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7화 (2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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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유니, 첫 등장(2)

듀엣곡뿐만 아니라 준비했던 솔로곡 두 곡까지 리허설을 마친 윤정을 데리고 대기실로 들어온 우현은 다시 그녀의 가면을 벗기고 선풍기를 쐐주었다.

“후아… 얼굴이 더워요. 더워.”

“덥지? 에어컨 빵빵하니까 금방 땀 식을 거야.”

“몸은 춥고 얼굴만 답답하니 죽겠어요.”

“너 노래왕되면 이거 계속 해야 되는데 그래도 노래왕이 하고 싶어?”

“음… 그래도 노래왕 되면 좋겠어요, 히히.”

그녀는 생각만 해도 좋은 듯 얼굴을 감싸고 몸을 베베 꼬았다.

“내가 원래 내 자식들 기죽이는 스타일은 아닌데, 노래왕은 가슴에 고이 접어 둬. 우리 3라운드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하자. 그 정도면 진짜 기대했던 최상의 결과야.”

“알고 있어요. 그냥 꿈만 가져본 거예요. 그나저나 1라운드는 어떨 것 같아요?”

우현은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길 것 같다고 해도 네 마음이 흔들릴 거고 질 것 같다고 해도 네 마음이 흔들릴 거야. 이기고 지는 건 내가 신경 쓸 테니까 너는 그냥 최선을 다해서 부르기만 하면 돼.”

“치… 좀 알려 주지.”

윤정은 우현의 대답을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그래도 답을 달라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의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긴다고 했으면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 같고 진다고 했으면 무리할 지도 모르니까.

윤정을 대기실에 두고 녹화장에 다시 가보니 어느새 방청객들이 빽빽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복면노래왕’의 연예인 판정단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보였다.

우현은 이제 곧 녹화가 시작될 거라 판단하고 뒤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그의 소매를 잡아챘다.

“혹시 김우현?”

“어? 아! 반가워요.”

“이야, 이런데서 만나네? 뭐야?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예능 녹화장에 얼굴을 다 보이고?”

180이 넘는 큰 키에 넉넉한 살집을 자랑하는 그는 한 때 인터넷에서 욕설을 날리다 공중파에서 화려하게 비상한 속칭 독설가 김구려다. 인터넷에서 했던 말들이 하도 구려서 김구려인데 공중파에 와서도 그 이름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네요. 녹화 끝나고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만나게 될지 몰랐네요.”

“은하씨랑 헤어졌다면서?”

역시나 그의 질문은 거침이 없다. 그와는 은하가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할 때, 그의 대표 방송프로그램인 ‘마이크스타’에 나가서 영화홍보를 하며 인연을 맺었다. 그 때, 우현이 녹화 끝나고 그와 술을 마시며 친해졌고 계속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하면서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이번에 회사 새로 옮겼어? 가수 키우는 데야?”

“배우랑 가수 둘 다 키우고 있어요. 회사는 제가 새로 세웠습니다.”

우현은 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그에게 건넸다.

“파인 엔터테인먼트? 전에 회사 이름이랑 똑같네? 이름만 가지고 왔구나?”

“그런 셈이죠.”

“어쨌든 반가워. 왜 연락 한 번 안했어. 새로 시작했으면 진즉에 연락 좀 하고 그러지.”

“무작정 들이밀 수 있습니까?”

“그래. 사실 그런 경우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곤란하긴 해. 역시 우현이는 경우가 있어. 그럼 이번에 우현이 네가 키우는 가수가 나오는 거겠네? 누구야?”

“하하. 그건 녹화 끝나면 말씀 드릴게요.”

“그래. 그게 맞겠다. 괜히 알게 되면 또 오버하게 되고 그래요. 오늘도 끝나고 회식 있는데 같이 술 한 잔 할까?”

“당연하죠. 녹화 끝나고 우리 애 금방 데려다 준 후에 가겠습니다.”

“그래, 가수 키운다고 하니까 여기 판정단으로 나오는 사람들이랑 얼굴도 좀 익혀두면 도움이 될 거야. 그런데 어떻게 꽂았어? 나한테도 연락 안했으면 누구한테 꽂아달라고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동영상도 찍어서 여기 작가들에게 보냈죠. 운 좋게도 작가들이 좋게 봤는지 연락이 오더라구요.”

“잘됐다, 야. 내가 봤을 때 너는 성공할거야. 그럼 들어가고, 내가 이따가 녹화하면서 한 번 맞춰볼게. 네 가수가 누군지. 내가 한 번에 맞춘다. 잘 봐라.”

“하하. 알았어요. 맞는 것 같으면 잘 대해주세요.”

“걱정 마, 인마. 가!”

그는 녹화시간이 임박했기에 휑하니 자리를 떴고 우현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윤정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팅커벨님! 스탠바이 하세요!”

우현이 부랴부랴 윤정에게 가면을 씌워주고는 그녀를 이끌고 무대 뒤편의 대기장소로 향했다. 가면을 써서 앞이 잘 안 보이기에 그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평소에 긴장을 잘 안하던 우현도 가슴이 떨려왔다.

자신이 긴장하는 것을 윤정에게 들킬까봐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면서 대기 장소에 도착하니 검은색 정장을 쫙 빼입은 경호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녹화 끝날 때까지 저들이 윤정을 데리고 다닐 테니 우현은 녹화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화이팅!”

“아자아자!”

물론 윤정과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파이팅을 해주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만큼 긴장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모든 건 윤정이 하기에 달렸을 뿐.

“자! 이번에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성량! ‘작은 요정 팅커벨’! 이에 맞서는 자는 갈고리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악당 해적 후크선장’!”

