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3화 (1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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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첫 영화촬영(2)

“여긴 어쩐 일이야?”

“나 팔 아파.”

우현의 물음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를 내밀었다. 그리고 홀로 대사를 외우던 별이는 어느새 우현의 뒤로 와서 섰다.

“안 받을 거야?”

우현은 그녀에게 커피를 받아서 별이에게 건넸다.

“오빠 마시라고 준 거야.”

“나 이제 라떼 안 마셔. 쓸데없는 소리 하려거든 가. 왜 남의 촬영장 와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어?”

솔직히 어제도 라떼를 두 잔이나 사 마셨다.

“원래부터 분위기 엉망이던데, 뭘. 그리고 라떼 왜 안 마셔? 나 때문에 그래?”

“아니, 대표님이 라떼를 좋아하셨거든. 물론 넌 모르겠지만.”

그 말이 아팠는지 그녀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다들 너 보고 있어. 할 일 없으면 그만 가.”

“축하해. 새 작품 들어가는데 직접 보고 축하해 주고 싶어서.”

반사적으로 ‘네가 뭔데 축하를 해?’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사람을 상대할 때는 연기를 하지 못하는 아이다.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지금 축하해 주는 것이 진심임을 안다.

“고마워. 그리고 그 선글라스는 좀 벗지 그러냐? 톱스타 티내는 거야?”

“까칠하기는…”

그녀는 순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안 그래도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발산하던 그녀는 그 특유의 청순함과 도도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생각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네?”

“폐인이라도 되길 바란 거야?”

“그런 면도 없지는 않지.”

“내가 다시 시작했다고 하니까 많이 아쉬웠겠네?”

“응. 계속 그렇게 폐인처럼 굴다가 나한테 다시 올 줄 알았거든.”

언제나 할 말, 못할 말 구분 없이 아무 장소에서건 막 던진다. 그래서 우현이나 별이나 그녀의 말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너구나. 오빠가 데리고 있다는 애가?”

“안녕하세요. 김별입니다.”

별이는 아차 했는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이름이 예쁘네. 나이는 내가 한 살 많기도 하고 선배니까 말 놓을게. 기분 나쁘니? 나쁘면 어쩔 수 없고.”

“괜찮습니다.”

곧 죽어도 얼굴이 예쁘다는 소리는 안 한다. 하긴, 저 자존심에 이름이 예쁘다는 칭찬도 황공할 따름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작품 하겠다는데 태클을 거셨어?”

“그걸 알면 나한테 왔어야지. 왜 빙 돌아가? 그런데 생각보다 능력 있더라. 장태현한테 무슨 말을 했기에 정신이 나가서 투자자 바짓가랑이 잡게 한 거야? 엉덩이라도 대줄 기세던데. 뭐… 혹시 모르지, 진짜 대줬을지도.”

“말 참 예쁘게 한다.”

“넌 알아서 가려들어라.”

별은 이미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결국 네가 태클 건 작품 얼마나 잘하나 보러 오셨나?”

“말했잖아. 축하해주러 왔다고. 제작발표회 때는 기자들 때문에 갈 수 없었고 최 감독 스타일이 시나리오 리딩을 안 하잖아. 그러니 오늘 왔지.”

최 감독은 어차피 배역 다 정해놓고 하는 시나리오 리딩은 기자들에게 광고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그런 것은 제작발표회면 충분하다고 했다. 흔하지 않은 경우다.

“그래서 풀 메이크업까지 하고 왔어?”

우현의 말에 시선을 피한 그녀는 자신이 있는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강소연을 향해 걸어갔다.

마이더스 내에서 알아주는 앙숙인 그녀들이기에 모든 스태프들이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만약 우현이 아직도 은하의 매니저였다면 몸을 날려 막았겠지만 지금은 그녀의 매니저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기에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언니 새로 영화 들어간 거 축하드려요.”

“네 전 매니저까지 챙길 정도로 싸가지가 있는지는 몰랐다, 얘.”

“제가 보기보다 내 사람한테는 잘 해요.”

“호호호. 네 사람 같지는 않던데? 내가 얼마 전에 황석준 부티크에서…”

“알아요. 나한테 싸가지 없다고 했다면서요?”

“너는 무슨 정보원 심어놓고 다니니? 국정원이야 뭐야?”

“제가 발이 좀 넓어요. 그리고 사람이 살다보면 서로 싸우기도 하고 험담하기도 하는 거죠. 그 정도는 이해해요. 그건 그렇고 언니 이번에 영화 잘 돼야 한다고 현석이 붙잡고 우셨다면서요?”

현석은 소연의 매니저 이름이다. 당연 소연의 독 오른 눈이 자신의 밴을 향했다. 차 안의 그는 곧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한창 잠에 빠져 있을 터였다.

“진짜 잘 해봐요. 아… 난 정말 언니가 잘 됐으면 좋겠어.”

정말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사라져버린 그녀를 소연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은하는 그 자리에서 골백번은 더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은하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건 그녀가 가진 흥행 기록 때문이다. 천만 영화를 무려 두 편이나 찍은 그녀는 충무로 흥행퀸이며, 드라마도 찍었다 하면 최소 20%이상, 중국 진출은 부록 같은 거였다.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흥행 기록이 별로 없는 강소연의 입장에서는 은하의 흥행 기록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중국에서의 인지도는 은하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밀리고 있으니까.

“감독님, 나한테 빚 하나 진거예요.”

