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2화 (2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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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만찢남을 아십니까?(2)

만찢남은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뜻으로 웹툰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처럼 싱크로율이 대단한 배우를 뜻한다.

웹툰에서 남자주인공을 최대한 멋있고 근사하게 그렸을 텐데, 만찢남이라고 불린다는 건 웹툰의 주인공만큼 대단한 매력을 가진 배우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대개 이런 말을 들은 남자배우는 이미 톱스타였거나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우현이 별이를 슬쩍 바라보니 최 감독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이미 넘어간 거다.

“알겠습니다. 하기로 하죠.”

우현의 말이 떨어지자 앞에 있던 세 명의 남자가 튕기듯이 일어나 악수를 건넸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선택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계약에 관련된 세부사항을 조절했다. 회당 30분 분량으로 10회 제작하기로 했고 출연료는 회당 2백만 원에 합의했다.

“아, 그런데 남자주인공은 누가 하기로 했습니까?”

분명 대세 남자 아이돌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초반부터 정신없이 몰아치는 통에 기본적인 것조차 묻지 않았다.

“아! 이번에 남자주인공 역으로 K보이즈의 유시훈이라는 친구가 하게 됐습니다. 중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 엄청난 팬덤을 소유한 그룹이기 때문에 분명 반응이 좋을 겁니다. 다만, 그 친구가 연기가 뛰어나지 않아 아무래도 김별씨가 많이 도와줘야 할 것 같네요.”

별이도 연기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단막극에 나온 별이의 연기력을 괜찮게 봤으니 하는 말이기도 하고 어차피 큰 연기력이 필요하지 않으니 예의상 건넨 말이기도 하다.

중국시장을 겨냥한 웹 드라마에서 큰 연기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기본적으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드라마를 볼 때, 연기력이 괜찮은지 아닌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드에서도 당연히 누구는 연기력이 좋고, 누구는 연기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막을 유심히 보기 때문에 연기력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고 결정적으로 언어가 달라 발성과 발음의 차이를 인지하기 힘들다. 그러니 연기력이 달리는 아이돌을 주연으로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본격적인 스케줄은 저희 쪽에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다음 주는 돼야 나올 듯하니 그때까지는 편히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촬영은 2주는 지나야 시작될 겁니다.”

그 자리에서 계약서까지 다 작성해버린 우현과 별이는 마음 편히 회사로 돌아왔다. 계약에 관한 세부사항을 전부 꼼꼼히 체크했으니 별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 죄송합니다. 저희도 박승아 작가님 작품을 꼭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확정되지 않은 캐스팅만 바라보고 있기에는 저희 회사가 아직까지 영세한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다음에는 꼭 같이 해보고 싶습니다.”

우현은 박승아 작가의 신작인 ‘굳세어라 이봉순’의 캐스팅디렉터에게 전화해 너무나 하고 싶은데 정말 피치 못 할 사정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연기했고 별이는 그런 우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가만히 보면 대표님이 저보다 더 연기를 잘 하시는 거 같아요.”

“짜식… 원래 이걸 생존을 위한 절박한 연기라고 해서 생존연기라고 해요. 이런 생존연기는 네가 나한테 안 되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랑 다르거든. 무수한 실패를 통한 쓴맛과 인생에 대한 고찰, 철학, 뭐 이런 게 있어야 제대로 된 연기가 나오는 법이지.”

별이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래도 박승아 작가님 작품은 조금 아깝긴 해요. 우리 엄마, 아빠도 주말에는 항상 그 작가님 드라마를 봤었는데…”

“아서라. 그리고 그 작가 요즘 슬슬 감 떨어지는 추세야. 바로 이전에는 막장극 썼잖아. 솔직히 이번에 시놉도 안 보여줘서 느낌이 쎄해.”

“생각해보니 전에는 우리 엄마도 욕하면서 보긴 했어요.”

“그 작가 원래는 막장극으로 뜬 작가가 아니라서 괜찮았는데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어째 이번에도 시청률 확보를 위해서 막장으로 갈 것 같아. 특히 전작이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차기작이야? 제대로 된 작품을 구상했다면 아직 시놉도 제대로 안 나왔을 시간인데 말이지.”

“대표님은 박승아 작가님 별로 안 좋아하나 봐요?”

“안 좋아 한다기보다는 젊은 사람들 취향이 아니야. 나이든 사람들한테는 익숙한 소재에 친숙한 것들을 풀어내지만 내가 봤을 때는 고리타분하고, 과거 미화에다, 억지 효도를 강요하는 게 마음에 안 들거든.”

“그렇구나.”

“어쨌거나 우리는 이번 웹 드라마에 집중하자. 아! 그리고, 너 이번에 유시훈하고 드라마 찍을 때, 알지? 내가 무슨 말 하고 싶은 건지?”

별이는 오른손을 들고 선서하듯이 말했다.

“나 김별은 절대로 남자 연예인과 사적인 대화는 물론 눈길도 주지 않겠습니다. 됐죠? 대표님은 진짜 나 못 믿어요.”

“미안… 내가 성격이 좀 그렇다. 알았어, 믿을게.”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도 또다시 의심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의심하는 말 따위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미녀는 괴롭냐?’ 제작진 측에서 스케줄을 보내왔다. 근 한 달에 이르는 빡빡한 스케줄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첫 촬영 당일 새벽. 별이를 태우고 샵으로 향하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원장인 한미홍이 나와 있었다.

“어서와! 어머! 카메라 마사지 좀 받았다고 벌써 더 예뻐졌네!”

