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53화 (5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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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촬영이 전쟁같다(2)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지금 전화할까요?”

“됐어, 지금 시간이 늦었어. 나도 내일 출근해야 할 거 아냐?”

“그럼 제가 지나랑 협의한 다음에 약속 잡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시간은 이 시간 그대로 할까요?”

“그렇지. 너도 그렇고 나도 할 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행동이랑 말조심해라. 냄새 풍기지 말고.”

“걱정하지 마십쇼.”

이후에는 남은 치킨과 맥주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 헤어졌다. 고시원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하… 이제 여기 좀 벗어나보자. 쪽팔리게…”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다. 고작 고시원 생활도 못 벗어나고 있으면서 누구를 구해주고 말고를 생각하고 있다는 게. 이럴 때는 은하를 데려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결정하라고 하면 또 전과 같은 선택을 할 거다. 우현은 그게 자신의 문제라는 걸 잘 안다.

눈 뜨자마자 시청률을 확인하니 21.7%였다. 전처럼 큰 폭의 상승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승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민주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오셨어요?”

“오늘 좋은 일 있어요? 민주씨는 아침에는 항상 약간 졸린 듯한 표정이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야 컨디션이 올라오는 것 같더라구요.”

“호호. 대표님이 저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셨네요. 제가 원래 아침에는 컨디션이 다운되다가 점심 먹고 나면 기운이 샘솟거든요. 사실 좋은 일이 있다기 보다 별이씨도 CF찍는다고 하고 유니씨도 잘 되니까 출근하는데 기분이 좋더라구요. 오늘 아침에 뉴스 보니까 시청률도 잘 나왔다고 하고.”

“이야. 이제 민주씨도 우리 회사 사람 다 됐네. 그런 마음 가져주니까 내가 다 고맙네요.”

“제가 이래봬도 애사심 하나는 출중해요.”

아침부터 기분 좋게 민주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에 들어가니 어제 방영했던 ‘그 양반 같은 자식’에 대한 기사가 포털 연예면 메인에 걸려 있었다.

민준기와 이소은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해가자 댓글도 전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났다.

댓글을 살펴보니 대다수의 말들이 민준기와 이소은에 대한 이야기지만 중간중간 김별을 언급하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인지도가 늘어난 모습이다.

특히 몇몇 기사는 아예 별이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주로 그녀의 의상과 컨셉에 대한 내용이다. 보아하니 ‘채널’ 쪽에서 낸 것이 분명했다.

드라마 상에서 별이의 의상 컨셉은 ‘하이웨스트’다. 하이웨스트란 몸의 허리선보다 더 높은 위치에 허리선을 잡은 옷을 말한다. 보통, 허리와 가슴의 중간 정도의 높이에 허리선이 잡혀있기 때문에 배부터 골반까지 몸에 딱 붙는 스타일의 옷이 많다. 그 말인즉슨 몸매에 자신이 없으면 입을 엄두를 못내는 옷이라는 거다. 약간의 똥배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린다.

별이는 슬림한 하이웨스트를 아주 퍼펙트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팬츠든 스커트든 가릴 것 없이. 사실, 날씬함에 긴 다리까지 갖추었으니 뭘 입은들 안 어울리겠냐마는.

게다가 여주인공인 이소은은 취준생이기에 예쁜 옷을 입을 수 없으니 별이의 아름다운 몸매가 더 돋보이는 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일이다. 역시나 하이웨스트 스커트를 입은 드라마의 한 장면과 함께 포털에 기사가 떴다.

[김별, 세상 혼자 사는 몸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별이의 인지도도 많이 올라 포털 메인의 사진 기사 한 부분을 장식할 정도였다.

그것을 보니 절로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데 상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처럼 스케줄과 현장 보고이겠거니 하고 받는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대표님, 지금 현장 분위기 이상합니다.”

“이상할 게 뭐가 있어? 지금 시청률 좋고 반응 좋잖아?”

