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41화 (4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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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사람은 변하는 법(3)

미팅이 잡힌다고 무조건 캐스팅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 시놉시스를 긍정적으로 봤고 제작진 측도 적합한 배우라고 판단했기에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다.

도장 찍기 직전까지 갔다가 엎어진 경우도 많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거지만 기대해볼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특히 우현은 민준기를 상당히 좋은 연기자라고 생각하기에 기왕이면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전에는 우현이 윤 작가와 함께 미팅했지만 그 때는 피치 못 할 사정 때문이었고 지금은 정식으로 시놉시스가 전달된 후 가지는 미팅이기에 제작사 측의 피디와 작가가 참석할 거다.

이번에 도마뱀픽처스에서 윤 작가의 드라마에 합류시킨 피디는 그녀의 전작인 ‘쉐프와 레스토랑’을 같이 찍었던 서주완 감독으로 상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특징이라면 연기를 세심하게 지도하는 걸로 유명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컷을 이어가 조연출과 제작피디의 심장을 떨리게 하기 일쑤다.

기대감에 부풀어있는데 최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 대표, 요즘 바빠? 별이 혼자서 내돌리고 말이야.”

“하하하. 형님, 저도 이제 사람 좀 써야죠. 그나저나 스코어는 어때요?”

“주말에만 50만 들어왔어. 내 인생 최대 스코어다.”

“그 정도면 상당하네요. 목표가 500만이죠? 될 것 같은데요?”

“박형석이 그 짓거리만 안 했어도 더 들어왔을 것 같은데… 에이…”

“이 정도도 어딥니까? 그리고 박형석 쪽은 아직 처리가 안 됐데요?”

“복잡한가 보더라. 그 새끼 아직도 잠수타서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단다. 올리브식품에서도 찾나 보더라.”

“그러다 결혼하는 거 아니에요?”

“결혼은 무슨… 박형석이 얼마나 여자 얼굴 보는데… 아, 너는 모르겠다. 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데. 일종의 스폰서 같은 건데 딱 걸린 거지 뭐. 그리고 따지고 보면 박형석 보다는 올리브식품의 딸래미가 더 안 좋게 된 거지. 결혼도 하기 전에 그게 뭐냐? 소문에는 약혼자도 있나 보던데.”

“아이고, 그런 건 또 어떻게 아셨대요? 정보원을 곳곳에 심어 놓으셨네?”

“하하핫! 내가 발이 좀 넓어. 특히 기자들하고 친하잖냐.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걔네들이 알아서 술술 불더라고.”

“또 기자들하고 술 마셨어요?”

“마! 이것도 다 내 나름대로 인맥관리 하는 거야. 혹시 아냐? 내가 너 도와줄 일 있을지?”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어쨌거나 우리 손익분기점 넘으면 술 한 잔 해요.”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으면 소주에 삼겹살 먹고, 힘차게 뚫고 올라가면 강남 근사한 스테이크 집에서 와인 한 잔 어때?”

“하하하. 형님이 쏘시는 겁니다?”

“야, 내가 별이 꽂아줬는데 내가 쏴야 되냐?”

“저희 아직 영세한 거 아시면서…”

“그래, 좋다. 내가 쏴야지. 하여튼 그 날은 시간 빼고 있어라.”

“당연하죠. 그럼 들어가십쇼!”

기분 좋게 전화를 끊고 전에 유니가 작업했던 녹음실을 예약했다. 운이 좋은 건지 다행스럽게도 이번 목요일에 세션과 엔지니어까지 모두 섭외할 수 있었다. 어차피 편곡과 세션녹음이 끝난 다음에 보컬 녹음을 할 예정이라 가사가 나오지 않아도 작업이 가능했다.

그렇게 할 일을 마치고 별이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다 자정이 넘어서야 고시원으로 향했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괜히 술 한 잔이 생각나 고시원 근처 포장마차로 향하는데 익숙한 번호가 핸드폰에 찍혔다. 은하였다.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받으니 언제나처럼 맑은 그녀의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안 잤지?”

“응. 집에 가는 중이야.”

