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6화 (2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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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유니, 첫 등장(1)

새벽에 윤정이를 차에 태우고 샵으로 향했다. 그녀는 파인 엔터로 와서 처음 맞이하는 공중파 녹화에 상당히 들떠있었다.

“너 눈 빨개. 좀 자라니까.”

“어떻게 잠이 와요? 오늘이 ‘복면노래왕’ 녹화잖아요. 잠 못 잘 것 같아서 8시부터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결국 새벽 4시까지 잠이 안 들었어요.”

“큰일이네. 이따가 안약 좀 넣어야겠다. 눈이 토끼눈이야.”

“너무 긴장하면 어떡하죠?”

“긴장을 안 하려고 하지 마. 억지로 긴장을 안 하려고 하면 더 긴장되거든. 큰 무대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문제는 ‘그 긴장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지.”

“뭐… 흔히 말하는 ‘긴장을 즐기라’ 이런 거죠? 그거 말처럼 잘 안 돼요.”

“하하, 맞아.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 전에 별이에게 해준 말도 그랬어. 수많은 사람이 널 지켜보는 와중에도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그게 스타라고 말이야. 네가 지금 떨리고 긴장되는 건 너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래. 네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라는 확신.”

“당연히 없죠. 이제 첫 녹화거든요?”

윤정은 우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현은 그녀를 억지로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널 뽑았을 때, 너는 별이와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사실 나 역시 두렵지. 배우 말고는 키워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난 믿어. 내가 널 잘 뽑았다는 걸. 너도 보여줘. 이 회사에 김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야.”

“언니랑 저를 은근히 경쟁시키는 거 같아요.”

“하하하. 원래 발전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나오는 거지.”

한미홍 뷰티페이스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쳤다.

“예쁘다.”

“진짜로요?”

미용실 직원들도 윤정을 보고 예쁘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물론 영업용 미소도 곁들여져 있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현이 봐도 진짜 연예인 다 된것 같았으니까.

“좋아. 오늘 다 죽여 버리자!”

“고고고! 무브무브!”

우현과 윤정은 흥을 내며 샵을 나와서 상암동에 있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확실히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윤정은 아까보다 한결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오늘 부를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진짜 흥이 나 보였다.

한 시간여를 운전해 방속국에 도착하니 차에서 내릴 때부터 준비하고 있던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미리 녹화 따놓고 그녀의 활약 여부에 따라 이 장면이 방영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차에서 미리 준비했던 짧은 원피스로 갈아 입었기에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카메라맨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적극적으로 그녀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출연하게 된 ‘작은 요정 팅커벨’입니다. 반가워요!”

윤정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양 손을 귀엽게 흔들어보였다. VJ는 그런 그녀를 계속해서 찍으며 녹화 전 대기실 앞까지 따라왔다.

“그럼 이따가 봬요!”

그녀가 들어가는 것까지 촬영한 VJ는 카메라의 전원을 내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우현은 그에게 미리 준비해 온 주스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몸매가 상당히 좋네요. 카메라로 찍는 제가 설렜다니까요?”

“하하하, 그런가요? 얼굴도 공개되면 더 예쁠 겁니다. 하여튼 잘 좀 부탁드립니다.”

“뭐, 제가 도와드릴 게 있나요? 그나저나 노래 실력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기분 좋은 얼굴로 사라지자 우현이 곧바로 대기실로 들어섰다. 윤정은 우현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말했다.

“대표님, 가면 좀… 가면 좀…”

“알았어. 기다리고 있어봐.”

우현은 머리가 망가지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가면을 벗겨냈다. 사실 계속 쓰고 있는 게 좋지만 너무 오랫동안 쓰고 있으면 기껏 해놓은 메이크업이 망가진다. 녹화 전에 쓰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벗고 있어야 한다.

가면을 벗으니 그 짧은 사이에 얼굴에 땀이 찬 상태였다. 우현은 가지고 있는 퍼프로 조심스럽게 땀을 닦아주고 손바닥만 한 휴대용 선풍기를 그녀의 얼굴에 쐐주었다.

“아… 이제 살 것 같아요.”

“쉬고 있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노래는 부르지 마. 목에 무리 가니까.”

“어제 무리하지 않는다고 딱 세 곡 불렀던 거 아세요?”

“괜찮아. 어차피 리허설 때 부를 거잖아. 조급해 하지 마. 이제 다 왔으니까.”

“알았어요. 이상하게 대표님이 다 왔다고 하니까 안심이 되네요.”

“다행이네. 가만히 앉아서 명상 좀 하고 있어. 나는 좀 나가 있을게.”

“금방 와요. 대표님 없으면 불안해지니까.”

경험 없는 신인이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 혼자 있으려면 괜히 불안해질 수 있다. 뭔가 해야 할 것만 같고 가만히 있으면 사고 칠 것 같은 이상한 강박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

“그래, 그래.”

우현은 대기실을 나와 바로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놨던 음료수 박스를 들고 녹화장으로 향했다.

“우리 팅커벨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 있으면 나올 팅커벨 잘 좀 부탁드립니다.”

작가와 피디가 아닌 이상 스태프들도 팅커벨의 정체를 모르기에 어쩔 수 없이 윤정이의 예명인 유니를 말하지 못하고 팅커벨로만 홍보했다. 그래도 나중에 정체가 밝혀지면 유니의 이름을 기억해줄 거다.

