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99화 (9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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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 계약, 그리고 오디션(3)

경수는 수첩을 빠르게 훑더니 잽싸게 답한다.

“피디는 전에 ‘나쁜 인간들’을 만들었던 강병석 감독이고, 작가는 ‘나쁜 건달들’과 ‘미제사건 수첩’을 썼던 유민건 작가입니다.”

“둘 다 장르물 쪽으로는 경험이 있네.”

“네. 어설프게 로맨틱 코미디 쓰다가 장르물 한번 써보자고 하는 작가는 아닙니다. 게다가 ACN이 이런 쪽으로는 몇 년간 꾸준하게 밀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괜찮은 것 같네. 수고했어. 내가 그쪽 사람들하고는 얼굴을 익힌 적이 없어서 손을 대지 못했는데 알아서 이렇게 좋은 배역을 따 내고 왔네.”

이상한 작품 하나 걸린 줄 알았는데 나름 괜찮은 작품을 물어오긴 했다. 기본적으로 선한 인상을 가진 상욱인 만큼 이 작품에서 큰 임팩트를 보여준다고 해도 계속해서 악역으로 남을 가능성은 없다. 잘하면 잘 할수록 그의 연기력이 부각될 것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 하러 지금 시간에 사무실로 온 거구나?”

“네. 이왕 왔으니 술 한 잔 하실까요?”

우현이 웃으며 좋은 배역을 따냈다고 칭찬하자 상욱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손가락으로 소주잔 젖히는 포즈를 취했다.

“하하. 그래, 가자! 다이어트는 내일 또 하고 소고기 마음껏 먹자. 그리고 경수는 그 쪽에다 미리 연락해서 시놉시스 구해다 놔. 혹시 대본 나온 거 있으면 달라고 하고.”

아무리 믿을 만한 작가라고는 해도 시놉을 봐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상욱이 것 말고 대표님 따로 보실 수 있도록 하나씩 더 구해 오겠습니다.”

“그래.”

셋이서 술을 진탕 먹고 난 후 오피스텔에 돌아왔을 땐 새벽 2시가 넘어 있었다. 결국 우현은 오바이트를 두 번은 더 하고 난 뒤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대표님, 얼굴이 왜 그래요? 얼굴이 퉁퉁 부었네?”

“아, 민주씨 어제 내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

평소보다 붉어진 혈색에 퉁퉁 부은 눈은 누가 봐도 어제 과음을 한 얼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침 안 드셨으면 나가서 해장국이라도 하고 오세요. 오늘 점심에 미팅 있으시다면서요? 그 얼굴로 가기는 좀…”

“그렇지? 역시 민주씨는 마음이 넓어. 내가 얼른 한 그릇 하고 올게.”

근처 잘하는 황태해장국으로 속을 달랜 우현이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상욱과 경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놉시스 가지고 온 거야?”

경수의 손에는 A4 용지 한 묶음이 들려 있었다.

“네, 일단 대본은 아직 못 받았구요. 시놉만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로 대표님께 연락 준다고 했습니다, 계약하자구요.”

“이 드라마는 ACN에서 만드는 건가?”

“네. 방송국 자체 제작입니다. 그래서 편성쪽으로는 문제 될 게 없어 보이네요. 특히 CS 계열 회사인 ACN 특성상 재방을 자주 때릴 것이기 때문에 회당 출연료는 적더라도 재방으로 꽤 괜찮은 수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첫 방에 비해 재방일 때 받는 출연료는 20%대, 삼방 이상일 때는 10%내외를 받지만 그것도 자주 하다보면 은근 큰 수입원이 된다. 특히 CS가 가지고 있는 십여 개의 방송사에서 돌아가며 재방을 계속 해주면 지상파의 재방송율보다 훨씬 많은 재방을 틀게 되기 때문에 수익이 상당하다.

“이 바닥 들어온 지 얼마 안됐는데 공부 좀 했네?”

“아… 상욱이 형이 아직 스케줄이 많지 않아서 시간이 좀 있었어요.”

쑥스럽게 웃고 있지만 안 보는 사이에 꽤나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안다.

