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70화 (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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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 한 걸음 더 나아가다(1)

다음 날, 이주희 작가가 제작사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작성하고 오니 KMTC에서 편성이 떨어졌다는 전달을 받았다. 그들 말대로 캐스팅 마무리가 되자마자 편성을 확정지어버린 것을 보니 급하긴 급했나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KMTC의 새 드라마 ‘천방지축 그녀’ 편성 확정]

[소녀세상 아영 ‘천방지축 그녀’ 합류]

[청순여신 임윤지 ‘천방지축 그녀’ 여주인공으로 확정]

[이세준 ‘천방지축 그녀’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보통 캐스팅 기사 후에 편성 기사가 나기 마련인데 워낙 급하게 일을 추진하다보니 편성기사가 뜸과 동시에 캐스팅 기사가 연달아 나왔다.

웃긴 건 여주와 남주 기사보다 소녀세상 아영에 대한 기사가 가장 빨리 나왔다는 것이고 댓글도 가장 많이 달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댓글 내용은 아영 때문에 드라마가 망했네, 안 볼 거네, 하는 말들이었다.

“어쩌죠? 아영씨 연기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는데?”

이주희 작가는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자신의 첫 드라마에 대한 기사에 악플이 줄줄이 달리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걱정 말아요. 제가 항상 말하지만 작가가 잘 쓰면 제 아무리 배우가 별로여도 시청률은 나오게 돼있어요.”

“그거 전혀 위로가 안 돼요. 제가 잘 써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하하하.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제가 볼 때 이 작가님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약한 거구요. 그러니 벌써부터 사서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 그리고 이제 오피스텔 들어가서 작업하기 시작하면 당분간 인터넷은 금지예요.”

“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다 작가님을 위한 거니까요. 인터넷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기사를 검색하고 댓글 반응에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특히 신인작가들은 시청자 반응에 일희일비해서 자신이 쓰려고 했던 작품 망치는 일이 허다해요. 그러니 앞으로 드라마 최종 탈고할 때까지 인터넷은 금지입니다.”

“에휴… 인터넷 안 되면 어찌 사나…”

그녀는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잔뜩 풀이 죽어버렸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안쓰럽다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다가는 드라마는 산으로 가게 된다.

“시청률은 제가 다음날 아침에 전화로 얘기해줄게요. 그 외 시청자 반응은 신경 쓰지 마세요. 내용 수정할 게 있으면 제가 따로 연락드려서 얘기할 테니까 그 전까지는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그리고 아시죠? 중간 중간에 PPL 때문에 원고 수십 번도 더 수정해야 할 거라는 거.”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자주 수정해야 해요?”

“그럼요. 투자자가 별의별 요구를 다 하거든요. 대사나 장소가 애매해서 조연에게 광고하게 하면 투자자가 주연배우가 하게 해달라고 억지 부리는 건 너무나 흔한 일이구요. 특정 대사를 꼭 집어넣어 달라고 요구하거나 어떤 동작이 반드시 들어가게 하는 일도 빈번해요.”

“후아…”

“이걸 미리 알려주는 건 나중에 이런 일이 생길 때 멘붕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바꾸라고 할 때마다 짜증내고 열 올리면 드라마 작가 못 합니다. 아시겠죠?”

“네, 알았어요.”

“그리고 원하면 보조 작가 구해줄게요.”

“보조 작가요? 제 수준에 무슨…”

“나중에 더 잘 되면 보조 작가 구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보조 작가는 단순히 교정 작업을 하는데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에요. 16부작 드라마를 쓰다보면 분명 아이디어가 막히는 부분이 생겨요. 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도 생길 거구요. 그럴 때마다 본인이 직접 해결하려 하면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본격적으로 카메라 돌기 시작하면 아마 이 작가님 하루에 4시간 이상 못 잘 겁니다. 그만큼도 못 자는 작가들도 수두룩 하구요.”

“네, 이야기 들었어요.”

“아직 실감하지는 못하시겠죠? 장담하는데 백프로 후회합니다. 작가님 회당 5백만 원으로 계약하고 오셨는데 그 정도면 보조 작가 월급 정도는 주실 수 있어요. 보조 작가들 월 100만 원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보조 작가 월급은 작가가 주는 거다. 처음에는 보조 작가에게 주는 월급도 부담스럽겠지만 점차 인지도가 쌓이면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때가 온다.

저 적은 월급에도 보조 작가를 하는 이유는 실제 드라마를 제작하며 얻게 되는 경험과 노하우를 직접 체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래서 보조 작가들 사이에서는 ‘누구 밑에서 몇 년 만 고생하면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다’ 하는 정보들이 떠돌아다닌다.

“알았어요. 그럼 되도록 저보다 연배가 어린 사람으로 부탁해요.”

“하하, 그럼요. 나이 많은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부리면 불편하죠.”

“그런데 이 작품 끝나고 한동안 작품 못하면 어떡해요?”

“다음 작품 계속 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님께서 좋은 작품을 계속 써주셔야 하겠죠?”

“하아… 계약하니 좋긴 한데 꼭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네요. 이것도 배부른 투정이겠죠?”

“원래 사람이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게 달라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전까지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고민을 하셨다면 지금부터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고민을 하는 거죠. 자, 이제 오피스텔 보러 갑시다.”

“우아아!”

축 늘어졌던 그녀는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 아이들 마냥 다시 들뜬 얼굴로 변했다. 이후 그녀와 오피스텔을 계약하는데 남은 일정을 모두 소모했다.

