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3화 (23/301)

=======================================

[023] 만찢남을 아십니까?(3)

“뒤에 계신 분들은…”

“어머! 이번에 새로 데뷔한다던 그 아이들이구나!”

미홍이 얼른 그 다섯 명의 소녀들을 데리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우현은 저 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 눈에 익은 아이를 찾았는데 누군가 하여 생각해보니 윤정이를 협박하기 위해 왔던 전 라라걸즈 멤버 중의 한 명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우현은 미홍의 말을 듣고 바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는요. 이제 시작이죠. 그나저나 별이와 윤정이는 잘 하고 있습니까? 전에 영화 제작발표회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데…”

일부러 이현민과 찍었던 단막극을 슬쩍 빼는 걸 보니 어지간히 배가 아픈가보다.

“네. 둘 다 잘하고 있습니다. 별이는 이번에 이현민과 단막극도 찍고 이번에 또 새 작품 들어가서요.”

순간적으로 그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단막극 끝난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새 작품을 찍는다는 말에 열불이 났으리라.

“윤정이는 어떤가요? 걔가 진짜 재능을 가진 앤데, 사실 가수 기획사로 보낸 게 아니라서 마음이 조금 걸리네요. 아직 아무 스케줄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그냥 그대로 썩히기만 할 건 아니죠?”

자기네들이 반 백수로 1년을 넘게 놀렸던 건 생각 안하고 어떻게든 흠집 한 번 만들어보려는 것 같다.

“아니요, 스케줄 잡혔습니다.”

“그래요? 무슨 스케줄인데요? 혹시 그 아이도 배우로 만들어보려는 건…?”

“아니요. 그 친구는 노래를 해야죠. 자세한 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지금 말하기엔 아직 섣부른 감이 있어서요.”

“아… 혹시 없으면서 있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미용실이 다 떠나가라 웃어젖히는 놈이 그저 안쓰러웠다. 어차피 나중에 ‘복면노래왕’에 나오는 윤정을 보면 기겁하고 놀랄 것이 분명하기에.

“아는 사람인가 봐요?”

“아, 유디 엔터라고 전에 라라걸즈를 키웠던 곳의 팀장입니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강소연을 보지 못했던 이해명 팀장은 그제야 그녀를 발견하고 놀라서 허리를 푹 숙였다.

“안녕하세요. 유디 엔터의 이해명 팀장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얘들아! 이리로 와봐! 이번에 새로 데뷔하는 친구들입니다.”

영문을 모르고 갑자기 불려온 그녀들은 강소연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얼른 대형(?)을 잡고 자신들이 준비해 온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너와 나의 꿈! 보배드림입니다!”

저 부산스런 손동작을 보니 어지간히 연습한 티가 난다. 하지만 강소연은 그녀들을 본척만척 하더니 우현에게 말했다.

“고생하네요. 이런 어중이떠중이들과 인사하고 다니느라. 이번 영화 기대하고 있을게요.”

소연은 우현의 어깨를 스치듯이 터치하고는 머리를 하러 올라갔다.

“허허… 참.”

이해명 팀장은 그들을 무시하는 그녀에게 마음이 상했는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머리하고 있다가 급하게 뛰어온 보배드림이라는 이름의 소녀들은 울상이 되어버렸다.

“저 분 원래 저러니까 마음 쓰지 마세요.”

이해명 팀장은 우현의 위로에 오히려 더 화가 났는지 귀까지 붉게 물들었지만 화내 봤자 자신만 바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거친 숨만 씩씩 몰아쉬고는 엄한 소녀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아, 시간 없어! 여기서 종일 놀고 있을 거야?”

불쌍한 소녀들은 눈물을 꾹 참고 다시 머리를 하러 돌아갔고 우현은 팔짱을 끼고 별이가 머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팀장은 꼴 보기 싫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저 소녀들은 잘 되기를 바랐다. 이 바닥에서 이 정도 더러운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별이가 머리와 메이크업을 다 마치고 나왔을 때, 이 팀장은 전과는 달라진 그녀의 아우라에 살짝 놀란 듯했다. 그가 데리고 있을 때, 우현이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거의 헐벗다 시피해서 무대에서 춤추던 모습은 지금과는 천지차이였다.

