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8화 (2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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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유니, 첫 등장(3)

“결과는! 50 대 49! 후크선장의 승리입니다!”

연예인 판단정은 물론 일반인 판정단도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우현은 두 손을 꼭 잡고 화면을 쳐다봤던 윤정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많이 실망했을 테니까.

사실 리허설 때부터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기기 힘든 상대를 붙여준 피디가 한 때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더랬다.

“한 표! 단 한 표차였습니다. 정말 극적인 순간입니다.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는 말인데요. 승리하신 후크선장님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 솔직히 처음 연습 때도 그렇고 리허설 때도 그랬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라운드에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불렀는데요. 그래도 이겼으니까 꼭 팅커벨님의 몫까지 열심히 해서 최대한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목소리가 변조돼서 웃기게 들렸지만 말투를 자세히 들어보면 상당히 진중하게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겸손이 몸에 밴 것 같았다.

“그 높은 곳이 혹시 ‘노래왕’인가요?”

“글쎄요, 하하하.”

겸연쩍어하던 후크선장이 무대 뒤로 물러나고 MC인 김성준이 팅커벨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정말 안타깝게 떨어지셨습니다. 단 한 표차였는데 말이죠. 많이 아쉬우시죠?”

“네, 너무 아쉬워요.”

유니가 주먹을 쥐고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럼 두 번째 곡으로 준비하셨던 노래는 어떤 곡입니까?”

“장혜정 선배님의 ‘키작은 하늘’ 준비했습니다.”

연예인 판정단 중의 여자 아이돌인 미주는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명곡을 준비하셨네요. 자, 그럼 ‘작은 요정 팅커벨’의 마지막 무대를 시작합니다!”

김성준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특유의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따라 팅커벨의 노래가 시작되자 판정단에 작은 탄성이 울렸다.

“누가 떨어뜨렸어?”

노래 평가 때 유독 팅커벨을 칭찬했던 유영식이 장난스레 주변을 둘러보았고 후크선장을 지지했던 김훈철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장난이었지만 그만큼 팅커벨의 목소리가 대단했던 거다. 벌스 부분이 지나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에 이르자 감정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대만은 나를 영원히 지켜 주리라 믿었는데 이렇게 날 떠나 갈 수 있는 건

함께한 사랑은 없던 거야.

하지만 남겨진 가슴가득 고인 그대의 눈빛은 그대로인데

못 다한 사랑이 너무 많이 남아 그대를 잊을 순 없을 것 같아]

사람들의 마음을 간질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애처로우면서도 감미로웠고 사랑스러웠다.

“자! 이제 ‘작은 요정 팅커벨’의 정체가 공개됩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주목된 가운데 팅커벨은 반주가 흐르는 중간에 무대 뒤로 물러나 몸을 돌려 가면을 벗었다.

“누구야?”

“누구야?”

일반인 판정단에게서 환호가 나오긴 했으나 그건 이미 짜여진 환호였을 뿐이다.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니가 연예인 판정단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도 그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이제는 사라진 데뷔 3년차 걸그룹 라라걸즈의 메인보컬이었던 유니입니다!”

“아…”

김구려를 비롯한 중년의 연예인들은 들어도 누군지 알지 못했고 그저 형식적으로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하지만 연예인 판정단 중 현직 남자 아이돌그룹인 라이젠의 수현은 유니를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아! 라라걸즈! 나랑 같은 무대에 섰었는데!”

같은 아이돌 정도만이 알 정도로 인지도가 낮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노래에 집중했다. 김성준의 설명만으로도 사연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면을 벗은 채 눈을 감고 부르는 유니의 노래는 아까보다 더욱 처연했고 가슴을 울렸다. 그림과 장식으로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팅커벨 가면을 벗으니 그녀의 미모가 초록색의 미니 원피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더불어 아름다운 외모와 비견되는 그녀의 서글픈 감성은 더욱 부각됐다. 급기야 평소 울보로 소문난 유영식이 또 한 번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판정단의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녹화장을 울렸다.

“아… 누가 떨어뜨렸어! 누구야!”

“저는 팅커벨 찍었습니다.”

또 다른 남자 연예인 게스트가 후크선장을 뽑은 이들을 원망하자 남자 아이돌인 수현이 자신은 팅커벨을 뽑았다며 항변했다.

“이 양반 또 주책이야. 진짜 왜 이래요! 창피해 죽겠네, 정말!”

이 와중에 김구려가 유영식을 비난하듯이 손가락질 하자 그걸 본 연예인 판정단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감동적인 노래 잘 들었습니다. 자, 다시 한 번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라라걸즈로 활동했었고 지금은 솔로가수를 준비 중인 유니라고 합니다.”

“아니, 이렇게 노래도 잘 부르고 아름다우신 분이 지금껏 못 떴다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래서 안 되는 거예요.”

김구려는 자신의 일인 것처럼 흥분하며 떠들었다. 그런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원래 그가 맡은 역할이 그런 것이기에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그를 싫어하는 피디는 없다.

“아, 이름이 유니라고 했는데 본명이 유니인 거예요?”

다시 한 번 김구려가 물어보았다. 우현은 그가 자신을 만났을 때 파인 언테에서 데리고 있는 친구를 맞추겠다고 한 것을 기억했다. 분명 자신을 도와주려고 저러는 것이다.

“본명은 최윤정입니다. 라라걸즈에서는 윤정으로 활동했는데 저희 대표님께서 대한민국의 유니크한 보컬이라는 의미로 유니라고 지어주셨어요.”

