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49화 (4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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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2)(여기까지 무료 연재)

“응. 그런데… 너, 엄마 옷 입고 왔니?”

별이의 일침에 기겁하는 친구는 자신의 블라우스를 가리키며 격하게 소리쳤다.

“뭐, 뭐라고? 아… 아니거든! 이게 얼마짜리인지 아니?”

별이가 등을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친구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김수희의 ‘애모’를 방탄보이즈한테 부르게 한다고 생각해봐.”

“으… 응? 그런 짓을 왜 해?”

별이 팔짱을 풀어 손가락으로 친구의 옷을 가리켰다.

“그 옷이 바로 ‘그런 짓’이야.”

친구의 옷을 가리키고 있는 별이의 손 아래로 ‘채널’의 신상 리미티드 에디션 ‘태양의 연인’이 빛을 발하며 TV화면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태양의 연인’은 ‘채널’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신상품 백이다. 일명 ‘채널 백’이라고 불리는, 램스킨 퀼팅 클래식 백에 종지부를 찍을 역작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과연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으니.

우현은 갤러리스백화점에서 저 ‘태양의 연인’을 직접 보았는데, 직원의 설명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선을 빼앗기는 경험을 했다. 아프리카의 화산 근처에 야생하는, 아프리카 말로 ‘지옥의 불꽃’이라는 꽃에서 추출한 색을 양가죽에 입혔다나… 굳이 한마디로 색깔을 표현하자면 주황색인데, 그렇다고 딱 주황색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금빛이 도는 듯도 하고 붉은빛이 도는 듯도 한데, 분명한 건 그 백이 마치 태양빛을 받아 빛이 나듯이 실내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는 거다.

“얘, 그만 좀 놀려라. 하여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

다른 친구가 별이를 손짓으로 말린다. 한두 번 이런 일이 있었던 게 아닌 듯 당하는 친구만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뿐 다들 그러려니 하며 넘긴다.

“푸하하하!”

“대표님, 이거 대박! 이래도 되는 거예요?”

상준이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유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현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에르클레르’ 옷의 느낌만 잘 살려본 거야. 똑같은 옷은 아니거든. 저거 구한다고 나랑 코디가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세상에… 이거 기사 날 것 같아요.”

“당연하지. 기사 나라고 한 건데. 지금쯤 샤롯백화점이랑 ‘에르클레르’쪽은 난리가 났을 걸? 저거 법적으로도 대응 안 돼.”

“저는 대표님이 법으로 대응하지 않을 때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걸 노리신 거였습니까?”

상준이 엄지를 치켜들며 우현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보았다.

“잘 들어. 이 바닥에서 상대가 양아치처럼 나온다고 무조건 다 법적으로 대응하려다 보면 우리 쪽도 좋은 이미지 못 얻어. 그 대신 꾹 참고 있다가 기회를 노려서 한 방 먹여줘야지. 그리고 한 방 먹일 때 진짜 큰 타격을 주는 건, 소송으로 벌금 조금 먹이거나 갑질하면서 우쭐해하는 게 아니야. 그럴 때는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줘야 해. 그래야 뼛속 깊이 후회를 하는 거거든.”

“무섭습니다.”

“내가 많이 당해봐서 아는 거야. 어쨌거나 속이 후련하다.”

상준을 비롯한 이들이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우현은 손을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장면은 지나갔다. 마지막 클로징 장면은 민준기가 나오면서 끝날 거다. 16회 중에 민준기 엔딩 10회, 이소은 엔딩 6회가 계약이었으니까.

“어? 유니 노래! 유니 노래 나와요!”

[오늘밤 12시 OST 유니 ‘그대는 아나요?’가 공개됩니다.]

우현은 인터넷을 보다가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첫 방에 나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민준기의 얼굴 아래로 자막이 뜨며 유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일이나 돼야 나오겠거니 했는데 깜짝 선물인 건지 그에게 말도 안 한 것 같았다.

우현은 그 즉시 지여울 제작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훗. 보셨군요?”