그 때는 긴 생머리를 완전히 금발로 염색해서 강하면서도 섹시한 인상을 주었지만 지금은 다시 검은 머리로 돌려놓고 웨이브를 주어 러블리해졌으며 메이크업이나 옷차림이 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서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그가 봤을 때는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아… 응, 그래. 잘 지내지?”

별이는 이 팀장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웃음을 보였다. 평소 인사는 철두철미하게 하던 편이어서 우현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럼요. 아까 보니까 새로 데뷔시킨다면서요? 부디 저희처럼은 안 됐으면 좋겠네요. 그럼 다음에 봬요.”

또 다시 고개를 까딱거리며 자리를 뜨자 우현도 급히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차에 오른 그녀는 숨을 훅 몰아쉬며 가슴을 진정시키더니 운전석에 앉은 우현에게 급히 말했다.

“대표님, 저 좀 못됐죠?”

“왜? 둘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네가 괜히 그랬을 거 같지는 않은데?”

“역시, 우리 대표님이 저를 못 믿기만 하는 건 아니네요.”

“그럼, 인마! 내가 얼마나 너를 믿고 있는데… 너 섭섭하다. 내가 딱! 정말 딱 하나! 남자문제는 진짜 일이 커질 수가 있어서 그랬던 거야.”

“히히히, 알았어요. 제가 왜 그랬냐면요. 아까 저 인간, 들어오면서부터 대표님을 알아보고는 대놓고 노려보더라구요. 칫! 애들이 나간 게 나 때문인가?”

“애들이 나가? 누구? 라라걸즈?”

“네. 전에 윤정이 설득 겸 협박하러 왔던 애들 있잖아요? 그 때 그 이야기 듣고 얼마 안 있다가 저한테도 연락이 왔었어요.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혼쭐을 내줬죠. 사실 우리 멤버들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운이 안 맞아서 그렇지 그 애들 다른데 가면 충분히 뜰 수 있는 애들이에요. 그래서 거기서는 도저히 희망이 없으니 다른 데로 가라고 했죠. 그랬더니 글쎄 한 명만 남고 나머지 세 명은 나가버렸어요. 어차피 계약기간도 끝나고 재계약도 안 됐던 마당이라 고민할 것도 없었죠. 남았던 한 명은 새로 걸그룹이 생긴다고 희망을 가지고 남아 있다가 그 그룹에 합류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글쎄요.”

별이는 새로 만들어진 보배드림이라는 그룹의 미래가 영 어둡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현은 나머지 멤버들이 과연 유디 엔터를 나가서 잘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한 번 데뷔했던 애들은 결코 다른 회사에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것 때문에 아까 그렇게 틱틱거렸던 거야?”

“화나잖아요.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대표님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하. 별아, 너 주식할 때 가장 열 받는 게 어떤 때인지 알아?”

“글쎄요? 아무래도 돈을 날렸을 때?”

“당연히 그 때도 화나지. 그런데 내가 돈을 잃었을 때 보다 다른 사람이 돈을 벌었을 때 더 화나. 웃기지? 그런데 누가 내가 돈을 잃었던 종목을 사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화나겠니? 나 같으면 열이 뻗쳐서 잠도 못 잘 거야.”

“아… 이해명 팀장님, 아니, 그 이 팀장이 바로 그 상황이라는 거죠?”

“그래. 그 이 팀장이 얼마나 화가 나겠니? 자기네들이 못 띄운 애들을 살려주고 있으니 말이야. ‘저 애들이 우리 거였는데…’ 하면서 잠도 못 잘걸? 그러니 그 정도는 이해해야지. 그리고 그런 걸로 화내면 이 바닥에 못 있어. 더 억울하고 열 받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 그런데 꼭 그것 때문에 틱틱거린 거야?”

“헐…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딱 보기에 뭔가 쌓인 게 있어 보였어.”