김성준이 미리 준비한 대본을 체크하며 끼어들었다.

“원래 유니의 부모님께서 가수되는 걸 굉장히 싫어하셨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네. 굉장히 반대하셨고 특히 라라걸즈가 잘 안 되면서 완전히 연예계에서 멀어질 뻔 했는데요. 새로운 소속사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부모님을 설득하게 됐고 이제는 아빠가 저의 가장 열렬한 팬이 되셨어요. 사장님은 연습실에서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시는데도 제가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는데 아빠가 항상 데리러 오세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을 가족들은 알고 있나요?”

“아니요. 사실 지금도 제가 회사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는 줄 아실 거예요. 일부러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럼 지금 TV를 보실 부모님께 한 마디 하시죠?”

뻔한 전개라서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예능 프로에서 빠지지 않는 순서가 바로 영상편지. 우현은 개인적으로 ‘두 유 노우 김치’ 만큼이나 싫어했다.

“엄마, 아빠 나 드디어 공중파에 나왔어요. 이제 딸 얼굴 TV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더 노력할게요. 사랑해요!”

유니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맺혔다. 보는 사람은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당사자는 감정이 복받칠 수 있을 거다.

“이런 친구를 ‘진흙 속의 진주’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친구를 다시 한 번 발굴한 사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로또를 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구려는 이미 확신하는 것 같았다. 유니가 우현의 가수인 걸.

“아직 솔로 준비 중이라고 하셨죠? 정말 잘 되기를 바랍니다.”

유영식도 한 마디 거들었다.

“지금까지 ‘작은 요정 팅커벨’이었던 유니양이었습니다!”

유니가 무대 뒤로 빠져나가는 장면과 대기실에서 ‘복면노래왕’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간단히 촬영하고 나니 유니에게 주어진 모든 녹화가 끝났다.

녹화가 끝날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 옷을 갈아입고 차에 오르니 그제야 우현은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해졌다.

“실망했지?”

유니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지 알기에 지금까지 말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백미러로 슬쩍 보니 그녀의 표정은 의외로 괜찮아보였다.

“아니에요. 사실 처음 연습할 때부터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후크선장, 인간적으로 너무 잘 부르시는 거 있죠? 그 가면을 확 벗겨버리고 싶었다니까요?”

“하하하, 누군지 궁금해?”

“어? 대표님은 후크선장이 누군지 알아요?”

“응. 알려줘?”

잠시 생각하던 유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말하지 말아요. 이제 궁금하지 않아요.”

“하하하, 그래. 그게 뭐가 궁금해. 그 사람이 누군지 너랑 상관없지. 이제 중요한 건 네가 뜨는 것뿐이지. 안 그래?”

“그럼요. 그나저나 이거 방송 언제 나가요?”

“4주 뒤에. 아마 그 때, 별이 ‘밀실’ 시사회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요… 만약 저랑 별이 언니랑 동시에 스케줄이 생기면 대표님은 누구를 데리고 스케줄 갈 거예요?”

우현은 난데없이 서른 넘어서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 글쎄다.”

“치… 별이 언니랑 갈 거죠?”

“그 때쯤에는 매니저를 하나 더 뽑겠지. 생각해봐. 나는 회사 대표야. 언제까지고 로드매니저까지 할 수는 없는 거지.”

우현은 다급한 마음을 담아 속사포처럼 다다다 내뱉었다.

“히히. 농담이에요, 농담.”

“아휴…”

참 다행스러운 일인 것이 별이나 유니나 멘탈이 좋았다. 무명으로 오랜 생활을 해서 그런지 충분히 실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방 제자리를 찾아온다. 매니저 입장에서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반대로 오기가 생겼어요. 그 분도 충분히 잘했지만 저도 분하니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할 거예요.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저를 향해 환호하던 관객들의 눈빛은 지금까지 걸그룹을 하며 춤추던 저희를 보고 환호하던 눈빛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그걸 꼭 다시 경험할 거예요.”

“당연하지.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되게 해줄게.”

유니에게도 우현에게도 ‘복면노래왕’의 출연은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유니는 물론이고 우현 역시 자신의 배우를 쇼와 예능프로에 출연시킨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유디 엔터를 엿 먹이기 위해 결정했던 일이 끝나고 보니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유니는 더 연습하겠다고 했지만 우현은 그녀를 집에 내려주었다. 하루 종일 고생하기도 했고, 몇 년만의 첫 공중파 예능 녹화라 바짝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오늘은 푹 쉬라고 했다.

우현은 그녀를 데려다주고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가 회식에 참여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며 연예인 판정단들과 얼굴을 익혔다.

그 후로 평온한 일상이 지나갔다. 별이는 얼마 후에 있을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피부, 몸매 관리와 연기연습에 매진했고 유니는 언제나처럼 보컬 연습에 여념 없었다.

“아, 드디어 잡혔어요?”

며칠 뒤, 드디어 걸려온 최철성 감독의 전화. 시사회 일정이 잡힌 것이다.

“그래. 별이 잘 준비시켜.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저희야 항상 스탠바이죠. 형님 목소리 떨리는 거 알아요?”

“인마, 이제 나도 한 번 날아봐야 하지 않겠냐? 너 이거 잘 된다고 나한테 장담했던 거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장 지질게.”

전화를 끊은 우현은 자신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피식 웃은 그는 혼잣말로 지껄였다.

“아마추어냐? 떨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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