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7화 (1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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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단막극을 촬영하며(3)

별이와 차에서 내려 현장에 다가가니 이현민이 우 피디와 함께 동선을 체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조연출이 슬슬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김별씨 지금 스탠바이 가능한가요?”

“아, 네. 잘 하고 와.”

별이가 카메라 위치를 체크하고 슛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옆집에 사는 여대생처럼 상큼 발랄하게 입혀 놓으니 이제는 절로 여배우 포스가 뿜어져 나왔다.

우 피디가 자리로 돌아오니 이제야 제대로 된 촬영장 분위기가 조성됐다. 조연출의 슬레이트가 떨어지고 우 피디의 고함소리가 현장에 울려 퍼졌다.

“스탠바이! 액션!”

“도대체 어디서 오신, 뭐 하는 분이세요?”

“그건 왜 물으세요?”

별이가 앙칼지게 따지고 들자 이현민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이상하잖아요. 회사원이라면서 어떻게 모든 게 척척박사예요? 그리고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배수관을 고치질 않나, 고장 난 밥솥을 고치질 않나, 거기에 법은 또 왜 이렇게 잘 알아? 변호사도 아니라면서. 또 쓰러진 사람을 응급처치하고 구급차에 태워 보내다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잘 생겼어.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란 말이죠.”

“뭐… 뭐가 결론이란 말입니까?”

잔뜩 인상을 쓰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려는 현민에게 별이가 상체를 가까이 밀어붙이고 속삭였다.

“스파이. 당신 스파이죠? 아닐 수가 없어, 그럼.”

검지를 세워 흔들어 보이는 별이는 우현이 봐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컷! 와… 김별씨 장난 아닌데?”

우 피디도 단 한 번에 이런 장면을 딴 것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잘하네?”

이현민은 별이를 새삼스레 다시 쳐다봤다. 딱 한 번의 씬이었지만 그녀의 연기가 자신을 잡아먹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잡아먹는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연기를 너무 잘해 시청자들에게 상대배우가 보이지 않게끔 느끼게 한다는 것인데, 이런 경험을 단막극 신인 여배우를 상대로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현민도 엄청난 팬덤을 가진, 조각 같은 마스크의 배우이기에 완전히 묻히지는 않을 거지만 이런 식이라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이현민에 관한 이야기보다 김별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그 때부터 촬영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촬영은 굉장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NG 몇 번 없이 그 날 찍어야 할 모든 씬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걸 오늘 마무리 할 수 있었다니… 둘 집중력이 대단한데?”

우 피디를 비롯해서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이현민과 김별을 칭찬했다. 이현민은 고작 신인배우에게 쪽팔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 사력을 다해 촬영했던 것이고 별이는 그런 이현민에 뒤지지 않기 위해 더욱 집중했기에 원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끝날 수 있었다.

초반에 한 차례 큰 사건이 있었으니 오늘 촬영 일정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스태프들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우 피디는 오늘 촬영부분을 돌려보다가 이현민이 가는 것을 직접 배웅하고는 혼자 있는 우현에게 달려왔다.

“그 싸가지 없는 새끼한테 하신 거… 마음은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긴 했지만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을 겁니다. 자기도 쪽팔린 줄은 알 테니까요. 16부작 미니면 몰라도 단막극에서 더 사고치려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좀 좋게 넘어가시지 그러셨어요.”

“이 바닥이요, 여자연예인 키우기 정말 힘들어요. 우 피디님 그거 알아요? 90년대 말에 남자 오인조 아이돌 파이브스타 중에 리더가 한창 잘나가던 여자아이돌 그룹인 베이비핑크의 멤버와 열애설 났었잖아요?”

“아… 그럼요, 알죠. 난리 났었잖아요?”

“그 때 그 여자아이돌한테 남자아이돌 팬들이 무슨 짓 한지 알고 계시죠?”

“그럼요. 면도칼 보내는 건 예사고 동물 사체를 보낸 다든가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정말 장난 아니었죠, 단체로 미친 것처럼…”

“그 때, 그 남자아이돌이 해명이라도 제대로 해줬다면 그 정도 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죠. 그 때, 그 여자아이돌 나이가 22인가? 23정도였는데 딱 별이 나이일 거예요.”

“참, 걱정이 안 될 수 없겠네요.”

“일부러 오버했어요. 이건 이현민에게 한 경고이기도 하고 이 바닥에 있는 남자연예인들과 별이에게도 한 경고이기도 해요.

“김별씨에게도요?”

“내가 아무리 말려도 자기가 굳이 하겠다면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의지를 보인 거예요. 너희 대표가 이런 사람이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네가 굳이 해야겠냐? 뭐, 이런 거죠.”

“허… 참. 많은 생각이 담겨 있었네요.”

“어떻게 보면 인정머리 없는 거죠.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제가 사람을 잘 못 믿어요. 제 단점이죠.”

그 때, 차에서 별이가 고개를 내밀어 우현에게 외쳤다.

“대표님, 안 가요?”

“어. 갈 거야.”

우현은 우 피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여러모로 실례가 많았네요.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현은 그렇게 별이와 코디를 데리고 출발했다. 코디를 집에 내려주고 오는데 별이가 운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라니까. 사고였던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만약 은하 언니였다면 저처럼 그렇게 바보같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겠죠?”

백미러로 슬쩍 바라보니 별이가 상당히 침울해 하고 있었다.

“걔는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거야. 네가 정상이지. 그리고 걔한테는 저렇게 막 들이대지도 못 해. 워낙에 못 돼 보여서. 네가 착해 보이니까 그런 거야.”

“그걸 좋게 표현하면 카리스마라고 하잖아요.”

