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69화 (6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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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 끝난 줄 알았지?(4)

“일단 앉으세요.”

지켜보던 임윤지도 불편했는지 우현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이에 우현과 이주희 작가 자리에 앉자 우 부장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작가님이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신지 미처 몰랐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것보다 우 부장님이 조연자리 캐스팅 미팅에 나올 만한 분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밑에 친구들 두고 왜 번거롭게 직접 나오셨어요?”

쓸데없는 소리 듣기 싫어 우현이 끼어들었다.

“아, 김 대표님 때문에 나왔어요. 솔직히 우리하고 오해가 좀 쌓였잖아요? 이 자리에서 풀어버립시다.”

대놓고 저렇게 나오니 더 이상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불만 섞인 투로 나온다면 어린애 취급을 당할 뿐이다.

“그러셨어요? 그럼 말이라도 먼저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놀랐네요.”

“흐흐. 나쁜 소식이면 몰라도 좋은 소식이면 조금 놀라도 좋죠. 서프라이즈 잖습니까? 안 그래요?”

SN 부장급이 나온다고 하니 지 피디도 막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일단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파인 엔터에서 대표 맡고 있는 김우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임윤지예요.”

“윤지 매니저 하고 있는 오해성입니다.”

임윤지는 여배우답게 너무 과하지 않은 의상에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더욱이 그녀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저런 성격에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망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또라이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니 천상 배우다.

“나 SN에서 일하는 우필용이오. 캐스팅 미팅에 나와 본지 정말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

“안녕하세요. 소녀세상의 멤버 아영이에요.”

아영도 SN에서 연기자로 성공시키기 위해 꾸준히 밀어 넣는 소녀세상의 멤버 중 하나다. 연기는 의외로 괜찮았는데 주로 비중이 적은 역할만 맡아왔기에 정극에서 어느 정도의 감정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본 봤는데 너무 좋아서 제가 캐스팅 될 줄은 몰랐어요. 다른 분들도 많이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가장 먼저 임윤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손을 많이 탄 시놉이라면 자신에게 온 것이 이해가 될 것이지만 제작진이 얼마나 서두르고 있는지를 알기에 가장 먼저 컨택해 왔음을 듣고 궁금한 것이리라.

“평소 임윤지씨의 연기를 좋아했어요. 일일연속극에서도 그렇고 케이블에서 한 미니에서도 상당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잖아요. 그 때마다 극을 이끌고 가면서도 결코 안 좋은 방향으로 튀지 않더라구요. 아주 인상 깊었어요.”

이주희 작가가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순간은 우현이 끼어들면 안 된다. 끼어드는 순간 작가의 머리 위에 앉은 소속사 사장이 될 뿐이다.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음… 정말 열심히 연기해왔는데 작가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지금까지 고생해왔던 게 정말 보람되게 느껴지네요. 처음에 대본 봤을 때는 여 주인공의 조금 종잡을 수 없는 행동과 말에 당황스러웠는데 계속 곱씹어 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거 있죠. 특히 매니저와 같이 대본을 읽어보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대사가 정말 기발했어요. 제가 남자라도 반할 것 같더라구요.”

“아하하, 고마워요. 예능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개그적인 요소가 조금 있긴 있죠? 그런데 저도 쓰면서 톡톡 튀는 여자가 매력적이라고 느껴서 그런지 그런 캐릭터가 나왔네요.”

그렇게 임윤지와 이주희 작가가 서로 캐릭터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주문했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입에 맞으세요?”

가만히 있으려 했지만 괜히 주눅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영에게 말을 걸었다. 우 부장이 같이 왔음에도 그는 처음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이 작가와 임윤지 간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것이 진짜 그 이야기에 흥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화해 제스처임을 알았다. 아영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원하는 거다.

“네. 이 집 스테이크 맛있네요.”

“다행이네요. 역시 지 피디가 센스가 있죠.”

“저도 대본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아, 그리고 전에 예능 같이 한 적 있어요.”

그제야 아영도 이 작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머, 기억나세요? 메인 작가가 아니라서 기억에 없을 수도 있을 텐데. 그 때, 막내작가여서…”

“그럼요. 기억하고 있죠. 저 데뷔 초에 예능에 잘 적응 못하고 있을 때 작가님이 같이 잘 해보자고 간식도 챙겨 주셨잖아요? 그런데 드라마로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고마워요. 그럼 이번에 하고자 하는 역이 은실 역인가요?”

“네. 처음 대본을 보자마자 꼭 하고 싶었어요. 솔직히 주연 욕심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직 그 정도 연기를 보여줄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깨끗이 접었어요. 은실 역은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고 무난한 배역만 했었던 저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됐어요. 그래서 꼭 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까지 나왔으면 결정이 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단지 작가의 허락이 필요했을 뿐. 지 피디의 난감한 얼굴을 보면 SN쪽에서 상당한 투자금을 들고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둘을 끼어줬겠지.

이주희 작가는 우현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아무래도 SN 엔터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직접 들었으니 아영을 캐스팅해도 좋을지 판단할 수 없었던 거다. 그녀의 눈빛을 감지한 우현은 답 대신 우 부장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헤식스’의 강태호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겁니까?”

“아무리 오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앙금은 있을 것 아닙니까? 이 자리도 예의가 아닌 걸 아는데 ‘헤식스’의 멤버를 데리고 올 수는 없지요.”

지나치게 저자세다. SN 엔터의 부장급 인물인데 아무리 급하다고는 해도 작은 기획사를 상대로 이런 저자세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가요? 참, SN 엔터가 이렇게 상생을 실천하는 회사인지는 미처 몰랐네요.”

