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0화 (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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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3)

“감사합니다. 제가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

“기다릴게요! 후훗!”

우현의 전화가 끊어지자 옆에서 숨죽여 듣고 있던 두 명의 예비 스타가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악!”

“축하해!”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하다가 급기야 울음까지 터뜨렸다.

“누가 보면 CF라도 찍게 된 줄 알겠어. 고작 예능 하나 잡힌 거야.”

“고작 예능 하나라뇨! 저희 예전에는 그 예능 하나 못 잡아서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별이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전 회사에서는 어떻게 관리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건 겨우 예능 하나일 뿐이야.”

“우와… 우리 대표님 장난 아니다.”

윤정이는 양손의 엄지를 치켜들고 우현에게 연신 흔들어댔다.

“별이는 다다음주 방영되는 단막극이 실질적인 네 첫 작품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때는 가족들이랑 다 같이 봐. 그리고 윤정이는 2주 뒤에 세션하고 첫 연습 있으니까 그때까지 최대한 목 관리 잘하고.”

“목 관리는 가수의 기본입죠.”

자신 있는 표정을 짓는 윤정이가 그래도 못 미더웠던 우현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절대 무리하지 마. 너무 잘하려고도 하지 마. 중요한 건 네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야. 이제부터 연습시간은 10시를 넘기지 말도록 해. 원래 수능 때도 일주일 전부터는 컨디션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했어.”

사실 그는 수능을 본 적 없다. 다 어디서 들었던 말이다.

“그래도 잘해야죠. 공중파 주말 예능은 처음이란 말이에요. 우리 엄마, 아빠도 다 보실 텐데…”

“뭘 다 봐? 너 이거 ‘복면노래왕’이야. 가족들한테도 이야기하지 마.”

“네? 진짜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춰가자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에 알려지면 유디 엔터에서도 또 이상한 짓 할지 몰라. 그리고 부모님도 미리 아시는 것보다 나중에 TV에 나오는 거 보시는 게 더 감동적일 거야.”

“그렇긴 하겠네요. 알았어요.”

“너도 별이도 절대 ‘복면노래왕’에 출연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하지 말도록 해.”

“알겠습니다.”

“하여튼 오버해서 연습하기만 해! 목 상태 엉망이면 출연 취소할 거야. 난 빈말하는 사람 아니야, 알겠지?”

“네, 절대 무리해서 연습 안 할게요.”

우현의 엄포에 풀 죽은 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이런 큰 무대를 앞두면 배우든 가수든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무리하다가 오히려 본 실력도 다 못 보여주고 무대를 망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감히 오버해서 연습할 생각도 못 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준 것이다.

일이 하나둘 진행되면서 경리 직원 하나를 뽑았다. 회사 운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돈을 조금 더 주고 경력이 상당한 여직원을 뽑았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엔터 쪽 일은 처음이라 많이 배워야겠네요.”

30대 후반의 그녀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였다. 이름은 최민주. 시원한 이마에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서 깐깐한 성격이 예상됐지만 하는 일이 경리부서이니 오히려 장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대기업 경리 쪽에서 상당한 경력을 쌓았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레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자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도 저도 아는 게 많지 않네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확실히 그녀가 들어오자 아무 생각 없이 막 쓰던 비용도 절제할 수 있게 됐다. 커피 한 잔을 사려고 해도 손이 움찔거리며 회사 통장 잔고에 얼마가 남았다고 압박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2주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윤정의 연습 날이 다가왔다. ‘복면노래왕’ 작가에게 듣기로 윤정의 컨셉은 ‘작은 요정 팅커벨’. 우현이 머리 스타일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가면을 제작 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머리 위쪽이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가면이 나왔다.

“완전 예뻐요!”

윤정은 우현과 방송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싱글벙글한 얼굴로 가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라라걸즈는 갓 데뷔했을 때, 공중파 예능에 몇 번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간간히 케이블 예능을 떠돌았기에 지금 그녀의 감회는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말했듯이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네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고 온다고 생각하고 해.”

“알았어요. 설마 제가 ‘노래왕’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을까봐 걱정 되세요?”

“‘노래왕’? 아니, 설마 ‘노래왕’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

“아니에요.”

윤정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복면노래왕’에 나가는 사람 치고 ‘노래왕’에 대한 꿈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너의 노래 스타일이 ‘노래왕’과 맞지 않아. ‘노래왕’이 되려면 락발라드 계열의 고음을 계속 때려주는 노래를 불러야 하거든.”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무대에서는 그런 강한 노래들이 점수 받기 좋다는 거.”

“‘노래왕’ 그거 되면 좋지만 안 돼도 아무 상관없어.”

“알아요. 실망 안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오늘 파이팅이다!”

윤정을 데리고 방송국 3층의 한 연습실로 가니 이미 준비를 마친 세션들과 윤정과 함께 노래를 부를 사람인 후크선장의 가면을 쓴 이가 있었다.

“잘 하고 와. 기다릴게.”

“화이팅!”

윤정은 양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런 윤정의 뒤로 후크선장 가면을 쓴 남자가 뒤따랐다.

‘팅커벨과 후크선장이라니… 무조건 이기겠네.’

