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55화 (5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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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스카우트 아닌 스카우트(1)

“투자자가 깐 게 아니라 중간에 회사에서 깠거나 윤 실장이 깠을 겁니다. 현재 스케줄 관리 윤 실장이 하죠?”

“맞아요.”

“드라마 피디, 작가, 감독 모두를 윤 실장이 컨트롤하고 있으니 중간에 이상한 소리 몇 번만 하면 스케줄 엉키게 하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물론 그런 짓을 그 스폰서가 시켰는지 아니면 윤 실장이 스스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새끼가…”

진명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욕하는 걸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원래 숲액터스 출신인데 왜 키웨스트로 옮겼어요? 대우가 나쁘진 않았을 텐데.”

숲액터스는 배우매니지먼트 회사 중에 배우들과의 관계가 가장 좋기로 유명하다. 회사 이름도 숲액터스의 대표 여배우인 문근연이 직접 지었고 지금도 계약금 없이 관계를 이어갈 정도다.

“그 때는 이상하게 다른 회사에 가보고 싶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관리해줄지 궁금했고 더 좋은 조건에서 작품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그 때 윤 실장이 저에게 바람을 많이 넣었어요. 특히 소속사를 옮기게 되면 계약금 1억에다가 곧바로 제가 원하는 드림카를 준다고 해서… 차 값만 1억 5천이 넘었거든요.”

“그 정도면 저 같아도 옮기겠네요.”

아무리 유지나가 베이글 여신이라 해도 계약금에다가 저 정도의 외제차를 추가로 준다고 하면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회사를 옮기고 보니 내 것도 아니고 회사 소유의 리스 차량이더라구요. x새끼…”

뒤통수 제대로 맞은 건데 어렸을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이런 속임수에 잘 넘어가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을 회사에 따지고 들기도 애매했을 거다. 이미 도장까지 다 찍고 차기작에 CF까지 계약할 거 다 하고난 후에야 알았을 테니까.

회사가 나쁜 놈들이라고 단정 짓기에도 역시 애매하다. 윤 실장이 중간에 어떻게 말을 전달했는지 알지 못하니까.

“정확하게 원하는 게 어떤 건가요? 작품만 하면 되는 거예요? 아니면 윤 실장과 헤어지길 원해요? 그것도 아니면 회사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거예요?”

“전부 해결해줄 수 있어요?”

그녀의 기대어린 눈빛에 우현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 해결사가 아닙니다. 형사도 아니구요. 그래서 외부인으로서 도와 드리는 건 한계가 있어요.”

진명이 둘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형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 형님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요.”

“우리 회사에 들어오겠다고?”

“네, 지나야 너도 말씀드려.”

이미 둘은 이야기를 끝내고 온 것 같았다.

“저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김 대표님과 같이 일할 생각이 돼있어요.”

“흐음… 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데?”

“계약은 내년 8월까지입니다.”

“그럼 뭐야? 나더러 키웨스트 사장이랑 결론을 지으란 거야?”

둘은 아무 말도 못했다. 허탈함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 그냥 내년 8월까지 기다리면 안 돼요?”

“형님, 아시잖습니까? 지금 내고 있는 대출 이자만 한 달에 천이 넘습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대출 신청할 줄 몰라서 제가 도와줬거든요.”

대부분의 일을 매니저나 다른 이들이 처리해주다 보니 은행업무도 혼자서 볼 줄 모르는 배우나 가수가 있는데 지나가 그런 경우인 듯하다.

“그럼 집 빼서 작은 데로 잠시 옮겨요. 어차피 CF 하나만 찍어도 금방 처리될 문제 아닙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진명이 답했다. 유지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걸 보니 뭔가 사고를 쳤나보다.

“왜? 집 넘어 간 거야?”

“그게… 사실 지나가 돈을 벌면 항상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 돈을 부모님이 다 날리고 지나가 살고 있는 집도 전부…”

“아이고…”

어려서부터 연예계 생활을 하면 돈을 부모들이 관리하게 되는데 간혹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생긴다.

유명한 모 트로트 가수도 버는 족족 돈을 엄마에게 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을 전부 동생 사업자금에 갔다 줘서 전부 날렸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다.

의외로 돈을 잘 벌 것 같은 연예인 중에 남모를 빚에 허덕이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대부분 가족 중의 누군가가 사업병이 있거나 도박에 연루된 경우다.

“진짜예요? 내년 8월까지 버틸 수 없어요?”

한참을 머뭇거린 그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 달까지 이자를 내지 못하면 경매에 넘어갈 거라고 들었어요. 사실 그래서 윤 실장이 말한 스폰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그 윤 실장은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도저히 스폰 제의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그녀의 작품을 막아왔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여유를 부리는 것이 이해됐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유지나는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에게 굴복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급할 것도 없었을 거다.

“형님, 지나가 사는 집 경매 넘어갔다는 기사 나오면 진짜 어려워집니다.”

“알았어, 인마.”

우현은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마시며 고심하다 지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계약금 없고 아직 밴 지원 못해줘요.”

“괜찮아요. 일할 수만 있으면 그런 것 없어도 돼요.”

배우가 가장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상황이란 돈이 부족할 때라는 말이 있다. 그녀의 눈은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랑 일하면 무조건 내가 하라는 거 해야 해요. 협의는 하겠지만 최종 결정은 내가 해요. 아, 물론 19금 작품은 무조건 안 해요.”

“그러면 괜찮아요. 김 대표님을 믿을게요.”

“날 뭘 보고 믿어요? 나랑 한 번도 부딪쳐 본 적 없으면서?”

“진명 오빠한테 많이 들었어요. 실수 없고, 철두철미 하다고. 오빠가 그렇게 다른 매니저 칭찬하는 거 김 대표님이 유일하거든요.”