“이소은 측에서 지금 촬영 못 하겠다고…”

“뭐?”

어째 조용하다 싶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었나 했는데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너는 지금 어딘데?”

“지금 갤러리스에 와 있습니다.”

“갤러리스? 그럼 이소은이랑 붙는 씬은 아니잖아?”

“네. 이소은이 있는 현장은 일산입니다. 현장 스케줄이 꼬여서 서 피디님이 강남에서 찍기로 했는데 이소은 측에서 갑자기 배가 아파서 못 찍는다며 차에 들어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B팀 감독이 와서 열 받아서 촬영 안 한다는 이야기가…”

결국 그 빌어먹을 자존심이 또 터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서 피디 데리고 오라 그거야? 벌써 오전 10신데?”

“말은 안 하지만 그런 분위기라고 합니다.”

“미친…”

보통 드라마를 찍을 때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A팀과 B팀으로 나눠서 동시에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일주일에 두 시간 넘게 나가는 방영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A팀은 해당 드라마를 작가와 상의해서 이끌게 되는 피디가 맡고, B팀은 A팀에서 못 찍은 부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B팀 감독은 경력이 짧은 피디가 맡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야, 서 피디가 왜 강남으로 온 건데? 당연히 이소은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거 아냐? 서 피디가 걔 성격 몰랐을 리도 없잖아? 당연한 걸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든 거야?”

“그게 들어보니까 B팀 감독이 아침에 접촉사고가 나면서 스케줄이 꼬였답니다. 갤러리스백화점은 촬영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일단 가까운 서 피디님이 강남으로 가고 B팀 감독이 일산으로 가게 됐는데 이소은이 B팀 감독을 보고는 그대로 차에 들어가서 안 나온다고…”

“x팔… 일단 끊어봐”

외통수에 걸렸다. 바로 제작 피디인 지여울에게 전화를 하니 그녀가 다급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일단 설득은 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배가 아프다고 죽는 소리를 하는데 방법이 없어요.”

“카메라 돌고 있는데 못 찍는 게 어딨습니까? 아, 정말… 소속사는 뭐래요?”

“소속사도 설득하는 중이라고만 하죠.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설득하는 거 같지도 않고…”

그녀의 말에 우현의 머릿속으로 번쩍 스치는 게 있었다.

“혹시 이소은한테 서운하게 했어요? 걔가 좀 개념이 없긴 해도 잘 되는 드라마에 이렇게 갑자기 태클이 들어오니까 뭔가 있을 것 같은데요?”

“네? 서운한 게 있을 리가요. 얼마나 잘 해줬는데요? 들어보니까 현장에서 콜타임도 가장 좋은 시간에 해준다고 해요. 아시잖아요? 김별씨 같은 경우는 새벽부터 나와서 밤까지 찍으니까요. 이소은씨한테는 중간에 대기 시간 없게 얼마나 배려해줬는데…”

그 정도는 당연하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항상 그런 식으로 촬영해왔을 테니까. 뭔가 그녀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별이다.

“혹시 별이가 ‘오스틴마치’ 협찬 받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네? 아, 그러고 보니 소은씨가 협찬 받은 게 ‘오스틴마치’보다는 저렴한 브랜드이긴 한데… 그런데 그렇다고 소은씨가 ‘오스틴마치’를 협찬 받을 수는 없잖아요? 캐릭터상 취준생인 소은씨가 하고 나올 수도 없는 건데. 다른 거 협찬 받은 것도 사실 광고비를 많이 쳐줘서 윤 작가님께 사정사정해서 넣은 거란 말이에요. 윤 작가님이 백만 원짜리 목걸이가 취준생한테 가당키나 하냐고 얼마나 뭐라고 하셨는데요.”

