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82화 (8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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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 새 영화 시작(1)

어젯밤 그 일로 인해 다음날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기억도 안 나고 한숨도 자지 못해서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왔다.

“어머,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 잠을 못 주무셨나?”

“크흠… 아, 민주씨 이번에 ‘채널’에서 입금된 돈 세금 정산하고 별이에게 잘 보내줘요.”

민주의 의아한 시선을 은근슬쩍 피하며 말을 돌렸다.

“안 그래도 들어오자마자 보내줬어요.”

“잘 했어요. 역시 민주씨 최고… 크흠… 저는 피곤하니 잠시 사우나 좀 다녀올게요.”

“사우나에서 주무시다가 못 일어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오피스텔에 들어가세요.”

의아함이 가득 담긴 그녀의 눈빛에 진짜 오피스텔에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접어버렸다.

“크흠… 그럴 수야 있겠어요? 갔다 와서 점심이나 같이합시다.”

사우나에서 씻고 누웠다. 다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휘감자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 은하에게 연락이 와 있나 확인하니 아무것도 온 것이 없다.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으니 어제 그 당시가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스쳐가, 온 몸이 찌르르 전기가 통한 듯이 간질간질 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병신, 넌 병신새끼다.”

어쩔 수 없었다. 은하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는데 그 이상 진도를 나가면 범죄 아닌가? 그래도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아쉬움과 나른한 행복감에 젖어 잠이 든 우현은 핸드폰 진동음에 눈을 떴다.

‘타이거 스튜디오!’

얼른 전화를 받으니 윤석의 목소리가 상당히 흥분되어 있었다.

“김 대표님,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되세요?”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5통이나 됐다. 물론 모든 전화가 ‘타이거 스튜디오’다. 시간을 보니 벌써 3시. 민주가 혼자서 점심을 먹으며 코웃음을 쳤을 게 분명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나보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30억 투자 모두 확정됐습니다.”

“진짜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아무리 은하가 투자한 10억이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 빨리 진행되다니…

“큰 손이 들어왔어요. 우주창업투자라고 아시죠?”

“네, 알고 있어요. 영화 쪽에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이긴 한데… 거긴 블록버스터 위주로 투자하는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아예 그쪽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았는데 아 글쎄, 그쪽에서 연락이 먼저 오더라구요. 그래서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5억은 다음 주 중에, 그리고 나머지 10억은 크랭크인 들어가면 집행하기로 확정됐습니다.”

5억은 개인투자자에게 받은 것 같다. 5억이라는 돈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닌데 생각보다 수완이 좋다.

“잘됐네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답니까?”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은하씨가 10억을 투자했다는 소문이 벌써 충무로에 돌고 있어요. 아직 조심스러워서 기사하나 안 내보냈는데 마이더스 쪽에서 이야기가 샜나 봐요. 거기도 궁금했겠죠. 자기네 배우가 대뜸 10억이나 투자한다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다. 자칫하면 어디서 사기당할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해도 알아는 봐야 하는 게 소속사의 입장이다. 그리고 사실 연예인들이나 운동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잘 모르기에 사기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소속사에서 민감하게 생각할 만하다.

“그래서 마이더스 쪽에서는 별말 없습니까?”

“별 말 없는 게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는 모양이에요. 안 그래도 주인공 스승 역할로 백윤건 선생님을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마침 백윤건 선생님이 마이더스 소속이라서 캐스팅 하는 데는 문제없겠습니다. 임 감독도 극본이 거의 완성단계라고 하니 크랭크인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늦어도 이번 달 말에는 촬영이 시작될 겁니다. 은하씨가 입금한 10억으로 스태프 확정 지었고 로케이션 진행 중인 데다가 이미 연주회 촬영할 장소까지 대관해놨거든요.”

“그럼 별이 스승으로 괜찮은 배우 하나만 물색하면 되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식사 자리 한번 같이하시죠?”

“식사 자리요?”

“네. 우주창투에서 김 대표와 같이 식사 한번 하자고 하네요.”

어쩐지… 그 정도 소식으로 부재중 통화를 5번이나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주창투에서 왜 저와 식사를 하자고 합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들어가는 영화 ‘피아니스트’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임 감독이 제목 때문에 고심했지만 결국 제목을 ‘피아니스트’로 하기로 결정했다.

“흠… 그래요. 언제 먹는 건가요?”

“오늘 저녁입니다. 남산 하야타 호텔입니다. 7시까지 오셔서 연락 주세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얼른 옷을 갖춰 입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민주가 입꼬리를 묘하게 올리며 말한다.

“그러게 집에서 푹 주무시고 오라니까요.”

“크흠… 중간에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일 때문이었다니까요.”

사무실에 앉아 핸드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결국 은하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뭐해?]

무려 30분이나 지나서 온 그녀의 답장은 언제나 그랬듯 시니컬했다.

[오늘부터 레슨이라고 했잖아. 연습해야 하니까 밤에 연락해.]

그래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보다 더 많이 귀여워 보인다는 정도?

‘은하가 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달라진 거겠지.’

영화 끝날 때까지는 얼굴 보기 힘들 거다. 아무리 6년간 피아노를 쳤다고는 해도 영화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촬영 중에도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 바로 연기에 잡생각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밤에 핑계를 만들지 않고 연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저녁이 돼서 남산 하야타 호텔에 도착해 연락하니 이미 로비에 도착해있던 윤석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임 감독님은요?”

“아, 임 감독님은 이 자리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랑 대표님만 자리하는 겁니까?”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아무래도 김 대표님과 만나고 싶은가 봅니다.”

