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59화 (5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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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 스카우트 아닌 스카우트(5)

어이없어하는 그녀다.

“너 겁 없는 형제들이라는 작곡가 알아?”

“알지. 엄청 유명한 작곡가잖아?”

“그 작곡가가 예전에 ‘미쳤다’라는 곡을 썼어. 알지? 그 곡을 딱 만들자마자 ‘이건 뜨겠다’라는 감이 왔나봐. 그래서 이걸 누굴 줄까 고민했었데.”

“그런데?”

“그런데 당시 최고의 섹시 댄스가수인 이효정이 그 곡을 달라고 한 거야. 그 때 이효정은 진짜 최고의 톱스타였잖아?”

“그랬지. 그런데 그 곡은 이효정이 안 불렀잖아?”

“그래, 맞아. 그 작곡가는 이 곡을 이효정 대신에 당시 아무도 모르던 손은비라는 신인여가수한테 줬지. 왜 그랬을까?”

“왜 그랬는데?”

“그건 아무도 몰라.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거든.”

“뭐야 그게? 장난해?”

“그런데 난 알 것 같아. 이효정한테 그 곡을 줬다면 그냥 이효정이 불렀으니까 뜬 곡이겠거니 생각할거야. 곡이 얼마나 좋은지, 그 곡이 얼마나 가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지 몰랐겠지.”

“아… 그래서 나나 강소은은 더 이상 띄울 수 없는 존재였다 이 말이야?”

“솔직히 너나 강소은이 이미 톱스타라 더 이상 오를 수 있는 곳이 없잖아? 하지만 유지나는 다르지. 몇 개의 작품을 통해서 베이글 미녀로 떠오르긴 해서 A급 여배우 대우는 받지만 막상 공중파 여주를 맡은 적도 없고 케이블에서나 여주를 맡았지. 게다가 근 1년 동안 작품도 제대로 못 했고.”

보통 A급 배우라고 함은 드라마로 따지면 주연급 배우를 말하며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는 배우를 A급이라고 통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A급 중에서도 여러 등급으로 갈리긴 하지만, 그걸 두고 다시 게임처럼 S급이니 AAA급이니 이렇게 세세하게까지 분류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고기 등급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배우에 등급을 나눈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며 더 큰 이유는 각 배우들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과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연이면 무조건 B급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데뷔한지 얼마 안 되는 신인이면 아직 등급으로 나누지도 않는다. 그냥 신인배우며 루키일 뿐이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작품을 하면서도 어디서도 주연을 맡지 못하고 조연으로만 떠돈다면 그 때부터는 B급이라는 표식이 붙게 된다.

“그래서 키울 맛이 난다?”

뭔가 단단히 삐친 것 같은 말투다.

“단어가 조금 그렇긴 한데… 난, 재능과 숨겨진 매력이 충분한데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친구들을 발굴해서 키우는 것에 더 즐거움을 느껴.”

“그런데 기분 나쁘네? 왜 꼭 여자만 키워? 남자는 재미없어?”

“크흠… 그런 게 아니야. 어쩌다 보니까 여자가 된 거지. 진짜 아무 관계없어. 그리고 유지나는, 이진명이라고 걔랑 몇 년간 같이 한 매니저가 따라올 거야. 난 작품 좀 골라주는 것밖에 안 해.”

“알았어. 그나저나 계약금은?”

“계약금은 없어. 내용이 조금 복잡하긴 한데 어쨌거나 거금이 나간 건 아니야.”

“그건 다행이네. 나 바빠서 이만 끊을게.”

역시나 이번에도 우현이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냉큼 전화를 끊어버렸다. 피식 웃으며 먼저 나간 일행을 따라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일행의 뒤를 쫓아가는데 저 멀리 앞에서 일단의 무리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달려가 보니 역시나 귀에 익은 목소리다.

“너 이 새끼, 나 몰래 뒷구녕을 파? 네가 그러고도 잘 먹고 잘 살줄 알아? 천만에! 너 오래 못 가. 특히, 유지나. 너! 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초저녁부터 술을 진탕 마시고 왔는지 길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진상을 피우는 이는 바로 윤 실장이었다. 우현이 즉시 달려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진명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뭐 하는 겁니까!”

“어? 그래, 김우현 이 새끼. 너! 나를 엿 먹여 놓고 내가 이대로 쉽게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어? 나 다른 데로 가면 그만이야. 저 유지나, 저 년을 내가 그냥 둘 것 같아?”

대놓고 협박하는 그의 태도에 유지나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우현은 그가 유지나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로막고는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해 봐 그럼.”

“뭐?”

“해보라고. 대신 네 잘난 혓바닥을 놀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우, 웃기고 있네. 그런다고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아나보지?”

“겁 안 먹어도 돼. 그냥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잘 알아둬.”

우현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네가 그 때 말했던 모든 게 다 녹음되어 있거든. 그거 대진그룹에 가져다 줄 거야. 네가 강현필을 팔았다고 말이야.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장담하는데 일주일도 안 돼서 당신이 시체로 발견된다는 데 내 전 재산과 손목을 걸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뿔난 망아지마냥 길길이 날뛰던 그는 붕어처럼 입만 벙끗거렸다. 그러다 점점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알지? 저기 위에 사는 인간들은 쪽팔린 거 못 견딘다는 거. 그거 터지면 누가 죽을 거 같아? 내가? 아니야. 당신이 거기서 말한 내용에는 유지나에 대한 말은 없었어. 오직 강현필과 윤시라, 황 대표에 대해서만 말했지. 아, 내가 또 깜빡했네. 황 대표가 어깨 출신이잖아? 대진그룹이 아니라 황 대표한테 갖다 줘야겠네? 그렇지?”

