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35화 (3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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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첫 미니시리즈 스타트!(1)

“크흠…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어요?”

우현이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윤해연 작가는 검은 뿔테안경을 고쳐 세우며 우현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전에 은하 고 기집애랑 술 한 잔 했거든. 어찌나 네 욕을 하던지… 나도 같이 실컷 욕 해줬지.”

“잘 하셨어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우현은 행여나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염려해 재빨리 미리 준비해둔 음식을 내오게 했다.

전에도 그녀를 대접할 때 근사한 초밥집에서 했는데, 그녀가 무엇을 좋아할지 알아내려고 며칠을 수소문 했었다. 그 때는 회사에서 돈이 나왔기에 대접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는데 지금은 계산할 때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인 것이 다른 점이다.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윤해연 작가는 계속해서 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기를 언제 배웠냐부터 시작해서 어떤 작품을 좋아하며 어떤 연기자를 좋아하는 가까지 말이다. 별이는 초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것이다.

모든 음식을 다 먹고 차를 마실 때쯤에는 별이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연스레 우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김 대표 처음 봤을 때, 참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 알아?”

“그랬었나요?”

“응. 이번에 내 작품이 무조건 대박 난다며 은하를 들이밀었어. 그 때 사실 전 작품이 잘 되긴 했지만 소재가 그래서 편성을 잡기가 어려웠었잖아.”

“사실 독특한 소재이긴 했죠. 재벌이라든가 삼각관계 이런 게 없었으니까요.”

“응.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 작품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어. 나야 재미있다고 썼지만 반응이 좋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해주니, 나도 막 자신감이 생기더라구. 그래서 그 때 신인이었던 은하를 밀어붙였지. 나 원래는 신인 안 쓰는 거 알지? 그 때가 처음이었어.”

“하하하. 제 말이 힘이 되셨다니 영광입니다.”

“그 작품 잘 되고 은하는 물론이고 나도 잘 됐지. 사실 얼마 전까지도 난 그 때 김 대표가 신인이었던 은하를 드라마에 꽂아보겠다고 아부했던 걸로 알았다? 뭐,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그 칭찬에 나도 신이 났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은하랑 술 마시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네? 무슨 말을…?”

“자기가 예언한 작품이 빗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윤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듯이 말했지만 우현은 뿔테안경 너머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본 것 같았다.

“크흠… 그건 은하가 저에 대해 아주 과장되게 표현한 건데요.”

우현은 양 손을 휘저으며 극구 부인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은하를 자기만큼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딱 하나는 정확하게 알지. 그 아인 절대로 빈 말을 하지 않아. 그래서 고것이 얄미울 때가 있긴 한데,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만하거든.”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하하하!”

우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만약 윤해연 작가와 계약할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회피하지 않을 테지만 그녀를 붙잡을 돈도 없는데 능력을 떠벌려봤자 좋을 게 없다.

자칫하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며 엄한 사람 귀에 들어갔다가 작품을 까기라도 하면 내 작품이 망할 것 같냐며 욕을 한 사발 얻어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하 말대로 간이 작기는 하구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배짱 하면 김우현이죠.”

“그럼 나랑 계약해볼래?”

윤해연 작가의 폭탄 발언에 우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나 FA인 거 알지? 남들 다 대형매니지먼트사에 계약돼 있지만 난 아직 어떤 곳과도 계약한 곳 없어.”

“저기, 계약금은 얼마나…?”

우현은 당장 먹고 죽을 돈도 없음에도 반사적으로 돈부터 물었다.

“후후. 계약금 1억, 계약기간 5년. 8:2로 분배, 당연히 내가 8이겠지? 어때?”

배우로 따지면 사실상 톱스타 대우다. 하지만 그녀가 쓴 작품에 소속 배우를 언제든지 들이밀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무리한 계약이 아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계약금은 1년 뒤에 줘도 돼. 단, 한 가지만 약속해줘.”

