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50화 (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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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3)(여기부터 유료 연재)

유니의 손이 들려있었다.

떨리는 손과 초점을 잃은 눈, 분명 무리다. 하지만 유니가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상황. 선배가 못 먹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유니가 신인의 자세로 열심히 임하는 모습을 보여야함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아…”

우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유니씨! 유니씨가 드시겠다구요?”

“네!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분위기 처지지 않게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는 ‘보이는 라디오’ 카메라를 향해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유니씨가 두 번째 음식을 먹어볼 텐데요. 자, 볼륨 크게 해주시구요. 먹어주세요!”

정윤철의 외침에 가림막 뒤에서 유니가 눈을 질끈 감고 엽닭 한 덩어리를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음… 후… 후…”

누가 들어도 매워서 고통스러워하는 숨소리다. 실시간으로 청취자들이 매운 음식 목록을 올리기 시작했다.

“떡볶이! 아닙니다. 쭈꾸미볶음! 아니죠. 닭발! 닭발! 아! 안타깝습니다. 앗! 불닭 나왔는데요. 조금 더 정확하게… 어? 엽닭! 정답입니다, 엽기적 닭발. 정답 말씀해주신 3946님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유니는 물을 조금씩 들이키며 입에 난 불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매운 게 아니다. 저 매운 게 얼마나 장을 자극할 것이냐가 문제다.

아직 방송시간은 40분 정도가 남았다. 그 때까지만 잘 버티면 문제없을 거다.

“자, 이번엔 여러분들께서 기다리시던 유니씨의 라이브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도 ‘그 양반 같은 자식’ 본방으로 봤거든요. 라디오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딱 10시라서 본방시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는데요.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1,2회 밖에 안 봤는데 벌써 팬이 됐습니다. 특히 이소은씨. 카페 아르바이트생인데 예뻐, 너무 예뻐!”

정윤철은 이소은이 눈앞에라도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아우, 민준기씨 너무 멋있지 않아요?”

“대박. 저 진짜 민준기씨 완전 팬이에요.”

민주가 두 손을 모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고 시연이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거기에 나오는 김별씨가 같은 회사 식구죠?”

이미 대본에 있는 준비된 질문을 윤철이 날리자 유니는 얼른 이마의 땀을 퍼프로 찍어내고 환하게 미소지었다.

“네, 같은 회사구요. 전에 별이 언니와 함께 라라걸즈라는 걸그룹으로 활동했었어요.”

“맞다! 라라걸즈. 제가 전에 오동도에서 행사하다가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유니씨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죠?”

“그럼요. 그 때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요.”

“그렇구나. 그 때는 이렇게 솔로로 활동하게 될 줄은 몰랐을 거예요, 그쵸?”

“맞아요. 솔직히 솔로 가수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요. 실제로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었기 때문에 지금 활동하는 게 믿겨지지 않아요.”

유니는 말이 끝나자마자 물을 마셨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청취자분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하면 안 되겠죠? ‘그 양반 같은 자식’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인 유니씨의 ‘그대는 아나요?’, 같이 들어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팅된 마이크로 다가가는 유니는 우현과 눈을 맞췄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는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과 잔뜩 상기된 얼굴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임을 짐작케 했다.

“아이고 죽겠네…”

지켜보는 우현도 식은땀이 흐르고 입이 바싹 타들어갔다.

유니가 마이크 앞에 서고 서정적인 반주가 흘러나오자 크게 숨을 고르더니 눈을 감았다.

[Once 너를 본 그 날… Once 난 알게 되었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우현의 걱정과는 달리 놀랍게도 음정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가수도 연기를 해야 한다고 했던가… 전주가 나옴과 동시에 유니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복통과 매운맛을 잊고 노래에 집중하기 위해서인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땀으로 인해 앞머리는 이마에 달라붙었고 양 손은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동동거리고 싶은 다리를 박자를 타며 움직이는 게, 그게 또 기가 막혔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본능적으로 하는 거다.

비록 땀범벅이 된 얼굴이지만 청아한 유니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 내리는 듯했다. 마음을 훔치는 완벽한 연기. 아니, 연기가 아닌 진짜의 목소리. 유니의 목소리였다.

우현은 그 모습에 곧장 피디가 있는 곳으로 움직여 청취자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유니님 아픈 거 아님?]

[엄청 매운 듯]

[그런데 노래 미친 거 아님?]

[대박! 노래 장난 아님]

청취자들의 호평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사고만 안 나기를 기도했는데… 재능 있는 가수를 키운다는 게 이런 것인가?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유니는 땀에 젖은 앞머리를 정돈하지도 못한 채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보이는 라디오의 화면이 끊어진 걸 확인한 후, 그녀는 도망치듯이 스튜디오를 뛰쳐나갔고 다들 걱정스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라디오국 화장실 신세를 지다가 파김치가 돼서야 방송국을 나올 수 있었다.

“하아… 지옥에 갔다 온 것 같아요.”

“유니야, 오늘 정말 정말 수고 많았다. 안 아팠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픈 와중에도 네가 노래를 그렇게나 잘 부르는 것을 보니,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이 정말 잘 한 일이라는 걸 오늘 확실히 알았어. 앞으론 먹는 것도 더 조심해야겠다. 일단 병원으로 가자.”

유니의 어깨를 쓸어주고 병원에 들러 주사 한 대씩을 맞고 나왔다. 컨디션이 안 좋은 유니는 집에 내려주고 사무실에 오니 촬영을 빨리 끝낸 상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이는?”

“집에 데려다줬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촬영이 일찍 끝나서 조금 쉬라구요.”

