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57화 (5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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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스카우트 아닌 스카우트(3)

검은 대리석으로 치장된 고급스러운 복도를 지나 구석에 위치한 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쪽 다리를 거만하게 올려놓은 윤 실장이 우현을 반긴다.

“여! 왔어? 내가 언제 한 번 술 마시자고 했는데, 이렇게 되네?”

“그러게요.”

“내가 일단 술은 먼저 시켰어. 아, 걱정하지 마. 가장 싼 걸로 시켰거든. 어차피 술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이게 중요하지, 이게… 흐흐.”

볼썽사나운 손동작을 해대며 실실 쪼개는 모습을 보니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급하기는… 알았어요. 이봐, 여기 초이스하게 들어오라고 해요.”

마침 방에 들어오려는 남자 매니저, 일명 실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말하니 그는 알았다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돈 많이 벌었나봐? 이런데도 오고?”

“이번에 우리 별이가 한 ‘밀실’이 대박 났잖습니까? 러닝개런티만 3천 넘게 들어올 것 같아요.”

“3천? 별거 아닌데?”

대박난 작품의 A급 배우들이 받는 러닝개런티를 잘 알기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다.

“저는 그 정도만 해도 만족합니다. 이번에 드라마도 잘 되고 있구요. 그런데 회사를 굴리려니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가긴 하네요. 윤 실장하고 술 마시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해요.”

슬슬 눈치를 보며 썰을 풀기 시작했다.

“아니, 왜? 윤 작가까지 데리고 있으면서?”

“피디나 작가들 관리해야 하고 코디에, 미용실에, 의상에…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에요.”

“하긴, 그렇겠지.”

“에이, 속상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요.”

“그런데 진명이는?”

“걔 갑자기 지나가 부른다고 갔어요.”

“미친년, 하여튼 그 년은 매니저 없으면 물도 못 마실 년이라니까? 그럼 우리 둘이 마셔보자구.”

곧 문을 열고 그림 같이 예쁜 여성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윤 실장은 수능시험을 치르듯 신중하게 여자를 선택했고 우현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여자를 옆에 앉혔다.

이후로 한동안 먹고 마시는 시간이 지속됐다. 한창 술이 오르자 다시 한 번 떡밥을 던져보려고 하는데, 옆에 앉은 아가씨를 끌어안고 있던 윤 실장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김 실장. 아니, 이제 김 대표지? 김 대표, 회사 많이 어려워?”

“아까도 말했잖아요. 아무래도 쉽지 않기는 해요.”

“그래? 흐음… 그 왜 있잖아? 내가 보니까 가수도 하나 키우던데?”

“네. 가수 하나 키우고 있어요.”

“그 애 이름이 유니였던가?”

가수를 하나 키우고 있다고 했지, 유니를 언급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유니가 누구나 알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분명 유니에 대해 알고 말하는 거다.

우현은 별이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짜왔는데 유니를 언급하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일단 장단은 맞춰주기로 했다.

“네, 맞아요. 이번에 ‘그 양반 같은 자식’에 OST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맞아 맞아, 그 유니. 보니까 진짜 매력적이더라구.”

“하핫, 그렇죠? 우리 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귀염상에 몸매도 좋죠.”

“그래서 말인데… 아, 우리 잠시만 헤어질까? 나가서 화장실이라도 한 번 갔다 와.”

윤 실장이 밖으로 나가는 아가씨의 엉덩이를 토닥이더니 은근한 표정으로 우현의 앞에 있던 스트레이트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김 대표. 사실 중소 기획사 하나 키우기가 좀 힘들어? 내가 그 심정 알지. 아, 페리스 뮤직 알지? 황건우가 대표로 있는 회사.”

“알아요. 윤시라 데리고 있는…”

지금은 서른이 넘었지만 한 때 군인장병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솔로 댄스 여가수가 바로 윤시라다. 매끈한 몸매와 화려하고 관능적인 춤은 지금도 회자되곤 하며 올해 음반을 새로 낼 거라는 말도 있다.

