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3화 (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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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인연이지만 악연이었다(1)

“아니, 제가 뭐라고 결정을 바꾸세요?”

“꼭 당신 말 때문에 바꾸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안 그래도 왠지 찝찝했는데 당신이 내 찝찝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찍어서 말해주었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죄송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쪽 관련해서 일하고 계신가요?”

“아닙니다. 저 대리운전 하기 전에는 자동차 영업사원이었어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관심이 많은 거지 그 업종에서 일한 적은 없습니다.”

“대단하네요. 그럼 낮에는 무슨 일 하세요?”

“낮에는 쉬고 있습니다. 대신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나오고 조금 늦게 퇴근할 뿐인데… 그래서 낮에 드라마나 영화를 다운받아 보고 있죠. 아, 박민희씨 소속사면 이번에 MBS에서 하는 드라마 ‘그 해 그 여름밤’에 최준용씨 나오죠? 연기 잘 하더라구요. 이번에 확 뜨겠던데요?”

“하하, 소속사 배우들까지 다 아시는 걸 보니 진짜 보통 일반인이 아니시네요. 사실 저희도 이번에 기대하고 있긴 합니다. 또 작가가 우리 준용이 캐릭터를 잘 만들어 줬더라구요.”

“아무리 작가가 캐릭터를 잘 만들어줘도 연기가 안 되면 말짱 헛거죠. 그런 면에서 최준용씨가 워낙 잘 살리니 앞으로 작품이 계속 들어오겠어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훈훈하게 마무리 되어 가자 우현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대리비 떼일 염려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서 가서 주네 못 주네 한바탕 하면 못 받을 것도 없을 테지만 그런데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큰 낭비일 뿐이다.

목적지인 반포동 반포아파트에 내려 차키를 건네주니 그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무려 세장이나 꺼냈다.

“오늘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건 그것에 대한 답례예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괜한 소리한 것 같았는데…”

“그리고…”

그는 지갑에서 명함을 하나 더 꺼내 우현에게 주었다.

“이건 내 명함이에요. 혹시 연예계에 관심 있으시면 회사로 오시겠어요? 매니저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보다 더 힘들고 돈도 더 못 받을 겁니다. 그래서 이걸 주기가 민망해지네요. 그래도 당신의 능력이라면 언제고 매니저만 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혹시라도 해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들어갔고 우현은 그 명함을 소중하게 품속에 간직한 채 돌아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니 새벽 6시. 이 시간이면 항상 기절하듯이 쓰러져 오후 2시는 돼야 눈이 떠졌다. 하지만 오늘은 씻고 몸을 살짝 구부려서 자야 하는 작은 침대에 몸을 뉘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일어나서 옷 주머니에 넣어 놓은 명함을 꺼내들었다. 침대에 누워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현은 일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다가온 새로운 기회.

그렇기에 무섭기도 했다.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졌다가 닥쳐올 실패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다. 원래 그는 이렇게까지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경험했던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다가온 이 기회가 믿기지 않기도 했다.

“그래, 원래부터 난 이 길로 가야 했어.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가는 거야.”

그는 일어나자마자 씻고 정장으로 깔끔하게 갈아입은 후 고시원을 나왔다. 점심도 거른 그는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향했다.

“여긴가…”

우현은 청담동에 자주 왔지만 걸어서 오는 것은 처음이다. 스마트폰 지도앱이 있으니 건물을 찾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 동네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왠지 그를 위축되게 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굳게 마음을 다졌다.

‘난 이 분야에서 만큼은 대한민국 최고야. 누구도 내 감을 따라올 수 없어. 자신감을 가지자.’

4층짜리 회색빛 빌딩 정문 옆에는 'PINE ENTERTAINMENT'라고 쓰여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우현은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예. 그게… 여기 이거 주시고 오라고 하셨는데…”

안내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이 너무 예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곧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품에서 명함을 건네줄 때는 떨지 않고 정중하게 건네주었다.

“대표님께서 직접 주셨단 말인가요?”

“네, 매니저 일을 하고 싶으면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깔끔한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그녀를 따라 한 층을 올라가 투명한 유리로 된 빈 회의실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거리며 차분히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났을 때 문이 열렸다.

“김우현씨?”

“네, 제가 김우현입니다.”

“반가워요. 장태현 실장입니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파인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1본부 실장이라는 직함이 적혀져 있었다.

장태현 실장이라는 남자는 우현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다. 180정도의 건장한 체격에 수트빨이 정말 잘 받는 미남형의 남자여서 누구라도 그를 보면 호감을 느낄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대표님이 길거리 캐스팅은 한 적이 있어도 매니저를 길거리 캐스팅 한 역사가 없어서 좀 알아보느라 늦었네요.”