“그게 뭡니까?”

“내 대본, 자기가 감수를 해줬으면 좋겠어.”

“네? 윤 작가님,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작가님 대본 충분히 좋아요. 누가 작가님한테 뭐라고 해요? 대본 이상하다고?”

우현은 그녀가 이렇게까지 조바심 내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우현의 관점일 뿐, 그녀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내 글을 잘 알아. 지금껏 잘 해왔다고 하지만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드라마 작가들이 시청률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불허한다. 그래서 드라마 방영 때는 아예 인터넷을 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작품에 대한 피드백은 피디와 보조 작가에게 받는 거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윤 작가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님이세요.”

“웃기네. 솔직히 김은선이라고 생각하잖아.”

“크흠… 아니에요.”

윤해영 작가의 코웃음에 우현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렸다.

“아니긴. 은하한테 김은선 작가를 그렇게 꼭 잡아야 한다고 했다면서? 잠수함도 하늘에 띄울 수 있는 작가라고 말이야.”

“하도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하여간 능글맞기는… 어쨌거나 나도 김은선 되고 싶어. 그러니까 나랑 계약하자. 오케이?”

여기서 빼면 그건 남자도 아니다. 계약금 1억이야 1년 뒤에 어떻게든 마련될 거다. 아니면 장기라도 팔아야지.

“좋습니다. 제가 김은선 귀싸대기를 후려갈기게 해드릴게요.”

“호호호.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고, 나도 그렇게 인정받아보고 싶어.”

“지금도 인정받으시는데요.”

“솔직히 나도 시청률 30% 넘고 내 작품으로 한류스타 나왔으면 좋겠어.”

“어째 오늘 그것 때문에 나오신 것 같습니다?”

“왜? 싫어? 만약 내가 김별씨 마음에 안 들었으면 이런 말도 안 꺼냈어. 자기 안목을 믿은 거지.”

“그런가요? 그런데 아직 시놉도 안 보여주신 거 아십니까?”

우현이 자못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갈색 명품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번에 들어가는 시놉이야. 자기가 읽고 한 번 평가해줘.”

“진짜 제가 감수하는 거예요? 솔직히 제가 시놉을 보면 감이 오긴 하는데 그렇다고 별로인 시놉에 손을 댄다고 좋아진 적은 없거든요.”

“언제 해보긴 한 거야?”

“사실 제가 아주 예전에 소설을 써본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 소설을 보면 이게 대박날지 망할지 딱! 감이 오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가 쓰면 감이 안 오더란말이지요. 그래서 다 망했죠.”

“그럼 내가 바꿔보지 뭐. 어쨌든 보고나서 감상을 남겨줘.”

“알겠어요. 그리고 아직 이거 편성 안 떨어졌죠? 중간에 바꿔도 상관없는 거죠?”

“당연하지. 요즘 누가 주연도 안 정해진 드라마에 편성 잡아주니? 그리고 카메라 돌아가는 와중에도 바꿀 수 있는데 지금 바꾸는 게 대수겠어? 그리고 김별씨, 아니, 이제 별이라고 할게. 그래도 되지?”

“물론입니다. 저도 그게 편해요, 작가님.”

“그래. 네가 그래도 은하보다는 싹싹해 보인다. 걔는 신인 때도 눈에 독기가 있었거든. 난 걔가 신인이 아닌 줄 알았어. 하도 눈에 힘을 주길래…”

“거, 왜 없는 사람 얘기를 자꾸 꺼내고 그러십니까?”

듣기 불편한 우현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왜? 자꾸 은하 얘기 나오니까 가슴이 벌렁벌렁해? 어쨌든, 그 시놉 보면 예빈이라고 있어. 걔가 별이 네가 맡을 역할이야. 아직 주연은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최대한 캐릭터 연구하고 있도록 해봐. 김 대표는 잘 읽어보고 바로바로 피드백 좀 해줘. 주연 정해지고 나면 편성 바로 잡힐 거니까 시간이 많지는 않아.”

