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71화 (7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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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한 걸음 더 나아가다(2)

드라마가 끝난 뒤, 분위기 좋게 종방연을 가졌다. 별이는 드라마에 나왔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청바지에 흰 티셔츠 하나만을 입고 참석했는데 그 새로운 모습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우현은 별이와 윤 작가만을 데리고 따로 회식 자리를 가졌다. 청담동의 작은 와인바에 앉은 그들은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저랑 계약하기를 잘하셨죠?”

“응. 이 말이 그렇게도 듣고 싶었어? 김 대표도 은근 칭찬받는 거 좋아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저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래, 이게 다 김 대표 덕이다. 하하하.”

“그렇죠? 장담하건대 이제 윤 작가님 몸값으로 최소 회당 6천 이상은 불러야 작가님을 미팅 자리에 앉힐 수 있을 겁니다.”

“회당 6천이요? 우와, 16부작이면… 9억6천? 대박!”

듣고 있던 별이가 끼어들어 안 해도 될 계산까지 했다.

“얘, 그중에 20%는 김 대표가 가지고 가니 다 내가 받는 건 아니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얘.”

“어머, 작가님 저는 그것도 부러워요.”

“얘, 너는 이제 신인이잖니? 너도 유은하처럼 뜨면 김 대표에게 돈 더 달라고 해. 그쯤 되면 돈 더 달라고 해도 돼.”

“으아! 진짜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막상 그렇게 되면 달라질걸? 호호호. 그나저나 김 대표.”

“네?”

“나 다음 작품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여행 좀 떠나 보려고. 괜찮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따로 여행을 간다고 했으니 못 해도 석 달은 작품생각 하지 않고 한국을 떠나있겠다는 말. 차기작이 언제 나올까 내심 기대했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코 얼굴에 섭섭한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그럼요, 다녀오세요. 고생하셨잖아요.”

“미안, 푸켓까지 다녀와 놓고 여행 간다고 말하려니 조금 민망해서 말이야.”

“여행은 자고로 가고 싶은 곳에 조용히 갔다 와야죠. 다녀오세요. 이제 우리 회사, 사람들도 많아지고 해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섭섭해지려고 하네? 이제 팔팔한 신인 작가 들어왔다 이거지?”

“아이고, 윤 작가님 또 질투하시네. 저는 한결같은 윤바라기라니까요.”

“그래. 나 질투 심하니까 너무 티 나게 그 친구 좋아하지 마, 호호호. 맞다, 이번에 갤러리스백화점에서 별이한테 가방 몇 개 줬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런 소문은 어떻게 알고 퍼진답니까? 진짜 조용하게 받은 건데.”

“내가 알고 있으면 이소은도 알고 있을걸?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게 지나갔네? 걔가 그렇게 마음이 넓은 애가 아닐 텐데… 사람이 변했나?”

“변할 리가요. 전에 제가 따로 만나서 단단히 얘기했었어요. 작품에 해되는 행동하지 말자고. 잘 알아듣더라구요.”

굴곡진 과정과 대화가 있었지만 그걸 다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머, 김 대표 의외로 여자 잘 다룬다. 걔가 그렇게 쉬운 애가 아닌데… 이제 보니 카사노바 아냐?”

“사실 제 꿈이 카사노바이긴 했습니다. 단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하하하. 이소은을 잘 다뤘다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게끔 한 겁니다. 저만 생각하면 이를 갈 걸요?”

“말이 쉽지. 재주도 좋아.”

“그러니까 작가님이 우리 회사에 들어온 거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여행 끝나고 돌아오시면 좋은 작품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흥, 부담돼서 여행도 못 가겠네. 걱정 마셔. 근사한 거 내놓을 테니까.”

그로부터 1시간을 더 마시다가 자리를 파하고 대리기사를 불렀다. 윤 작가를 먼저 집에 내려다 주고 별이의 집으로 향하는데 별이는 평소보다 조금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는 우현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아까 윤 선생님이 여행 간다고 해서 아쉬우신 거죠?”

“어? 어. 조금 그러네. 아까 내 표정 이상했니?”

한참 어린 친구 앞에서 표정관리를 못 한 것 같아 민망함을 느꼈다.

“아니요. 아까는 저도 깜빡 속았어요. 전혀 못 느꼈거든요. 많이 아쉬우세요?”

“사실 네 차기작을 그냥 윤 작가님 작품에 넣으려고 생각했었거든. 가장 확실하고 주연을 맡아도 뒤끝이 없으니까.”

“아… 벌써 주연 맡아도 되는 거예요?”

“걱정돼?

“당연히 주연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 게 맞지만 또 주연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욕먹을까 봐 겁나기도 하구요.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나오는 드라마들 중에 아이돌이 조연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연을 떡하니 차지하는 경우 있잖아? 다들 처음에는 욕하지만 평타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면 피디의 신의 한 수네, 어쩌네 하면서 다음 작품에 주연을 턱턱 맡게 되지.”

“그럼 왜 윤 선생님 작품을 꼭 하려고 했어요?”

“어?”

조수석에 앉은 우현이 고개를 돌려보니 별이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 한 번 믿어 봐요. 이번에도 잘해낼게요. 그러니까 윤 선생님에게만 기대지 말아요. 꼭 시청률 30% 이상 돼야지만 제가 톱스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연기력으로도 인정받고 싶어요.”

생각지도 못한 별이의 말.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지? 일단 들어가. 내일 이야기하자.”

