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68화 (6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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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 끝난 줄 알았지?(3)

“안녕하십니까?”

“아, 전수길씨 되시죠? 오신다는 시간이 지금이었나요?”

“네, 바쁘셔서 그런지 깜빡 잊으셨나 봐요? 지금 말씀 나누기 어려울까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편한 캐주얼 차림의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이름은 전수길로 JGP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전에 이 시간에 찾아뵙겠다는 전화를 받았었는데 깜빡 했다.

“아닙니다. 앉으세요.”

날이 더워서 그런지 땀을 많이 흘리고 있기에 시원한 주스를 갖다 주니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많이 덥죠?”

“그렇네요. 회사에서 꼬박꼬박 경비 처리해주니까 택시타고 오긴 했는데 그거 몇 걸음 걸었다고 이렇게 땀이 나네요.”

“고생하셨네요. 그런데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까? 피처링을 원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유니씨가 아직 신인이고 모든 연락을 대표님을 통해야 해서 직접 찾아뵙게 된 겁니다. 어차피 얼굴도 한 번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원하는 아티스트가 누굽니까?”

“망치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그럼요, 잘 알죠. 요즘 잘 나가는 힙합 아티스트잖아요?”

“네, 망치가 유니씨 노래를 듣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해서요. 보통 아티스트가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까 말씀드린 이유 때문에 제가 대신 왔습니다.”

“유니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그럼요. 솔직히 망치와 같이 작업하고 싶어 하는 여자 아이돌 가수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유니씨의 보컬이 워낙 좋으니 망치가 먼저 제안한 거죠. 제가 JGP 직원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좋습니다. 정확한 스케줄 잡아 주시면 저희가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따로 계약을 맺지 않는 이유는 대개의 경우 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음원 수익의 일부분을 받기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유통사에 대부분의 수익을 빼앗기기 때문에 큰돈이 되지 않는다.

이번 경우처럼 선배의 노래에 신인인 후배가 참여하는 경우는 더더욱 돈을 받지 않고, 무대에 서는 경우에도 당일 식사비 상당의 돈을 챙겨줄지언정 대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피처링을 선호하는 이유는 가수들 간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힐 기회도 되고 앨범의 퀄리티도 높일 수 있으며 유니처럼 신인인 경우에는 좋은 홍보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유니야!”

마침 보컬 연습을 마친 유니를 불렀다. 그녀에게 망치의 신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전하자 그녀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대박! 대박! 진짜예요?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1년만 지나봐라. 이제 온갖 곳에서 피처링 해달라고 달려들 텐데.”

“대표님, 망치예요. 망치라니까요! 제가 완전 좋아하는 힙합가순데!”

“망치건 도끼건 너무 흥분하지 마. 가서 ‘팬이에요, 좋아해요’ 이런 말 하지 않는 거다, 알지?”

“그건 알아요. 저도 이제 연예인인데요, 뭘…”

“머리와 표정이 따로 노는 것 같은데?”

“으음… 전 연습 좀 더 하러 갈게요.”

우현의 시선을 회피한 유니는 얼른 몸을 돌려 연습실로 향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드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좋은가 싶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주희 작가는 며칠 지났다고 아예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빨간색 플레어스커트에 하얀색 블라우스, 그리고 옅은 화장까지.

“이 작가님, 아주 몰라보겠어요. 뿔테 안경 벗으니까 훨씬 아름다워 보이네요.”

“아… 이제 계약도 하고 했으니까 사람답게 좀 꾸미고 다니려구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우현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는데 경리인 민주가 차를 가져다주고서야 우현의 눈을 마주 보았다.

몇 년간 방송국 드라마실과 숙직실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꾸밀 시간도, 여유도 없었을 거다. 그러다가 방송국을 나와 드라마 계약까지 목전에 뒀으니 자연스럽게 여자로서 꾸미기도 하고 삶에 여유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나저나 제작사 측에 몇몇 배우가 컨택해오긴 했어요. 그 중에 이효주도 있었는데 제가 안 된다고 했어요.”