눈치가 빠른 우현은 장태현 실장이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게 들으려고 하면 특이한 경우라 관심이 간다는 말이지만 나쁘게 들으면 한 마디로 자신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근본도 없는 놈이라는 말인데 그의 표정이나 말투는 분명 후자의 느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네.”

“대표님께서 인상이 깊었나 봐요? 무슨 말씀을 나누신 건지 궁금하네?”

“별 얘기 없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사는 걸 보고 도와주고 싶으셨나 봐요.”

직감적으로 지금 눈앞의 인간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훑어보며 약점을 찾는 눈빛. 뱀 같은 남자다.

“알겠어요. 대표님께서 어련히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럼 믿어야지, 뭐 어쩌겠어요? 나이를 보니까 나랑 동갑이네요. 하지만 회사에는 직급이 있으니까 말을 놓을게요. 이 정도는 이해하죠?”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내가 네 사수나 마찬가지니까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줄 거야. 잘 따라와. 실수하면 너는 몰라도 네가 맡은 배우가 큰 손해를 입게 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배우를 맡기려는 것 같다. 파인 엔터도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키우려고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배우가 주축인 회사로 알고 있기에 예상했던 바다.

“운전은 할 줄 알아?“

“1종 보통입니다.”

“다행이네. ”

사람 인생이 어찌될지 몰라 운전면허를 딸 때 1종 보통으로 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한 결정이었다.

“네가 맡게 될 애가 이제 스무살 됐거든? 이름은 유은하. 한국예대 연기과 재학 중이야. 잘 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장태현은 그를 지하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에게 내미는 키는 예상과 달리 허름한 은색 중고 카니발.

“왜? 스타크래프트 밴이라도 줄 거라고 생각했어?”

“아… 아닙니다.”

“눈치껏 행동해. 아직 새파란 신인이야, 너도 마찬가지고. 운전하고 꼬박꼬박 대장에 기록하는 거 잊지 마. 그리고 이건 회사에서 주는 법인카드야. 주유할 때랑 밥 먹을 때만 사용해. 엄한 데 쓰지 말고. 알았지?”

자신을 애 취급하는 그의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지만 그냥 참고 넘겼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능력을 보일 때가 있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일단 네비 찍어줄 테니까 네가 운전해.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우현이 운전석에 앉고 그가 조수석에 앉았다. 목적지는 대학로. 대학생활을 하지 않았던 그에게 있어서 대학로는 몇 번 가본 적 없는 동네이기도 하다.

30만 키로나 달린 이 은색 카니발이 거친 숨을 토하며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잔뜩 무게 잡고 있는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원래 매니저라는 일이 기본적으로 3d업종이나 마찬가지라서 개나 소나 다 하려고 하지.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는 백날 굴러봐야 로드매니저가 끝이야.”

마치 경고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점점 열이 뻗쳐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새로 매니저가 들어오면 가르치는 과목이 몇 개 인줄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들어. 기본적인 예절이나 현장 운영 능력 체크 같은 것들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야. 계약서 작성법, 언론 홍보 실무, 기획서 작성법, 스타마케팅 이론, 시나리오 이해, 드라마/영화 제작과정, 그리고 매니저 실무까지. 대단하지?”

“그런 것 같네요.”

“너 이거 다 배울 수 있겠어?”

“넵,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좋아. 우리는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아니라서 내가 직접 널 가르칠 거야. 너 스파르타 알지? 내가 스파르타 방식으로 가르칠 거니까 각오해.”

“알겠습니다.”

속으로 코웃음이 났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30여분을 운전하며 가니 목적지에 다다랐다.

“저기에 있다. 픽업해서 다시 회사로 가자.”

자신이 처음 맡게 될 배우가 누군지 궁금했기에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도로변에 서 있는 여자에게 집중됐다.

차가 천천히 미끄러지며 그녀의 앞에 다다르자 그녀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우와…’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대형 매니지먼트사도 아니고 중견 회사에서 신인 연기자로 얼굴을 내밀어 성공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예상을 완전히 깨뜨린 그녀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전체적으로 여대생들이 즐겨 입을만한 캐주얼 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반드시 생각날 정도로 인상이 강했는데 특히 그 분위기가 차가워 보이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인사해라. 앞으로 네 로드할 분이다.”

“안녕하세요. 유은하입니다.”

그녀는 형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운전석에 앉은 우현을 향해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김우현입니다.”

분명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이 아닌 걸 아는데 차가워보였던 첫 느낌과는 달리 그녀의 웃음은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우현은 느꼈다.

‘얘는 타고났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 그랬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순간이 잊혀 지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 만큼 강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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