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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콜슨 그 녀석은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네요. 여기로 오기 전에 중앙 대륙에서 베르그와 싸웠었거든요? 그때 베르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내상을 치료할 때 도움받은 것 때문에 마탑주와 세계수의 대언자의 제자분에게 그 때 있는 돈 탈탈 털어서 선물을 사 줬었거든요. 뭐 더 좋은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자기들이랑 여기저기 돌아다녀주면 된다고 해서 그 때 여기저기 끌고 다녔던 걸 말한 거예요. 사실 그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었죠. 그 이야기 어떻게 여자랑 사귄 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못 들은 거예요. 뭐 그 밖에도 꼭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사연이 있지만 별거 아니에요.”
“그…… 그렇구나.”
바로 그게 그 여자들이 너한테 관심이 있는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굳이 적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보면 이상할 정도로 둔감한 렌이 좀 이상했다. 어렸을 적엔는 북부의 현자라고 불리기도 했고 현재도 전술, 전략에서는 엘빈과 콜슨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지략가보다 뛰어나고 전체적인 상황을 보는 안목은 오히려 더 뛰어난 렌이 여자에 관련된 문제만큼은 둔감한 면이 많았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에슈넬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자들은 너보다 나이가 많아?”
“당연하죠. 엘프들이니까 저보다 몇 배는 많을 걸요?”
“그…… 그래? 넌 너보다 나이 많은 여자 별로 안 좋아해? 예를 들어 아까 말한 그 엘프들 같은 경우는?”
“글쎄요~ 뭐 굳이 상관 안하기는 하죠. 하지만 엘프들이라…… 감정표현이 없는 엘프들은 좀 그렇지만 에르니아나 세르핀처럼 그랜드 마스터급에 잘 늙지도 않고 오래 살면 좋기는 하죠. 저도 그랜드 마스터에 들어서면서 오래 살게 됐으니까요…… 제 아내가 일찍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네요.”
“그렇구나…… 그럼 나이는 크게 상관 안 한다는 거네?”
“예. 간혹 고대에는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서 일부러 새파랗게 어린 여자들이랑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저는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어요.”
렌의 의외의 대답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일단 나이가 상관없다는 것에 연상은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풀렸다. 나이가 상관이 없다면 연상이든 연하든 상관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넌 왜 여자를 안 만나는 거야? 나야 예전에 빌어먹을 정략결혼을 할 뻔한 적이 있어서 남자를 안 만나는 거지만…….”
“저요? 음…… 굳이 말하자면 여자한테 몇 번 차였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있고 으음~ 가장 큰 이유는 제국의 두 황녀들 때문이에요.”
“황녀들?”
렌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조금 당황했다. 현 황녀들이라면 미모가 이쁘기로 소문난 자들이 아닌가? 비록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아직까지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지만 대신 정령술과 마법을 익혀서 마나의 힘으로 노화를 억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지라 20대임에도 불구하고 노화에 좋은 약초들과 피부에 좋은 여러가지 화장품을 써서 아직까지도 십대처럼 보이는 황녀들이다.
대륙 5대 미인에 둘 다 들어갈 정도였다.
“후우~ 소문 못 들으셨나요? 제가 황녀 때문에 분노해서 황녀 얼굴 칼로 그어 버릴 뻔한 거요. 황제폐하가 안 막았으면 프릴로이아 제국 황녀 얼굴 지금 못 들고 다닐걸요?”
“그…… 그래?”
“그리고 마일드 제국 황녀는 가식덩어리라서 보고 있기만 해도 짜증만 나죠. 에휴~ 전 얼굴 같은 거 이제 안 봐요. 얼굴이 아무리 이뻐 봤자 성격 더러우면 끝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해 봤거든요. 차라리 좀 활발해도 솔직한 편이 훨씬 좋죠.”
“그…… 그렇구나. 그래도 찾아보면 네 조건에 맞는 여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런 여자들을 벌써 임자가 있거나 절 부담스러워하던데요. 쩝~ 제가 너무 전쟁터를 전전하다 보니까 무서운 이미지인가 봐요.”
렌이 저렇게 앞머리를 내리고 맨날 검을 가지고 다니니 그런 것이지만 굳이 그것을 알려 줘서 다른 여자들이 렌에게 관심 갖게 할 필요성은 없었다. 아마도 은은하게 렌의 몸에서 나오는 포스 때문에 더 그런 것이겠지만 자신이야 그런 것들에 영향받을만한 경지는 아니니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중앙 대륙에서 만난 여자들이 그랜드 마스터급이라는게 걸리기도 하고 엘프라는 것에서 일단 얼굴에 합격선이기 때문에 걸리지만 일단은 인간 대륙 내에서 여자로서는 클리니아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그랜드 마스터급이기 때문에 자신이 더 우위에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렌의 옆에는 바로 자신이 있다는 것!