무대 앞에는 열 명 정도 되는 연예인 판정단들이 앉아서 팅커벨과 후크선장을 주목했다. 특히 짧은 치마를 입은 팅커벨을 향해 남자 출연자들이 시선을 주목하는 것도 느껴졌다. 물론 무대 아래에 위치한 일반인 관객들도 남녀 할 거 없이 팅커벨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1라운드만 통과하자.’

사실 우현은 처음부터 ‘복면노래왕’의 목표가 1라운드 통과였다. 3라운드까지 가면 좋고 안 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1라운드를 꼭 통과하기 바랐던 이유는 단 하나, 윤정이 2주 동안 나온다는 것. 그것 말고는 없다.

‘복면노래왕’에 나와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스타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여성 출연자는 더욱. 잠깐 기사가 뜨며 주목을 받겠지만 며칠 지나면 열기는 식어버린다.

억울해 할 필요 없다. 어차피 가수는 자기 노래로 떠야 하니까. 남의 노래 백날 잘 불러봤자 ‘걔 노래 잘하던데?’하는 이야기가 전부다. 물론 어지간한 가수들을 전부 발라버릴 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면 ‘노래왕’이 되어 10주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다.

그렇기에 1라운드만 통과해서 2주 정도 TV에 비추면 그걸로 윤정이, 아니, 유니의 얼굴 알리기는 충분하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됐다. 유니는 리허설 때와 같이 안정적으로 목소리를 뽑아내며 존재감을 알렸다. 예상보다 뛰어난 노래실력에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벌써부터 누군지 추리하느라 바빴다.

다음 소절은 후크 선장의 차례.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지자 여성들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좋아했다.

우현은 리허설 때 후크선장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바로 5, 6년 전까지만 해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발라드 4인조 그룹인 N.O.S의 멤버 강민수.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에는 몰라도 다섯 손가락을 꼽을 때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최고의 보컬리스트다. 대진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하필 ‘노래왕’급 가수를 유니에게 붙이다니…

비슷한 실력의 남녀 가수가 경연을 하면 똑같은 발라드를 부른다고 할 때, 남자가 유리하다. 만약 그 남자의 목소리가 아주 멋있는 저음일수록 확률은 더욱 올라가기 마련. 우현은 아마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의 화음이 절묘하게 무대를 수놓았고 연예인 판정단들과 관객들은 그저 둘의 노래에 경탄한 채 빠져들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났을 때, 그들 모두는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누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누구는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했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 누르셔야 합니다. 셋! 둘! 하나! 끝!”

MC를 맡고 있는 김성준이 호들갑을 떨며 재촉하고 나서 무대는 다시 열기가 가라앉았다. 이제 선택이 끝났으니 예능이 시작될 시간.

각자 자신에 대한 소개를 마치자 연예인 판정단들이 노래에 대한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

“우선 후크선장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저 분은 누가 봐도 가수입니다. 백프로 장담해요. 묵직한 저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기술은 가수가 아니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거거든요. 게다가 성시훈의 감미로운 느낌을 후크선장 특유의 남성적인 저음으로 부르는데, 들으면서 원곡을 부른 성시훈씨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김훈철이 침을 튀겨가며 칭찬했다.

“저는 팅커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이 노래는 절대 쉬운 노래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팅커벨은 너무나 쉽게 노래를 불러서 마치 내가 노래방에 가도 부를 수 있을 것처럼 했어요. 대단합니다. 게다가 마이유의 섬세한 보컬에 묘한 섹시한 느낌을 더한 것 같았는데 그 느낌이 가볍지 않고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네요. 누군지 정말 궁금해요. 분명 몸매를 보면 아이돌 같은데, 저는 아이돌 중에 이런 보컬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유영식이 특유의 오버스러운 감성으로 극찬했다. 그렇게 둘의 칭찬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토크가 시작됐다. 언제나 그러듯 김구려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었다.

“저는 말이죠. 저 후크선장, 나이가 참 궁금해요. 저 팅커벨은 무조건 20대 초반이거든요? 이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후크선장은 잘 모르겠단 말이죠. 제가 질문 하나만 할게요. 이봐요, 후크선장! 아침에 나올 때 뭐 먹고 나왔어요?”

“긴장돼서 굶었습니다.”

후크선장이 변조된 목소리로 말하자 김구려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에이… 뭐야 진짜! 사람이 솔직해야 되는데 말이죠. 이러면 안 됩니다.”

“진짜로 아무것도 안 먹었습니다.”

“그럼 일단 이분들이 준비해 온 개인기를 한 번 보시겠습니다.”

김성준이 못 믿겠다는 김구려를 진정시키고 준비해온 개인기를 시켰다. 유니는 평소 할 줄 알았던 닭 울음소리와 강아지 울음소리를 냈다. 사실 다른 것도 있었지만 우현은 가장 무난하고 이미지 깨지 않는 동물울음으로 하도록 했다.

후크선장은 클럽 댄스를 준비해 왔다며 몇 가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우현이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이었다. 발라드 가수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후에 후크선장을 보고 아이돌 가수니 90년대에 데뷔한 중년의 가수니 하는 말들이 오갔고, 유니를 보고는 아이돌 가수는 확실한데 도무지 모르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유니의 키와 몸매를 연상시키는 아이돌들은 하나같이 가창력이 별로였기에 더욱 궁금증을 일으켰다.

이제 추리 시간이 끝나고 결과를 확인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럼 결과를 확인하겠습니다. 결과는!”

방청객들과 연예인 판정단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 뒤 대형 모니터를 향했고 우현도 반사적으로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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