“오피스텔 뺐지? 어디서 살아?”

“그냥 다른데 살아.”

“그냥 다른 데가 어딘데?”

“왜? 오려고?”

“동네가 어딘지 물어본 거지. 누가 집까지 들어간데? 쫄기는…”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래?”

“그래서 어디야? 나 회 먹고 싶어. 혼자 먹으면 청승맞아서 그러니까 같이 먹자.”

“네가 사는 거냐?”

“흥! 그럼 내가 오빠한테 사달라고 하겠어? 튕기지 말고 빨리 말해. 비싼 거 사줄 테니까.”

“비싼 거? 크흠…”

우현은 그녀에게 주소를 문자로 찍어줬고 그녀는 30분도 안 돼 근사한 외제차를 타고 나타났다. 근처 편의점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우현은 그녀의 차가 나타나자 손을 흔들었고 그녀의 차는 그를 태우고 강남으로 향했다.

조수석에 타고나서 그녀를 보니 화장을 안했는지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스냅백을 푹 눌러쓰고 있었다. 안경은 오히려 그녀의 미모에 이지적인 느낌을 더해주었고 투명한 그녀의 피부는 어두운 가운데서도 하얗게 빛났다.

“요즘도 잠 못 자?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쌩쌩해?”

“걱정하는 척 하기는… 그렇게 걱정되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전화는 무슨… 잘 지낼 텐데.”

이후 둘 사이에는 대화가 끊겼고 고급 이자까야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을 이어갔다. 그녀는 익숙하게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메뉴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많이 와봤나 봐?”

“응. 친구들이랑 종종 와.”

그녀가 말하는 친구들은 같은 여배우인 진수아, 서승연 등 몇몇 어울리는 무리를 일컫는다. 공통점은 전부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기에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사람을 잘 못 사귀는 은하도 그들과는 잘 지낸다.

“윤해연 작가랑 계약했다며?”

“소문 빠르네. 아, 맞다. 너 윤 작가랑 술 자주 마신다며?”

“응. 나 그 언니랑 친해. 어제도 전화로 이야기도 했었고. 그나저나 돈 많이 깨졌을 텐데? 괜찮아?”

윤 작가가 은하한테는 계약금 이야기를 안 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계약금은 1년 뒤에 주기로 했어. 네가 부추겼다며? 내가 찍은 작품 중 실패한 게 거의 없었다고 하던데?”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 언니도 은근히 자존심 많이 상했을 테고.”

“그 정도 작가가 자존심 상할 게 있냐? 회당 2천을 넘게 받는데?”

“그거랑은 다르지. 안 보이는데서 항상 비교를 당했을 테니까. 왜, 그런 거 있잖아? 나도 저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는데… 수준 자체가 다르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 번 보여주고 싶을 수 있겠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너는 차기작 결정 했니?”

“왜? 이번에도 하나 찍어 주게?”

담담하게 물어오는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우현이 슬쩍 눈을 피했다.

“그냥 물어 본거야.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때, 정말 ‘밤의 여왕’ 찍고 싶었어? 정말 칸에 가고 싶었던 거야?”

“그 때는 그냥 해 본 말이었어. 알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너 없는 말 하는 애 아니잖아. 그래서 지금도 같은 생각인 건지 궁금해서.”

“됐어, 술이나 마시자. 매니저가 데리러 오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장태현이? 걔 아직도 네 밑에서 고생 하냐?”

“어쩌겠어? 그나마 이 바닥에 붙어 있으려면 나한테 잘해야지. 그래도 불쌍해서 로드는 면하게 해줬는데, 오늘 같은 경우에 로드 보내면 나한테 죽지. 히히.”

“사악하기는…”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우현은 젓가락질을 서둘렀다. 안 그래도 소주에 회 한 접시 하고 싶었는데 아직 그의 주머니 사정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기에 일부러 불러냈을 거다.

그렇게 서로 별 말 없이 소주 세 병과 안주 30만 원어치를 비워내니 새벽 3시가 가까워졌다. 우현이 더 먹겠다는 그녀의 핸드폰을 뺏어 장태현한테 문자를 보냈다.