“사실은 말야. 윤시라가 4집에서 망했을 때, 황 대표가 회사 운영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포기하려 했을 때가 있었거든. 투자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대고 회사를 찾아오기 일쑤였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 위기를 넘겼는지 알아?”

“어떻게요?”

“윤시라에게 스폰을 대줬어.”

“진짜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쌍욕을 내뱉었다.

“응. 그러니까 그 스폰을 해줬던 사람의 투자금이 들어와서 회사 다시 살리고, 5집 내서 평타 이상 쳤잖아. 그래서 회사 다시 일으켰지 뭐. 지금은 윤시라 말고도 몇 명 더 이어줬을 걸?”

“윤 실장이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실은 내가 연결해줬거든.”

“윤 실장이 연결해줬다구요?”

“그렇다니까. 어때? 김 대표도 생각 있어? 유니를 연결시켜 주잖아? 유니만 좋은 게 아니야. 별이도 그냥 뜨는 거야. 김 대표 회사를 밀어주거든. 물론 유니도 좋은 협찬에 용돈도 두둑하게 받지.”

우현은 스트레이트 잔에 담긴 독한 술을 한 번에 원샷으로 털어넣었다. 윤 실장은 그 모습이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다시 한 번 은근하게 권했다.

“윤시라가 스폰 받고나서 CF를 몇 개 찍었는 줄 알아? 1년 계약으로 3개나 찍었다니까? 솔직히 윤시라가 언제 적 윤시라야? 그런데도 3개나 찍었다고. 유니 정도면 더 하고도 남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윤시라가 한물갔다고 해도 쌓아놓은 인지도가 있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아무 인지도도 없는 신인은 스폰을 받아도 용돈벌이 이상은 힘들다. 물론 그 선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냐에 따라서 달라지긴 한다.

왜, TV 보다보면 연기력도 안 되고 인물도 별로인 것 같은데 온갖 드라마의 주연 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아주 간혹 일어나고는 한다. 캐스팅 디렉터나 피디, 작가가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경우가 투자자 쪽에서 압박을 해 울며 겨자 먹기로 꽂힌 경우다.

윤 실장은 바로 그런 경우를 대며 자신이 그 끈을 연결해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다. 만약 우현이 아닌 욕심 많고 양심 없는 기획사의 사장이라면 윤 실장의 제안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진짜 3개나 찍었어요?”

“그래. 그리고 그 3개 다 2억 이상으로 계약했다니까? 어때? 감이 좀 와?”

“대단하네요.”

“그렇지? 어때? 내가 연결해줘?”

“그런데… 솔직히 그런 사람이 흔합니까? 만약 스폰 대줬는데 알아보니까 그냥 돈 많은 의사나 중소기업 사장이면 어떡해요? 그럼 안 할 거예요.”

“어허!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내가 누구 연결시켜줄 줄 알고 그래?”

“누군데요?”

“아… 먼저 이야기해주면 안 되는데…”

“유니를 바로 찍은 거 보면 윤 실장이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닐 거 아닙니까?”

우현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움찔한다. 역시나, 유니를 마음에 들어 했던 건 윤 실장이 아닌 보이지 않는 누군가다.

한참을 말할지 말지 고심하던 윤 실장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 마음에 안 든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우현에게 엉덩이를 바짝 들이대며 다가왔다.

“이거 절대로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돼. 나만 죽는 거 아니야. 이거 얘기 나가면 다 죽는 거지. 약속할 수 있어?”

“당연하죠. 그런데 듣고 나서 별거 아닌 거 아닙니까?”

“아니라니까! 듣고 나서 놀라지나 마!”

“그러니까 변죽만 울리지 말고 말이나 해봐요. 누군데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유니를 넘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에이, 좋아. 내가 김 대표 진중한 성격인 거 알고 있으니까 말하는 거다.”

그는 우현의 귀에 속삭였다.

“대진그룹 삼남, 강현필.”