“그럼 오늘은 뭐 해? 오디션 합격했으니까 추가 오디션 볼 일은 없을 테고…”

“점심 먹고 학원 갔다가 시놉 받은 걸로 캐릭터 분석 좀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상욱이 답했다. 오디션에 합격했기 때문이지 전에 살짝 보이던 그늘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드디어 드라마를 찍을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아마 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것이지만 얼굴은 우현과는 다르게 굉장히 좋아 보였다.

“그래. 너는 어째 같이 술을 마셔 놓고도 그렇게 멀쩡하냐? 부럽게시리… 속도 편하지 않을 텐데 너희도 얼른 나가서 해장국이라도 먹어라.”

그들을 보내 놓고 점심이 되자 ‘도마뱀 미디어’ 사무실로 향했다. 별이의 출연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오셨어요? 그런데 김별 씨는…?”

손에 계약 서류를 들고 동분서주하는 지여울 제작 피디가 우현을 반겼다.

“지금 매니저랑 오고 있을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사무실 문을 열고 별이와 상준이 들어섰다. 별이는 방금 촬영을 하다 와서 그런지 헤어, 메이크업을 완벽히 하고 있었는데 지 피디가 그런 그녀를 격하게 반겼다.

“어머어머! 별이 씨 너무 예뻐진 거 아니에요? 몇 달 지났다고 벌써 카메라 마사지를 이렇게 받았대?”

“아하하! 감사해요. 지 피디님도 정말 예쁘세요. 진짜로 피디님들 중에 지 피디님만큼 예쁜 사람은 본 적이 없다니까요? 내 말 맞지?”

“어? 어.”

급작스런 별이의 물음에 상준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우현은 피식 웃으며 정신없는 그들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촬영은?”

“네, 오늘 미리 스케줄 얘기해놔서 은하 씨께서 양보해주셨습니다.”

“그럼 지금은 은하가 촬영하고 있겠네?”

“네.”

“이제 며칠 남았어?”

“이제 30씬 정도 남았는데 그 중 별이가 등장하는 씬만 계산하면 삼일 정도 됩니다. 감사하게도 은하 씨께서 말도 안했는데 미리 별이 촬영은 앞으로 몰아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하에게 직접 부탁하려 하다가 너무 속보이는 짓인 것 같아서 그만 두었는데 고맙게도 알아서 편의를 봐주었다. 따로 만나서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그래, 수고했다.”

별이는 이번 계약에 회당 천만 원에 계약하며 그동안 높아진 인지도와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아마 여주를 별이로 했다면 지금보다 최소 두 배는 더 넘게 받았을 테지만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이 작품이 방송된 후에는 자연스럽게 미니 여주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계약을 마치고 우현은 별이와 상준이 점심을 먹이고 집으로 보낸 후 느긋하게 앉아 상욱이 전해준 시놉시스를 훑어보았다.

작중 가장 악의 축으로 나오는 이는 정치인 한길수라는 인물로, 그의 온갖 더럽고 추잡한 일들을 처리해 주는 일을 바로 그의 오른팔인 배형준라는 인물이 한다. 그 배형준 배역을 바로 상욱이가 맡았다는 건데, 냉혹한 해결사 역할을 어떻게 상욱이 표현해낼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후 늦은 시간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우현입니다.”

“안녕하세요. ACN 드라마제작실에서 ‘승냥이’ 진행하고 있는 강병석 피디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오디션 합격됐다는 말은 들으셨죠?”

“네, 들었습니다. 상욱이가 많이 부족한데 중요한 배역을 맡겨주시니 뭐라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는요, 민상욱 씨가 워낙 연기를 인상적으로 해서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특히 그런 선한 인상으로 그려내는 해결사의 모습이 정말 기대됩니다. 일단 만나서 계약을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언제가 좋을까요?”

“모레 시간 괜찮으십니까? 점심 어떠세요? 회사 근처에 맛있는 낙지볶음집이 있는데 날씨가 쌀쌀하니 딱 좋을 것 같은데요? 반주로 소주도 곁들이면 더욱 좋구요.”

“낙지볶음에 소주 좋네요. 그럼 그 때 뵙죠.”

피디가 주당인지 점심부터 술을 하자고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역시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자유로움은 정말 부럽다.