“지 피디님,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그랬습니까? 우리 유니, 지금 감동받아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습니다.”

유니는 자신이 부른 노래가 미니시리즈 엔딩삽입곡으로 흘러나오자 감동했는지 티슈로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호호. 그 감동 고맙게 받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아까 별이씨가 엄마 옷으로 한 방 먹인 거 아주 잘 봤다고 갤러리스 쪽에서 연락 왔네요.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것 같다고. 윤 작가님이랑 김 대표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달래요. ‘채널’에서는 가방이 잘 나왔다고 만족하더라구요.”

“우리도 화보촬영 기대한다고 전해 주세요.”

“벌써부터 화보촬영 기대하시는 거예요? 드라마 끝나고 김별씨 몸값 올라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이 정도 해줬으면 갤러리스백화점은 우리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될 거고 ‘채널’은 화보촬영 정도는 당연히 진행해줘야죠.”

“물론이에요, 걱정 말아요. 제가 화보촬영 때 비행기 비즈니스로 해달라고 못 박아둘게요.”

“하하하. 역시 지 피디님, 일 하나는 정말 똑 부러지게 하시네요. 반하겠습니다.”

“어머! 전 공과 사는 철저하게 가린답니다. 그러니 고백하려면 퇴근 시간 이후에 해주세요.”

“하하하, 진짜 못 당하겠네요.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자정에 유니 음원 풀리니까 차트 잘 지켜보세요. 혹시 알아요? 1위 찍을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유니를 보니 얼굴에 휴지조각이 군데군데 달라붙어 있었다.

“뭘 이 정도가지고 그렇게 울어?”

“대표님, 저는 진짜 대표님 믿었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말로만 믿고 속으로는 안 믿었던 거 아냐?”

“아니에요. 진짜로 믿었단 말이에요, 히이잉…”

자신의 농담에 다시 눈물을 쏟는 유니를 보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하하, 알았어, 믿을게. 그리고 이제 너도 관리 들어가야겠다. 이제부터 스케줄 쏟아질 테니까.”

우현의 장담은 현실로 돌아왔다. 일단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6위까지는 모조리 ‘그 양반 같은 자식’이 차지했다.

1위는 ‘그 양반 같은 자식’.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한 가장 큰 공신인 ‘채널 태양의 연인’이 2위, 3위가 ‘엄마 옷 에르클레르’였다. 4위 민준기, 5위 이소은, 마지막 6위가 유니가 부른 OST삽입곡 ‘그대는 아나요?’였다.

별이가 실검에 없어 아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태양의 연인’을 별이가 광고하는 것이기에 실질적으로 별이가 실검 2위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토록 ‘이 양반 같은 자식’이 실검 6위까지 싹쓸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놓고 ‘에르클레르’를 저격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남의 싸움만큼 재미있는 구경은 없으니까.

매출이 얼마나 타격을 받았는지는 보름 정도가 지나면 파악할 수 있을 거다. 갤러리스백화점측에서 상대측 매출 변동사항을 틀림없이 체크할 테니까. 우현도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솔직히 ‘에르클레르’의 박 뭐시기 지부장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당장 달려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으니까.

자정이 되자 각종 음원사이트에 유니의 ‘그대는 아나요?’가 풀리고 바로 팝업이 뜨며 광고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0위권에 진입하더니 쭉쭉 치고 올라갔다.

결국 드라마에 힘입어 1시간 정도 차트 1위를 찍고 이후로도 계속 10위권 안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그렇게 되니 유니에 대한 섭외요청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지사.

우현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건 바로 라디오 게스트 섭외 전화다. 유니가 아직 예능프로를 많이 해보지 않았기에 입이라도 풀며 익히기에는 라디오만한 게 없으니까.

시간이 흘러 일주일 뒤, 우현은 SBC 라디오국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었다.

“아직 멀었어?”

“조금만요!”

화장실 안쪽에서 유니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치겠네.”