미홍이 별이를 보고 호들갑을 떨며 맞았다.

“웬일이세요? 이 시간에?”

“오늘 중요한 손님 오기로 했어. 첫 날이라서 내가 직접 관리해주려고.”

“누가 오기로 했는데요?”

“자기도 아는 사람.”

우현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도 알고 그쪽도 저를 알아요?”

“그럴걸?”

미홍은 우현을 놀리는 게 재밌는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답을 주지 않았다.

“별아! 나 내려가 있을 테니까 끝나면 내려와!”

이곳에 있다가 누구를 만날까 싶어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미홍이 눈웃음을 치며 그의 손목을 잡았다.

“별이 혼자 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걸?”

“설마 은하라도 오는 거예요? 걔 다른 샵으로 옮겼잖아요?”

“은하 아니야. 하여튼 은하가 그렇게 좋니?”

“예? 그게 어떻게 그렇게 연결 돼요?”

우현이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미용실 문이 열리면서 늘씬한 자태의 미녀가 들어섰다.

“오랜만이네요? 첫 날부터 볼 줄은 몰랐는데요?”

놀랍게도 그녀는 강소연이었다. 샵에 온다고 화장도 안하고 츄리닝만 걸치고 왔는데도 오히려 그런 내추럴한 매력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마치 ‘난 생얼이 더 예뻐!’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전속 미용실 옮긴 건가요?”

“전속이라고 해봤자 그쪽 미용실을 이용해 달라고 회사에서 요청한 것뿐이죠. 내가 미용실 바꾸겠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저 자신감만큼은 은하에 절대 꿀리지 않는다. 물론 싸가지도…

“안녕하세요.”

의자에 앉아 있던 별이 잽싸게 일어나 인사했다.

“그래. 볼일 봐.”

소연은 별이에게 관심 없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얼른 다시 앉으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이에 별이는 머쓱하게 자리에 앉아 머리 손질을 시작했고 소연은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마련해둔 소파에 앉았다.

“뭐해요? 앉아요.”

그녀가 손짓으로 소파 한 쪽을 가리키자 우현이 어쩔 수 없이 가서 앉았다. 미홍은 직원에게 차를 내오라 시키고 소연과 우현이 앉은 소파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오늘부터 우리 쪽에서 관리받기로 했어. 그런데 둘이 잘 아는가봐?”

미홍은 알면서도 일부러 시치미를 뗐다. 한 때 은하와 소연이 둘이서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며 싸웠던 역사를 은하의 관점에서 아주 상세히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아, 네. 별이 첫 작품인 영화 ‘밀실’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거야 새로 시작한 이후고, 그 전부터 잘 알고 있었잖아요? 못 볼 것도 많이 봤으면서 뭘…”

“크흠… 어쨌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 웹 드라마 들어간다면서요?”

“가끔가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바닥에는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네트워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훗! 오버하기는… 그게 아니라, K보이즈의 유시훈 쪽에서 하도 홍보를 때려 대서 모를 수가 없었어요. 알죠? 얼마 전에 K보이즈 소속사가 우리 마이더스 계열로 흡수됐다는 거.”

“당신네 회사 그러다 체하겠어요.”

“체하거나 말거나 나랑 상관없어요. 회사가 커진다고 해서 내 몸값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망한다고 해서 내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연예계, 특히 배우를 주축으로 한 매니지먼트사들에게 있어 얼마나 많은 매출을 올리느냐는 톱스타들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는 가가 결정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오면서 배우와 회사가 계약할 때, 계약금을 주던 관행이 서서히 줄게 되었고 대략 5,6년 전부터는 계약금을 주는 경우 자체가 상당수 줄어들었다. 회사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금대신 ‘매출의 얼마만큼을 배우와 소속사가 분할하는 가’로 톱스타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

결론적으로 회사가 아무리 잘나가도 배우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래도 여러 사업에 진출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현이 슬쩍 그녀를 떠봤다.

“훗! 자꾸 나 시험할 거예요? 나 강소연이에요. 회사가 일을 구해줘야지만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은하때도 그랬잖아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갖 시나리오와 시놉이 들어온다는 거.”

“크흠… 그렇죠. 그런데 ‘밀실’까지 지켜본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물론 그럴 거예요. 그냥 기분삼아 샵을 바꿔본 거니까 괜히 부담 가지지 말아요.”

어째 앞뒤가 안 맞는 말 같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군요, 하하.”

우현으로서는 그녀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물론 그녀가 회사에 들어온다면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단박에 회사의 위상은 올라갈 것이고 일은 물밀듯이 밀어닥칠 것이며 당장 그가 제일 좋아하는 초밥에 소고기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우현과 그녀는 어떤 심적 교류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우현의 능력만을 원했고 우현은 그녀의 영입으로 인한 매출상승을 원할 뿐이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에게 순수하게 온 힘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자신의 주변을 돌면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는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보였을 뿐이다. 은하가 온다고 해도 받아줄까 말까 한데 강소연이라니… 그런데 은하가 온다고 하면 어쩌지?

“어? 안녕하십니까?”

난데없이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잘 차려입은 정장, 럭셔리한 금테 안경이 그를 인텔리하게 보이게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해명 팀장님 맞으시죠?”

바로 별이와 윤정이 소속되어 있던 라라걸즈를 키운 유디 엔터테인먼트의 이해명 팀장이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다섯 명의 늘씬한 소녀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그는 정말 반가운 것처럼 우현의 손을 붙잡고 흔들어댔지만 그 눈빛에 담긴 적의를 우현은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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