다음 날부터는 유니와의 행사에 주력했다. 이제는 딱히 사무실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새로 온 로드매니저와 지방 행사를 다니는 건 여자 입장에서 불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니의 음원이 계속해서 1위를 찍으면서 그녀의 몸값도 올라가서 이제는 한 곡 부를 때마다 3백 이상을 받게 됐다. 물론 아직 올라야 할 계단이 한참이지만 이렇게 꾸준히 반응을 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니에게 힘을 준다.

시간이 흘러 유지나와 이주희 작가의 작품이 차례로 제작발표회를 진행했고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탈 없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별이의 드라마는 시청률이 25%를 넘어 30%에 근접했고 결국 14회에서는 30%를 돌파하며 진짜 대박 작품으로 중국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에 높은 값으로 수출되는 경사를 맞았다.

별이의 몸값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갔고 각종 CF가 밀려 들어왔다. 물론 그 중에서 선별해서 진행해야 하겠지만 드라마 찍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게 된 것은 당연했다.

방송사에서는 푸켓으로 단체 여행을 보내주는 것으로 포상을 약속했고 그것 때문에 별이는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야 했는데 바쁜 스케줄 중에 시간을 내서 구청에 간다고 한동안 부산을 떨기도 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것처럼 ‘그 양반 같은 자식’이 이렇게 대박이 나자 경쟁사의 작품인 ‘잔혹한 사랑’은 시청률이 한 자리수로 떨어지며 체면을 구겼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는 한여름과 유지훈 작가의 이름에 비하면 폭망이나 다름없는 결과다.

“가장 통쾌한 게 뭔지 아세요?”

“궁금하네요. 뭡니까?”

지여울 제작 피디는 지금껏 들어왔던 어떤 목소리보다 즐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른바 인터넷에서 ‘엄마 옷’으로 불리는 ‘에르클레르’쪽 매출이 완전히 내려앉았대요. ‘채널’ 쪽에서 은밀하게 말하는 게, 전에 비해서 반도 안 되는 매출일 거라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망했냐면 청담동에 있는 로드 매장을 철수할 예정이라고 말이 돈대요.”

“그정도나요?”

“돈 많은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쪽팔린 건 못 참잖아요? 누가 엄마 옷이라고 불리는 옷을 몇 백, 몇 천을 주고 사 입겠어요?”

“그렇긴 하죠. 파장이 생각보다 크긴 하네요.”

“반대로 갤러리스백화점은 명품관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고 좋아 죽으려고 하더라구요. 별이씨에게도 드라마 끝나면 선물 몇 개 주라고 제가 팍팍! 기합을 줬죠.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더라구요. 저 잘했죠? 후후.”

“역시… 지 피디님은 정말 일을 환상적으로 하십니다. 최고네요.”

“제가 좀 그렇죠, 후후. 그리고 ‘채널’에서 이번에 신상 향수 CF를 별이씨가 맡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온대요. 이건 확정은 아니에요. 담당자가 확답을 주기 전까지는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시면 안 돼요.”

“명심하겠습니다! 하하.”

“이번 ‘그 양반 같은 자식’ 하느라고 고생 많으셨어요. 소은씨도 잘 잡아주시고… 저희 입장에서 고맙네요.”

“이 드라마가 잘 돼야 우리 별이가 잘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넋 놓고 바라만 봐서는 무슨 득이 있겠어요? 일단 카메라 돌고 있으면 누구라도 가서 해결해줘야죠.”

“어쨌거나 이번 남은 작품, 이주희 작가님이 하는 ‘천방지축 그녀’도 많이 도와주세요. KMTC에서 이번만큼은 드라마 쪽에서 일 한 번 내보자고 힘을 바짝 주고 있으니까 잘 되면 파인 엔터도 KMTC 쪽에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럼요. 이주희 작가는 개인적으로도 미래가 촉망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떠나서도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 성공시킬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우현은 사무실을 나와 차를 타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 양반 같은 자식’의 마지막 촬영 날. 틈틈이 간식과 밥차를 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촬영날에는 직접 가서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려는 것이다.

파인 엔터가 대형 매니지먼트사로 성장하게 된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직 작은 회사이기에 스태프들에게 이런 예의는 곧 별이에 대한 인식에도 좋은 영향을 주게 돼있다.

촬영장은 갤러리스백화점. B팀 감독인 한상호 피디의 큐 사인에 별이와 남주민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멀리 있어서 무슨 대사를 하는지는 들을 수 없지만 별이의 눈에 담긴 사랑스런 감정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모두 서로를 향한 박수를 쏟아냈고 촬영을 지켜보던 일반인들도 박수를 더했다. 물론 갤러리스백화점 관계자들 역시 나와 있었다.

“한 피디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김 대표님. 오셨어요? 마지막 장면 보셨습니까? 별이의 그 애절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마지막회에도 좋은 장면 나갈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모두 피디님 덕분입니다. 여기 계신 스태프들께서 도와주셨던 거죠.”

“하하하. 그렇게 말 안 해주셔도 별이씨가 대단한 연기한 거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별이는 자신의 첫 미니 마지막 촬영에 우현이 와준 것에 감동했는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고생 많았다.”

“대표님 덕분에 잘 마친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 이제 시작인데.”

“그렇죠? 이제 시작인데 괜히 눈물이 나네요. 괜찮아요. 어차피 화장 지워져도 다음 촬영 없잖아요.”

“그래, 고생했는데 밥이라도 먹자.”

그렇게 별이의 첫 미니시리즈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그 양반 같은 자식’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32.5%를 찍으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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