소주 한 병을 더 마시고 또 한 병을 시키려 할 때 짜증스런 얼굴의 장태현이 도착했다. 그는 우현을 보자 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가 은하를 차에 태웠을 때 우현은 입에서 술 냄새가 팍팍 풍기는 그녀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만약 진짜 연기로 인정받고 싶다면 이명선 감독의 ‘그녀의 일기’ 해보는 건 어때?”

주량이 다섯 병을 넘기는 그녀가 고작 이 정도에 취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기에 마지막으로 그의 생각을 말했다. 아무래도 계속 마음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명선? 갑자기 웬 이명선? 그리고 이명선 감독 신작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

줄곧 마이너한 작품만 찍는 이명선 감독은 예술영화계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감독이다. 하지만 흥행이 저조하다보니 투자받기가 힘들어 몇 년간 영화를 찍지 못했던 감독이기도 했다.

“너한테는 들이밀지 못했겠지. 어차피 까일 테니까. 별이한테 시나리오가 왔던 적이 있었어. 아직 연기도 안 되고 연기파 배우로 갈 것도 아니라서 그냥 넘겨버리긴 했는데… 네가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그 감독 차기작 찍으면 나 칸에 갈 수 있는 거야?”

“아니, 나도 몰라. 시나리오 보니까 예술만 고집하다가는 굶어죽기 딱 좋다고 생각했는지 타협한 흔적이 보이더라. 엄청난 흥행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손해 보지는 않을 것 같아. 영상미가 뛰어난 감독인데다 자기 작품에 나오는 여배우는 항상 매력 있게 찍으니까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네 필모에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것 같고.”

“그러니까 오빠 얘기는, 그거 찍고 나면 모두들 날 다르게 볼 거다, 이 말이지?”

술이 들어간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말투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평소에도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생각에는 그래.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고. 특히 그 감독, 여배우 잡고 개소리 늘어놓는 걸로 유명하잖아.”

다 늙어 빠져서 무슨 추태냐 하겠지만 의외로 상당한 여배우들이 그의 입담에 넘어가 많은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감히 은하에게 수작을 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도 소문은 들어 알 테니까.

“알겠어. 생각해볼게.”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보내고 우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응을 보니 역시나 말 해주기를 잘 한 것 같다.

택시를 타려는데 주머니에 종이뭉치가 만져져서 꺼내보니 10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이었다. 어이가 없어 전화를 하려는데 이미 문자가 와 있었다.

[작품 소개비라고 생각해. 돈 없다고 라면만 먹으면 배 나와.]

작품 소개도 하기 전에 넣어 두었으면서 잘도 핑계를 댄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은하도 많이 변한 게 아닌가 싶다. 항상 날카롭게 세우던 날이 많이 무뎌진 것 같으니까.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민준기와 이소은이 출연을 확정지었고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작진측이 정식으로 별이에게 출연요청을 해왔고 지체 없이 출연계약을 맺었다.

“편성은 잡았대요?”

“SBC 수목 미니로 잡혔어. 앞으로 두 달 뒤에 첫 방이야. 김 대표 덕인 것 같아. 생각보다 편성도 빨리 잡히고 제작사 측도 반응이 좋네. 이번에는 대박 나겠다고 벌써부터 호들갑이야. 웃겨 아주. 내가 언제는 말아먹었던 적 있나?”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윤 작가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제 덕이 아니라 윤 작가님이 잘 쓰신 거죠. 방송사에서는 회당 얼마 주기로 했어요?”

“1억 5천.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많지도 않네.”

“PPL 엄청 때려 넣어야겠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이제부터 진짜 수고해야지. 아, 그리고 나 회당 2,500에 계약했어. 첫 방 나가면 회사 통장으로 4억 들어갈 거야. 마음에 들어?”

“굿! 사랑합니다!”

“다음 주중에 1,2회 대본 나올 테니까 주말쯤에 대본 리딩 하게 될 거야. 별이 긴장 바짝 해야 될 걸? 알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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