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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첫 시사회를 하면서(3)
먼저 언론, 배급시사회가 끝나고 영화 ‘밀실’에 대한 이야기가 포털에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호평 일색에 네티즌들의 기대감이 높아졌고 관계자들은 관객 수 공약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배우들을 채근했다.
반대로 재벌가의 장녀와 열애설이 났던 박형석은 소속사에서 공식 부인하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박형석은 여전히 잠적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올리브식품 역시 개인의 사생활이라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영화 관계자들은 앞으로 개봉 후 관객들과의 무대인사에 박형석이 함께 하지 못 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맞춰서 전략을 짜느라 고심했다.
강소연은 관계자들의 채근에 3백만 돌파 시 팬들에게 커피선물을 하고 5백만 돌파 시 김별과 함께 섹시댄스를 추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이슈 몰이를 했다.
우현은 최 감독에게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관계자들은 박형석이 이탈한 상황에 몸이 달았는지 어떻게든 기사 하나라도 더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장 웃긴 건 김별에 관한 기사였다. 우현이 예상했듯이 그 기자는 김별이 시사회 간담회에서 전에 몸담고 있던 걸그룹 라라걸즈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것처럼 기사를 냈는데, 그 제목이 ‘신인여배우 김별, 라라걸즈 멤버들 언급하는 것도 웃겨’였다. 내용이야 당연히 악의적인 짜깁기에 불과했다.
그 어그로에 끌려 기사를 클릭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김별이 검색어 상위권에 하루 종일 노출되는 기염을 토했고 댓글에는 김별에 대한 비난글로 온통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너 괜찮겠어?”
오히려 최 감독이 걱정 돼서 우현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보았다.
“괜찮아요. 오히려 좋죠, 뭐… ‘밀실’ 제대로 홍보해 주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별이가 많이 상처받을 텐데?”
“며칠간 인터넷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기자, 알아보니까 이 쪽 업계에서도 돈 받고 기사 써주기로 유명하다던데? 연락해서 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요, 잘 됐어요. 일부러 그냥 두고 있으니까요.”
“일부러? 왜? 무슨 생각이 있는 거야?”
“간담회 녹화해 둔 영상 있잖아요? 그거 나중에 커뮤니티 중심으로 풀면 돼요. 굳이 정정기사 낼 필요 없어요.”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만…”
최 감독이 걱정할 만했다. 그만큼 상당한 비난 여론이 형성되어 영화까지 보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우현이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지 않은 이유는 억울한 비난을 받아왔던 연예인이 한 번 극적으로 반전에 성공할 때 얼마나 큰 호감을 얻는지 알기 때문이다.
특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악성기사와 댓글은 소속사가 일부러 삭제 조치하려 하면 오히려 더욱 역효과가 일어난다.
그럴 때는 처음에 방관하다가 확실한 반론 증거로 기사를 쓴다거나 하면 여론이 급반전하게 되고 그때까지 욕하던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단, 소속 연예인이 정당한 사유를 정확한 증거로 가지고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현은 VIP시사회를 앞두고 한창 커뮤니티에 올릴 글을 작성하는데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김우현 대표님 전화번호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하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터넷 연예매체인 연예패치의 장성동 기자입니다.”
김별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짜깁기해서 올렸던 그 기자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 나왔다. 우현은 조용히 녹음 버튼을 눌렀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우현은 모른 척했다. 그 기자는 우현이 상당히 곤란해 하는 줄로 생각했던지 너무나도 평온한 우현의 목소리에 조금 당황한 듯했다.
“아, 그게… 제가 김별씨에 관련된 기사를 썼는데 조금 과했나봅니다. 그래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드렸어요.”
“무슨 기사 말이죠? 내용이 뭐였는데요?”
웃음을 참은 우현이 대놓고 물어보자 그는 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그… 언론, 배급시사회에 김별씨가 그… 라라걸즈에 대해서 말을 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조금 과하게 쓰지 않았나 싶어서…”
“알겠습니다.”
“네?”
“알겠다구요. 저희가 보고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면 그렇게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시 만요, 김 대표님?”
우현은 그가 무슨 목적으로 전화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정정기사 올려줄 테니 ‘우리 친하게 지내보자’, ‘술 한 잔 하자’, 하면서 대놓고 돈을 바라는 쓰레기 짓을 하려고 하는 거다.
법적으로 대응하려고 하면 돈과 시간만 잡아먹고 실직적인 이득은 없다. 물론 그 기자에게 약간의 타격은 있겠지만 그 시간동안 소속 연예인이 받아야 할 타격을 생각하면 그냥 적당히 기자와 합의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이런 쓰레기 짓을 대놓고 하는 거다.
그런데 우현이 이 바닥의 생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처럼 대응하니 그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네? 더 할 이야기가 남았습니까?”
