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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첫 미니시리즈 스타트!(2)
윤해연 작가와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뒤에 있던 별이가 운전석 시트를 붙잡으며 얼굴을 삐쭉 내밀었다.
“대표님, 근데 연예계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요? 대표님 말씀 들어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녀로서는 충분히 궁금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기라는 게, 기본적으로 자신의 감정이 아닌 타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라서 그런지 예민한 사람들이 많아. 예술이라는 게 그렇잖아. 성격이 좋고 나쁜 걸 떠나서 이 바닥 톱에 이른 사람들 중에 둔감한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 그러다보니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아… 그렇구나.”
“그런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타가 되면 남들이 떠받들어 주잖아. 물 한 잔도 스태프들을 아랫사람 부리듯 시켜먹는 게 일상이 되니 자연스레 자신은 남들보다 더 고귀한 사람이라는 자각이 들게 되지. 그러다 점차 나이도 들고 부르는 곳은 없어지고 인기도 떨어지면 그제야 사람이 유해지기 시작해. 그러면서 오히려 진짜 연기를 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보통 40대 정도가 되면 완숙한 연기가 나오지.”
“그럼 앞으로 이소은 같은 선배랑 같이 연기할 경우가 많겠네요?”
“많다 뿐이겠냐? 보통 일반인들이 예능을 많이 보니까 연예인들이 성격 좋은 사람들이 많은 줄 아나본데, 너까지 그러면 안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보통 연예인이 된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보다는 놀기 바빴던 사람들이 대다수야. 그러다가 어린 나이에 갑자기 떠서 일 년에 수십억 씩 벌고, 사방에서 떠받들어 주는데 인격수양이 돼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니? 앞으로 너는 최소 마흔이 넘지 않은 배우들하고 일할 때는 무조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거든.”
보통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냐? 이 말을 어느 직업보다 많이 느끼는 게 연예인들이다. 조금만 인간적으로, 다정하게 대해줘도 온갖 무리한 요구를 받고 뒤통수를 맞으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성격이 까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웃기게도 가장 규율을 따지고 인사 좀 안 했다고 그렇게 따지고 든다.
“저도 그렇게 될까요?”
“글쎄다. 신인일 때 그렇게 착하고 싹싹하던 친구들이 조금 떴다고 바뀌는 경우를 워낙에 많이 봐서 말이야. 가수들도 그렇잖아?”
“사실 예전 저희 회사는 이지연 선배가 거의 원톱으로 끌고 가던 회사라서요. 사실 그 선배 얼굴만 몇 번 봤지 얘기도 못 해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변하면 대표님도 많이 실망하겠죠?”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여배우라는 직업은 분명 카리스마를 보여줘야 할 때가 있거든. 너무 무르게 보이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또, 개나 소나 치근대려고 들지. 그걸 잘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인격수양을 하라고… 까지는 못하겠고… 다 네 선택이겠지.”
별이도 언젠가 변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한지애 같은 여배우는 정말 흔치 않으며 오히려 그녀가 특이한 경우다. 물론 별이가 변한다고 해서 우현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매니저이기도 하지만 회사 대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스타들의 포장된 면면만을 보기 때문에 그저 성격이 안 좋은 사람들이 어쩌다 한두 명 있나보다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연예인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코디나 메이크업으로 들어왔다가 1년도 못 버티고 줄줄이 나가떨어진다. 사회생활 하다가 어쩌다 가끔 볼 법한 진상들이 사방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느낌일 테니까.
개그맨 박명서가 자신의 코디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의 성정이 방송에서 보이는 강한 모습과는 달리 아주 따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치… 알았어요.”
그녀는 들이밀었던 머리를 쏙 집어넣고 자리에 앉았다. 우현이 백미러로 슬쩍 보니 별이가 작은 담요를 덮고 눈을 감는 것이 보였다. 자신도 생각할 게 많은 모양이다.
별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우현은 사무실로 돌아와 윤 작가에게 받은 시놉을 검토했다. 별이는 자신의 캐릭터를 연구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우현은 오늘은 집에서 쉬게끔 했다. 방향이 수정돼서 캐릭터의 성향이 바뀌면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흠… 역시 윤 작가님 스타일이 묻어 나오는구만.”
시놉을 천천히 읽어보니 윤해연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면이 많이 묻어나왔다.
대학을 졸업한 한 여자가 취업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인데, 문제는 우현이 읽으면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거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윤 작가가 글을 잘 쓰니 이번에도 중박 이상은 치겠다는 감이 왔다.
몇 시간동안 시놉을 붙잡고 씨름하던 우현은 이내 윤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괜찮으세요?”
“안 그래도 김 대표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어.”
윤 작가의 기대에 찬 음성을 들으니 더 부담된 우현은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작가님,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어떻게 수정하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일단 읽어보니 내용이 좋아요. 그런데도 작가님께서 진짜 대박을 원한다면…”
“원한다면?”
“그럼 이런 건 어때요? 윤 작가님 글은 여성의 입장에서 잘 그리는 건 맞는데 그러다보니까 남자의 찌질한 면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단 말이죠.”
“그렇지.”
“아무래도 주 시청자 층은 여잔데, 그렇게 되면 여주인공의 행동이나 말에 공감이 되기는 해도 남주인공에게 빠지지는 않거든요?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들은 대개 남주가 항상 멋있고 근사하단 말이죠. 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요. 언제나 여주만을 생각하고 여주를 위해서는 자신의 돈도 막 포기해. 자기가 재벌인데… 말도 안 되는데 그게 먹힌단 말이죠.”
