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65화 (6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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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아이돌에게 연애란?(3)

그녀가 탁자 위에 종이 한 묶음을 올려놓았다. 그게 뭔지는 읽어보지 않아도 감이 왔다. 작가가 종이를 들이밀었다면 시놉시스 말고 뭐가 더 있겠는가?

“혹시 방송국 관뒀어요?”

방송국 소속이면 이건 자신이 아니라 드라마 국장에게 들이밀었어야 할 물건이니 말이다.

“네. 그렇게 됐네요.”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민망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째서요?”

“흐음… 사실 방송국에서 제 위치가 애매하긴 했어요. 위치라고 하니까 말이 좀 웃기긴 한데… 다른 드라마 작가들은 전부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가들이거든요. 공모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몰리는지 아세요?”

“아니요. 모릅니다.”

“보통 공모전이 열릴 때마다 2만 개에서 2만 5천 개의 극본이 몰려들어요. 그 중에 10개 정도가 당선되죠. 고시라고 불릴 만하죠?”

“정말 굉장하네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정도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다. 드라마 보면서 대본이 엉망이라며 욕했던 것이 민망해질 정도다.

“그렇게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들어온 사람들의 눈에 예능작가 생활을 하다가 단막극까지 찍은 제가 곱게 보일 리 없잖아요? 저도 이해해요. 저라도 제가 예쁘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거. 그래도 참고 버티려고 했는데… 도무지 희망이 보이질 않았어요.”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안함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단막극까지 찍었는데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다구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단막극을 찍고 나면 곧 장편의 기회가 찾아왔데요. 그런데 지금은 신인 작가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더라구요.”

생각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드라마 하나에 수많은 사람의 운명과 돈이 걸려있다. 신인 작가에게 수십억에 달하는 돈의 운명을 맡기기에는 불안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군요.”

“항상 생각했어요. 김 대표님이 제게 말씀해주셨잖아요? 제게 재능이 있다구요. 어차피 방송국 월급 얼마 되지도 않아요. 이게 재미가 없다면 다른 걸 쓸게요. 그래서 만약 충분히 드라마로 만들 만큼 재미있다면 저와 계약해 주세요.”

굳은 표정의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우현과 계약하고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있었다.

“그렇다면 제작사를 바로 찾아가지 그랬습니까?”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믿을 수 없었다구요?”

“흔해요. 시놉시스나 원고를 투고하고 나면 탈락했다고 발표해놓고 비슷한 소재로 새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거. 아시잖아요? 이 바닥에서 표절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표절인 거 다 아는데, 약간만 다른 양념을 첨가해놓고 장르의 유사성이니 원래 이런 소재는 많았느니 지껄이는 걸 보면 진짜…”

그녀는 이런 일을 겪어봤는지 울분을 토하는데 우현도 그녀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그런 일들이 많기는 합니다. 양심적인 제작사들도 많긴 하지만 그걸 믿고 투고를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죠.”

“그래서 직접 찾아왔어요. 김 대표님이 보고 별로라고 하신다면 고칠 의향도 있어요. 최대한 객관적으로 봐주세요.”

“좋습니다. 일단 읽고 나서 판단하죠.”

넘겨보니 단순한 시놉시스가 아니다. 이미 1회 대본까지 있었다.

“대본까지 쓰신 이유가…?”

“시놉시스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드실까봐서요.”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시놉시스만으로는 작가의 실력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우현은 이미 그녀와 같이 작업하며 캐릭터와 대사처리 등 여러 가지를 봐왔기에 시놉만 있으면 충분했었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대본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대본을 읽어보니 이주희 작가만의 색깔이 더욱 묻어 나왔다. 대사는 기존 작가들의 만성적인 오글거림을 벗어났으면서도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게 톡톡 튀고 직설적이다. 그렇기에 주연들의 개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좋네요. 굳이 고칠 부분은 못 느끼겠어요.”

“정말이에요?”

손바닥으로 자신의 무릎을 내려치며 상체를 번쩍 드는 것이 어지간히 긴장했나보다.

“정말이에요. 물론 최고 수준의 로맨틱 코미디 작가들에는 못 미치긴 하지만 이건 개성으로 봐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비슷하게만 가면 재미없잖아요? 그쵸?”

“그럼요! 요즘 나오는 드라마들 전부 재벌에, 백마 탄 왕자에, 새파란 20대 청년이 유부녀 좋아하고… 말도 안 되죠! 자고로 연애는 새파란 것들끼리 꽁냥꽁냥 해야 제 맛 아니겠어요?”

그제야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표정에 웃음이 어렸다.

“계약하죠.”

“우왓! 정말요?”

급기야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렇게 쉽게 계약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현은 원래 처음 그녀와 작업할 때부터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지금이 됐을 뿐이지.

“아시다시피 신인 작가잖아요? 윤해연 작가처럼 8:2 계약은 할 수 없어요.”

“물론이죠.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도록 해요. 일단 3년 동안 이주희 작가님 6, 회사가 4예요. 만약 오피스텔을 회사에서 구해주게 되면 5:5로 합니다.”

“오피스텔이요?”

“작품 쓰려면 오피스텔에서 작업해야죠. 지금까지는 방송국 숙직실에서 밤새가며 썼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럼요.”

그녀의 눈은 오피스텔이란 말에 하트처럼 변했다. 오피스텔에서 드라마 극본을 쓰는 모습이 그녀의 꿈이었을 거다.

“오피스텔 수준은 처음에는 작은 데 구해줄 거예요. 아직 우리 회사가 영세하니까요. 하지만 점차 몸값이 올라가게 되면 더 크고 좋은 곳으로 옮겨 줄게요.”

“저야 감사하죠.”