“사실요. 제가 걸그룹 준비할 때부터 그 회사에서 당한 게 좀 많아요. 특히 이 팀장 같은 경우는 하루치 정해준 식단에서 빵 한 조각이라도 더 먹으면 그 때는 온갖 욕이 날아왔어요. 병신, 머저리 같은 년은 욕도 아니었어요. 그 때 심지어 머리에 원형탈모까지 생길 뻔했다니까요? 그것 때문에 두피 관리했는데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또 욕먹고… 하여튼 그랬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그건 지금 그녀가 잘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었다면 그 모욕감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이해명 팀장이 보고 속 뒤집어지라고 윤정을 ‘복면노래왕’에 보냈으니 어느 정도는 복수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겪어보니까 이 바닥만큼 예의도, 도덕도 팔아먹은 양아치들이 많은 곳도 없더라.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안하고 양아치 짓만 하다가 생긴 것만 믿고 들어온 놈들도 많고 조폭 출신도 많으니까. 물론 안 그러신 분들도 많지만… 하여튼 그런 놈들이 애들을 가르치니 제대로 된 교육이 될 리도 없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만 하지. 그러다보면 욕은 예사로 나오고. 나도 지금까지 꽤나 어렵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바닥에 와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다 들었다니까?”

“은하 언니 데리고 있었는데도 그랬어요?”

“그나마 은하가 톱스타가 되니까 많이 나아졌지. 그런데 웃기 건 그런 은하한테도 술 따라보라는 미친놈들이 판을 치는 곳이 이곳이라… 하여튼 넌 행여 나 없이 술집가고 그러지 마라. 백프로 사고 난다.”

“전 술 안 좋아해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장담하지 마. 어떤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동네니까.”

“알았어요. 그런데… 혹시 강소연 언니… 우리 회사 들어오려고 저러는 거예요?”

별이도 그녀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그렇게 큰 회사에 있으면서 왜 이렇게 작은 회사에 들어오려고 그래요? 큰 회사에 있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가수를 키우는 회사와 배우를 키우는 회사는 근본적으로 달라. 가수를 키우는 회사는 크면 클수록 좋지. 훌륭한 보컬트레이너와 댄서들에게서 교육도 받고 같은 회사에 소속된 작곡가들에게서 좋은 노래도 받으니까. 게다가 데뷔할 때도 많은 주목도 받을 수 있고, 방송국 피디에게 접근하기도 좋지. 하지만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는 큰 차이가 없어. 스케줄을 더 편하게 잡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출연료를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뭐… 톱스타가 있는 회사면 원 플러스 원으로 끼워 팔기가 가능하다는 정도? 그것도 본인이 톱스타면 아무 의미도 없는 거고.”

“그래서 능력 좋은 우리 대표님한테 오려고 하는 거구나.”

별이는 존경을 담은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네가 이제 나에 대해서 조금 아는구나.”

“그럼 왜 은하언니랑은 헤어졌어요?”

“크흠… 전에 말했잖아. 가는 길이 달랐다고.”

지금도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았던 것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 우현이 처음에 파인 엔터가 망하고 은하를 데리고 나오려했을 때, 은하가 남았던 게 과연 마이더스가 돈을 준다고 해서 일까? 그녀가 마이더스에 남는다고 해도 일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마이더스가 은하와 재계약을 하면서 계약금을 퍼준다고 했다면 모르겠지만, 준다고 해도 고작 몇 억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매니저와 따로 나와서 회사를 차리는 톱스타가 아예 없어야 할 거다.

그만큼 오래되고 끈끈한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는 단순히 파트너를 넘어서 동지와 같이 느끼게 되고 매니저의 성공을 위해 소속 배우가 흔쾌히 회사를 나오는 경우도 상당하다.

물론 몇 억을 우습게 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 년에 수십,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그들에게 계약금 몇 억의 가치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자신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진짜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직 콜타임 1시간 전인데 벌써 오셨군요!”

촬영장에 도착하니 이미 모든 스태프들이 촬영 준비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 구석에는 K보이즈의 유시훈이 현장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모습도 보였다.

별이 일행을 맞는 최철수 감독은 덥수룩했던 수염을 깔끔하게 밀어 훨씬 사람다워 보였다.

“네, 먼저 와서 준비해야죠.”

“어쨌든 일단 가서 커피 한 잔 하시죠? 세상에, 유은하씨가 커피 조공을 하다니… 하하하!”

“네? 그게 무슨…”

“글세, 아침부터 커피 트럭이 와 있더라니까요?”

촬영장 한 쪽에 아이보리색으로 칠해진 커피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트럭 위의 문구는 기가 막히게도 이랬다.

[‘미녀는 괴롭냐?’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전혀 괴롭지 않은 은하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