“이효주요? 왜요?”

“음… 표정연기가 많이 어색해서 싫어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SN 엔터와 저희 사이가 좋지 않거든요.”

“아…”

“아쉽죠?”

“아쉽다기보다는 궁금한 마음이 더 큰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별 건 아니고, 유니와 관련돼서 얼마 전에 이상한 사진 하나가 떴는데 그 쪽에서 제대로 해명해주지를 않더라구요. 그래서 한바탕 퍼부어줬죠, 하하. 그래서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효주 연기가 죽여줬다면 받았을 거예요. 이건 진심입니다.”

“저도 사실 이효주 연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후후. 웃기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효주가 제 드라마를 한다고 했으면 엎드려 절이라도 했을 거면서…”

“아니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 때는 이 작가님이 자신의 대본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없었을 때였으니까요. 지금과는 다른 마음인 게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원래 SN이 가수 기획사잖아요? 그런데 왜 배우들을 자꾸 키우고 연기도 안 되는 아이돌들을 드라마에 집어넣는 거죠? 욕먹는 거 뻔히 알면서… 게다가 주연을 SN쪽 배우로 쓰면 거의 다 망했잖아요? 그런데도 꾸준하게 드라마를 만드는 것 보면 이상해서요.”

“아, 그거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예요. 음… 주희씨는 걸그룹 수명이 어느 정도나 된다고 생각해요?”

“5년은 짧고, 대략 7년 정도? 길면 10년?”

“네, 정확해요. 길면 10년 가는 게 걸그룹이죠. 그럼 10년이 넘으면 기획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창력 좋은 멤버는 솔로를 시킨다지만 나머지는요? 서른 넘어서 걸그룹 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그런 면에서 SN 엔터에서는 소녀세상을 10년 동안 잘 써먹었죠. 그럼 이제 계약 끝내고 다 내보내야 할까요? 아니에요. 그 동안 쌓아온 이름값이 있잖아요? 그럼 뭐라도 시켜야 하는데 가장 만만한 게 뮤지컬이에요. 노래와 춤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롱런할 수 있는 건 바로 연기죠. 그래서 부족한 걸 알면서도 그렇게 밀어붙이는 거예요. 물론 드라마가 돈이 되기 때문인 게 가장 크지만요.”

“그래서 드라마 제작 쪽으로 돈을 쏟아붓는군요.”

“맞아요. 그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드라마 제작사를 안정적인 궤도에 정착시킬 필요가 있죠. 그게 쉽지 않아서 문제인 거지.”

“그러고 보면 이상하네요. 그렇게 돈을 많이 쏟아붓는데 망한 작품이 대다수니까요. 연기가 너무 부족해서 그런가?”

“하하. 이 작가님, 드라마는 작가 놀음인 거 아시면서 그러세요? 좋은 작가를 못 만나서 그런 겁니다. 김은선 같은 작가가 SN 걸그룹 출신 배우를 주연으로 쓰고 싶겠어요? 기껏해야 조연으로나 가끔 쓰죠. 결국 자기네 배우를 써줄 작가를 찾고 찾아서 드라마에 꽂아 넣으니 시청률도 안 나와, 연기는 바닥을 보여, 망할 수밖에 없죠.”

“이렇게 들으니까 참 간단하네요.”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자,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쯤 하고 제가 여배우 하나 추천할까 해요. 물론 작가님이 싫다고 하면 안 할게요.”

“정말요?”

“네. 미팅 잡아놓긴 했지만 제가 착각했다고 하면 돼요. 중요한 건 작가님 마음에 드느냐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어쨌거나 누군지 한 번 들어나 볼게요.”

“임윤지요. 얼마 전에 플라워엠과 계약했죠.”

“임윤지요? 아… 알아요.”

그녀의 표정은 누가 보더라도 크게 환영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실망했죠?”

