤정이가 목마르다고 해서요.”

“그래, 잘 왔다. 온 김에 유니 심심해했으니까 조금 말동무 하다 가. 맞다, 이번에 유니가 현재 촬영 들어간 ‘승냥이’에 까메오로 들어가기로 결정됐어. 네가 조언 좀 해주든가.”

“까메오요? 저 연기하는 거예요? 우와!”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놀란 건지 모르겠지만 두 손을 꼭 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유니는 별이와 눈을 맞췄다.

“유니가 까메오로 들어간다구요? ‘승냥이’라면 이번에 우리 회사에 새로 들어온 상욱 오빠 작품이죠?”

별이에게 전에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바빠서 같이 소개시켜주지는 못했다.

“응, 가벼운 역은 아니야. 살해당하는 역할이거든.”

“그런데 왜 그런 역을 유니에게 주셨어요?”

별이는 유니가 죽는 역을 맡는 게 마음에 안 드나보다.

“첫째는 상욱이에게 도움을 주려는 거고 유니한테도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가수도 어떻게 보면 연기를 하는 거거든. 그러려면 표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지. 짧은 역할이지만 도움이 될 거야.”

“대박! 저 잘 할 수 있어요.”

어쩌면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니는 살해당하는 역할이라는 것에 더욱 좋아했다.

“뭐야? 넌 꼭 이상한 데 꽂히더라.”

“언니, 내가 추리소설 좋아한다고 얘기했었지? 내가 만약 연기자가 되면 셜록홈즈 같은 역을 맡고 싶었거든. 그러니까 죽는 역도 괜찮아. 기대되는데? 어떻게 죽는 게 인상에 남을까?”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반응에 마음이 놓여 웃음을 지으며 나가려는데 유니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언니 좋아하는 남자 생겼대요!”

“야!”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별이가 유니를 향해 눈을 흘기고 있다.

“히히. 뭐 어때? 언니가 아니라 그 남자가 좋아하는 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영문을 알 수 없어 물어보니 유니가 속사포처럼 일러바친다.

“글쎄, 이번에 발리가서 촬영했을 때 남자 모델이 언니한테 한번 만나보자고 했는데 언니가 꽝! 차버렸대요. 대표님도 봤죠? 어땠어요? 멋있어요?”

역시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둘 사이에 뭔가 이야기가 오갔나보다. 그런데 왜 숨겼을까?

“주호 말하는 거야?”

“아… 별 거 아니에요. 조금 귀찮게 굴길래 알아서 잘 이야기했어요.”

남자라는 존재들 중에는 간혹 이야기만으로 끝을 볼 줄 모르는 이들이 있기에 그녀의 말을 쉽사리 믿기 힘들었다.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언제 그런 이야기까지 나눈 거야?”

“촬영 중에 있었던 일인데 잘 마무리 했어요. 그리고 사실 제 스타일도 아니었어요. 너무 바람둥이 같았단 말이에요.”

“지금은 귀찮게 안 하고?”

우현의 물음에 별이가 멈칫하며 대답을 못하자 역시나 유니가 다시금 그 작은 입을 놀리며 일러바친다.

“어떻게 알았는지 언니한테 문자가 왔대요.”

“너! 자꾸 그러면 이제 이야기 안 할 거야!”

“잇힝,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지? 응응?”

별이가 눈썹을 세우며 노려보자 유니가 그녀의 품을 파고들며 애교를 부렸다.

“연락을 해 왔다고? 어떻게 알았지? 네 연락처를 아는 곳은 몇 되지 않는데? 상준이가 알려주지는 않았을 테고.”

별이를 포함해 연예인들의 개인 핸드폰은 어지간해서는 절대 외부에 알려주는 일이 없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매니저들이 사랑의 연결고리가 되는 일이 많아 번호를 알려주는 경우가 있긴 하다.

“아마 ‘채널’쪽 스태프한테 들었나 봐요. 전에 저에게 개인적으로 명품 선물을 몇 개 보내오면서 연락처를 알려준 적 있거든요.”

쑥스럽게 이야기 하는 걸 보니 회사 몰래 선물을 몇 개 받았나보다. 종종 소속사 몰래 선물을 주고는 하는데 그건 개인적으로 부탁할 일이 있다거나 연예인 측에 친분을 다져놓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계약을 한다거나 행사가 있을 때 사측과 유리한 계약이나 행사 초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들고 있던 핸드폰을 우현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 살펴보니 톡으로 짤막하게 나눈 대화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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