은하가 최 감독의 귀에 살짝 속삭이고는 자신이 타고 왔던 밴으로 향했다. 밴을 타기 전 우현을 슬쩍 돌아본 그녀는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최 감독을 비롯한 모든 촬영스태프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내가 미안해한다고 전해줘요. 그러니까 빨리 나오라고 해요.”

“그… 그럴래?”

강소연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박형석에게 사과하겠다고 숙이고 들어간 것이다. 최 감독은 얼씨구나 하며 조연출을 시켜 박형석을 달랬고 결국 촬영은 속개되었다. 물론 이후로도 NG가 몇 번 있었지만 소연은 천사열매라도 먹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고 가까스로 제 시간 안에 모든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최 감독은 떠나려는 우현을 붙잡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보였다.

“역시 은하가 의리가 있더라. 너 인마 은하 너무 미워하지 마.”

“뭐, 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래요? 그리고 강소연이랑 은하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데요?”

“나도 몰라.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강소연 개인 스태프들이나 들었겠지. 아무렴 어떠냐? 면전에서 쌍욕을 했다고 해도 결국 잘 해결됐잖아? 그러고 보면 은하 걔가 말은 험하게 해도 틀린 말은 안 해. 머리도 좋은 거 같고. 그치?”

“됐어요, 이상한 얘기하고 있어. 저 가요.”

우현은 최 감독을 뒤로 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로 슬쩍 보니 별은 어느새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목베개를 하고 있었다.

“오늘 수고 많았어.”

“수고는요, 좋았어요.”

“아까 좀 당황스러웠지?”

“아… 은하언니요?”

“언니는 무슨… 아니다. 한 살 차이라도 언니는 언니지.”

“아까는 당황스럽다기 보다 멋있어 보였어요.”

“그게 멋있다고? 너 설마 그 말투 배울 생각은 아니지?”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누구한테도 기죽지 않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웠거든요. 걸크러쉬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랬어요.”

“그래도 배우지는 마라.”

“알았어요. 그리고… 대표님과 사이가 각별해 보였어요. 왜 헤어졌는지 물어봐도 돼요?”

“서로 가는 길이 달랐던 것뿐이야.”

자신이 은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믿었다.

“제가 보기에 언니는 대표님과 생각이 다른 것 같던데…”

“중요한 건 내 생각이야.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너밖에 없어.”

“우와… 감동이다.”

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감동적이면 잘 간직했다가 내일 촬영에 쓰도록 해.”

우현은 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역시나 사무실 연습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윤정은 언제나처럼 교복을 입은 채로 기타를 치며 흥얼거렸다.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인 걸 보니 자작곡인 것 같았다.

“아직 집에 안 갔어? 너 아직 미성년자야.”

현재 시간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냥, 집에 있으면 불안해서요. 그리고 이따 아빠가 데리러 오신다고 했어요.”

“됐어, 내가 데려다 줄 테니까 아버지 오시지 말라고 해.”

“아니에요. 아빠랑 같이 가면서 평소에 못 했던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지금까지는 제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만 하셨거든요. 그런데 서로 대화하다 보니까 아버지도 저를 조금은 더 이해해주세요.”

우현의 호의가 부담돼서 거절하려 변명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그런데 지금 치던 멜로디는 네가 만든 거야?”

“네, 이상해요?”

“아니야. 한 번 해볼래?”

우현은 작은 간이 의자를 들고 와 윤정의 앞에 앉았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쳐다보시면 긴장되는데…”

“네가 작곡만 하는 사람이면 자리 피해줄 수도 있어. 그럴 거야?”

“아니요, 가수 할 거예요.”

“그럼 해 봐. 걸그룹까지 한 애가 이 정도가지고 긴장 하면 쓰나.”

“그 때는 그냥 다 같이 시키는 대로 한 거니까 그런 건데…”

윤정은 구시렁거렸지만 우현은 팔짱을 끼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에 숨을 가다듬은 윤정은 기타를 튕겼다.

“라라 라라라~”

우현은 음악을 모른다. 코드도 모르고 악보도 볼 줄 모른다. 따라서 윤정이 부르는 멜로디가 얼마만큼 새로운지도, 얼마만큼 독창적이고 어려운 코드진행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윤정이 가사 없는 노래를 다 불렀을 때는 순수하게 대중의 입장에서 감탄했다. 물론 그에게 대중의 입장이란 곧 흥행의 기준이다.

“좋네. 저번의 자작곡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아주 달라.”

“그래요? 전 잘 모르겠는데…”

그걸 다 안다면 천재겠지. 현직 프로 작곡가들도 자신들이 만든 곡이 뜰지 안 뜰지 확신하지 못한다.

“원래 작사랑 작곡도 둘 다 할 줄 알았어?”

“아니요. 제가 원래는 어렸을 때부터 시 쓰기를 좋아해서요. 작곡은 가사를 쓰다 보니까 그거에 멜로디를 붙이려고 배웠어요.”

“그래? 그럼 작사랑 작곡된 것 몇 개만 불러 볼래? 그 다음에는 멜로디만 만들어 놓은 것 불러보고.”

그녀는 우현이 항상 별이에게 관심을 쏟다가 드디어 자신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빛내며 다시 한 번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찬찬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략 20분 정도의 작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우현은 리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윤정은 눈을 크게 뜨며 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잘하네.”

“정말요?”

어째서 전의 자작곡이 별로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시를 좋아해서 자신이 작사를 잘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현이 볼 때는 완전히 반대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쓴 가사에 멜로디를 억지로 붙이니 곡이 이상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넌 앞으로 가사 쓰면 안 되겠다.”

“진짜요?”

윤정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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