“흠… 만약 다른 사람이 그녀를 추천했다고 하면 진짜 실망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글을 보고 단번에 편성까지 잡아낸 대표님이시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좋아요.”

우현은 그녀에게 평소 우현이 임윤지의 연기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이주희 작가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밝아졌다.

“이해해주니 다행이네요.”

“대표님이 이야기해주는 걸 들으니까 임윤지씨가 꼭 제 작품을 해야 할 것만 같네요. 대표님은 영업해도 잘 하셨을 것 같아요.”

“하하. 저 원래 자동차 영업사원이었습니다. 당시엔 꽤 잘 나갔죠. 원래 제품 설명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 때 연비조작사건이 터진 게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럼 그 외국 자동차 회사에 다니셨던 거예요? 저도 한 때 그 자동차 회사 차가 드림카였는데…”

“그 드림카 얼마 안 있으면 곧 타게 될 겁니다.”

“와우.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데요?”

그녀와 캐스팅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지 피디에게서 남자주인공 역으로 몇 군데에서 컨택이 왔다고 전화가 왔다.

“이세준이요?”

지 피디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녀로서는 의아할 수 있다. 임윤지는 연기력을 극찬하며 선택해놓고는 그 연기력 좋은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이세준이라니…

“네. 이세준이 좋아 보이네요.”

“왜요? 아니, 이건 그냥 궁금해서요.”

“주 시청자가 여성들인데 아무리 여주가 연기를 잘한다고는 해도 눈 둘 데는 있어야 하잖아요. 연기가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대사도 많지 않고, 또 이렇게 분위기 잡는 역은 그 친구가 꽤 하니까요.”

“참… 김 대표님은 드라마 제작사를 하셔도 될 것 같네요. 기본적인 걸 깜빡했네요. 알았어요, 이세준 쪽으로 미팅 잡을게요.”

전화를 끊고 이주희 작가를 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사실 저도 그 중에서 이세준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나이가 들어보여서… 그리고 이세준이 매너도 좋고 스태프들에게도 잘해요. 같이 예능 해봤거든요.”

“작가님도 좋아하시니까 잘 됐네요. 이번에는 첫 작품이라서 제가 캐스팅을 주도했지만 다음에는 작가님께서 직접 골라보세요.”

“아직 자신 없어요.”

“제가 같이 봐줄게요. 어쨌든 내일 점심때 임윤지랑 미팅 있으니까 오늘처럼 잘 차려입고 오세요. 작가는 여배우한테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는 거 알죠?”

“그런가요?”

“그럼요. 인물 대결하자는 게 아니라 옷을 허름하게 입고 가면 왠지 기가 죽는 듯한 느낌이잖아요? 그걸 피하자는 거죠.”

“아하!”

다음 날, 이주희 작가는 새벽같이 일어나 메이크업을 받고 왔는지 또 한 번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가 보면 이 작가님이 주인공인 줄 알겠어요.”

“푸훗! 대표님은 참 사람 기분 좋게 할 줄 아시네요? 역시 영업하셨던 분이라서 그런가?”

“생활의 지혜라고 해두죠.”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 도착한 그들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룸으로 들어갔을 때, 임윤지 말고도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끼어있었다.

“하하. 김 대표님, 방금 전에 갑자기 합류하게 된 거라… 죄송해요.”

지 피디는 면목 없는 얼굴로 어쩔 줄 모르며 서 있다. 그리고 임윤지와 그 매니저 옆에는 그도 예전에 본 적이 있던 남자와 꽃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있다.

“하하하. 김 실장님, 아니, 아니지. 김 대표님, 오랜만에 만나 뵙는 군요.”

“오랜만이네요. 우 부장님.”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지 말고 앉아요. 옆에 계신 분이 작가님이시죠? 앉으시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오해하지 말아요. 여기 임윤지씨가 계신데 설마 주연 자리를 생각하고 왔을까요? 우리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같이 좋은 작품 만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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