“저 혼자요?”

“물론 식사는 같이하겠지만 따로 이야기할게 있을 것 같네요. 일단 들어갈까요? 로비에서 작전타임을 가질 것도 아니잖습니까?”

“하하, 그렇죠. 갑시다. 어디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먹고 봅시다.

“당연하죠. 전 점심도 안 먹었습니다.”

윤석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호텔 일식당으로 들어섰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가 기를 죽였는데 직원의 안내를 받아 한쪽 룸으로 들어서니 40은 넘어 보이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그들을 맞았다.

“김우현 대표님이시라구요?”

“반갑습니다. 우주창투 한석민입니다. 사장직을 맡고 있어요. 여기는 이미선 상무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파인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우현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윤석씨도 앉으시구요.”

투자를 담당할 실무자가 아닌 사장과 상무가 직접 왔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얼떨떨한 마음에 자리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이 줄줄이 들어왔다.

“배고프셨죠? 일단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하죠. 여기 괜찮은 술도 있으니까 같이 드십시다. 술은 좀 하세요?”

“네, 약간 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안주도 좋은 때는 더 하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한잔 받으시죠.”

술이 한 번, 두 번 돌고 나자 윤석이 자연스레 방을 나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한석민 사장이 냅킨으로 입을 슬쩍 닦으며 말한다.

“이번에 ‘피아니스트’ 시나리오 잘 봤습니다.”

“그건 임 감독님이 만드신 건데 저에게 잘 봤다고 해 봐야…”

“그걸 살려내신 분이 김 대표님 아닙니까? 누구나 진흙 속의 진주를 찾고 싶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흙 속의 진흙만 찾는 게 바로 우리네 인생이죠. 그런 면에서 김 대표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 어떻게 알고…?”

이상했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SN 엔터의 우 부장처럼 어렴풋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처럼 노골적이라면 분명 무슨 정확한 심증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이를테면…

“강진벽 사장님 아시죠?”

강진벽, 우현을 이 바닥에 들어올 수 있게끔 해준 은인이라면 은인인 파인 엔터의 전 사장.

“네, 알죠. 모를 수가 없죠. 제가 모시던 사장님이셨으니까요.”

“강 사장님께서 어찌나 우현씨를 칭찬하시던지… 하하하. 강 사장님 아니었다면 이번 ‘피아니스트’도 놓칠 뻔했지 뭡니까? 하하.”

“사실 강 사장님께서 저희 우주창투 사장님의 매형 되시거든요.”

옆에 앉아 있던 이미선 상무가 말을 보탠다.

“그런가요?”

시간이 갈수록 엉덩이에 못이 박힌 것처럼 앉아있기 거북해져 갔다. 강진벽이라는 이름이 그의 가슴을 내리눌렀기 때문이다.

“네, 사장님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솔직히 은하에게 과거 얘기를 들은 이후로는 사장에게 예전 같은 존경심이 생기지 않았다. 단지 벌레들이 돌아다니는 그 좁은 고시원과 끝없이 이어진 개미굴과 같은 인생을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것만은 인정할 뿐.

“그럼요. 얼마 전에 만났을 때는 말도 잘 하시고 개를 끌고 산책도 다니십니다. 정정하세요.”

“그렇군요.”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은하씨와 관련된 이야기도 들었구요.”

“은하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김 대표님이 유은하씨를 톱스타로 키워내기까지의 과정이라고 할까요? 하하. 듣는 내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인재라고 칭찬이 자자하셨습니다. 당신의 몸이 상하지 않았다면 아마 회사를 키웨스트나 마이더스와 버금가는 매니지먼트사로 만들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과찬입니다. 사람은 지난 일은 더 좋게 포장하려고 하잖아요. 일명 과거 보정이라고나 할까요? 사장님께서 저를 지나치게 띄워주셨네요.”

“하하하. 김 대표님, 저희가 아무리 사장님의 칭찬이 자자했다고는 해도 아무 조사 없이 이 자리에 나왔겠습니까? 엄연히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흠… 혹시 저에게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그렇게 물으시니 저희도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회사를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으십니까?”

“회사를 더 크게 키운다는 게…”

옆에 앉아 있던 이미선 상무가 하얀색 파일을 건넸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열어보니 우주창투에서 만든 투자계획서였다. 바로 파인 엔터에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자금이 무려 30억. 단계적 자금이라 1년에 10억씩 3번에 걸쳐서 투자하는 형태였다.

“파인 엔터에 투자하고 싶으신 거군요. 그럼 이렇게 돌려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는데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허탈하게 웃는 우현의 모습에 이미선 상무와 한석민 사장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어째서죠?”

“죄송하지만 저는 투자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차라리 빌려주는 것이라면 이자를 쳐서 갚을 용의는 있지만 약간의 지분이라도 내놓을 생각이 없거든요.”

“하하하, 이상하군요. 요즘 회사 중 지분을 100% 사장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물론 없죠. 알고 있습니다. 흠… 저는 그렇습니다. 비상장 엔터사에서 투자를 받으면 꼭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구요. 경영에 종종 간섭하는 건 물론이고 소속 배우를 밥 먹는 자리에 데리고 나오라고 하던지, 회식에 부른다든지… 더 심한 경우도 있구요. 물론 사장님과 상무님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회사를 세우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게 그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이 제안은 없던 것으로 해야겠네요.”

우현이 그 파일철을 상무에게 되돌려주자 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 대표님, 저희가 ‘피아니스트’에 투자한 것은 파인 엔터에 대한 투자를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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