“좋아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그리고 너는 내일 약속 잡아.”

“무슨 약속 말입니까?”

“내일 밤 11시쯤에 강남 룸싸롱 예약 잡아. 윤 실장이랑.”

“윤 실장이랑요? 왜…?”

“인마, 내가 지금 키웨스트 사장이랑 그냥 담판지으면 해결 되는 문제 같냐? 계약이 장난이야? 아니면 너희 사장이 자선사업가라도 돼?”

“그럼 윤 실장하고 이야기하시게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약속이나 잡아. 그리고 내가 윤 실장하고 술 마시면 넌 알아서 자리에서 빠져.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술값은 제가 계산하고 가겠습니다.”

“웃기고 있네. 이미 술값으로 수백 깨졌을 거 아니야? 윤 실장 뒤 캔다고. 술값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냥 집에 가서 기도나 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감사는 일이 잘 끝난 다음에 해. 나도 이건 장담 못 하는 거니까. 그리고 잘 되면 딴 소리 하기 없는 거야.”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계약관계는 확실해야 하기에 단단히 주의를 줬다.

“걱정하지 마십쇼. 그리고 만약 윤 실장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면 김빈도 같이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김빈? 김빈도 엮였어?”

김빈은 모델 출신 남자배우로, 배우 출신이 아님에도 상당히 좋은 연기력을 인정받아 작년 대종상 남우조연상까지 받은 실력파 스타다.

“내가 윤 실장이랑 담판을 지을지 회사에서 내쫓을지 어떻게 알고?”

“윤 실장은 회사 사람들도 기피할 정도로 개념 없고 예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윤 실장이 실수했다고 하면 아마 회사에서도 버티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김빈 같은 경우는 작품을 못 한 건 아닌데 윤 실장과 사이가 안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사에도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구요.”

“김빈 정도 되는 애를 왜 그렇게 관리한 거야?”

“김빈이 돈이 되긴 하지만 윤 실장은 원래 여자 아니면 신경 안 씁니다. 그냥 돈 때문에 키웠는데 운 좋게도 대박 난 경우죠.”

“걔는 계약기간이 얼마나 남았는데?”

“삼년 뒤라서 아직 꽤 남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그냥 놔줄 거라고?”

“아닐까요?”

이 팀장이 실장급이 되려면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 A급 스타 하나가 회사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 걸 보면 말이다.

“에휴… 됐고, 내일 술자리에 잘 불러다 놓기나 해.”

“걱정 마십쇼. 그 인간 룸싸롱에서 술 마신다고 하면 밤새고도 달려올 놈이니까요.”

진명이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윤 실장이 달려 나올 것임을 알고 있다. 문제는 이제 그놈을 어떻게 엮어 가냐는 것.

“들어가세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약속 반드시 지켜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아요.”

단단히 약속한 뒤 둘을 돌려보냈다. 다음 날, 우현은 새벽부터 일어나 유니를 데리러 갔다.

“이게 웬 차예요?”

“어제 저녁에 렌트한 거야. 오늘부터 이 차로 다닐 거다.”

이제 유니도 스케줄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카니발을 장기렌트했다. 미리 무대의상을 실어놨기 때문에 아침에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우현은 전날 미리 아는 피디와 작가에게 물어 음악방송 녹화에 관한 지식과 필요한 절차를 숙지했기에 큰 긴장을 하지 않았지만 유니는 잔뜩 얼어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런저런 잡담으로 긴장을 풀어주며 샵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메이크업과 헤어를 한 후 방송국으로 향하는데 그래도 시간이 촉박하다. 리허설을 빠르게는 아침 7시나 8시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리허설은 2번에서 3번 정도를 하며 편하게 사복을 입고 동선 정도를 체크하는 드라이 리허설과 실제로 카메라로 찍어가며 하는 카메라 리허설까지 한다고 했다. 의상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로 하는 드레스 리허설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거의 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유니씨! 스탠바이 해주세요!”

방송국 음악방송 녹화 무대에 도착하기 무섭게 유니를 찾는다. 서둘러 피디와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는 사이 유니가 무대에 올라 커다란 이름표를 목에 걸고 리허설을 했다.

별다른 안무가 없기 때문에 그저 서서 노래를 부르기만 하는 거라 리허설이라고는 하지만 별로 할 게 없었다. 그래도 솔로로 첫 데뷔무대나 마찬가지라 그런지 리허설인데도 최선을 다해 부르는 게 느껴졌다.

“어머! 윤정아!”

드라이 리허설이 끝나고 다른 이들의 무대를 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앳된 소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꺄아악! 언니! 보고 싶었어요!”

어디서 본 듯한 여자가 유니를 향해 달려오더니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뛴다. 헤어진 연인이 상봉하는 것 같은 달달한 분위기에 그저 지켜보고 있었는데 유니가 그 소녀를 가리키며 우현에게 말했다.

“알죠? 핑크소녀의 한주아.”

그제야 눈에 익었던 이유를 알았다. 음방과 예능에 종종 나오는 걸그룹 멤버라서 눈에 익었던 거지만, 확실히 뜬 걸그룹이 아니기에 이름도 모르고 기억에도 확실히 남지 않았던 거다.

“아, 반가워요. 우리 유니랑은 어떻게 알아요?”

“안녕하세요. 같은 유디 엔터 연습생이었어요. 그러다 제가 나와서 다른 회사에 가서 데뷔한 거죠.”

그녀는 걸그룹 답지 않게 선하고 귀여운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잘만 뜨면 꽤나 덕후들을 몰고 다닐 것 같았다.

“한주아! 거기서 뭐해!”

멀리서 들리는 고함소리. 목소리에 상당한 날카로움이 담겨 있어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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