“맞아, 맞아.”
“그래서 말인데 내용을 조금 판타지스럽게 바꾸는 건 어때요?”
“어떻게?”
“그거야 저는 모르죠. 작가님께서 하셔야지. 크흠…”
“아휴… 내가 할 테니까 뭐 방향까지는 맞춰주자, 응? 판타지스럽게, 어떻게? 마법을 막 쓰는 건 아닐 거 아냐? 서울역 5번 게이트 벽으로 돌진하면 뭐, 다른 세계가 나오고 그래야 해?”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
“그럼 어떻게! 김 대표, 우리 근사한 드라마 하나 만들어 보자. 응?”
윤 작가도 부지불식간에 고함을 질렀다가 다시 우현을 다독였다.
“크흠… 요즘 회귀가 유행이잖아요?”
“회귀? 과거로 오는 거 말하는 거지? 그래,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도 그렇고 요즘 회귀가 하나의 클리셰이기는 하지.”
“그걸 그대로 가져오긴 너무 뻔하고, 회귀나 빙의 같은 걸 매개로 해서 남주를 좀 멋있게 바꿔 보자구요. 거 예전에 보니까 ‘성균관 이야기’였나? 거기에 나왔던 남주들이 엄청 인기였잖아요?”
“아! 그럼 조선시대 남자가 남자주인공에 빙의하는 내용?”
“그게 예전에 그런 비슷한 내용의 드라마가 있긴 해서… 거기서 조금 비틀어 보는 게…”
“어떻게 비틀지는 또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거지?”
“크흠… 그렇죠. 전에 비슷한 드라마가 있었으니까.”
“흐음, 알았어. 일단 끊어 봐.”
뭔가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한 것 같다. 도움이 된 것 같아 조금이지만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영화 ‘밀실’의 개봉일인 관계로 별이를 비롯한 주연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잡혀 있었다. 전국투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빡센 일정이라 새벽부터 별이를 데리고 샵에서 단장시킨 후 강남의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향했다.
“아닙니다. 앨범을 준비할 정도는 아니구요. 싱글로 준비해야죠. 네. 그럼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바로 검토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니의 데뷔를 위해 몇몇 작곡가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들도 ‘복면노래왕’을 봤는지 선뜻 곡을 주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대부분이 그리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어서인지 곡을 주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유니 데뷔하는 거예요?”
별이 귀가 번쩍 했는지 운전석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준비하는 거지. 맞는 곡이 있는지 좀 들어 보려고.”
“맞는 곡이 있으면요?”
“그렇다면 곡을 사서 준비해야지. 그런데 그렇게 빨리 진행되기는 힘들어. 일단 돈이 드는 문제니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싱글 제작을 하려면 네가 이번 드라마에 조연으로 확정돼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확정된 거 아니었어요? 윤해연 작가님이 우리 회사 소속이 되셨는데…”
“그렇기는 한데, 아무래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안심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작가가 드라마의 왕 같은 존재라고 해도 투자자가 무조건적으로 까고 들어오면 작가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거든. 돈 없으면 드라마 못 찍으니까.”
“그런 경우가 실제로 있었어요?”
“그럼 당연하지. 별의 별 일이 다 있어. 그래서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는 절대로 안심을 하면 안 돼. 특히 돈 나가는 일은 통장에 돈 찍히는 걸 보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 않아.”
“그렇구나. 어쨌거나 유니가 빨리 데뷔했으면 좋겠어요. 실력이 뛰어나니까 한 번 뜨면 그 다음부터는 좋은 곡들이 줄줄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적당히 떠서는 안 돼. 몸값이 비싼 작곡가들은 비싸거든. 아주 많이 떠야 비싼 곡도 사오지.”
“제가 많이 떠서 유니 데뷔시켜 줘야겠어요, 히히.”
“그래. 네가 이번에 잘 돼서 유니 데뷔 한 번 시켜보자.”
그 날, 강남과 용산, 동대문까지 무대 인사를 마친 그들은 동대문 뒤에서 작게 회식을 하며 회포를 풀었다. 영화 관계자들과 배우들이 전부 참석했는데 원래는 배우들까지 참석할 예정은 아니었다. 관계자들끼리만 조촐하게 하려 했는데 예상보다 관객의 반응이 좋아 다 같이 한 잔 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강소연은 우현을 향해 은근히 질책하는 투로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따졌다. 우현이 마이더스에 강소연을 받지 않을 거라고 한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그녀와 술잔을 부딪치며 두 시간 가까이 달래주었다. 이후 괜찮은 작품이 나오면 반드시 알려주겠다면서.
윤해연 작가의 신작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하지만 우현도 그렇고 그녀도 이 작품을 같이 하는 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두 작품 연속으로 같이 붙는 건 이미지 고착화를 부르기에,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우현이 생각하는, 강소연이 드라마를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힘들기 때문이다. 정말 대박 작품이 아닌 한 거의 밤샘 촬영의 연속인 드라마 촬영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내켜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우현은 이소은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았지만 마이더스와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기에 권하지 않았다.
대리기사를 불러 만취한 별이를 집에 먼저 데려다주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니 밤 12시가 다 돼갔다. 씻고 나서 반사적으로 인터넷을 보니 영화 ‘밀실’에 대한 기사가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평단의 호평 탓에 기대하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잘 나온 공포, 스릴러에 관객들도 상당히 만족한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이 기세를 타고 간다면 500만도 문제없을 거라는 이야기에 우현의 입가에 작은 호선이 그려졌다. 러닝개런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이잉…
이 늦은 시간에 우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우현은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핸드폰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