“알겠습니다. 안 바쁠 때 최대한 도와드려야죠. 그런데 계약서에 도장은 언제 찍을까요?”

“계약서 가지고 와.”

화끈한 윤해연 작가의 말에 우현이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빈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우리 작가님 이제 곧 대박 나실 겁니다. 제가 계약 때는 근사한 술로 올리겠습니다.”

“김 대표만 믿을게.”

일어서려는 윤 작가를 우현이 잡았다.

“근데요, 혹시 주연으로 누구 생각하고 계세요?”

“글쎄… 솔직히 은하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힘들겠지? 불편할 거 아냐? 김 대표가.”

내심 걱정했던 우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유, 역시 윤 작가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래서 여주는 한지애 아니면 이소은 생각하고 있어. 남주는 강민성이 할 것 같던데? 그쪽에서 미팅하자고 하더라구.”

강민성은 작년부터 두각을 드러낸 모델 출신 배우로, 조각 같은 얼굴에 훤칠한 키,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로 젊은 여성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한지애가 참 좋을 것 같은데…”

“나도 한지애가 좋은데, 문제는 한지애가 아프리카 봉사활동 계획이 잡혀있다고 하더라구. 소속사측에서는 한지애랑 조율해보겠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네?”

한지애는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천사표다. 스태프들에게 잘하는 건 물론이고 어느 상대배우와도 불화를 일으켜 본 적 없는 여배우로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본 적이 없다.

단지, 작품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아니면 소속사에 바보들만 모인 건지 항상 이상한 작품만 선택해서 이제는 그녀가 선택한 작품을 상대측에서 슬슬 꺼리는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현이 한지애를 붙들고 늘어진 이유는 바로 이소은이라는 여배우 때문이다.

“이소은 아시잖아요? 강소연이 아무리 싸가지가 없다지만 그래도 개념은 있어서 말도 안 되는 걸로 주변사람 힘들게는 안 해요. 근데 걔는 그냥… 아시잖아요?”

“김 대표, 강소연이 하겠다면 뭐가 걱정이겠어? 걔만큼 연기되는 애가 흔해? 걔, 드라마 안한지 벌써 5년째야. 그리고 한지애는 나도 원해. 그런데 한지애가 스케줄 문제로 못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알잖아? 이소은 걔, 투자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이소은은 지금까지 했던 드라마 5개 모두가 성공한 운빨대왕 여배우다. 강소연이 그렇게 부르짖던 ‘예쁘고 연기 잘하는 년’도 못 이긴다는 ‘운 좋은 년’은 바로 그녀를 두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 그녀가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또라이라는 거다.

시상식에서 자신보다 20년이나 앞선 대선배를 상대로 말을 끊고 자신의 소감을 밝히던 장면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으며, 한 번은 ‘연예계 현장’과의 인터뷰에 자신의 코디를 옆에 앉혀놓고 그 코디에게 팔을 걸친 채 기대어서 인터뷰를 했던 적도 있었다.

“걔 여기에 꽂히면 당장 투자금 들어오는 건 물론이고 편성 잡자고 말 안 해도 공중파 삼사에서 먼저 연락 올걸? 제발 우리랑 해달라고 말이야. 김 대표, 내 말 틀려?”

“으휴… 맞습니다. 그렇겠죠.”

“걔 분명 PPL 마음에 안 든다고 지랄할 거고, 대사나 캐릭터 마음에 안 든다고 찍네 마네 할 거 뻔히 아는데, 나도 싫지만 어쩌겠어? 게다가 이소은 걔가 일본에서 온천욕 하다가 이거 읽고는 당장 하겠다고 지금 비행기 타고 오고 있대. 김 대표 같으면 말릴 수 있겠어?”

별이는 눈만 동그랗게 뜨며 무슨 말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고 우현은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어깨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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