“x새끼…”

“아니지.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지.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려고 한 사람은 당신이잖아.”

“흥! 웃기지 마! 내가 억지로 시켰어? 난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았어. 다 저년처럼 스스로 선택한 거지!”

윤 실장은 마지막 발악인 듯 소리 질렀다. 하지만 이제는 유지나도 겁먹지 않고 싸늘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변명이야.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끔 강요한 거잖아.”

“그건…”

“윤 실장! 애처럼 굴지 말고 잘 들어. 당신 인생 끝장난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끝장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두는 거야. 그러니까 인생 다 끝장난 것처럼 굴지 말고 적당한 회사 들어가서 새로 시작해. 지금까지 했던 쓰레기 짓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네 배우 키워. 그러면 네가 부러워하는 것들. 다시 누리며 살 수 있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 하는 마지막 충고야.”

우현은 회사 식구들을 데리고 멀어져갔다. 혼자 남은 그는 멍하니 땅만 보고 서 있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람들은 처음에 관심 있게 봐주는 것 같았지만 이내 멀어져갔고 그는 홀로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우현이 예약한 곳은 청담동에서 유명한 고깃집이었다. 예약했던 방으로 가서 앉으니 방금 전의 말다툼 때문에 서로 어색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경리인 민주나 유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니 궁금해 할 것이고 지나와 진명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눈치를 보는 상황인 것이다.

“자자, 우리 고깃집 왔으니까 일단 먹고 얘기합시다. 민주씨랑 유니는 유지나씨 알지?”

“그럼요. 당연히 알죠.”

“헤헤, 저는 팬이었어요.”

“정말요? 어머 고마워라.”

말을 조금 틔워주자 그 때부터는 굳이 우현이 입을 열지 않아도 서로간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직 미성년자인 유니는 콜라를 마시고 나머지는 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띄웠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결혼한 민주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아빠가 데리러 온 유니가 자리를 뜨자 그들은 다시 자리를 옮겨 근처 이자까야에서 2차를 진행했다.

뜨끈한 우동과 회를 먹으며 소주를 마시는데 진명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대표님, 그런데 아까 윤 실장 말이에요.”

“윤 실장은 왜?”

“그… 아까 대표님이 하신 말 듣고 윤 실장이 뉘우칠까요? 마음 다시 잡고…”

“진명아.”

“네?”

“사람 쉽게 변하는 거 아니야. 네가 윤 실장과 지낸 정이 있어서 혹시나 실수할까봐 이야기 하는데, 절대 사람 쉽게 변하는 거 아니다. 아까 윤 실장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던 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당했다는 게 억울하고 복수할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워서였을 거야.”

“그럼 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예요?”

“법으로 감옥에 집어 처넣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했겠지.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혹시나, 만에 하나 뉘우칠지도 모르니까. 윤 실장도 처자식이 있는 가장인데 혹시나 마음잡을지도 몰라서 했던 말이야. 윤 실장이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처자식이 불쌍해서. 물론 그래도 난 그가 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해야 해. 절대 윤 실장과는 연락도 하지 말고 연결될 수 있는 모든 선을 다 잘라.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지나씨. 내가 왜 작품을 내 마음대로 선택하려고 하는지 알아요?”

안주를 집어 들고 있던 유지나가 얼른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뇨.”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요? 매니저와 배우가 원하는 작품이 다를 때.”

“그렇죠. 저는 맞았던 경우가 없던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가 드라마를 할 때, 또는 자신이 꽂힌 캐릭터가 있을 때, 주연이 아니라도 좋으니 조연이라도 하려고 하는 거.”

“네, 그렇죠.”

그녀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우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된 듯했다.

“비난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저는요, 어떤 배우가 조연을 하다가 주연이 되면 그 배우는 계속해서 주연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 배우의 연기가 개판이건, 얼굴이 영 아니건 말이죠. 그런데 주연을 하다가 조연을 하면요, 작가나 피디가 헷갈려 해요. 이 사람을 주연에 갖다 놔도 될지 말이에요. 지나씨가 전에 주말드라마를 하면서 조연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케이블에서 주연을 맡았으면서 말이죠.”

“네, 그랬죠.”

그녀의 얼굴에 자책감이 묻어 나왔다. 지금 생각하니 그녀가 택했던 작품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을 거다.

“그런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됐죠? 그 이후론 눈에 띄는 작품 하나 제대로 못 했죠? 물론 윤 실장이 손을 써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손가락 빨고 있는 건 문제가 있어요. 왜 그랬을까요? 작가나 피디가 자신이 없었던 거예요. 지나씨를 주연에 써도 잘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더 잘나가는 여배우를 찾게 했어요.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지나씨 잘못이었어요.”

“그렇네요. 저는 그 작품이 꼭 하고 싶었었는데…”

“알아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알기에 그런 거라는 걸. 그래서 안타까웠어요. 하고 싶은 배역은요, 완전히 떠서 지나씨 혼자서 극을 끌고 갈 수 있을 만큼 원톱으로 인정받을 때, 그 때 원하는 거 하면 돼요. 그 전까지는 내가 하라는 작품 할 수 있겠어요?”

“네. 할 수 있는 거면 다 할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지나씨 능력 벗어난 작품은 내가 선택하지 않으니까.”

“김 대표님이 어떤 작품을 골라줄지 무척 기대되네요.”

“걱정 말아요. 벌써 찜해둔 작품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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