“좋게 표현하니까 그런 거지. 나쁘게 표현하면 독해 보인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은하 닮을 생각은 하지 마.”

“그래도 매력 있어요.”

“매력이야 있지. 그러니까 톱스타지. 그런데 너도 매력 있어. 은하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지. 그러니까 너는 너만의 매력을 뽐내야 해. 까치가 매력 있다고 구관조가 까치를 닮으려고 하면 되겠어? 그런 생각 하지 마.”

“그냥, 자꾸 비교가 되는 것 같아서요. 은하 언니는 데뷔하자마자 엄청 빨리 톱스타가 됐다고 하던데…”

“어허… 비교하지 마. 그리고 내가 말했지? 너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절대로 네 매력을 보여줄 수 없다니까? 비교하지 말고 의심하지 마. 나만 따라 와. 그럼 내가 너 띄워 준다니까?”

“히힛, 알았어요. 그럴게요.”

“너 무조건 스타 돼. 걱정 하지 마.”

갑자기 그런 일을 겪으니 멘탈이 흔들릴 만도 했다. 그렇게 별이의 멘탈 관리까지 해주며 바래다주고 난 뒤 사무실에 도착하니 언제나처럼 불이 켜져 있었다. 전에 녹음실에서 녹음한 후 윤정이는 더욱 표정이 밝아져서 우현도 한결 마음이 편해진 상태였다.

주차하고 사무실에 올라가는데 살짝 열린 문의 틈으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로 보아 젊은 여성의 목소리라 예의가 아닌 걸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멈춰서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너 혼자 잘 되겠어?”

“미안해. 나는 여기서 혼자 해볼래.”

“야, 너 정말 이럴 거야? 별이 언니는 갑자기 연기한다고 도망쳐버리더니 너까지 왜 이래? 솔직히 말해서 별이 언니도 웃겨. 진짜 자기가 무슨 톱스타라도 될 줄 아나? 무슨 연기야, 갑자기?”

“그래도 이번에 영화도 찍었어. ‘밀실’이라고 알지? 전에 기사에도 떴어. 박형석이랑 강소연이랑…”

“알아! 그러면 뭐해? 분명 얼굴도 제대로 안 나오는 단역일 걸? 대사나 몇 줄 있을까? 전에 언니가 단막극 하나 찍을 때도 얼굴 한 번 비추고 끝났는데 갑자기 주연이라도 된 줄 알았니?”

“아니야. 제작발표회 못 봤어? 그 때 언니도 나와서…”

“야! 됐고. 이딴 동네구멍가게 같은 회사에서 썩지 말고 우리랑 같이 하자. 언니한테도 빨리 얘기해서 우리 다시 시작한다고 해. 위약금 조항도 없이 계약 했다며?”

별이와 윤정이랑 계약할 때 계약기간을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든지 서로 헤어지고 싶을 때 헤어질 수 있도록 해 놨다.

은하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오히려 계약기간을 명시해 놓으면 그 때까지만 하고 떠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언제든지 너희와 헤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계약서에 표현한 것이다.

“난 싫어. 생각해보니까 난 걸그룹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거야. 난 노래 부를래. 그러니까 너희는 언니랑 나 빼고 다시 시작해.”

“야! 회사에서 다 모여야 다시 앨범 내준다고 하잖아! 이번에 앨범내면 홍보할 때 예능 ‘달리는 사람들’하고 ‘끝없는 도전’에도 넣어 준다고 했어. 너 ‘달리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대박 인기인 거 몰라?”

우현은 대략 돌아가는 사정을 눈치 챘다. 그래서 더 이상 엿듣고 있기가 뭐해 일부러 문을 시끄럽게 열고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들어갔다.

“어? 대표님?”

“응? 누구야?”

연습실에는 그도 익히 알고 있던 라라걸즈의 남은 멤버들이 윤정이를 둘러싸듯이 서 있었다. 확실히 걸그룹이어서 그런지 하나같이 몸매와 얼굴이 예뻤다.

“아, 저 예전에 했던 라라걸즈 멤버들이에요. 저 연습한다고 구경하러 왔어요.”

“안녕하세요. 얘기 끝나서요. 가볼게요.”

그녀들은 벌레 씹은 얼굴로 우현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회사를 나가버렸다. 그녀들이 나가고 문을 닫은 우현이 안절부절 못하는 윤정에게 미소를 보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들으셨어요?”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우현의 눈치를 보았다.

“응.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어. 음… 일단 선택은 네 자유지만 저들이 어떤 목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해줄게.”

우현은 전처럼 간이 의자를 가지고 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혹시 쟤네들한테 계약 관련해서 먼저 얘기한 적 있니?”

“네. 별이 언니가 소속된 회사랑 계약했다는 거랑 쟤들이 궁금해 하기에 계약금 없는 거랑 기간도 없는 거 얘기해줬어요.”

“아무래도 유디 엔터에서 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네. 그래서 욕심이 생겼나봐.”

“아… 그럼 저는 왜…?”

“너도 같이 가야 별이가 고민을 덜 할 테니까.”

“그렇구나.”

“아마 별이랑 너랑 유디 엔터로 가면 앨범 내준다고 말만 하면서 시간 끌다가 결국 별이만 예능에 드라마에 광고에… 그러다 결국 별이만 남겠지. 너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은 아마 버려질 거야.”

꽤 마음 아플 것 같은 얘기지만 의외로 윤정이는 속상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을 보였다.

“헤헤, 저도 알아요.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전 안 갈 거예요. 전 대표님 믿거든요.”

“날 믿어?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녹음실에서 녹음 한 번 했다고?”

“제 음악을 들어주셨잖아요. 제 음악을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고 평가해준 사람은 대표님이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전 아무데도 안 갈 거예요. 꼭 여기서 스타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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