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새로 옮긴 오피스텔에 도착해 씻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크지는 않아도 혼자 살기에 적당하고, 깔끔한 방에 이렇게 혼자 누워있으니 아까 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회사가 이제 커가는 중이라 수익에 도움이 될 만한 차기작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윤 작가의 여행이 아쉬웠는데 어느새 성장한 별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특한 놈…’

본래 걸그룹 출신이었기에 우현 자신조차도 별이의 연기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연기에 대한 욕심을 보이는 그녀가 오히려 더 대견했다.

문제는 차기작을 무엇으로 하느냐다. 이번만은 회사 수익을 포기하고 연기력을 인정받는 것에 올인하는 것, 또는 수익을 생각하면서 연기력도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것.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자를 선택하는 건 쉽다. 작품성은 있지만 대중성이 없는 작품은 충무로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런 안목은 자신이 아니라 누구라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목표는 별이의 연기력을 한층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작품성과 대중성까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작품을 찾는 것이다.

다음 날, 별이에게 오는 수많은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별이가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끝내자 무수하게 들어오는 캐스팅 문의 덕분에 작품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는 없다는 거다.

그렇게 작품을 고르는데 은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웬 전화야? 지금쯤 한창 영화 ‘그녀의 일기’ 찍고 있을 때 아니었어?”

“내 스케줄 알고 있었어? 관심 있는 척하는 거 아니야?”

뾰로통한 척 말하지만 목소리는 좋아 보였다.

“그런 척을 왜 해? 지금 점심때인데 밥은?”

“응. 현장에서 도시락 먹었어.”

“도시락 안 좋아하잖아?”

“몰라. 입맛이 변했는지 먹을 만하네.”

“현장은 어때? 찍을 만해? 이명선 감독이 안 치근대?”

이명선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에게 은근슬쩍 수작을 거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배우들이 그의 작품을 찍으려고 하는 이유는 작품성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흥! 내 성격 아는데 그러겠어? 현장도 좋아. 내용 자체가 너무 처지는 내용도 아니고… 내가 이 작품 한다고 하니까 다들 좋아서 죽으려 했어.”

“지 자랑은…”

“뭐! 사실이지. 그건 그렇고 SN이랑 무슨 일 있었어?”

그제야 전화 건 목적을 말한다.

“SN?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SN쪽에 아는 사람이 은근슬쩍 나랑 오빠에 대해서 묻더라고. 그래서 대충 둘러댔는데 알고 보니까 과거 파인 엔터에 대해서도 캐고 다니는 것 같아. 마침 나랑 친한 직원한테 물어본 거라 알 수 있었던 거야. 그냥 대놓고 물어보는 거야 종종 있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예전 일을 들쑤시는 건 조금 짜증나네?”

“그래? 알았어. 내가 한 번 알아볼게.”

“흐음… 내가 그냥 깽판 쳐 볼까?”

그녀 성격으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걸 알기에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처리할게.”

“알았어. 그리고 별이 걔 드라마 잘 끝냈지? 그럼 시간 좀 있겠네. 밥이나 한번 먹자.”

“응. 너 영화 촬영 끝나면.”

“칫… 그래.”

그녀와의 통화가 끝나고 나서 핸드폰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SN에서 너무 쉽게 물러난다 했는데 역시나 은하와 예전 회사에 대해 파고 있는 걸 들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뒤져봤자 별거 없다. 은하가 했던 일들은 경찰이나 검찰도 아닌 일개 엔터사 정도가 뒤져서 밝혀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밝혀지는 사실은 자신과 은하의 불화로 헤어졌다는 정도. 그거야 알든 모르든 문제는 아닌데 이대로 덮기에는 기분이 나쁘다.

결국 우현은 전화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죠?”

“아이고, 김 대표님 아니십니까? 저야 잘 지내죠. 전에 드렸던 선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네. 보내주신 과일과 홍삼은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주지 않으셔도 됐는데요.”

“아닙니다. 저희가 실수한 것도 있는데요.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며칠 뒤에 ‘천방지축 그녀’ 첫 촬영인데 식사라도 한 번 하시죠?”

“식사는 나중에 하고 궁금한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유은하와 저에 대해 캐고 다니셨습니까?”

“네? 아아, 오해하셨군요. 다름 아니라 김 대표님께서 하도 성공적인 작품을 많이 하셔서 노하우 좀 알고자 했던 겁니다. 이런…”

“노하우를 알기 위해 예전 파인 엔터까지 뒤지는 건 이상하네요.”

“김 대표님, 그건…”

전화기 너머 우필용 부장의 목소리에서 조금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필용 부장님, 이번 건 정도를 넘어선 짓이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겠지요.”

“대표님, 정말로 악의를 가지고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악의를 가지고, 가지지 않고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게 중요하죠. 어쨌거나 말씀드렸다시피 깽판을 친다거나 회사에 찾아간다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애도 아니고 말이죠.”

“오해할 만한 일을 했으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과 받아들이죠. 그리고 저는 이 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 대표님, 일을 하다보면 아랫것들이 이런저런 실수도 하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죠. 그리고 ‘천방지축 그녀’는 이것과 상관없이 잘해봅시다. 이주희 작가의 데뷔작인데 망칠 수는 없지요. 아영씨와 같이 윈윈하는 겁니다.”

“어째 복수하겠다는 말보다 더 무섭게 들리는군요.”

“복수는 무슨 복수입니까? 무협지도 아니고 말이죠. 서로 할 수 있는 걸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우 부장님 회사와는 엮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게 서로에게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저희 회사 작가와는 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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