“잘 했어. 그보다 내일 3회에 별이 상대역 나온다고 했지? 내가 너한테만 맡기다보니까 누군지 설명도 듣지 못했다.”

“요즘 윤 작가님도 바쁘셔서 연락도 못 받으셨죠? 시청률이 잘 나와서 그런지 촬영장에 밥차까지 쏘셨는데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시더라구요. 오피스텔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오고 쓰신다합니다.”

1회 시청률은 15.1%, 윤해연의 이름과 민준기, 이소은의 조합이라 그런지 딱 생각했던 것만큼 나와 줬다. 반대로 경쟁상대인 ‘잔혹한 사랑’의 시청률은 14.7%로 거의 흡사했다.

반전은 그 다음 회에 일어났다. 1회에 너무 큰 임팩트를 터뜨렸는지 2회 시청률이 17.7%까지 나왔고 ‘잔혹한 사랑’의 시청률은 12.8%로 떨어지며 완전히 차이를 벌렸다.

포털에 뜨는 기사량도 압도적으로 많았고 SNS를 통해 퍼지는 화제도는 이미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려놓은 상태였다. 듣기로 ‘잔혹한 사랑’쪽은 촬영장에서 한여름과 제작진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찬물을 확 뒤집어 쓴 상태였다.

우리 제작진과 방송사측은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윤해연 작가로서는 기분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윤 작가는 자신의 그런 기분을 더해 대본작업에 더 열중하는 것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러게, 나도 연락 못 받았다. 대충 모델 출신 남자배우라고만 들었으니까. 그래도 윤 작가님이 직접 뽑았다니 믿을만하겠다고 생각했지. 어때?”

“네. 남주민이라고, 얼마 전에 케이블 미니 깔끔하게 마무리한 게 있습니다. 촬영장에서 보니까 훤칠하던데요? 연기가 조금 어설프긴 했는데 원래 캐릭터 자체가 조금 그런 역할이라 그런지 괜찮았습니다.”

“별이하고 시너지는?”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어쩔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상준이만 보냈다. 자신은 이제 유니에 집중해야 할 때니까.

“별이가 키가 커서 둘의 비율도 잘 맞고, 비주얼적으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단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연기가 조금 어설픈 게 아쉽긴 합니다. 별이를 받쳐줄 수 있는 연기였으면 좋았을 텐데요.”

“미리부터 준비한 캐스팅이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야지. 그것보다 별이에게 로맨스가 생긴다는 건 앞으로 미니 여주로 가는 관문을 윤 작가가 열어준 거나 다름없는 거야.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오늘 방송에 둘이 처음 붙는 장면 있는데, 촬영하는 거 봤을 때는 내용이 상당히 좋아 보였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 알았어. 너도 이제 가서 쉬어. 내일도 새벽부터 움직여야 할 테니까.”

상준을 보내고 인터넷을 보고 있으려니 포털 검색어에 느닷없이 유니가 떠 있었다. 뭔가 해서 확인하니, 유니가 ‘철이의 네 멋대로 라디오’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짤방으로 돌아다니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DJ인 정윤철이 SNS에 유니가 매운 음식을 못 먹는 걸 모르고 준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매너 있는 모습을 보인 것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된 듯 보였다.

동영상 사이트 댓글을 보니 하나같이 땀으로 범벅된 그녀가 무결점의 가창력을 선보인 것에 대해 찬양하는 글들이었다.

“대표님, 이게 무슨 일이래요?”

집에서 쉬고 있던 유니도 놀랐는지 연락을 해왔다.

“그러게… 네가 잘 부르긴 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는 나도 몰랐다. 어쨌거나 몸 잘 추스르고 있어. 쉴 수 있는 시간 이제 얼마 없을 테니까. 이제 정신없이 바쁠 거야.”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유니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지자 이제는 한결 편하게 TV앞에 앉았다. ‘그 양반 같은 자식’ 3회를 모니터링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과 상대방과 합을 이뤄 멋드러진 씬을 연출해내는 것 또한 좋은 연기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다. 배우 공혜진이 ‘공블리’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 부분에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번 회에서 별이가 상대 남자배우와 얼마만큼의 케미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로코에서의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드라마 시작 30여분 후 기다리던 씬이 나오기 시작했다. 별이와 남주민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별이가 갤러시스백화점 명품관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한 시계 매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남주민이 두 개의 손목시계를 두고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매장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제품은 사파이어 크라운 장식이 포인트구요, 둥근 곡선형 케이스가 로마숫자와 함께 고급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장과 캐주얼 모두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라서 패션을 중시하는 젊은 분들이 많이 찾는 모델입니다. 그리고 이 제품은…”

별이 남주민 가까이 다가간다.

“잠시만요. 설명 더 들을 필요 없이, 그쪽한테는 오른쪽 시계가 더 잘 어울려요. 남자치고 흰 피부에 손가락도 가늘고 길어서, 왼쪽 시계를 하면 흰 가래떡 위에 떡갈비 한 점 올려놓은 것 같겠어요.”

“아하하,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갑작스런 별이의 말에 당황해 남주민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대뜸 별이 남주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런데…”

“…?”

“얼굴 그렇게 쓸 거예요?”

“네?”

“잘생긴 얼굴, 그렇게 쓸 거냐구요.”

“네? 하하, 감사…”

별이 잽싸게 손을 들어 남주민의 말을 막는다.

“아, 감사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 헤어스타일은 정말 최악이라는 말을 돌려서 한 거니까. 그럼 이만.”

예빈의 캐릭터대로 톡 쏘듯이 말하고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그런 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남주민이 나직이 읊조린다.

“… 나를 갖고 노는 여자… 딱 내 스타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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