“누구? 대진그룹 강현필? 그, 자동차 만드는 대진그룹?”

일부러 소리쳤다.

“소리 죽여! 그래, 그 강현필 맞아. 사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슬쩍 김별 사진을 들이밀었는데 영 시큰둥하더라고. 그런데 얼마 있다가 그분이 이름 하나를 들이밀데? 나도 처음에는 유니가 누군가 했어. 그런데 알고 보니까 김 대표 가수더라고. 마음에 들었나봐. 자, 답 나왔지? 이 정도면 CF 3개는 우습고 앞으로 김 대표의 파인 엔터는 날개 달리는 거라니까?”

윤 실장이 쥔 끈이 이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연결이 됐는지 궁금할 정도다.

“진짜 이 사람이라는 거죠? 나 윤 실장만 믿습니다.”

“진짜라니까! 내가 당장 연락할 수도 있어. 김 대표만 오케이하면 오늘 밤이라도 만남을 주선할 수 있다니까!”

재벌 그룹사 임원을 한 마디로 불러낼 수 있다는 말은 그냥 허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윤 실장이 대단한 건가? 아니면 어린 여자에 환장한 재벌 3남이 정신 빠진 놈인가? 한숨만 나왔다.

“알았어요. 오늘 하루만 시간을 줘요.”

“이걸 보고도 망설여?”

“에이, 일단 유니한테도 썰을 풀어놔야 할 거 아닙니까!”

“아하, 그렇지. 내가 좀 성급했어. 그렇지? 흐흐, 알았어. 내가 김 대표 믿잖아. 나 그렇게 경우 없는 놈 아니야. 자, 그러면 술 계속 마실까? 이봐! 여기 이쁜이들 어디 갔어? 화장실 갔다 죽은 거야!”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떻게 엮어볼까 하는 걱정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넘어왔다. 이런 짓을 얼마나 많이 했다는 건지 짐작도 안 간다. 하지만 일이 잘 풀렸음에도 마음에 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이 바닥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다들 청운의 꿈을 꾸며 스타가 되기를 꿈꿔왔을 거다. 그러다 한 순간의 욕심에 다들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진다.

스폰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구애로는 성립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내재된 욕망을 부추긴다. 자기 돈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명품에다 차, 집 등을 안겨주니 남녀를 불문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술을 진탕 먹여주고 수백만 원어치의 술값을 계산한 뒤 가게를 나왔다. 내일 당장 영수증을 보여줘야 하는 민주씨에게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다. 유지나를 데려오는 계약금이라고 생각해야지.

날이 밝자 우현은 사무실 대신 키웨스트를 향했다. 강남 도산대로변에 위치한 키웨스트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청초한 미인상의 여직원이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그를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약속 하셨나요?”

“아뇨. 사장님한테 말씀 좀 전해주세요. 파인 엔터 김우현이 찾아왔다고. 전할 물건이 있는데 아주 중요한 거라고 말해주세요.”

“중요한 물건이요?”

“네. 수십억짜리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전화를 들어 대표실로 우현의 말을 옮겼다. 그리고 한참 후, 그녀가 손짓으로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들어오시랍니다. 대표실은 7층 누르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올라 대표실 앞에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일종의 자기과시와 기를 죽이기 위해 그러는 것 같은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비서 앞에 놓인 소파에서 기다리기를 30분 정도가 지나자 대표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앉으세요.”

우현이 들어서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대표실 중앙에 있는 고급 소파를 가리켰다.

“안녕하세요. 파인 엔터 김우현입니다.”

우현이 내미는 명함을 대충 보고 앞에 던지듯이 놓은 그는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대체 뭔데 수십억을 거론하는 겁니까? 난 장난을 좋아하지 않아요.”

외부에서 초빙된 전문 경영인인 그는, 대뜸 수십억을 거론하며 만나자는 우현이 같잖아 보이는 듯했다. 이해할 수 있다. 저 정도의 위치에서는 한 번만 만나달라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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