“제 잘못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없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시는 게 어떨까요? 게다가 이제 김별씨도 시작이나 마찬가진데 처음부터 이미지를 이렇게 가지고 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여배우 키우면서 저 같은 기자와 친해지시면 김 대표님도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술 한 잔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는 건 어떨까요?”
“저는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로 기자와 친분을 가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네요. 그냥 저희 변호사와 이야기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만한 말을 지껄이자 우현은 일부러 그와의 대화를 거부하며 도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허! 김 대표님!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셨나본데요. 아직 사업자등록증에 잉크도 안 말랐을 정도의 신생 회사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을지 생각도 못하시나 봐요? 이대로 사업 접고 싶어요? 한 번 접어 드려요?”
우현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나오길 바라십니까?”
그 기자는 그제야 우현이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는지 이제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달래듯이 말했다.
“자자, 대표님. 우리, 장사 하루, 이틀 할 거 아니잖아요? 연예기자와 매니지먼트 대표가 얼굴 붉혀서 뭐 좋을 게 있습니까? 우리 술 한 잔 하면서 각자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봅시다.”
“일단 알았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하하하.”
전화를 끊은 우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이런 짓을 많이 해봤으면 개인 간의 인터뷰도 아니고 언론시사회에서 벌어진 일로 협박을 할까? 뻔히 동영상으로 기록이 남았을 걸 알 텐데 말이다.
사실 다른 중소 매니지먼트사들 같으면 그런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웬만하면 기자들과 친해지려고 할 거다. 이걸 막았다고 다른 게 터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만약 저 기자가 우현 몰래 남자를 만나고 있는 별이 사진을 들이밀었다면 우현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를 룸싸롱에 데리고 가서 술이 떡이 되도록 먹이고 사진 유출을 막을 것이다.
우현은 룸싸롱에서 술집 여자를 옆에 낀 상상을 할 그 기자를 안타까워하며 쓰던 글을 마저 작성했다. 물론 기자와의 통화녹음도 글에 첨부했다.
“민주씨,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요?”
“제가 별이 악의적 기사 관련해서 반박글을 좀 썼는데 아무래도 여성들이 많이 상주하는 커뮤니티에 좀 올려줬으면 해서요.”
“그래요? 알았어요. 재미있겠네요.”
경리를 맡고 있는 민주에게 각종 여성 위주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도록 했다. 물론 우현은 남성 위주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VIP시사회를 하루 앞두고 올린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파장이 커지더니 결국 다시 한 번 포털을 들썩였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악의적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고 정확한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악성댓글을 남긴 네티즌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결국 VIP시사회 당일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각종 논란과 기자단들의 호평에 힘입어 예상치 못한 주목을 받은 것이다.
강소연이 마이더스 소속인 관계로 같은 회사의 톱스타들이 대거 VIP로 참석했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톱스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정우선을 비롯해 이재정, 송혜진 등등 최고의 스타들이 자리를 빛냈다.
“축하해.”
역시나 같은 소속사인 유은하가 VIP 자격으로 참석했다. 포토존에서 한껏 멋을 뽐낸 그녀는 우현에게 슬쩍 인사를 건네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강소연과 사이가 안 좋은 유은하를 부르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녀가 일방적으로 표를 얻어서 왔다고 했다. 다행히 사고가 나지는 않았기에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날 우현은 윤정을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내일모레가 바로 ‘복면노래왕’의 방송 날짜이기에 오늘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것이다. 포토존에 세워 봤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니 괜히 모양만 우스워 질게 뻔했기 때문이다.
초대한 모든 인원이 자리하고 난 뒤 출연자들이 무대인사에 나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감독님과 주연배우들을 모시겠습니다.”
짝짝짝…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최철성 감독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스크린 앞에 도열했다. 최 감독이 사회자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고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혼신을 기울여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여기 배우들이 많이 고생하셨고 이 자리에 없지만 수많은 스태프가 밤잠 못 자면서 매달렸습니다.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 감독 이후로 강소연을 비롯한 주연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했고 이윽고 별이에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그 순간 수많은 카메라들이 별이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긴장된 마음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
“김별 파이팅!”
어디에선가 들려온 난데없는 고함소리. 별이는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준비한 멘트를 말했다.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이 날은 제작발표회 때처럼 그녀의 몸매를 부각시키는 옷이 아니라 단정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입었기에 그녀의 억울했던 상황을 더 부각시켰다. 그래서인지 모든 기자들의 시선은 톱스타인 강소연보다 김별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소연은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프로였던 그녀는 결코 사람들이 많은 데서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김 대표님! 김별씨와 영화홍보 인터뷰 가능할까요?”
VIP시사회를 분위기 좋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SBC ‘연예가 현장’의 리포터 이혜림 리포터가 우현의 소매를 붙잡았다.
“네? 별이는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직 신인배우인 김별을 제외한 주연배우 셋만을 데리고 영화홍보를 위한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