“일단 계약하게 되면 이 시놉을 이용해 협상할 권리는 회사에게 있습니다. 회당 극본료가 얼마 나올지는 장담해드릴 수 없어요.”

“잘 해주시겠죠.”

그녀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반응이다. 이미 오피스텔 이야기에서부터 그녀는 나머지 계약내용은 어찌됐든 상관없다는 것 같다. 이후 세부적인 계약내용을 정리한 후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5백만 원입니다. 오늘 바로 입금될 거예요.”

“5백만 원이요?”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오게 되자 놀란 모양이다.

“참고로 윤해연 작가는 1억이었습니다. 다음 재계약에 얼마를 드릴지는 오로지 이주희 작가님의 실력에 달린 거겠죠?”

“계약금만 1억! 우와…”

계약을 끝낸 이후 잡담을 하다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인터넷을 확인하니 역시나 현민과 유니의 악의적 사진에 대한 해명 기사가 포털에 올라와있었다.

내용은 별 거 없었다. 1위 축하 인사를 받자 고맙다며 인사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절묘하게 찍힌 사진일 뿐이고 둘 사이에는 사적인 대화 한 번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유니에 대한 팬덤의 공격을 멈출 수 있었다.

댓글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팬들의 반응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유니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댓글들도 있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는 없으니까.

‘헤식스’ 공식 팬카페 익명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이제는 화살이 다시 피팅 모델로 향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오히려 확실하지도 않은 사진에는 해명까지 하면서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나오는 것에는 침묵한다며 의혹을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중간중간에 확실하지도 않은 것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댓글이 보였지만 우현이 봤을 때 그 댓글을 쓴 사람은 분명 SN 엔터의 직원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취업구직 사이트에 유니의 로드매니저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고 곧바로 ‘그 양반 같은 자식’을 제작하는 도마뱀미디어로 향했다.

“김 대표님! 어쩐 일이세요? 갑자기?”

지여울 제작피디가 우현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본 사이에 더 예뻐지셨네요?”

“어머! 자꾸 설레게 하기 있기예요?”

“하나도 안 설레면서 하여튼… 지 피디도 그러고 보면 참 말 잘해.”

“제작피디가 말 못하면 때려치워야죠. 물에 빠져도 입만은 동동 떠있어야 하는 게 제작피디인데요. 그나저나 진짜 무슨 일로 오셨어요?”

“혹시 새로 진행되는 아이템 있나 해서요.”

“진행되는 아이템이라면 지금 기획하고 있는 드라마 있냐고 물어보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흐음… 이거 이거,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냄새가 나는 걸요?”

“아이고 피디님, 너무 빡빡하게 몰아붙이지 마세요.”

“그럼 일단 내놔 봐요.”

지 피디는 짝다리를 짚으며 한 손을 척 앞으로 내밀었다.

“뭘요?”

“가져온 거요. 배우예요? 아님 시놉이에요? 알아야 저도 풀어드리죠.”

결국 백기를 들었다.

“크흠… 시놉시스입니다.”

“시놉이에요? 배우가 아니라? 작가는 윤해연 작가님 혼자만 계약하신 거 아니었나요? 윤 작가님이 차기작에 벌써 손대셨을 리도 없고…”

그녀는 배우를 꽂아 보려는 걸로 알았는지 시놉시스를 들이밀자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우현을 빈 회의실로 이끌었다.

“어디서 난 시놉이에요?”

“일단 읽어 봐주세요. 그리고 별로라고 생각하면 그냥 주세요.”

“으흠… ‘그럼 다른 데로 들고 가겠다’ 뭐 이런 거죠?”

“뭘 그렇게 강하게 말하십니까?”

“좋아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녀는 우현을 앞에 앉혀놓고 한참동안 시놉과 대본을 읽어나갔다. 1시간여를 꼼꼼히 살펴보던 그녀는 흥미가 가득 담긴 눈동자로 우현의 눈을 마주보았다.

“이 작가 어디서 났어요?”

“아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재미있게 썼는지가 중요한 거죠.”

그녀는 궁금해 못 참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우현이 도통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제작이 확정되기 전에는 절대로 작가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후… 이것만 말해줘요. 신인이다, 아니다.”

“신인입니다.”

“그럼 지상파 편성 어려워요. 케이블로 어때요?”

지 피디는 단숨에 이 작가의 능력을 괜찮게 본 것 같았다. 우현은 내심 환호성을 터뜨렸다. 케이블이면 어떤가? 일단 16부작 미니를 한다는 것 자체가 첫 발을 내디뎠다는 뜻이고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케이블이 지상파를 압도하는 경우도 많다.

“언제 가능할 것 같습니까?”

“KMTC에서 드라마를 하나 만들기를 원해요. 젊은 시청자 층을 겨냥하고 광고를 잘 팔 수 있는 것으로요.”

요새 한창 잘나가는 종편 중의 하나다. 보도와 예능은 이미 지상파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지만 항상 드라마 쪽이 타 방송보다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니 그쪽에서는 드라마에 목을 멜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이거 가지고 들이밀 수 있겠습니까?”

“마침 괜찮은 시놉을 찾던 중이었어요. 김은선을 비롯해서 이름 있는 작가들은 얼마 전에 작품을 마친 상황이라 중견작가들 중에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작가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딱 맞게 이게 굴러들어오네요. 이게 돌인지 호박인지는 내부 검토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다. 조금만 늦었다면 이미 다른 드라마로 편성이 났을 테니 말이다.

“호박 맞을 겁니다. 어쨌거나 결정 나면 연락 주세요. 너무 오랫동안 기다릴 수 없는 거 아시죠?”

“하여튼 성격 급하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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