어떤 근거도 없지만 1라운드는 통과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기길 바랐다. 2시간쯤 지나니 윤정이 나왔고 그 혼자서 솔로곡 2곡을 연습했다.

“잘 하는 거 같아?”

“잘 모르겠어요.”

담담하게 말하는 걸 보니 더 이길 것만 같다. 2시간쯤 지나자 그가 가고 윤정만 남아 2곡을 연습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세션들과 연습해보니까 어때?”

“실력들이 대단하신 거 같아요. 예전에 앨범 작업하려고 세션들하고 맞춰본 적이 있었는데 그 분들보다 더 완벽하게 하시더라구요. 나중에는 세션에 밀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불렀던 거 같아요.”

“그럴 거야. 내가 듣기로 이 바닥에서 가장 잘 하시는 분들이라고 들었거든.”

“그런 분들하고 노래를 맞춰보니까 더 빨리 무대에 서고 싶어요. 얼마 만의 무대인지도 모르겠고, 항상 CD틀어놓고 노래했었는데… 진짜 가수가 된 것 같아요.”

윤정은 사무실에 와서도 한참동안 그 흥분감에 들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배우도 타고나야 하는 거지만 가수도 타고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별이가 출연한 단막극이 방영될 날이 왔다. 별이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기로 했고 우현은 사무실에서 윤정이와 함께 시청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왜 TV가 있나 했어요.”

“배우들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사무실 직원들과 모니터링 하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 그래서 TV가 있어야 해.”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임에도 한켠에 벽걸이 TV가 걸려있어 우현과 윤정이 나란히 앉아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기 딱 좋았다.

드디어 시작한 ‘옆집 남자의 정체’. 사차원 여대생인 별이가 갑자기 이사 온 정체불명의 남자, 이현민의 뒤를 추적해가는 내용이라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B급 감성의 로맨스 코디미물이다.

확실히 별이의 비주얼은 이현민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사차원의 독특한 감성을 살리면서 그녀만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타고난 발성과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진 연기는 누가 봐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끔 했다.

그런데 우현이 단막극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우 피디가 쓸데없이 작품을 건드렸네.”

분명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B급이지만 풍부한 감정의 전달이 느껴졌고 씬의 연결이 자연스러워 불필요한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우 피디가 만들어 놓은 드라마는 쓸데없는 연출, 이를테면 불필요하게 신체를 클로즈업 한다던가 너무 과한 CG,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애드리브를 허용하는 것도 있었다.

“왜요? 언니 연기가 별로예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윤정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좋은 작품 망친 우 피디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저걸 보니 지금에서야 입봉을 하게 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왜 좋은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거다.

“어? 이거 내가 만든 멜로디다!”

다행스럽게도 우 피디는 윤정이 건네준 멜로디를 별이와 이현민과의 달콤한 상황에 적절하게 깔아줬다. 지금까지 이상했던 연출 중에 그나마 괜찮은 연출이었다. 마지막까지 시청한 윤정은 예상보다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니 엄청 예쁘게 나왔어요. 이제 ‘밀실’만 잘 되면 언니 엄청 뜰 것 같아요.”

물론 드라마 내용이 아니라 별이가 괜찮았다는 거다. 대본대로만 찍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드라마 작가가 아닌 예능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하다 보니 우 피디가 내심 이주희 작가의 대본을 무시했던 것 같다.

“응. 그리고 네 멜로디가 단막극에 쓰였으니 나중에 ‘복면노래왕’에서 할 얘기가 하나 더 늘었다. 잘 됐어.”

비록 단막극의 완성도는 떨어졌을지 몰라도 별이의 존재감은 생각했던 것처럼 잘 나와 주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벌써부터 이현민의 복귀에 대해 기사가 줄줄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 별이에 관한 내용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음 날, 별이가 아주 잠시 동안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예, 맞습니다. 가수활동은 완전히 정리했습니다. 물론이죠. 이번에 ‘밀실’ 개봉하면 또 다른 매력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몇 군데 뿌리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아침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케이블에서 하는 예능과 드라마, 또는 작은 규모의 웹 드라마였다. 하지만 우현은 충분히 만족했다. 아직 보여준 게 얼마 없으니까.

“네. 일단 보내주시면 검토해보겠습니다. 아유, 그럼요. 이제 시작입니다.”

일단 대본은 받을 수 있는 대로 전부 받았다. 언제 어디서 대박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겠습니다. 아직 어린데 그런 작품은 힘들 것 같네요.”

물론 노출이 있는 역할에 대한 문의도 들어왔다. 끊고 나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작품성도 없는 삼류 작품을 들이밀다니…

“네? ‘굳세어라 이봉순’이요?”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주말드라마 조연 역할에 대한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다. 항상 시청률 20% 이상은 꾸준히 내는, 믿고 보는 작가 중의 한 명인 박승아 작가의 작품이다.

“네, 보름 뒤에 오디션 있는데 한 번 보러 오시겠어요?”

우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보아하니 편성이 잡히자마자 연락한 듯한데 한 달 뒤, 오디션, 제작준비, 첫 촬영 후 첫 방이 될 때쯤이면 ‘밀실’이 개봉할 시기와 얼추 비슷해진다. 문제는 이게 주말극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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