“아직 잘 모르는 친구의 실수였으니 그만 넘어가시죠. 설마 우리가 정신 빠진 놈들처럼 파인 엔터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지요? 어차피 아이들 키우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습니다. 뒷골목 깡패도 아니고 섭섭한 마음을 다 갚아주려다 보면 비즈니스를 할 수 없죠.”

“비즈니스라, 흐음… 알겠습니다. 그 말 진심으로 알겠습니다.”

우현의 대답으로 이주희 작가는 아영을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 내일 제작사에서 정식으로 캐스팅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고 그 때는 우 부장이 아닌 아영의 매니저가 따라갈 거라고 했다.

자리를 파하고 나서 지 피디는 따로 우현과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자리를 가졌다. 그녀는 내내 미안한 표정이었는데 보는 우현이 미안할 정도였다.

“미안해요, 김 대표님. 어쩔 수 없었네요.”

“도대체 돈을 얼마나 가져온 거예요?”

“밝히기는 어렵지만 꽤 많은 돈을 투자했어요. 사실 저희도 ‘그 양반 같은 자식’이 대박나면서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아직 그 수익이 모두 회사 통장으로 들어온 상태는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당장 제작비가 빡빡한 것이 사실인데 SN쪽에서 이렇게 들어오니 저희 쪽에서 안 받을 수가 없는 입장인 거죠. 그래도 제 윗선에서는 주연이 아닌 게 어디냐며 어떻게 해서든 대표님을 설득해보라고 한 거구요.”

“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네요. 진짜 주연을 꽂는 것도 아니니까 무작정 반대만 할 수도 없고… 그 우 부장이 머리 잘 썼네요. 어차피 드라마 할 생각이었을 테니까.”

“제 귀에도 SN쪽에서 따로 기획하고 있다는 말이 들렸어요.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적은 돈이긴 할 거예요.”

“게다가 편성도 확정이나 다름없고 이번에도 드라마가 잘 된다면 도마뱀뿐만 아니라 SN 입장에서도 상당한 이익이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 드라마를 잡을 생각을 했을까요? 김 대표님과도 사이가 안 좋았다고 들었는데… 아까는 비즈니스네 뭐네 했지만 솔직히 이 드라마가 잘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저자세까지 하면서 꼭 이걸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사실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무슨 생각인 건지.”

지 피디 앞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척 했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자신을 안지 꽤 오래된 그이기에 이번에 살포시 한 발 올려놔 볼까 하는 생각일 텐데, 문제는 이번 작품이 성공했을 때 그가 취할 포지션을 짐작할 수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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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을 뒤에 태운 우 부장은 훤칠하게 잘 생긴 영준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영준은 그의 생각이 마무리 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우필용 부장의 입이 열렸다.

“내일 아영이 계약 있으니까 네가 직접 데리고 가도록 해. 밑에 있는 애 보내지 말고. 가서 분위기도 좀 보고. 특히 이 작가에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도착해서는 이 작가에게 작은 선물 하나 보내줘. 김우현한테도 보내고. 다 받는 앨범 나부랭이 보내지 말고 네가 직접 골라.”

“예.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고작 유지나 하나 정도 봐줄만한 회사인데…”

영준의 물음에 우 부장은 한참동안 턱을 쓸다가 입을 열었다.

“으흠… 내가 김우현 저 친구를 처음 봤을 때 파인 엔터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회사에 불과했어. 유지나 급도 안 되는 배우 서넛을 데리고 있는 중소매니지먼트사였거든. 그런데 저 친구가 유은하를 데리고 작품 몇 개 하더니 톱스타로 만들어버렸어.”

“솔직히 그런 예는 이 바닥에서 흔히 있는 스토리 아닙니까?“

“그래, 흔하지. 지금 정상에 있는 스타들 전부 그런 경우니까. 태어날 때부터 톱스타가 어디에 있겠어? 그래서 그 때도 너처럼 운 좋은 놈이라고 넘겨 버렸거든? 그런데 말이야,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놀랍기 그지없단 말이야. 작품 한두 개로 스타야 될 수 있지. 그런데 그 친구가 유은하를 데리고 했던 작품 중에 실패했던 작품이 있었나?”

“유은하가 마이더스에 간지 1년이 채 안 됐으니… 그렇네요. 그 전까지 했던 작품은 모두 성공시켰네요. 그것도 중박도 아닌 대박으로.”

“그게 웃기다니까? 어쩌다 한두 개가 아니야. 남자도 아닌 여자가 천만 영화를 두 개나 찍었어. 충무로 판에 남배우에게 가는 시나리오와 여배우에게 가는 시나리오는 그 양과 배역의 폭이 다른데도 말이야. 그런 놈이 이제 새로 회사를 세우고 배우와 가수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대박이 터졌네? 배우는 6회 만에 시청률 23%를 넘겼고 가수는 그 드라마 메인테마를 부르고 있어. 게다가 그 드라마의 작가까지 계약했지? 이걸 어떻게 봐야 돼?”

“운이 엄청 좋은 놈이라고 밖에…”

“멍청한 놈! 이 바닥은 운도 실력이야. 운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하면 그건 비즈니스를 안 하겠다는 짓이지.”

“명심하겠습니다.”

“흠… 영준아.”

“네?”

“마이더스에 아는 매니저 있지? 은밀하게 알아봐. 왜 유은하랑 그 녀석이 헤어졌는지. 그리고 파인 엔터가 왜 망했는지도 한 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같이 작품하게 됐는데 잘못하면 우리 아영이도…”

“아, 이 새끼. 걱정은… 내가 정묵이 같이 실수할까봐 그러냐? 미쳤다고 우리 아티스트에 문제 될 일 만들겠어? 그냥 알아보는 거야. 당장 오늘 밤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상대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어야 대응을 할 거 아냐? 설사 아군이 된다고 해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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