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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아이돌에게 연애란?(2)
“현민이와 이것 때문에 전화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나서기를 꺼려하네요. 그러니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소속사 차원에서 해명자료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소속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믿어주는 팬덤은 없다.
“왜 꺼려한답니까?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말하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알 수가 없네요.”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걸 가까스로 참았다. 분명 이유를 아는데도 말을 안 한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우현은 현민에 대한 정보를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SNS계정부터 공식 팬카페까지 들어가 정보를 찾았다. 그런데 얼마 뒤지지 않았는데도 의심스러운 것들이 굴비 엮듯이 낚였다.
그가 고생하며 오래 찾을 필요도 없었다. 팬카페 익명 게시판에서 현민이 피팅모델 A씨와 열애중이라는 의심스런 정황을 일목요연하게 올린 글들이 포착된 것이다.
핸드폰 고리와 반지, 안무 중에 누군가에게 의미를 보내는 듯한 특이한 포즈, 그리고 그들만이 사용하는 특이한 말과 단어. ‘헤식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던 그가 봐도 그 피팅모델과 현민은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 게시글 밑에 달려있는 댓글들도 현민에 대한 아쉬움과 성토가 줄을 이었다.
[오빠 이럴 줄은 몰랐어요. ㅠㅠ 사귀는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팬들에 대한 예의로 SNS에 티는 내지 말아야죠.]
[내가 이럴 줄 알았음. 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음. 특히 그년이 SNS에다가 티를 그렇게 내는데 의심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현민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ㅠㅠ 진짜 이런 배신감은 처음이다. 내 월급 걱정해준 거니?]
[내 3년 책임져ㅠ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연애를 하다 걸렸을 때, 팬들에게서는 대략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그럴 수도 있지, 잘 사귀어라.’ 이런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배신감에 탈덕(덕질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준말.) 하거나 안티로 돌아서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문제 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는 대개 한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그 아이돌이 열애설이 터지기 전부터 자신이 열애중이라는 것을 티내고 다니기 때문이다.
대개의 팬들은 ‘연애를 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탈덕하거나 비난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연애를 하더라도 최대한 숨기고, 팬들의 상상 속에서 그와의 연애를 지속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걸 무시하고 ‘너희는 내게 돈을 벌게 해줬지만 내 인생은 내 맘대로 살겠다’라고 해버리면 팬들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빡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열애설이 터지더라도 그 아이돌은 꼭꼭 숨기고 있는데 파파라치가 억지로 따라다녀서 사진을 찍어 밝히는 경우에는 연애한 아이돌을 비난하기 보다는 기자를 욕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보니 왜 현민이 유니와의 기사에 해명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대충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안 그래도 팬들에게 피팅모델과 사귀다가 딱 걸려서 곤란한 상황인데 그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슈가 터져 나왔으니 이걸로 팬들의 눈길과 원망을 돌리겠다는 거다.
그의 의도대로 유니에 대한 악의적인 글과 댓글이 폭발하는 상황이었고 이대로 둔다면 10여 년 전 걸그룹 모양처럼 면도칼이 담긴 편지를 받는 다던가 동물 사체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니 답은 나왔다. 이걸 가지고 SN 엔터 쪽에 대충 비벼대면 답은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그쪽하고 관계가 껄끄러워 질 것 같아서 그게 또 걸린다.
“하여튼 그 놈이나 이 놈이나 같은 회사라서 그런가… 하는 짓은 똑같네.”
10여 년 전 걸그룹 모양과 열애설이 났을 때도 남자 쪽에서 깔끔하게 해명했다면 여자 쪽이 그렇게까지 곤욕을 치르지 않았을 텐데 어째 회사도 똑같은 걸 보니 더 정이 안 간다.
다음 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SN 엔터 쪽에 다시 연락했다. 이번에는 여직원이 받자마자 바로 이정묵 실장을 바꿔 달라 요청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하지만 저희 입장은 변함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나름대로 입장 표명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입장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현민군에 대한 이야기도 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알고 보니까 현민군이 피팅모델과 사귀는 중이더라구요. 그거 덮으려고 입 다무시는 것 같아서 우리 유니도 ‘임자 있는 남자랑 썸 탈 생각 없다’고 할 생각입니다.”
“대표님! 하아… 만나서 이야기 하시죠.”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꼭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든다.
“좋습니다. 제가 지금 시간이 없거든요? 회사도 가까우니까 바로 이리로 오시죠. 1시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에게 문자로 주소를 찍어주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SN 엔터 이정묵 실장입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귀에는 귀걸이 까지 하고 있는데 덩치는 자신의 두 배 정도라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김우현입니다. 앉으시죠.”
소파에 앉아 경리인 민주가 내어 준 주스를 마시며 그를 찬찬히 살폈다. 그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가 멈칫했는데 지금의 상황이 영 껄끄러운 듯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결국 우현의 입이 먼저 열렸다. 이렇게 앉아만 있다가는 점심때까지 아무 결론도 내지 못 할 것 같아서였다.
“대표님, 제가 애들 키워오면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곤란한 것이 바로 열애설이죠.”
“알고 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는 어떡하든 연애를 말리고자 노력합니다. 데뷔 전부터 교육시키는 건 물론이고 데뷔 후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고 제어하려고 하죠. 하지만 결국 사귈 애들은 어떻게 해서든 사귑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죠.”