“내 눈에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에이~ 일반 여자분이랑 누나랑 똑같아요? 누나는 후작에다가 그랜드 마스터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저 같은 것쯤은 별거 아니게 보이는 거죠.”
“인간 대륙에서 널 보고 별거 아니라고 보는 사람은 한명도 없을 거야. 이 멍청아!”
“그…… 그런가요?”
“에휴~ 그나저나 밥은 어디서 먹을 거야?”
“아~ 저기요. 밀가루를 길게 만들어서 육수인가? 하는 거에다가 말아먹는 거라는데 굉장히 맛있데요. 맨날 빵쪼가리에 고기만 써는 것보다 가끔은 색다른 것도 먹으면 맛있잖아요.”
“그래그래~ 일단 배고프니까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밥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해서는 말이 많아지는 렌을 진정시키고는 일단 식당으로 들어갔다. 전생에 밥 못 먹은 귀신이라도 붙은 건지 밥이라면 환장을 하는 렌을 보면 한숨만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렌을 좋아하는 자신 역시 바보인 것을…… 어쨌든 그런 멍청한 렌을 보면서 한참 국수하는 것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렌이 한마디 툭 던졌다.
“근데 누나는 얼굴도 이쁜데 왜 결혼 안 해요? 누나 이제 서른 줄에 들어서는데 슬슬 위험한 거 아니에요? 뭐 누나야 마흔 줄에 들어서도 남자가 줄을 서겠지만…….”
“그러는 너부터 걱정하시지? 나야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에이~ 동생으로서 걱정돼서 하는 말이죠. 할 사람 없으면 여기 동생도 있으니까 정 결혼할 사람 없으면 저도 한번 고려해 보심이…….”
“너 말 잘못했다가 내가 확 잡아서 결혼해 버린다?”
“호오~ 저야 환영할 만한 일인데요? 가뜩이나 여자들이 저를 피해 다녀서 고민인데 누나는…… 윽! 제가 도망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렌이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저 장난 식으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분명 렌의 입장에서는 장난 식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마냥 장난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난 그만치고 마저 먹기나 해.”
“장난 아닌데…… 나중에 정말 결혼할 사람 없으면 고려해 보세요. 아마 그때까지도 여자들은 절 피해 다니고 있을 테니까요…… 휴우~.”
렌이 한숨쉬면서 국수를 포크로 둘둘 말아서 먹었다. 원래는 젓가락이라는 것을 사용해서 먹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음식이지만 젓가락을 사용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많아서 북부 지방 사람을 제외하고는 포크를 놓아 준다. 렌은 북부 지방 사람인데 특이하게도 젓가락으로 먹는 것보다 포크로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너 때문에 황태자님이 마음고생이 심하시다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뭐~ 정 남자가 없으면 너한테 시집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오~ 저야 환영하죠.”
렌이 환영한다는 듯이 환호성을 질러대자 내 얼굴이 더욱 붉어졌지만 어떻게든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평점심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저 녀석도 과연 날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부터 ‘진짜 고백하면 받아 주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렌과의 결혼 후 계획까지 장대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상의 나라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어느새 렌이 자신 몫의 국수를 다 먹고 내 꺼까지 훔쳐서 먹고 있었다.
후루룩~
“뭘 그렇게 생각해요?”
“음? 아! 야~ 너 내 꺼까지 먹으면 어떡해!”
“입맛 없는 줄 알았죠. 꺼억~ 맛있다.”
“더러운 자식. 근데 너 아직도 로리…….”
“아니에요!”
“아…… 알았어.”
과거에 로x타라는 의심을 받은 적이 있어서 조금 불안했지만 본인이 저렇게 부정하니 아니라고 믿어 줄 수밖에…… 그리고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에슈카가 엄청 귀엽기는 했다. 혹시 제자라는 명목하에 에슈카를 데리고 와서 나중에 나이가 찼을 때 렌이 혼인 신청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뭐 그전에 내가 먼저 렌을 가로채 버리면 끝나는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렌이랑 최대한 가까워지는 게 먼저였다. 렌이 저런 말까지 해 줬는데 여기서 미적거리면 천하의 검후라는 별칭이 울고 말 것이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더욱더 나를 어필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