남은 이틀간은 별이와 지나의 촬영장에 번갈아 들르며 응원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유니는 전국을 돌며 행사를 뛰느라 얼굴도 보지 못한지 근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계속해서 몰려드는 스케줄 때문에 밥 한 번 먹자는 약속도 몇 번이나 취소해야 했다.

사실상 파인 엔터의 기둥이 된 유니는 어느새 네티즌들로부터 소녀가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회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하는 소녀의 이미지까지 얻고 말았다.

[솔로가수 유니, 벡스코에 뜨다]

부산 벡스코에 행사를 간 유니를 포착한 기자에 의해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진이 포털에 뜨자 그 기사에는 쉴 틈 없이 행사를 뛰는 그녀를 안타까워하는 댓글들이 많았다.

[우리 유니 좀 쉬게 해주세요.]

[소녀가장이네. 이래서 회사를 좋은 데 가야 함.]

[사장이 돈독이 올랐네. 그만 좀 돌리지. 이러다 애 잡겠음.]

이런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스케줄을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스케줄이 밀려들다 보니 이제 곡 하나 부르는데 천만 원까지 올라 하루 매출을 8천만 원까지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는데 아무래도 욕심을 부린 듯싶다.

“나야. 아무래도 스케줄을 조금 줄여야 할 것 같아.”

“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한창 벌어야 이후 유니 앨범도 낼 수 있잖아요?”

우현의 전화에 세동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는 듯 의문을 표했다.

“아니야. 지금 번 돈으로도 유니 앨범은 만들 수 있어. 앞으로 유니한테 들어오는 행사는 웬만하면 받지 말도록 해. 방송국이나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행사만 가도록 해.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피곤에 절었을 텐데도 서운한 것 같다. 아직 인센티브를 받을 위치가 아닌데도 그러는 걸 보면 참 고마웠다.

“앞으로 돈 벌 일 많아. 그러니까 유니한테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오늘은 부산에서 자고 창원이랑 광주 들렀다가 올라갈 겁니다.”

“그래, 수고해라.”

전화를 끊고 업무를 보다 ACN 방송국이 있는 상암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강병석 피디는 모델처럼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하고 있어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니, 피디님이 이렇게 잘 생겨도 되는 겁니까?”

“피디라고 이렇게 생기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하하하. 술 하시죠? 이 집이 낙지볶음 기가 막히게 합니다.”

우현은 술이 약하기 때문에 한잔만 입에 댔지만 그는 밥을 먹는 내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알고 보니까 상욱씨가 민재원씨 동생이더라구요?”

“네, 저도 사실 민재원씨랑 만날 기회가 있어서 만났다가 우연찮게 상욱씨를 보게 됐던 겁니다. 그래서 연기자가 되는 게 어떻겠냐고 꼬셨죠, 하하.”

“그래요? 굉장한 안목이신데요? 사실 상욱씨가 오디션 보러 왔을 때 눈에 들어오는 외모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조각같이 생긴 외모들이 널렸잖아요.”

이건 기분 나쁠 게 아니라 사실이라고 스스로도 인정한다. 상욱보다 더 조각같이 생긴 배우들이 아직도 데뷔 한번 못하고 오디션을 떠도는 일은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상욱의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그가 가진 선한 마스크와 이에 대비되는 남모를 존재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연기를 시작하니 달라 보이더라구요. 마치 그 오디션에 촬영하는 드라마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느낌으로 임한다고 할까? 이후에도 오디션은 계속됐지만 사실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없었어요.”

“이거 우리 상욱이를 이렇게 칭찬해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하하, 잘 해보자는 거죠. 사실 전 배우들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욱 씨 빼고 김 대표님과 밥을 먹자고 한 거죠. 신인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속에 있는 연기 혼이라도 불러올 것처럼 하다가 조금 뜨고 나면 본인 말고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거든요.”

왠지 뼈있는 말이다.

“상욱 씨는 안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렇게 안목이 좋은 우리 김 대표님을 위해 건배 한 번 하죠. 우리 친해집시다.”

소주잔을 다시 한 번에 털어 넣는 강병석 피디의 눈은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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