“보통 20살 전에 데뷔하기 때문에 대개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죠. 그런데 데뷔하고 나서 똥 쌀 시간도 없는데도 기어코 면허를 따서 외제차를 굴리는 애들이 있습니다. 이러면 90%가 연애를 하는 거죠. 말리려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네 돈이 전부 팬들한테서 나온 돈이라고 해도 들어 처먹지 않죠. 어떤 놈은 오픈카에서 대놓고 키스를 하다가 걸리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팬들한테 관리 똑바로 못 하냐고 욕먹은 걸 생각하면…”
“하하.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연애하지 말라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건 그렇다 치고라도 숨기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티를 내려고 하는 걸 보면 회사에서도 모든 SNS 계정을 폭파시키고 싶다니까요? 아이고… 누구라고 말씀은 못 드리지만 어떤 여아이돌은 발톱에 페디큐어를 하면서 영어로 우리 멤버 애 이름까지 적어 넣고… 하여튼 그렇습니다. 저희도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그쪽에서도 좋을 게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현민이 문제 터지면 정말 골치 아픕니다.”
장황하게 썰을 풀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회사 차원에서도 현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듯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대표님, 허위사실 유포하게 되면 아시죠?”
“훗! 그렇게 하세요.”
그는 우현이 태연하게 미소 짓자 움찔했다. 회사의 규모부터 다르고 SN 엔터가 드라마와 영화 등 투자부문까지 손을 벌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소 회사인 우현이 저렇게 태연하게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하는 걸 보니 꽤 많이 해보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기자와 얘기하면서 ‘그냥 그런 말이 들리더라’ 라는 말만 던지면 돼요. 만약 아니라면 정말 죄송하다고 하구요. 어떻게… 유니 고소할 수 있겠어요?”
“앞으로 방송 활동 어려울 겁니다.”
“하하하. 당신 이제 보니 이 바닥 생리도 제대로 모르잖아? 진짜 실장 맞아요?”
“뭐, 뭐요?”
“지금 16부작 드라마 메인 테마로 우리 유니 노래가 나가고 있어요. 그거 막을 수 있어요? SN이 아니라 SN할애비가 와도 못 막아요. 무슨 삼선쯤 되는 재벌인 줄 아시나? 그리고 드라마 끝날 때도 유니가 지금처럼 무명일 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지금의 유니는 무명이라고 하기엔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가 끝났을 쯤에는 이미 수많은 행사와 예능을 치른 다음일 것이고 SN의 힘으로도 유니의 방송출연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예전 모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남자 아이돌그룹은 계약해지관련으로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이건 말하기도 쪽팔린 일이다.
“연예계에 오래 계셔서 그런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네. 그럼 할 얘기 다 하신 거죠? 가보세요. 저희는 알아서 문제 해결할 테니까.”
“대표님, 알겠습니다. 저희가 현민이 설득하겠습니다.”
“아뇨, 그렇게는 안 되죠.”
“네?”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으면 저도 수락했겠지만 되는 데까지 질러보다가 안 될 것 같으니까 꼬리를 내리는 거잖아요? 그렇게 나오는데 그쪽이 시간이나 끌어 보려는 수작일지 어떻게 압니까?”
“대표님, 말씀 너무 심하게 하시는 거 아닙니까?”
“심한 건 그쪽이죠. 앞으로 1시간 주겠습니다. 현민군 입장 표명 없으면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합니다.”
“이 바닥에서 우리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웬만하면 적을 만들려고 하지 않지만 회사의 대표로서 여기서 숙이고 들어가면 그건 그냥 병신인 거다.
“하하. 이 사람 진짜 드라마 많이 보셨네. 이봐요, 아저씨. 지금이 쌍팔 년도인 줄 아세요? 당신네 사장도 당신 이렇게 영업하는 거 알아요? 알면 당신 실장 자리에 못 앉혀 놓을 텐데?”
하도 갑질만 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상대 소속사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온 게 분명하다. 윤해연 작가가 소속된 것만 알아도 저렇게 나오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를 데리고 있다는 건 돈을 번다는 것뿐만 아니라 캐스팅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뜻도 된다.
“…”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우현을 노려보았지만 우현은 그런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대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가세요. 지금부터 1시간 후입니다.”
그는 인사도 없이 사무실을 나갔고 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실장이라는 놈이 기본도 안 돼 있네. 회사빨로 실장 달았나? 저 능력으로 어떻게 실장이 됐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사무실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남은 할 말이 있나 궁금증을 가지는데 불투명한 유리문으로 보이는 실루엣은 남자가 아니었다.
“대표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들여보내요.”
궁금증에 일단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들여보내라 했다.
“안녕하세요?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뿔테 안경에 대충 차려입은 옷, 그리고 부산스러운 머리를 겨우 정돈한 것을 보니 기억났다.
“이주희 작가님?”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건넸다. 언제고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찾아 올 줄은 몰랐다.
“어? 기억하세요?”
“그럼요, 기억하죠. 그 때 단막극 ‘옆집 남자의 사정’ 작가님이셨잖습니까?”
“호호, 영광이네요. 이번에 별이씨 드라마 나오는 거 잘 보고 있어요. 연기가 그 때보다 더 늘었더라구요.”
“네. 드라마 촬영 전부터 김혜진 선생님께 과외도 받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늘었구나. 그리고 유니씨 노래도 좋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변죽만 울리고 자신의 눈치를 본다. 아무래도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찾아온 모양이다.
“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