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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1화 (2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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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만찢남을 아십니까?(1)

“네, 물론입니다. 불러만 주시면 당연히 참석 해야지요.”

시원스럽게 승낙하고 전화를 끊은 우현을 머리를 부여잡고 가죽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 x됐네.”

우현이 배우를 키우면서 절대적으로 피하는 드라마 두 개가 있다. 바로 첫 번째가 아침드라마고 두 번째가 주말드라마다.

아침드라마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주말드라마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장점은 길게 방영하게 때문에 얼굴을 알리기 쉽고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줄 수 있으며 소속사와 배우의 입장에서 출연료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단점은 주말드라마가 대개 대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야기를 축으로 하기 때문에 소속배우의 매력을 제대로 살릴 수 없고 카메라부터 달라서 예쁘게 잡히지 않으며 대선배들과 함께 나오기 때문에 연기력이 달리면 바로 티가 난다.

이것 말고도 단점은 또 있다. 주인공이 많아 소속배우가 출연하는 씬이 적을 수밖에 없고 대사는 나이든 사람의 취향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올드하기 그지없으며 마지막으로 한 번 주말극에 출연한 젊은 배우는 아주 높은 확률로 또 다시 주말극이나 일일극, 또는 아침극에 출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별이의 입장에서 단막극은 데뷔라고도 할 수 없으니 사실상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을 주말극으로 한다는 건 크나큰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만약 우현의 배우가 연기파 배우라서 오로지 연기로만 승부를 낼 것이라면 오히려 주말극 캐스팅은 엄청난 호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은하나 별이는 연기파 배우들과 가는 길이 다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이기에 주말극은 절대 피해야 할 드라마다.

그럼에도 시원스럽게 승낙한 이유는 전화를 건 이가 드라마제작을 맡은 캐스팅디렉터이기 때문이다. 캐스팅디렉터가 직접 집어서 전화했다는 건 수백 명 모아놓고 피디와 작가, 제작자가 심사하는 오디션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하고 간단한 점검을 한 뒤 뽑겠다는 뜻이다.

아마도 오디션 보러 갔다가 제작진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오케이 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이번 작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를 늘어놓을 게 뻔하다.

그런데 이제 갓 얼굴을 비친 신인 나부랭이가 소속사도 구멍가게인 주제에 박승아 작가의 차기작 오디션 제의를 감히 전화로 깐다? 그건 별이와 소속사 대표 둘 다 건방진 또라이로 찍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앞으로 그 방송국의 드라마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전화로 승낙하고 만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감기가 걸렸다고 해? 아니야, 박승아 작품이면 감기 따위로 안 갈 수는 없지. 폐렴에 걸렸어도 가겠다는 사람 천지일 텐데… 그냥 확 입원해 버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디션 보러갈 수는 없다. 한 번, 주말극 주연도 아닌 조연에 꽂히면 미니 여주로 가는 길이 험난해진다.

그렇다고 가서 연기를 엉망으로 하고 오라고 할 수도 없다. 걸리면 개망신에 이 바닥에서 발붙이기 힘들 것이고 안 걸려도 연기 개판인 신인이라고 소문나면 그것도 치명적이다.

그럴듯한 변명이 필요하다. 누구나 들으면 이해할 수 있고 의심하지도 않을 그럴듯한 변명이.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방법은 오직 하나, 보름 안에 다른 작품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우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전에 받았던 시나리오들을 다시 한 번 다 훑어보는가 하면, 이번에 별이가 단막극에 출연하면서 연락이 왔었던 모든 제안을 다시 살폈다. 물론 노출이 있는 쪽은 제외시켰다.

그렇게 3일 정도를 정신없이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시놉시스에 빠져 살 때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찾아냈다.

“웹툰 소재라고요?”

별이를 데리고 미팅자리로 향하는 중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응. 혹시 웹툰 ‘미녀가 괴롭냐?’ 봤어?”

“아! 그거 되게 유명한 웹툰이에요. 저도 조금 본 적 있어요. 다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요.”

“그 웹툰을 원작으로 한 웹 드라마야.”

우현이 선택한 작품은 웹툰 ‘미녀가 괴롭냐?’를 바탕으로 한 웹 드라마다. 사실 웹 드라마 자체가 마이너하고, 각색을 한 작가가 처음 들어보는 이라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보름 안에 새로운 작품을 들어가야 하기에 젖혀뒀던 작품도 다시 들여다보다가 눈에 띄게 됐다.

내용은, 뚱뚱했던 여자가 온갖 멸시와 괴롭힘, 무시를 당하다 독한 마음을 먹고 다이어트와 수술을 통해 날씬한 여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단순히 예뻐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여주인공은 예전에 남자들에게 당한 무시를 되갚아주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남자들을 농락하고 가지고 논다. 명품 선물을 받고 걷어차는 일은 예사고 일주일도 안 돼 남자를 갈아치운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그녀의 마음대로 넘어오지 않자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겪게 되는 우여곡절을 아주 코믹하게 그린 웹툰이다.

“대표님은 그 작품 본 적이 있어요?”

“난 시놉 먼저 보고난 다음에 미팅약속 잡고 그 후부터 계속 그것만 봤어. 그런데 보면 볼수록 너랑 잘 어울리겠더라. 확실히 대형회사라 그런지 보는 눈이 있어.”

우선 우현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이 웹 드라마를 제작하는 곳이 CS E&M으로 대한민국 케이블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대형제작사라는 것이다.