‘철이의 네 멋대로 라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라디오국에 온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정상적이라면 대본을 보고 진행상황을 체크하며 분위기를 익혔을 텐데, 간단한 인사밖에 못 했다. 이게 모두 점심으로 먹은 육회비빔밥 때문이다.

한 손엔 설사약과 청심환, 한 손에는 피로회복용 드링크제를 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기를 5분정도가 더 지나자 수척한 얼굴을 한 유니가 걸어 나왔다.

“괜찮아?”

“아니요. 조금 있으면 다시 아플 것 같은데… 어떡해요?”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은 얼굴이다. 얼른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손에 쥔 약을 내밀었다.

“일단 이거 먹어. 내가 방금 약국 가서 사온거야. 하나는 지사제고 하나는 청심환이니까 긴장도 덜어주고 배도 안 아플 거야.”

드링크제의 뚜껑을 열어 건네주니 유니가 재빨리 약을 털어 넣었다.

우현은 이미 오후에 한 차례 화장실 신세를 졌다. 하지만 유니는 뒤늦게, 그것도 방송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신호가 와버렸다.

“오후에 너한테도 미리 약을 먹여놓는 건데 그랬어. 나만 아프기에 난 또 어제 저녁에 퇴근하면서 먹은 해물탕이 잘못됐던 거라고만 생각했지. 일단 심호흡하고 준비하자. 이제 5분 남았어.”

퍼프에 파우더를 듬뿍 묻혀서 땀으로 범벅이 된 유니의 얼굴을 정리해주고 계속 땀이 날 걸 대비해 유니의 손에 퍼프를 쥐어주었다.

“하아…”

유니는 한숨을 내쉬고 잔뜩 불안한 얼굴을 한 채 라디오 스튜디오 안으로 쭈뼛쭈뼛 들어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현과 유니는 연신 허리를 숙였다. 과거 아이돌로 연예계에 들어섰다가 지금은 DJ로 활동하고 있는 정윤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단순히 신인이 긴장해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보이며 유니를 다독였다.

“네,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철이의 네 멋대로 라디오’는 젊은 층이 주 청취자이기 때문에 게스트 대부분이 아이돌이다. 때문에 스튜디오에는 정윤철을 비롯해 여자아이돌 그룹인 하니러브의 민주와 시연이 나와 있었다.

드디어 방송이 시작되고 정윤철의 오른편에 유니가 긴장된 얼굴로 앉았다.

청취자를 향한 형식적인 인사와 게스트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진행이 시작됐다.

“‘보이는 라디오. 철이의 네 멋대로 라디오.’ 오늘은 먹는 소리만으로 어떤 음식인지 맞추는 ‘네가 먹는 게 뭐야?’ 코너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데요. 지금이 저녁 시간이라서 정말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꺅! 너무 좋아요!”

“저는 이것 때문에 점심을 굶고 왔습니다.”

민주와 시연이 정윤철의 멘트를 받아 분위기를 띄웠다. 유니도 배고프다며 얼른 먹고 싶다고 한 마디 했지만 우현은 그것이 거짓말임을 너무 잘 안다. 탁자 아래의 왼손은 계속 배를 쓸어대고 오른손은 퍼프로 땀을 찍어내기 바빴으니까.

“자, 첫 번째 음식입니다. 이거 맛있죠. 누가 드셔보시겠습니까?”

“제가 먹어볼게요.”

민주가 토마토파스타를 먹겠다고 손을 들었다. 가림막으로 가린 채 몇 번 호로록 소리를 내며 먹자 청취자 중 누군가가 답을 맞혔다.

“다음은 어떤 음식이 나올까요? 어?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저는 어제도 먹었는데요, 두 분 중 누가 드셔볼까요?”

“어머! 저는 이거 못 먹어요.”

두 번째 음식이 나오자마자 시연이 재빠르게 멘트를 날렸다.

“못 먹는 다구요? 시연씨가 못 먹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과연 무슨 음식일까요?”

그것은 ‘엽닭’, ‘엽기적 닭발’이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한 입만 먹어도 입과 뱃속에 불이 날 것이다.

“제… 제가 먹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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