이게 맞는 것 같다. 그녀의 자존심 상 별이보다 떨어지는 브랜드의 쥬얼리를 하고 나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배가 아프다고 하는 거죠. 본인도 억지 쓰고 있는 걸 잘 아니까. 그래도 자존심 상 용납하지 못 하는 겁니다. 특히 드라마에서 본인은 제대로 꾸미지도 못하고 나오는데 별이는 온갖 명품에 예쁜 옷을 입고 나오니까 모니터링 하면서 짜증도 났을 거구요. 기사에도 이소은과 민준기가 케미가 좋고 연기가 늘었다고만 나오지 외모에 관해서는 별이 쪽으로 포커스가 갔잖아요?”

같은 드라마 내에 배우들 간의 협찬이나 광고 브랜드의 퀄리티는 곧 그 배우의 퀄리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민감한 것은 어쩔 수 없고 이런 기싸움은 종종 벌어진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건데…”

“어쩔 수 없는 걸 알지만 막상 눈으로 보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상했을 겁니다. 갤러리스백화점, ‘채널’, ‘오스틴마치’까지 고급브랜드들이 줄줄이 별이에게 협찬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달래줘야 해요.”

“어떻게 달래줘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 피디님이 협찬을 더 가지고 오든지 해야겠지요.”

“아휴… 알겠어요. 일단 방법을 찾아볼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부터 쉬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냥 신경 끌 수가 없다. 별이만 걸려 있다면 알아서 촬영하겠거니 할 테지만 윤 작가가 회사 소속이라 어떻게 해서든 잘 해결해야 한다.

일단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택시를 타고 갤러리스로 향했다. 머릿속으로 아이디어를 짜보려 했지만 선뜻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명품관에 들어서니 한 쪽에 촬영 장비를 세팅하고 한창 촬영하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서 피디는 이소은의 마음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냥 촬영하기로 한 거야?”

멀리서 별이가 촬영하는 현장을 바라보던 상준을 찾아 어깨를 두드리니 그가 깜짝 놀랐다. 우현이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대표님? 아, 예. 서 피디님이 거기까지 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체되는지 아냐며 불같이 화를 내시더라구요.”

“그래, 그랬겠지. 얼마나 꼬장꼬장한 양반인데… 그럼 B팀은? 촬영하고 있데?”

“방금 전에 조감독이 전화하는 거 살짝 엿들었는데 아직도 차 안에서 안 나온답니다.”

“서 피디가 촬영 하루 날리겠다고 각오했네.”

“진짜 그럴까요?”

“그럼? 갈 거였으면 진작 가서 달래줘야지, 지금처럼 찍다가 가면 꼴만 더 우스워져. 피디가 배우한테 우습게 보이면 그 때는 촬영 접어야지. 어쩔 수 없이 지 피디만 죽어나겠네.”

“저희는 그럼 이대로 두고 보기만 하면 됩니까?”

“너는 모른 척하고 별이한테도 별 말 하지 마. 괜히 신경 쓸라. 해결은 지 피디랑 내가 봐야지.”

“어떻게 하시게요?”

“뭘 어떻게 해? 달래야지. 7살 먹은 애면 사탕으로 달래겠지만 스무 살 넘은 애면 뭘로 달래야겠냐?”

“아!”

“눈치는 있네.”

백화점을 나선 우현은 택시를 타고 곧장 일산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만 이러고 말 거라면 그냥 모른 척 하겠지만 느낌 상 다음에도 이럴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키웨스트 이진명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저 진명입니다.”

“응, 그래. 지나랑 이야기 해봤어?”

“네. 간신히 설득하긴 했습니다. 오늘밤 12시 괜찮으시죠?”

“그래. 전에 봤던 그 치킨집으로 데리고 와. 그런데 뭐라고 하면서 설득한 거야? 쓸데없는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

“그럴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당장 손가락 빨고 있는데 뭐라도 해보자고 했죠. 이따가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아 주세요. 애가…”

“알았어. 나쁜 애 아닌 거 안다고, 인마. 새끼, 사춘기 애 키우는 엄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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