마음 같아서는 CP를 찾아가 인사하고 싶었지만 괜히 역효과가 날까봐 프로그램 피디에게만 찾아가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팅커벨 매니저인 김우현입니다.”

우현이 인사하는 상대는 ‘복면노래왕’의 왕기춘 PD로, 경력도 오래되고 히트시킨 예능도 많은 유능한 피디다. 방송국 사람들이 항상 그렇듯 그는 덜 깬 듯한 부스스한 머리에 덜 깎은 수염이 이방처럼 코와 턱밑에 좀스럽게 돋아나 있었다.

“아! 반가워요.”

그는 우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말로만 우현의 인사를 받았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예능과 쇼프로그램 피디들이 얼마나 건방지고 재수 없는지는 익히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기분 나쁘다는 티를 낼 수는 없다. 예능을 이번 한 번만 할 것도 아니고 나중에 유니가 가요프로그램에 나가게 될 텐데 지금 잘 못 보이면 온갖 불이익을 다 받게 될 거다.

참고로 아이돌들이 방송국에서 받는 갑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설명하자면, 녹화 방송 때 팬들이 10대 학생들인 거 뻔히 알면서 새벽 1~2시에 녹화를 끝내게 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전철, 버스 다 끊기게 되니 충분히 확보돼야 할 팬들의 숫자는 적어질 수밖에 없고 남은 팬들은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음악방송 때 자신들의 차례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퇴근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복도에 일렬로 서서 피디한테 인사하고 퇴근하는 경우는 굉장히 일상적이다. 누가 들으면 피디가 재벌 회장이냐고,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그만큼 쇼프로그램 피디는 아이돌과 제작사에게 거대한 벽이나 마찬가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았으니까 가보세요. 지금 바쁘니까.”

왕기춘 피디는 우현을 향해 파리 쫓듯이 손을 휘저었고 우현은 얼른 녹화장을 빠져나왔다. 비록 쫓겨나듯이 나왔지만 해야 할 일은 마친 셈이다. 혹시라도 얼굴도 안 비쳤다간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냐고 속으로 욕하면 큰일이니까.

“에휴… 김우현 많이 죽었다.”

그가 은하를 데리고 있을 때, 수많은 피디와 작가들이 어떻게든 그녀를 모셔오기 위해 우현을 떠받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피디와 작가들은 전부 드라마국에 있으니 예능 피디들이 우현을 소 닭 보듯 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기실로 돌아오니 윤정이 강아지처럼 반갑게 맞았다.

“어디 갔다 왔어요?”

“스태프들에게 인사드리고 왔지. 긴장 좀 풀고 있었어?”

“네, 괜찮아요. 이제는 살짝 지루해져서 얼른 녹화 들어가고 싶어요. 옷도 조금씩 불편해지고…”

“그래. 조금만 버텨.”

그렇게 그녀를 토닥이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리허설 시간이 다가왔다.

“팅커벨님! 리허설 준비하세요!”

드디어 무대에 서게 된 윤정에게 가면을 다시 씌워주고 녹화장으로 향했다. 무대를 보니 이미 후크선장 가면을 쓴 남자가 올라와 있었다.

“화이팅!”

“아자아자!”

윤정은 우현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무대에 올랐다. 리허설이기에 무대 뒤에서 나오지 않고 곧바로 무대에 올랐다.

둘이 부를 노래는 감미로운 보컬의 성시훈과 아이돌 최고의 보컬 중 한 명인 마이유의 ‘그대네요’다. 이건 남자나 여자나 어느 한 쪽도 쉬운 곡은 아니다.

보통 노래 경연이나 오디션프로에서 출연자들이 실수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원곡을 부른 가수의 개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곡의 개성이 강한 노래를 선택한다는 것인데 이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다.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김건무 같은 가수인데, 워낙 개성 강한 보컬이다 보니 어설프게 느낌을 살리려고 하면 모창을 하는 것 같고 자신만의 개성대로 부르면 듣는 사람들은 ‘김건무가 부르는 게 낫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성시훈 특유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어떻게 자신만의 보컬로 해석하느냐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마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껏 어떤 오디션에서도 마이유의 노래를 불러서 극찬 받은 사례는 드물다. 그저 고음만 높게 올라가면 될 것 같지만 그녀 특유의 섬세한 감성은 타인이 소화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우현은 이 곡을 선정할 때, 상대방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현은 윤정의 노래를 들어봤기에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지만 어지간한 남자들은 성시훈의 노래를 수준 높게 부른다는 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디 실력을 보여 봐라.”

무대 앞에서 팔짱을 끼고 둘을 바라보았다. 요정처럼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는 윤정과 달리 180이 넘는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후크선장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간주가 나오고 윤정이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네요. 정말 그대네요. 그 따뜻한 눈빛은 늘 여전하네요.”

윤정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지자 스태프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는 걸 느꼈다. 노래를 잘 하는지 아닌지는 딱 첫 소절만 들어도 안다. 귓가에 꽂히듯 들리게 하는, 그건 다름 아닌 목소리의 힘.

타고난 것도 있고 피나는 노력 덕분인 것도 있겠지만, 고음과 저음을 가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뻗어 나오는 목소리의 단단함은 첫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후크선장의 차례.

“이제야 날 봤나요.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우현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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