CS E&M은 유통 다각화와 한류 콘텐츠 강화를 위해, 그리고 웹툰 플랫폼이자 대형 포털사이트인 NAVOR는 소속 웹툰의 중국진출과 홍보를 위해 손을 잡고 웹 드라마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두 번째는 재생 시간이 짧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밀실’이 개봉될 시점까지 가장 유효하게 스케줄을 소비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웹툰 자체 소재가 좋았다. 원작을 가지고 시놉시스를 만든 작든 작가의 실력은 아직 예측이 되지 않지만 그 원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딱 별이를 위한 소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잘 들어맞았다. 게다가 이 웹 드라마의 타켓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서의 인지도가 상당한 배우는 제작사들도 함부로 터치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았대요?”

그녀로서는 충분히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웹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인지도가 너무 떨어진다.

“TV에 나오는 게 아니니까. 다른 톱스타들이 하려 하지 않아. 게다가 출연료도 그들 입장에서는 하품 나올 정도의 수준이거든.”

웹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짧은 시간에 무료로 간단히 볼 수 있는 형태의 드라마다. 그렇기에 미니시리즈나 대하사극처럼 많은 제작비를 지원해 줄 수 없다. 따라서 톱스타의 출연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제작된 거의 모든 웹 드라마의 주연이 아이돌이나 신인배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구나… 그럼 저에게 기회인 거네요?”

“그럼! 이번에도 잘 해보자!”

“아자! 아자!”

별이의 기합소리를 뒤로하고 30분 정도를 운전해 상암동 CS E&M사옥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12층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CS E&M 콘텐츠제작팀 홍준기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CS엔터테인머트 윤민석 제작피디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감독 맡게 된 최철수입니다.”

확실히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인지 CS E&M이 감독하고 CS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것으로 보였다. 감독을 맡은 최철수는 우현은 들어본 적 없는 감독이다.

“반갑습니다. 파인 엔터테인먼트 김우현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김별입니다.”

그들 다섯 명은 통유리로 된 회의실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사실 이번에 ‘미녀는 괴롭냐?’ 웹툰을 웹 드라마로 제작하기로 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이 바로 ‘여주인공을 누구로 하느냐’였습니다.”

웹툰이든 웹소설이든 훌륭한 원작을 가지고 드라마로 만들 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략 두 가지이다. 첫 째는 주인공을 누구로 해야 싱크로율이 잘 살아나느냐에 관한 문제고 두 번째는 얼마나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느냐다.

어떤 게 더 까다롭냐고 묻는다면 제작진의 입장에서 백이면 백 전자를 꼽는다. 누구를 선택하든 욕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저희가 투자했던 영화인 ‘밀실’에 나오는 김별양을 보았죠.”

하필 ‘밀실’을 CS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했던 모양이다. 우현이 알기로 가장 큰 투자를 한 투자자는 다른 곳이니 아주 많은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 그러셨군요.”

처음으로 최철수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는 생긴 건 산적같이 생겨서 턱 전체에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데 감독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또 그런대로 봐줄만했다.

“제작발표회 때 타이트한 미니원피스를 입은 김별씨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웹툰은 뚱뚱했던 여자가 날씬해지면서 그 간극을 얼마나 아름답고 극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김별씨의 매력적인 마스크와 몸매 라인, 그리고 CG와도 같은 환상적인 다리라인은 이 웹툰의 주인공으로 김별씨 말고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게 했습니다. 하지만 김별씨의 연기가 어떨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다른 친구들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마침 단막극에 김별씨가 나오더군요.”

이보다 더 공교로울 수가 있을까?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그녀를 끌어당겼다.

“솔직히 제작사 측에서는 오디션을 보자고 했지만 저와 각색을 담당했던 작가, 그리고 원작을 그렸던 웹툰 작가 모두 만장일치로 김별씨를 선택했습니다.”

자고로 캐스팅을 위해서는 서로간의 적당한 밀고 당기기가 필수라고 할 수 있는데 이토록 노골적으로 원하니까 오히려 우현이 당황스러워졌다. 그의 옆에 있던 두 명의 회사원(?)들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앞에 놓인 생수만 들이켰다.

“이거 같이 해봅시다.”

우현은 이쯤에서 한 번쯤 튕길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사실 저희도 이 작품이 마음에 들긴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박승아 작가님의 신작에 우리 별이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바람에… 저희도 참 이런 경우가 생기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직 신인인데, 이런 좋은 기회가 연달아서 오게 되다니 말이죠.”

더구나 거짓말도 아니니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저들도 조금만 알아보면 박승아 작가의 신작이 시작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터였다.

역시나 저들은 박승아 작가의 신작이라는 말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엔터계에 일하면서 박승아의 힘을 모를 수는 없을 테니까.

“김 대표님, 우리 멀리 보자구요. 김별씨,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 비록 웹 드라마가 작은 규모로 제작되는 건 맞지만 중국에서의 영향력은 국내와는 비교불가입니다. 여기서 인지도를 확 올리고나면 다음 미니에 들어갈 때 주연으로 바로 시작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중국 자본이 어떤지…”

보다 못한 콘텐츠제작팀의 홍준기 팀장이 거들고 나섰다. 그의 말은 이미 우현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다. 특히 중국 자본이 국내 드라마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해서 캐스팅을 좌지우지하는 건 이야기도 안 될 만큼 빈번하니 국내보다 중국에서 잘나가는 여배우를 꽂으려고 노력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저희가 웹 드라마 규모에서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출연료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박승아 작가의 주말극만큼은 안 될 테지만 우리 크게, 멀리 보자구요. 거기에 더해서 중국내 마케팅에 김별씨를 최대한 노출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우현은 드디어 원하던 대답을 들었다. 그가 원하는 건 딱 하나, 출연료가 아닌 마케팅에서 그녀를 꾸준히 노출시켜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최철수 감독이 마침표를 찍으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요새 만찢남이 대세인 건 알고 계시죠? 우리 만찢녀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제가 꼭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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